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37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백소운의 묵상은 끝없이 계속되었다.
시간의 흐름도 잊고 깨달음에 정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어느새 석 달이 다 된 것 같구나. 이제 역천대법도 그 효력이 끝날 때가 된 것 같다. 봉인대종 역시 한계에 달한 것 같고······.’
백소운이 동굴 바닥에 놓인 봉인대종을 바라봤다.
스스로 꿈틀대는 것이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천마검혼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다시 천마검으로 들어가 요양에 들어간 지도 한 달째.
마신들의 봉인이 풀리는 것은 이제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 전에 역천대법의 효력이 끝나 백소운이 먼저 죽게 될 상황이었다.
그때 천마검혼이 전음을 보내왔다.
「주공. 이제 한시진도 지나지 않아 봉인이 풀릴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구나. 공교롭게도 역천대법 역시 한시진 후면 그 효력이 끝날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죽은 후 마신들이 봉인에서 풀려나게 되겠군.」
「그런 말씀 마십시오. 주공께서는 절대 돌아가시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해야 할 일? 그래. 있긴 하지. 봉인대종을 영구히 소멸시켜 마신들의 부활을 막는 것이 내 임무였지. 하지만 내가 죽더라도 다른 분이 있어 그 일을 마저 하지 않겠느냐?」
「마신들이 이미 부활한 후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세상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이다. 마신들이 봉인에서 풀려나도 그들을 제거할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등선맹 수도자분들 중에 그런 분이 있을 수 있지. 서약도 풀렸겠다. 이제 진정한 힘을 발휘할 분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한 시진 후면 생을 마감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는 그였다.
“으음, 그러고 보니 천무마시를 옥 소저에게 준다는 것을 깜박했군. 물론 이미 서약에서 풀린 것을 다 알고 있겠지만, 그래도 상징적인 물건이 필요할 것이다.”
백소운이 중얼거린 후 금단비고에서 천무마시를 꺼냈다.
천무마시는 상자 안에 있었다. 한데 그 상자는 바로 봉인대종과 절대비급이 담겨 있던 것이었다.
백소운이 천무마시를 꺼내 바닥에 놓은 후 빈 상자를 세밀히 살폈다.
상자 자체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버리지 않고 보관해둔 것이 기억난 것이다.
‘혹시 상자 자체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게 아닐까.’
백소운이 천리안을 가동해 상자를 다시 한번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미 전신에 퍼진 악마독 때문에 공력을 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가 이번에는 천리사 가루를 꺼내 상자에 뿌려보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상자에 불이 붙는 게 아닌가.
화르륵.
백소운이 놀라는 가운데 곧 불은 꺼졌다.
그리고 남은 것은 한 장의 양피지였다.
백소운이 급히 양피지를 들어 그 내용을 보니 한 가지 비술이 적혀 있었다.
“파종술(破鐘術)이라. 이게 바로 봉인대종을 영구히 소멸시키는 비술이구나.”
백소운이 기뻐하며 그 상세 구결을 읽어 내려갔다.
얼마 후 그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다행히 내공이 필요 없는 비술이다. 단 한 차례 펼칠 수 있지만 영구히 봉인대종을 소멸시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군. 다만 비술을 펼친 자는 예상대로 목숨을 바쳐야 하는구나.’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최선의 방법은 역시 무형검 최후의 경지인 지성에 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실패한 상황.
미련이 남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죽을 목숨. 내 한목숨을 바쳐 마신들의 봉인을 영구히 막는다면 그만한 가치는 있으리라.’
백소운이 결단을 내리고 곧바로 파종술을 연마했다.
그 연마 속도는 매우 빨랐다.
한 시진이 채 되지 않아 끝냈다.
이제 남은 시간은 불과 일각 정도.
‘이제 정말 마지막이군.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가야 할 길이다. 아쉬운 것은 그리운 사람들을 보지 못하고 간다는 것이군.’
백소운이 잠시 정기, 진하림 등을 떠올렸다.
