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38
반년 후. 낙양.
성문을 통해 막 한 사람이 성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십 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는 평범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그래서일까.
관도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 속에 금방 파묻혀 구별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평범 속에 기이함이 있는 것일까.
담담한 표정과 조용한 걸음걸이 덕분인지, 마치 군계일학처럼 군중 속에서 빛났다.
‘벌써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있군.’
백의청년이 관도를 오가는 많은 무림인을 쳐다봤다.
한데 대부분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장례식장에 가는 복장이었다.
백의청년은 그들을 유심히 한번 다시 쳐다본 후 인근 객잔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공자님.”
점소이가 반갑게 맞이했다.
최근 손님들이 많아져 무척 바빠진 그였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수입도 많아지기에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자리가 있는가? 손님들이 무척 많군. 이게 다 백 대협의 장례식에 참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가?”
“네. 공자님. 사흘 후 중원무맹주 백소운 대협의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이라, 천하 각지에서 많은 분이 오고 계시지요. 이미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마교, 은자림, 등선맹 등 거의 모든 곳의 무림인이 도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으음, 그렇게나 많이?”
“네. 장례가 끝난 후 중원무맹의 새 맹주를 뽑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서 절 따라오십시오. 저기 막 자리가 하나 났습니다.”
점소이가 백의청년을 안내한 자리는 객잔 구석에 있는 탁자였다.
탁자에는 이남일녀가 앉아 있었다.
한 자리가 비어 합석할 수 있었다.
한데 그들은 바로 이소절, 정흥, 정수심 세 사람이 아닌가.
한 달 전 숭산 어느 동굴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백소운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었다.
“합석 좀 하겠습니다.”
백의청년이 고개를 조금 숙인 후 자리에 앉았다.
이소절이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귀하도 백소운 그 친구의 장례식에 참가하러 오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한데 백 대협이 무사님의 친구 분입니까?”
“그렇습니다. 비록 오래 사귀지는 못했지만 마음이 통했었지요. 하지만 애석하게도 유명을 달리해 비통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소절이 안색을 굳혔다.
친구를 잃고 씁쓸한 표정이었다.
애써 미소를 짓고는 있으나 상실감이 큰 것 같았다.
정수심이 말했다.
“맹주님께서는 부활하실 거예요. 불사신공을 익히셨으니 검마왕 말씀대로 이번에 다시 살아나실 거로 믿어요.”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소? 하지만 생사신의 말로는 회생할 수 없다고 하니······ 게다가 사흘 후에는 육신이 가루가 되어 먼지처럼 흩어질 거라고 하오. 그 때문에 사흘 후를 장례식 날짜로 정한 게 아니오? 물론 그 진단은 한 달 전에 내려진 것이지만 말이오.”
이소절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누구보다 백소운의 부활을 바라는 사람이 그였다.
백의청년이 물었다.
“여러분은 중원무맹 무사분들입니까?”
“네. 우리 세 사람 모두 정식무사들이에요.”
정수심이 대답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하게 되었다.
“이소절입니다.”
“정흥입니다.”
“정수심이라고 해요.”
“백무형(白無形)이라고 합니다.”
백의청년, 즉 백무형까지 자신의 이름을 밝히자 분위기는 더욱 좋아졌다.
하지만 말은 안 하지만 여전히 백소운의 죽음 때문에 쓸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흥이 말했다.
“사실 제 동생과 저는 이곳 낙양에서 맹주님을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지요. 이전에 심법을 전수받기도 했었는데, 그 덕분에 두 사람 모두 정식무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도 맹주님은 꼭 되살아나실 것 같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무림인의 소망이지요.”
“하지만 이제 사흘밖에 남지 않았는데 무슨 수가 있겠습니까?”
백무형이 담담히 물었다.
무심한 표정이 백소운의 생사에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였다.
객잔 안이 조금 시끄러워지더니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데 그들은 비파노인과 비파소녀가 아닌가.
“허허허. 여기가 좋겠군. 일단 한 곡을 들려 드려라.”
“네.”
비파소녀가 비파를 연주했다.
감미로운 소리였다.
연주가 끝나자, 관례대로 술이 비파노인에게 전해졌다.
