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39
저녁 무렵.
황금각 대청에서 동방법사가 나오자 군웅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쏠렸다.
백소운의 시신을 종일 살피고 나온 그였기에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백무형 역시 그들 속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하림이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법사님. 어떻게 되었나요? 맹주님을 되살릴 수 있나요?”
“으음,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못하셨습니다. 하지만 무림 영웅들께서 모두 힘을 합친다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백만 명 이상의 무림인이 필요한데, 이번 장례식 날 그만한 인원이 모일지 그게 걱정입니다.”
동방법사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자명선생이 기쁜 표정으로 답했다.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 장례식 때 참가할 무림인의 수는 대략 이백만 명 가까이 될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들 모두 내공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면 미흡할 수도 있겠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한 달 전 제 부탁대로 준비를 해주셨군요. 말씀하신 내공 문제는 가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천지기는 내공의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요. 물론 내공도 함께 가지고 있으면 더욱더 좋습니다만, 말씀하신 숫자라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무슨 문제입니까? 맹주님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무림인이 한뜻으로 따를 겁니다.”
“다른 게 아니라 선천지기를 한데 모아 맹주님을 부활시키려면 저의 지시에 모두 따라주셔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일시 혈도를 찍어 움직임을 막아야 하기 때문에 자칫 오해를 살까 그게 걱정입니다.”
“그 문제 역시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천지기를 어떤 식으로 빌려 맹주님을 부활시킨다는 것인지요?”
“맹주께서 생전에 펼치셨던 선천북두진법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제가 특수대법을 펼쳐 군웅들의 선천지기를 한곳에 모을 겁니다. 그 통합 선천지기를 맹주님 몸속에 넣어 부활을 시키는 겁니다. 대법이 성공해 맹주께서 부활해도 군웅들의 피해는 전혀 없을 겁니다. 다만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대법의 성공을 위해서 모두 잠시 혈도가 제압될 겁니다. 그 부분을 양해해주실 것인가 여쭤보는 겁니다.”
“네. 문제없습니다. 혹시 모르니 대법을 시작하기 전에 제가 다시 한번 군웅들에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모두 양해할 겁니다.”
“좋습니다. 저는 사흘 후 중원무맹 총단에서 다시 뵙는 것으로 하지요. 저 또한 준비가 필요하니까요.”
“장례식 때까지 이곳 황금장원이나 아니면 총단에서 지내지 않고 다른 곳에 계실 겁니까?”
“네. 장례식 날 정오에 총단에 갈 테니 그렇게 알고 기다리시면 되겠습니다. 참고로 저를 도와줄 백 명의 법사가 함께 갈 겁니다. 저는 이만······.”
동방법사가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때였다.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앗!”
“아니!”
군웅들이 놀라 소리쳤다.
검마왕이 말했다.
“정말 놀라운 신법이군. 저분 법사를 어떻게 만나게 된 것이오?”
이미린이 말했다.
“그러니까 한 달 전 저와 김 총표두 두 사람이 동방에 돌아가 있을 때였어요. 한데 갑자기 동방법사께서 저희 표국을 방문하셨어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소?”
“법사께서 말씀하시길 중원무맹주께서 돌아가셨으니 그 부활을 준비해야 무림을 살릴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중원무맹 총단에 전서구를 보내 준비를 해두실 것을 부탁드린 거예요.”
이미린이 그와 관련한 설명을 좀 더 했다.
김기성 역시 자신이 아는 사실을 밝혔다.
“으음, 그 정도면 믿을 만 하겠구려. 동방법사 저 분이 마지막 희망이니, 아까 말씀대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적극 협조하도록 합시다.”
검마왕의 말에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지금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혹시 다른 생각을 지닌 분이 계십니까?”
“······.”
군웅들이 침묵을 지키며 서로를 돌아봤다.
여기서 반대를 하면 부활을 반대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모르는 상대에게 혈도를 내주는 것 또한 탐탁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혈도가 찍힌 상태에서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인 것이다.
백리영이 말했다.
“동방법사가 조력자로 데려온다는 백 명의 법사는 누구지요? 이 소저. 혹시 그분들을 아시나요?”
“아뇨. 다만 동방법사께서는 우리 동방의 전설적인 수도자이신 무명노인의 진전을 이어받은 분이시니, 무아문(無我門)의 숨은 제자들일 것 같아요.”
“무아문은 일인전승으로 알고 있는데, 제자들이 그렇게 많았나요?”
백리영의 질문이었다.
이미린이 말했다.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조력자라고 했으니 어쩌면 무아문도들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사실 무아문에 대해서는 우리 동방에서도 알려진 게 거의 없어요. 가히 신비문파 중 제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아는 것은 이게 전부예요.”
“알겠어요. 약간의 의문이 들긴 하지만 저 역시 동방법사님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이 정말 맹주님을 부활시킬 마지막 기회이니까요.”
백리영이 눈을 빛냈다.
의구심을 자아낼 수 있는 요소를 자신이 먼저 밝힘으로써, 오히려 쓸데없는 분란을 막으려는 것 같았다.
자운신녀가 말했다.
“무아문의 초대문주이신 무명노인과 맹주님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알고 있어요. 어쩌면 이번에 오신 동방법사님도 무명노인 그분의 오랜 안배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의심을 버리고 마음을 함께 해 맹주님을 되살렸으면 하네요.”
짝짝짝.
박수가 쏟아지며 군웅들의 마음이 모아졌다.
이제 장례식 때까지 남은 기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널리 이 사실을 알려 마음의 준비를 하게 할 것이었다.
한데 자세히 보면 박수를 보내지 않는 사람이 꼭 한 명 있었다.
그는 바로 백무형이었다.