하지만 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봉인대종에서는 붉은 연기가 쉴 새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백소운의 몸 상태도 죽음 직전이었다.
그때 다시 천마검혼의 전음이 들렸다.
「주공. 정녕 그 길을 택하신 겁니까?」
「그렇다. 지금 이 길 밖에 다른 길이 있겠느냐?」
「그래도 아쉽지 않습니까? 주공께서는 아직 출생 내력도 파악하지 못하셨는데······.」
「내가 누구의 아들인지, 내가 정말 천족의 후예인지. 그런 것들이 지금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다만 죽기 전에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리고 죽음이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무얼 아쉬워하겠느냐?」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말씀입니까?」
「그렇다. 죽음이 끝이라고 하지만 실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것 같구나. 이제야 그 말의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곧바로 봉인대종을 손에 들고 파종술을 펼친 것이다.
번쩍.
백소운의 전신에서 장엄한 금빛이 우러나왔다.
순간, 봉인대종이 그대로 소멸해버렸다.
하지만 천려일실(千慮一失)인가.
봉인대종이 완전히 소멸하기 직전 붉은 기운 하나가 빠져나와 동굴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백소운은 직감적으로 그 기운이 마신 중 한 명의 것임을 알았다.
‘설마 천마신의 봉인이 풀린 것인가.’
백소운이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곧 죽음 직전이었다.
역천대법의 효력이 끝나고 그의 숨이 끊어지기 직전.
바닥에 놓여 있던 천무마시가 공중에 떠오르더니 백소운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단단한 열쇠 모양의 그것은 놀랍게도 입속으로 들어가는 즉시 물로 변해 뱃속으로 내려갔다.
백소운은 뱃속에서 뭔가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그대로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 * *
백소운이 다시 깨어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으으······.”
백소운이 신음과 함께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한 노인이었다.
일전에 풍운정에서 만나 기억을 되찾게 도움을 줬던 바로 그 풍운노인이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특이한 사람이기도 했다.
“허허허. 일어났는가?”
“어르신께서 어떻게?”
“날 알아보는군. 몸은 좀 어떤가?”
“······.”
백소운이 그제야 어제 일이 떠올랐다.
죽음 직전에 파종술을 연마해 봉인대종을 영구히 소멸시켰지 않은가.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도 있었다.
천마신으로 추정되는 붉은 기운이 빠져나간 것과 자신이 천무마시를 먹고 정신을 잃은 일이었다.
“천무마시가 자네 몸에 들어가 복이 된 것 같군. 그렇지 않은가?”
“아, 네.”
백소운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그 결과 아무 이상이 없음을 발견했다.
악마독과 역혈대법의 후유증 등 목숨을 위협했던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오히려 무형공력이 이전보다 훨씬 깊어져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백소운이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풍운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인연이네. 비록 천마신이 봉인을 풀고 사라져 후환이 되었으나, 그 덕분에 자네 역시 목숨을 살리게 된 것이네. 일종의 안배라 할 수 있지.”
“봉인대종에서 빠져나간 그 붉은 기운이 정말 천마신이었습니까?”
“그러하네. 하지만 그런 경우를 대비해 천무마시가 주인을 찾아 그 힘을 보태주었지.”
“아! 그랬었군요. 그 모든 게 천무성자님의 안배였던 것 같군요. 한데 천무성자께서 혹시 천무신입니까?”
“그러하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물어보게. 내 할 일이 바로 그것이니까.”
“제 친부가 정말 검마왕 그분입니까?”
“아니네. 검마왕의 친 아들인 임자룡은 태어나자마자 죽었네. 바로 천마신이 봉인되기 전에 남긴 저주 때문이었지. 자신의 부활을 막을 인물을 미리 죽이기 위해서였지. 그래서 그 불쌍한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에서 소멸하여 버린 것이네.”
“그럼 저는? 지옥악마신이 이동대법을 통해 낙양으로 날렸다는 아이는?”
백소운이 어리둥절해 했다.
