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34
핏빛 독안개가 다가오는 속도는 매우 느렸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백소운 일행을 감싸기 시작했다.
마치 공간을 접어오듯 다가왔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역시 독입니다. 모두 숨을 멈추십시오.”
백소운이 소리치며 보호막을 형성했다.
순간, 보호막에 핏빛 안개가 달라붙으며 압박을 가해왔다.
우우웅.
보호막이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흔들리며 나타나는 소리였다.
“모두 이 안에 그대로 계십시오. 제가 나가서 처리하겠습니다.”
백소운이 보호막 밖으로 나가 독 안개를 걷어내기 시작했다.
쏴아아.
그의 장심에서 장력이 분출되었다.
동시에 독 안개가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독 안개 속에서 독인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백소운이 걷어낸 독 안개를 네 명의 독인들이 모두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치 백소운이 독 안개를 걷어내기를 기다린 것 같았다.
“독인인가요?”
자운신녀가 물었다.
보호막에 가중되어 있던 압력이 사라져 그녀뿐만 아니라 검마왕과 옥려군도 한결 여유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보호막 바깥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백소운이 말했다.
“그렇소. 예상대로 절대독인인 것 같소이다. 엄청난 양의 독을 모두 흡수한 것을 보니 독공 또한 대단할 것 같소.”
“아마 악마독(惡魔毒)일 거예요. 그리고 저들은 절대독인이 된 악마독인(惡魔毒人)일 가능성이 높아요. 무형검 이상의 고수가 아니면 처치하기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맹주님이라면 충분히 제거할 수가 있지요. 생각보다 쉬운 관문이 될 것 같군요.”
“생각보다 쉽다는 것은 함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긴데······.”
백소운이 안색을 굳히며 앞으로 나아갔다.
검마왕 등에게 혹시 모를 충격파가 가해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면서 점점 다가오고 있는 네 명의 악마독인을 유심히 살폈다.
얼굴에 붉은 탈을 쓰고 있어 누군지 알기 어려웠다. 하지만 몸매가 익숙했다.
입고 있는 옷은 모두 독 안개 때문에 핏빛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다만 복장으로 봐서 삼남일녀였다.
‘설마······.’
백소운이 깜짝 놀라며 휘청거렸다.
급히 우수를 흔들어 악마독인들의 탈을 벗겨냈다.
“아!”
백소운이 다시 한번 휘청거렸다.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악마독인들은 바로 그와 한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이었다.
이동대법에 당해 악마뇌옥에 있어야 할 그들이 지금 악마진법의 다섯 번째 관문에 있는 것이다.
“아저씨들. 하림아.”
백소운이 유덕 등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유덕 등 네 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소운이 조심스레 보니 네 명 모두 동공이 풀려있었다.
뒤늦게 유덕 등의 정체를 알게 된 자운신녀가 소리쳤다.
“이미 대법에 의해 악마독인이 된 것 같아요. 안타깝지만 한 시진 안에 저분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게 될 거예요.”
“그럴 수는 없소.”
백소운이 고개를 저었다.
유덕 등 네 명을 자신의 손으로 죽인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뭔가 방도가 있을 것이다. 독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백소운이 급히 금단비고 안을 살폈다.
하지만 마땅한 물건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피독주 몇 개를 꺼내 유덕 등 주위를 감싸고 있는 핏빛 안개를 향해 던져봤다. 하지만 예상대로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악마독의 특성상 작용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잠자코 백소운의 행동을 지켜보던 막총이 두 손을 뻗어 독장을 날렸다.
바로 악마독장(惡魔毒掌)이었다.
쏴아아.
백소운이 대항하지 않고 보호강기로 이를 막았다.
꽝.
“으윽!”
백소운이 그 자리에서 비틀거렸다.
약간의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반탄력으로 인해 막총이 다치지 않기 위해 힘을 최대로 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게 뒤쪽에는 검마왕, 옥려군, 자운신녀가 있었다.
그들을 감싸고 있는 보호막이 파괴되면 그야말로 큰일인 것이다.
“반격하셔야 해요. 아니면 일단 제압이라도······.”
자운신녀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백소운은 전혀 공격할 의사가 없어 보였다.
“막 아저씨. 저를 몰라보시겠습니까?”
“쿠쿠쿠······.”
막총이 기괴한 음성으로 웃었다.
하지만 동공이 여전히 풀려 있어 정상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백소운으로서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였다.
순식간에 한시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 증거로 사방의 공간이 점점 좁아져 오고 있었다.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대로 소멸하고 마는 악마진법의 원칙.
아직 그에 대한 대비가 백소운에게는 없었다.
“시간이 없어요!”
옥려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급해진 검마왕은 보호막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자운신녀가 말렸다.
백소운이 곧 결단을 내릴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막총의 재공격이 시작되자 유덕, 정기. 진하림 또한 악마독장을 날렸다.
쏴아아.
이번에는 백소운 조차 감당하기 힘든 위력이었다.
악마진법 안에서 유덕, 정기 등의 독공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받아치면 아저씨들과 하림이는 즉사하고 만다. 반대로 내가 아무런 보호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나는 물론이고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죽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백소운이 난감해했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생명에 대한 집착이 거세게 일어난 것을 느꼈다.
물론 그 생명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때 문득 옛 법문 하나가 떠올랐다.
평소 즐겨 암송하던 구절이었다.
무형검을 터득하면서 여러 번 깨달음을 얻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하지만 직접 그런 상황에 부딪히자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 얽매임을 벗어난 사람은 사랑할 것도 미워할 것도 없는 것이지.’