평소보다 은자도 많이 주어졌다.
성질 급한 무림인들이 선금 조로 준 것이었다.
“허허허. 어서 질문을 하시오. 강호의 일과 관련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말씀드리겠소이다.”
비파노인이 술을 한 잔 마신 후 웃음을 터뜨렸다.
장한 한 명이 물었다.
“사흘 후 정말 맹주님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겁니까? 그 전에 부활하실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까?”
“좋은 질문이오. 결론적으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소. 오늘 동방에서 법사 한 분이 오는데, 동방표국 사람들이 모셔온 분으로 그 법력이 대단하다고 하오. 어쩌면 그분이 맹주님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오.”
“그게 정말인가요?”
정수심이 목소리를 높였다.
“허허허. 내 말은 사실이오. 아마 지금쯤 그 법사가 황금장원에 도착했을지도 모르겠소.”
“법사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소절의 물음이었다.
“동방법사(東邦法師)라고 하는데, 무명노인이란 분의 도력을 이어받은 분이라고 들었소. 지금으로서는 그분 동방법사만이 유일한 희망이라 할 것이오.”
비파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사람들이 술렁인 것은 물론이었다.
백무형이 이소절에게 물었다.
“맹주님의 시신이 황금장원에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백소운 그 친구와 친분이 있는 많은 분이 황금장원에서 시신을 보호하고 있지요. 물론 장례식 날은 맹의 총단으로 옮겨질 예정입니다.”
이소절이 끝까지 백소운을 친구로 지칭하며 친근감을 보였다.
애초 그는 정씨 남매와 달리 백소운의 부활에 그다지 큰 기대를 걸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들은 동방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달랐다.
은근히 관심이 가는 표정이었다.
정수심이 말했다.
“이럴 게 아니라 우리도 황금장원으로 가보도록 해요. 동방법사가 어떤 식으로 맹주님을 부활시킬 것인지 들어봐야 하지 않겠어요?”
“허허허. 그에 대한 대답은 이 늙은이가 해주겠소. 동방법사가 취할 방법은 흩어진 혼백을 모으는 것이라 하오. 한데 그 방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군웅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하오. 구체적인 방법은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군웅들이 최대로 모이는 장례식 날 대법이 시행될 것 같소. 이상이외다.”
비파노인이 말한 후 손녀와 함께 객잔 밖으로 나갔다.
“어서 황금장원으로 가요.”
정수심이 일어나자, 정흥과 이소절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무형이 말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저도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실력이지만 저 또한 의술을 배운 적이 있어 도움을 드리고 싶습니다.”
“생사신의도 방법이 없다는 데 어찌 공자께서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더 뜻을 모은다면 기적이 생길 수도 있을 겁니다. 사실 조금 전까지 소운 그 친구의 부활 가능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함께 갑시다.”
“감사합니다.”
백무형이 포권한 후 이소절, 정흥, 정수심 세 사람을 따라갔다.
물론 목적지는 바로 황금장원이었다.
* * *
황금장원.
백소운의 시신이 이곳에 보관된 것은 바로 한 달 전이었다.
맨 먼저 시신이 썩는 것을 막기 위해 특수 재질로 만든 투명관에 넣어졌다.
관이 있는 곳은 황금각 대청 정 중앙으로, 그때부터 백여 명의 사람들이 번갈아 가며 호법을 섰다.
그들 대부분은 백소운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이 사방의 기준점에 위치했고, 나머지는 관을 둘러싸며 백소운의 부활을 염원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로는 자운신녀, 옥려군, 임소혜, 백리영, 천향, 괴추노인, 담학, 담소소, 매소청, 종리교, 남궁연, 곽직, 곽어언, 청엽, 유철화, 종수련, 위징, 방사약, 고화포, 무정선자, 왕옥, 왕인우, 진호, 장록 등이 있었다.
그야말로 백소운을 아끼고 사랑했던 사람 대부분이 황금장원에 머물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하지만 운명의 그 날은 이제 사흘 앞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생사신의 말대로라면 사흘 후 백소운의 시신은 가루가 되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지금은 검마왕과 천마대부인이 백소운의 시신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불사신공을 이유로 백소운의 부활을 주장해왔던 검마왕이 안색을 굳혔다.