‘백 명의 법사라. 설마 신비백맹을 벌써 장악했단 말인가. 아무래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구나.’
백무형이 안색을 조금 굳히며 황금장원에서 나왔다.
사흘 후 중원무맹 총단에서 장례식이 거행될 것이었다.
그때까지 그 역시 어떤 준비를 하려는 것 같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묵상 수련을 통해 반드시 지성에 도달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만이 완벽한 준비가 될 것이다.’
* * *
사흘 후.
황금장원 앞은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백소운의 시신을 총단으로 옮기는 것을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총단 장례식에 참가할 사람들이었기에 운구부터 함께하려는 것이었다.
“저기 나온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순간.
장원 대문이 열리며 관을 든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여덟 명이었다.
바로 기존의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과 전대 무림맹주였던 백리천의 호법들인 사군자였다.
총단 지휘부에서 사군자를 파견해 형식적이나마 백소운의 시신을 모셔오는 모양새를 취한 것 같았다.
족히 수만을 헤아리는 사람들 속에는 백무형도 있었다.
장례식 날임을 고려해 흑의로 갈아입은 그는 시종 담담한 표정이었다.
군중 속에 파묻혀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 그는 투명관 속에 들어있는 백소운의 시신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진짜와 가짜. 진실과 거짓이 이제 곧 드러날 것이다. 역사는 진실을 속이지 않는 법. 모든 것은 순리대로 해결될 것이다.’
얼마 후 도착한 중원무맹 총단은 그야말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자명선생의 말대로 무려 이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무림인 대부분이 참석한 자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는 중원무맹이 정사마를 아우르는 맹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게다가 얼마 전 은자림과 등선맹이 정식으로 중원무맹 소속이 되었다.
대연무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장례식장에는 이제 엄숙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마교와 구파일방의 수장 등 귀빈들이 앉아 있는 단상 앞에 제단이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제단 위에 바로 백소운의 시신이 들어있는 투명관이 자리했다.
시신을 보는 군웅들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비록 동방법사가 와서 백소운을 부활시키려는 마지막 시도가 있을 것으로 공표가 났지만, 어디까지나 오늘은 장례식 날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죽은 사람이 되살아난 경우는 없었다.
그 때문에 다들 말은 안하지만 대법이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생각했다.
생사신의의 말대로 백소운의 시신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게 될 때 다들 슬픔과 울음으로 그를 보내줄 것이었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영웅 여러분! 이제 곧 정오가 되면 맹주님을 부활시키기 위해 동방법사께서 이곳에 올 겁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 기회이기 때문에 사전에 공표한 대로 그분의 지시에 모두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한분이라도 따르지 않는다면 맹주께서 부활하는데 큰 어려움이 따를 겁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와아아.
짝짝짝.
장례식장에 때 아닌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공식적으로 백소운의 부활 가능성을 알렸기 때문이었다.
자명선생이 손을 들어 군웅들의 흥분을 가라앉힌 다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곧 정오가 되기 때문에 동방법사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오실 때가 되었는데······.”
그가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검마왕, 자운신녀, 옥려군, 백리영, 임소혜 등 백소운과 친분이 있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동방법사를 기다렸다.
그때였다.
멀리 북쪽에서 거대한 구름이 나타났다.
한데 그 위에 백여 명의 노인이 있는 게 아닌가.
백여 명의 노인 중 가장 앞에서 구름을 타고 있는 사람은 바로 동방법사였다.
와아아.
“동방법사다!”
군웅들이 함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마치 백소운이 부활한 것 같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동방법사가 구름 위에서 훌쩍 뛰어 내려 단상에 올라섰다.
함께 온 백 명의 노인, 즉 백대법사(百大法師) 역시 내려와 제단을 둘러쌌다.
단 위에 백소운의 시신이 있는 것을 고려하면 대법을 펼치는 데 도움을 주려는 것으로 보였다.
“오셨습니까?”
자명선생의 말에 동방법사가 미소를 지었다.
“네. 곧바로 시작하겠습니다. 협조만 잘 해주시면 오늘 여러분은 위대한 부활을 보게 될 겁니다.”
“네. 어떤 분부든 내려주십시오. 맹주님을 되살리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영웅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이 함성과 박수로 화답했다.
이미 여러 번 공지한 사항이라 다들 협조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부활대법(復活大法)을 펼치겠습니다. 영웅 여러분은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혈도가 찍혀 잠시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 말고는 아무 고통도 없을 겁니다.”
동방법사가 들고 있던 부채를 제단 위로 던졌다.
휘익.
제단 위 삼장 정도로 올라간 부채가 그 자리에서 멈추더니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곧이어 부채에서 실 같은 줄이 흘러나왔다.
매미 날개보다 얇은 그 줄은 무수히 많았다.
수백만 가닥 정도였다.
“부활사(復活絲)가 여러분의 정수리 백회혈에 꽂힐 겁니다. 그대로 가만있으면 됩니다.”
동방법사의 설명이 있자, 수백만 가닥의 실, 즉 부활사가 동심원 모양으로 퍼져나갔다.
푹푹푹.
부활사가 이백만 군웅 모두의 백회혈에 꽂혔다.
약간의 통증이 있는 듯 군웅들 일부가 인상을 찡그렸다.
하지만 참을 수 있는 수준인지 모두 그대로 자세를 유지했다.
놀랍게도 아직 부활사를 거부하는 사람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부활사가 백회혈에 박힌 사람은 하나같이 꿈쩍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백소운의 부활을 바라는 마음이 그 모든 것을 이겨내고 있었다.
이는 단상 위에 있던 중원무맹 고수들 또한 예외가 없었다.
한데 단 한 사람이 부활사를 거부했다.
그는 바로 백무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