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29
이틀 후.
숭산 자비곡.
독무가 걷힌 이곳 자비곡에 모인 중원무맹 무사들의 수는 자그마치 백만이었다.
하루 전 중원무맹 총단에서 백소운의 지휘 아래 출발한 인원은 모두 칠십만.
하지만 소문을 듣고 직접 자비곡으로 찾아온 무림인의 수가 삼십 만이었다.
그래서 총 백만이 되었다.
이 숫자는 공교롭게도 영웅대회 참석 군웅들의 수와 같았다.
그 때문에 지금 자비곡은 영웅대회장을 방불케 했다.
한편 자비곡에 잔뜩 끼어있었던 독무는 백소운, 자운신녀, 옥려군 세 사람이 힘을 합쳐 깨끗이 제거한 상태였다.
이제 신선계로 들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하지만 무사들에게는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
백소운이 백만 무사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은 여기서 기다리고 있다가 연락이 오면 그때 신선계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와아아.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기가 오른 백만 무사들이 함성과 함께 소리쳤다.
우려와 달리 반박을 하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원무맹주가 된 백소운의 위상은 가히 신급으로 격상된 상태였다.
게다가 병력이 무려 백만이었다.
지옥맹 고수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백만이라는 숫자가 주는 든든함은 무시하지 못했다.
게다가 백소운으로부터 지옥검선이 최후를 맞이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상황이었다.
자신감이 최고로 올라온 시기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중원무맹 지휘부 고수들은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다.
한 시진 전 자비곡으로 진입했을 때 지휘부 작전회의를 통해 비로소 소수 선발대 진입 작전이 알려진 탓이었다.
선발대 인원은 단 네 명.
바로 예정대로 백소운, 자운신녀, 옥려군, 검마왕 네 명이었다.
물론 반대라기보다 함께 가겠다고 한 사람은 매우 많았다.
대표적으로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백리영, 임소혜가 있었다. 하지만 백소운은 그들 중 누구도 허락하지 않았다.
유덕 등 사대호법은 무공이 약한 것이 그 이유였고, 백리영과 임소혜는 무사들을 지휘하고 있어야 했다.
한편 선천북두진법은 조금 전 가동되고 있었다.
원래는 다른 보호진을 펼치려고 했으나, 숙고 끝에 바로 펼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실 선천북두진법 역시 강력한 보호막 기능이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진법 형태로 신선계로 진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선천북두진법을 완전하게 펼치려면 백소운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나중에 그가 직접 연락을 취하러 돌아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저곳이 출입문이에요.”
옥려군이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절벽 중 한 곳을 가리켰다.
북쪽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은은한 금빛이 흐르고 있었다.
“문을 열겠어요.”
옥려군이 피리를 내밀자, 피리에서 한 줄기 경력이 뻗어 나와 절벽 한 면을 강타했다.
순간 그그긍 소리와 함께 절벽이 양쪽으로 갈라지며 출입구가 나타났다.
하지만 금빛이 강렬해 그 안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로 들어가면 바로 신선계와 연결되지요. 나중에 우리 중 누구라도 연락을 보낼 때 곧장 진입하면 될 거예요. 총군사님. 아시겠죠?”
“네. 옥 소저.”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운 역시 그에게 여러 가지 당부를 다시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맹주님. 절대 경거망동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을 직접 보내기 힘든 경우에는 제가 음파를 이용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만리전음(萬里傳音)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거리에 상관없이 보내는 특수 전음이니, 아마도 그것을 사용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알겠습니다. 맹주님.”
자명선생이 고개를 숙였다.
만리전음이란 무형검의 고수만이 펼칠 수 있는 상승전음술로서, 혜광심어의 원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백소운은 그 상대로 자명선생과 백리영, 임소혜 세 명을 특정해 미리 그에 대한 준비를 마쳤다.
아무한데나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미리 몇 명에게만 특수한 준비를 해두었던 것이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백소운이 무사들을 뒤로 한 채 옥려군, 자운신녀, 검마왕과 함께 신선계 안으로 들어섰다.
백만 무사들은 일제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기다리겠습니다. 맹주님.”
“기다리겠습니다.”
* * *
신선계로 들어선 백소운 일행은 곧바로 악마진법이 설치된 곳으로 향했다.