기대했던 불사신공의 기운이 조금도 감지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 어떤가요? 맹주님께서 되살아날 수 있을까요?”
임소혜의 물음에 검마왕이 고개를 저었다.
“어려울 것 같구나. 이제 마지막 희망은 동방법사뿐이다. 그분은 언제 도착한다고 했느냐?”
“곧 도착한다고 들었어요.”
임소혜가 대청 대문 쪽을 바라봤다.
백리영 등 대청에 모여 있던 삼백여 명의 사람들도 따라서 시선을 돌렸다.
군웅 중에는 이소절, 정흥, 정수심, 백무형도 있었다.
그들 네 사람은 조금 전 도착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리영이 옆에 있는 자명선생에게 물었다.
“동방법사란 분이 정말 맹주님을 살릴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겁니다. 동방법사의 법력은 우리 중원에까지 알려졌으니까요. 아, 저기 오는군요.”
사흘 후 거행될 장례식의 집행 위원장이기도 한 자명선생이 대문 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막 세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중 일남일녀는 동방표국의 김기성, 이미림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백의노인으로 바로 동방법사였다.
흰 수염을 날리고 있는 그는 부채를 하나 들고 있었다.
“동방법사님을 모시고 왔어요.”
이미림이 말했다.
짝짝짝.
박수가 절로 쏟아졌다.
사실 동방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한 달 전부터 은밀히 돌고 있었다.
중원무맹 지휘부가 이미림이 동방에서 보낸 전서구를 받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핵심은 바로 장례식 때 최대한 많이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이었다.
백소운을 살리기 위한 대법을 펼치기 위해 무림인들의 선천지기가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지휘부에서는 장례식 때 모든 무림인의 소집을 명했다.
그 결과 백만이 훨씬 넘는 무림인이 모여들고 있었다.
물론 사람들을 모이게 한 데는 장례식 후 새 중원무맹주를 뽑는 대회를 개최하기로 한 것도 주효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새 맹주 선출보다 백소운의 부활을 원했다.
“귀하가 동방법사이십니까? 우리 맹주를 되살려주십시오.”
검마왕이 간곡한 부탁을 했다.
동방법사가 미소를 지었다.
“운명은 재천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지요.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모두 나가주시겠습니까?”
“모두 말입니까?”
자명선생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동방법사에게 걸고 있는지라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자운신녀와 옥려군이 고개를 끄덕이자, 자명선생 역시 수락했다.
“알겠습니다. 모두 대청 밖으로 나가주십시오. 법사께서 맹주님을 살펴보신다고 하니까 자리를 비켜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군웅들이 일제히 대청 밖으로 나갔다.
백무형 역시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동방법사를 한번 일별해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백 공자. 동방법사를 이전에 본 적이 있습니까?”
이소절의 물음에 백무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얽힌 것은 반드시 풀리게 마련이지요.”
“무슨 말씀인지······.”
이소절이 의아해했으나, 백무형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러는 동안 대청의 문이 닫혔다. 이제 안에는 백소운의 시신과 동방법사만 남게 되었다.
“시간이 걸릴 것 같으니 다들 식사부터 하십시오.”
중원무맹 총단에서 파견 나온 총주방장 대식객(大食客)의 말이었다.
대식객이란 그의 별호는 최근에 붙여진 것이었다.
대식객의 말에 군웅들이 일제히 황금각 지하에 마련된 식당으로 향했다.
한데 특이한 것은 식당에서 일손을 돕고 있는 사람 중 맹찬이 있었다.
내부총관이었던 그는 얼마 전 비리가 적발되어 하인으로 강등된 바 있었다.
그 때문에 그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대식객 밑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을 차렸는지 제법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백무형이 그런 맹찬을 보며 다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둘러보고 있는 사람은 맹찬뿐이 아니었다.
가장 많이 본 사람은 바로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이었다.
하지만 그들 곁에 가지는 않았다.
백무형이 눈을 빛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사흘 후 모든 것이 정리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아직 확신할 수 없구나. 그저 최선을 다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