풍운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너무 초조해하지 말게. 지옥악마신이 아이를 낙양으로 날린 것은 맞네. 하지만 이미 죽은 아이였었지. 그 때문에 도중에 소멸한 것이네. 자네는 이동대법 중에 별도로 태어난 아이라네. 다만 이곳 강호에 적응하기 위해 특수대법을 통해 임자룡 그 아이의 기운을 조금 빌렸을 뿐이네. 자네 등에 있었던 성화 문신이 바로 그것이지. 하지만 더는 나타나지 않을 걸세.”
“네? 그럼 제 부모님이 따로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백소운이 아직 이해를 못한 듯 추가 설명을 기다렸다.
“그러하네. 자네 부모님은 천계에 계시네. 자네의 진짜 신분은 천계의 태자라 할 수 있지.”
“태자? 그럼 제 부모님은?”
“자네 부모님은 천계의 주인이시네. 천계에서는 천제(天帝)라 불리시지.”
“······.”
백소운이 할 말을 잃은 듯 묵묵부답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풍운노인이 구태여 거짓을 말할 것 같지 않았다.
“허허허. 충격이 큰 것 같군. 하지만 아무 걱정하지 말게. 자네 의구심을 없애기 위해 이렇게 내가 왔으니까. 직접 천계로 가서 부모님을 만나보면 될 것이 아닌가?”
“지금 말입니까?”
“물론이네. 이미 천무마시가 자네 몸속으로 들어가 천계 출입이 자유로워졌네. 천족의 후예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혈통이라 할 수 있지.”
“천계에 가면 천무성자님도 만나 뵐 수 있는 겁니까?”
“물론이네. 하지만 자네는 이곳 강호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많네. 다시 돌아와야 할 걸세. 천계로 정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먼 훗날의 일이 될 것이네. 물론 그때도 자네는 천계와 이곳 강호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걸세. 그것은 자네만의 특권이라 할 수 있을 걸세.”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천계로 가면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르신께서는 어떤 분입니까?”
“나 말인가? 내 모습은 자네만 볼 수 있네. 그리고 사실 이전부터 자네에게 여러 번 도움을 줬었지.”
“설마 어르신께서 상태창?”
“허허허. 맞네. 내가 바로 그 녀석이었네. 이제는 더 이상 그 노릇은 하지 않겠지만, 아무튼 재미가 있었지. 천무신의 부탁으로 자네를 보호하고 있었네. 하지만 이제 자네는 당당한 천족의 후예로 스스로 모든 곤란을 이겨내야 할 걸세. 가장 시급한 임무는 바로 천마신을 제거하는 것이겠지. 우리는 서약에 의해 놈을 제거할 수 없으니까 말일세.”
“역시 천마신 그자가 문제이군요.”
“그러하네. 부활한 그놈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해져 있을 것이네. 가히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지.”
“하지만 그래봤자 한 명이 아닙니까?”
“무슨 소리! 자네 덕분으로 다른 마신들은 모두 영구적으로 소멸했지만, 천마신 그놈은 아마도 이번에 봉인이 풀리면서 다른 백대 마신의 힘을 모두 이어받았을 것이네. 게다가 신비백맹의 힘까지 자신의 휘하에 두게 되면 산술적으로 지옥맹 같은 세력이 백 개가 더 생겨나는 셈이네.”
“신비백맹이 실재하는 곳이었습니까?”
“물론이네. 하지만 그곳은 현재 마계 쪽 세력들로 가득하네. 그 때문에 오래 전 봉인을 시켜 없는 것과 마찬가지 상태지. 하지만 천마신은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그 힘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할 것이네.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해주지.”
“듣고 보니 천마신을 제거하기가 힘들겠군요.”
“물론이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네. 이번에 자네가 천계로 가면 진정한 힘을 새롭게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 길어졌네. 나를 따라오게. 천계로 어서 가세.”
“알겠습니다.”
백소운이 대답한 바로 그 순간.
동굴 안에 장엄한 금빛이 가득 차며 두 사람을 감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