백소운이 잠시 여유를 가졌다.
악마독장은 지척에 이르렀지만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한 결론에 도달했다.
그것은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독을 제거하는 방법이었다.
‘그렇다. 내가 악마독을 모두 흡수하면 된다. 흡수대법을 이용하면 가능하다. 다만 나는 치명적인 독의 부작용으로 죽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오직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백소운이 우수를 뻗어 흡수대법을 펼쳤다.
순간, 지척까지 다가온 악마독이 그의 장심을 통해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흡수대법의 위력은 길게 이어져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의 몸속에 있던 악마독마저 모두 흡수했다.
“맹주님! 안돼요!”
자운신녀가 소리쳤다.
그녀는 지금 백소운의 행동이 무슨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백소운이 직접 흡수하지 않고 독을 진법 내에서 해소할 방법을 그녀 역시 알지 못했다.
‘무형검 최후의 경지라는 지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맹주님은 며칠을 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왜 저런 무모한 짓을······.’
자운신녀가 안타까워했으니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휴우······.”
악마독을 모두 단전에 흡수한 백소운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조식에 들어갔다.
검마왕과 옥려군, 자운신녀 세 사람이 보호막 밖으로 나와 다가왔다.
“저는 괜찮습니다. 저분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백소운이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십장 정도 떨어진 그곳에는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눈빛과 안색 등이 편안한 것이 대법이 풀려 원래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다만 잠을 자고 있는 것은 백소운이 일부러 수혈을 짚은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놀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상이 없는지 살펴주십시오. 일각 정도 후면 저절로 깨어날 것이니 일부러 내공을 넣어주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네. 맹주님.”
옥려군이 가장 먼저 가서 유덕 등을 살폈다.
그 결과 네 명 모두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미소를 지었다.
검마왕 역시 안도의 한숨을 쉬며 유덕 등을 다시 한번 살펴주었다.
자운신녀는 백소운 옆을 떠나지 않았다.
“왜 그러셨어요?”
“악마독 말이오?”
“네. 그 않은 악마독을 몸속에 흡수하셨으니, 그 독들은 절대 빠져나가지 않고 곧 활동을 시작할 거예요. 그렇게 되면 아무리 맹주님이라도 살아날 수 없어요.”
“진인사대천명이라 했소. 그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소.”
“그래도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셨어요. 나중에 지옥악마신과 싸울 때도 매우 불리할 거예요.”
“염려해줘서 고맙소. 하지만 쉽게 쓰러지지 않을 것이오. 비록 무형검의 최후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해야 할 일을 다 할 때까지는 절대······.”
“믿겠어요. 이보다 더한 위기에도 살아나신 맹주님이니 이번에도 희망을 걸겠어요.”
“고맙소. 신녀가 내 옆에 있어 항상 마음이 든든했소.”
“고마워요. 제가 미인이라면 더 좋았을 텐데······.”
“무슨 소리요? 신녀는 원래 절세미인인 것으로 알고 있소. 한데 천계에서만 본 얼굴로 지낼 수 있는 것이오?”
“네. 천계에서 이곳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얼굴이 바뀌게 돼요. 저만 가지고 있는 특수 능력 때문이지요. 그 능력 때문에 저는 태어날 때부터 중개자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하지만 진정한 무공의 신이 탄생하면 그분의 능력으로 그런 제한을 풀 수가 있지요. 그때가 되면 저는 이곳 강호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요. 기대하고 있겠어요.”
“하하하. 물론이오. 나 또한 신녀의 본 얼굴이 궁금하니까.”
“감사해요.”
백소운과 자운신녀가 담소를 나누는 그때.
검마왕과 옥려군이 잠에서 깨어난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을 데려왔다.
그들 네 사람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백소운을 발견하고 매우 기뻐했다.
“운아!”
“오라버니!”
백소운이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진하림을 가볍게 안아주었다.
“어떻게 된 건가요?”
진하림의 물음에 백소운이 차근차근히 설명해주었다.
“모든 것이 잘 되었다. 내가 악마독을 흡수해 모두 제거했지.”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악마독을 몸속에서 모두 제거했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운신녀뿐이었다.
하지만 자운신녀 또한 이제 그 사실을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 이제 여섯 번째 관문으로 가요. 일행 수가 많아져 더욱 조심해야 할 거예요. 한데 중원무맹 무사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모두 광장에 갇혀있어요. 정방형의 광장인데 그 넓이는 끝이 없을 정도로 넓어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양 사방이 절벽으로 막혀 있지요. 자비곡에 있던 백만 본맹 무사들이 갑자기 그곳으로 이동될 줄은 아무도 몰랐지요.”
“그곳이 아마 악마뇌옥일거예요. 진 소저. 한데 그곳에서 우리 등선맹 고수분들은 보이지 않았나요?”
“네. 전혀 보지 못했어요.”
진하림이 고개를 저었다.
옥려군이 의아해하자, 자운신녀가 말했다.
“등선맹 수도자분들의 무공이 높아 아아 다른 장소에 가둬두었을 거예요. 악마뇌옥도 여러 군데로 나뉘는 셈이지요. 하지만 우리가 열 관문 모두를 돌파하면 등선맹 수도자분들 역시 모두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때는 지옥악마신을 비롯한 지옥맹 놈들과 최후의 일전이 벌어지게 되겠죠.”
자운신녀가 말을 하며 안색을 굳혔다.
아무래도 아직 백소운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백소운은 매우 편안해 보였다.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리면 지성에 도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