“악마진법이 있는 곳은 악마산(惡魔山)이란 곳이에요. 원래는 이름 없는 산이었으나, 지옥악마신이 이번에 새롭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그렇게 부르게 되었지요.”
옥려군의 말이었다.
검마왕이 물었다.
“옥 소저. 그럼 악마산 안에 등선맹 고수들이 갇혀 있는 것이오?”
“네. 그런 셈이지요. 지옥맹 놈들도 아마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병력이 아니라 우리만 가게 되면 놈들이 놀랄 것 같군요.”
“으음, 우리 네 명이 놈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을 것 같군. 교주. 아무래도 말 그대로 정탐만 하고 돌아가야 할지도 모르겠소. 등선맹 고수들을 구출한다는 계획은 변함이 없소?”
“네. 그분들을 구해내야 본맹 무사들의 안전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악마산에 도착하면 저 혼자 들어갈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산 아래서 저를 기다려 주십시오.”
“그건 안 될 말씀이에요. 최소한 저는 안내를 해야 하니 데리고 가셔야 해요.”
옥려군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몸 전체에서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무공으로도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 역시 며칠 전 백소운의 도움을 받아 무공이 일취월장한 바 있었다.
그 정도는 백소운 조차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사실 이전에 그녀가 등선맹에서 홀로 빠져나올 때 다른 등선맹 고수들로부터 부여받았던 힘은 상상을 초월했었다.
한데 이번에 그 힘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다.
“저도 반드시 함께 갈 거예요.”
“하하하. 교주. 나는 무조건 갈 것이오. 신선계 안까지 들어왔는데 어찌 놈들의 소굴 앞에서 멈출 수 있겠소?”
자운신녀와 검마왕 역시 반발했다.
하지만 백소운은 단호했다.
“맹주로서 명합니다. 제 뜻을 따라주십시오. 놈들은 매우 강합니다. 그리고 놈들은 저 혼자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역이용해 놈들을 괴멸시킬 것입니다. 다만 지옥악마신을 상대할 때에는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으니, 그때 상황에 맞게 움직여주시면 되겠습니다. 최대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검마왕 등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백소운이 정색을 하는 바람에 결국 명에 따르기로 했다.
사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백소운에게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일단 악마산까지 가지요. 멀지 않은 거리지만 구름을 타고 가는 게 빠르겠습니다.”
백소운이 우수를 들자, 구름 한 조각이 날아왔다.
바로 등선운이었다.
이전에 등선회주 옥평이 준 등선비록에서 익혔던 운운술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한편 최근 무공을 정리하면서 등선비록 상의 무공도 다시 한번 연마했었다. 이전에는 기억만 해둔 것이 많았지만 이번에 완전히 익힌 것이었다.
이는 아무래도 이번 출정에서 유용하리라 생각했던 때문이었다.
옥려군 역시 구름 한 조각을 불렀다. 그녀가 탄 구름에는 자운신녀와 검마왕이 함께 탔다.
백소운은 혼자 탔다. 아무래도 악마산 위로 혼자 갈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나 날아갔을까.
일각 정도 지났을 무렵.
거대한 산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핏빛 안개가 끼어 있어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로 악마산이었다.
옥려군이 말했다.
“바로 이곳이에요. 등선맹 고수들이 이곳에 모두 갇힌 것은 지옥악마신의 이동대법 때문이었어요. 원래는 등선봉에 모두 모여 있었지요. 산에 내리는 순간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모르니 조심하셔야 할 거예요.”
“설명을 여러 번 들어 잘 알고 있소. 여러분은 산 아래에서 절 기다려 주십시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옥려군, 자운신녀, 검마왕 세 사람을 태운 구름이 악마산 아래로 내려갔다.
백소운은 여전히 산 중턱 위에 떠 있는 상태.
구름에서 내리면 바로 지옥맹의 영향권 아래 들어갈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옥 소저 역시 악마진법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알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나 혼자 들어가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임기응변할 수밖에 없겠구나.’
백소운이 구름에서 내려 악마산에 내려섰다.
순간 핏빛 안개가 걷히며 거대한 공간이 나타났다.
분명 산에 들어왔는데, 끝없이 펼쳐진 벌판이었다.
백소운이 급히 주위를 살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대지뿐이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먼지가 피어오르더니 말을 탄 사람 한 명이 다가왔다.
두두두두.
백소운은 무명검을 들고 담담히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지옥맹 무사로 보이는 사내가 탄 말이 도착했다.
말은 눈이 하나였다. 머리엔 뿔이 하나 나 있었다.
지옥맹 무사는 의외로 평범하게 생긴 사내였다.
“백소운 맹주이시오?”
“그렇소.”
“악마산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맹주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따라오시오.”
“맹주라면 지옥맹주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이번에 지옥악마신께서 직접 맹주 자리를 맡으셨지요.”
“지옥악마신이 새 맹주가 되었다고? 그가 인간의 형상을 갖추었다는 말이오?”
“그렇소. 어떻게 하시겠소? 맹주께서는 백 맹주와 단판을 벌여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자 하시오.”
“좋소. 나 또한 바라는 바였소.”
백소운이 흔쾌히 수락했다.
사실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을 예감했던 그였다.
‘혹시 내가 갖고 있는 봉인대종 때문일까. 일단 가보면 알겠군.’
백소운이 지옥맹 무사가 타고 온 말 위에 함께 탔다.
말의 덩치가 보통 말 두 배 이상이라 앉을 자리는 충분했다.
두두두두.
말이 빠르게 달려갔다.
가는 도중 백소운이 물었다.
“악마진법은 어디에 있는 것이오? 이곳은 아닌 것 같은데······.”
“악마진법이 펼쳐진 공간은 다른 곳에 있소. 그곳은 일종의 감옥이라 할 수 있소. 지금 가는 곳은 본맹이 새롭게 건설한 총단이오. 악마성(惡魔城)이라 부르면 될 것이오. 참고로 악마진법은 총 열 가지 관문으로 구성되어 있소. 그 관문들을 돌파해 등선맹 수도자들을 구해내는 것은 아마 불가능할 것이오. 그러니 우리 맹주님과 협상을 통해 그들을 구하는 게 좋을 것이오.”
“자세한 설명 감사드리오. 그대는 뉘시오?”
“나는 지옥악마객(地獄惡魔客)이라 하오. 맹주님의 제자 중 한 명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오.”
“지옥악마신에게 제자가 있소?”
“그렇소. 우리 열두 명의 제자는 신탁을 통해 탄생했소. 나는 마지막 열두 번째 제자요.”
“막내치고는 이름이 거창하군요.”
“고맙소. 부디 협상이 잘 되어 함께 천하를 다스렸으면 하오.”
“천하라 하면 어디를 말하는 것이오?”
“강호와 신선계, 그리고 천계를 모두 망라하는 것이오. 자세한 것은 맹주님께 직접 여쭤보시오. 다 왔구려.”
지옥악마객이 거대한 성 하나를 가리켰다.
바로 지옥맹 총단인 악마성이었다.
성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지옥맹 무사들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기괴하기 짝이 없군.’
백소운이 애써 무시하며 성안으로 들어갔다.
말이 그대로 성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때 뿌우우 하는 나팔 소리가 들렸다.
백소운이 주위를 둘러보니 그제야 지옥맹 무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안에 가득했다.
얼핏 보아도 백만에 가까운 대병력이었다.
‘지옥맹 무사들도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구나. 하지만 상당수가 강시를 이용해 만든 것 같다.’
백소운이 창백하기 그지없는 지옥맹 무사들을 쳐다봤다.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성벽 쪽을 쳐다봤는데, 그곳 역시 지옥맹 무사들로 가득했다.
‘진법 때문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내가 착각했구나. 내 눈을 속일 정도라니 보통 방어진법이 아니군. 정말 내가 악마의 아가리 안으로 들어온 것 같구나.’
백소운이 안색을 굳힐 때.
드디어 지옥맹주의 거처가 보였다.
의외로 그곳은 아담한 한 초가였다.
초가 마당에 백발노인 한 명이 그림처럼 서 있었다.
그의 뒤에는 열 한 명의 무사들이 서 있었다.
복장이 지옥악마객과 비슷했으나, 나이는 훨씬 많은 편이었다.
‘저자가 지옥악마신이군. 그리고 호위들은 그의 제자들 같구나.’
백소운이 심호흡을 한번 한 후 초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백발노인이 그를 보고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시오. 백 공자. 내가 바로 지옥악마신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