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41
“귀하는 뉘신 데 본인이 백소운이 아니라고 하시오?”
백소운이 담담히 물었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백무형 역시 담담한 기색을 잃지 않았다.
“본인은 백무형이라 하오. 이름 없는 무인에 불과하오. 하지만 귀하가 천하를 속이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이렇게 나서게 되었소.”
“본인이 백소운이 아니라는 증거가 있소? 다들 보셨다시피 본인은 천마신을 제거했소. 설마 본인이 가짜라는 말이오?”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자명선생, 검마왕 등이 백무형을 막으려 했으나 백소운이 이를 저지했다.
백무형이 말했다.
“귀하는 백소운이 아니라 천마신이오. 그대가 죽인 자는 가짜였소. 아마도 그대의 분신이었겠지.”
백무형의 말에 군웅들이 술렁였다.
분명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하지만 왠지 그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백소운이 여전히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본인이 제거한 신비백맹 수장들도 모두 가짜란 말이오?”
“그들은 죽지 않았소. 속임수를 써서 숨겨둔 게 아니오?”
“듣자듣자 하니까 너무 어이가 없구려. 본인은 오히려 귀하가 더 의심스럽소. 어느 분이 저 사람을 제압해주시겠습니까?”
“내가 하겠소.”
검마왕이 나섰다.
“감사합니다. 조사할 게 있으니 죽이지는 말고 혈도만 제압해주십시오.”
백소운이 감사를 표했다.
검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맹주. 하지만 놈이 반항하면 어쩔 수 없이 숨통을 끊어놓을 수밖에 없소. 백무형이라고 했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어서 정체를 밝혀라.”
“검마왕 귀하는 지금 누구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겁니까? 자식을 죽인 원수의 명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
검마왕이 안색을 굳혔다.
옆에 있던 천마대부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죽은 자식이라고는 태어나자마자 실종된 임자룡뿐이지 않은가.
“지금 자룡이를 말하는 것이냐?”
“그렇습니다. 천마신 저자가 바로 귀하의 아드님을 죽인 장본인입니다. 천기를 읽어내 저주력으로 살인한 것이지요. 한데 그 시신을 지금껏 인위적으로 키워 자신의 육신으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백무형이 백소운을 가리켰다.
그의 말에 따르면 백소운의 몸이 바로 죽은 임자룡의 것이란 말이 아닌가.
“맹주님. 그게 정말인가요?”
천마대부인이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백소운이 껄껄 웃었다.
“지금 저 미친 자의 말을 믿으시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하니, 수고스럽겠지만 맹주님의 등을 한번 보여주시겠습니까? 제 아들의 몸이 맞는다면 분명 문신이 있을 겁니다. 그 문신은 사실 태생적이라 절대 지워지지 않는 것이니, 그것만으로 판별이 날 겁니다.”
“부인의 말이 맞소. 맹주. 미안하지만 한 번만 보여주시오. 확인되면 거짓말을 한 저놈을 일장에 바로 죽이겠소.”
“두 분 모두 너무 흥분하셨군요. 고정하십시오. 어찌 저자의 말에 흔들리시는 겁니까? 좋습니다. 제가 일단 저자를 제압한 후 두 분께만 제 등을 보여드리지요.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알겠소. 듣고 보니 우리 부부가 너무 성급했던 것 같소. 분명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검마왕과 천마대부인이 옆으로 물러났다.
백소운이 백무형을 향해 우수를 뻗었다.
“이제 네놈의 정체를 알 것 같다. 네놈이야 말로 천마신이 아니냐? 짐작하건데 네놈은 나를 죽인 후 진짜 백소운 행세를 하려 했겠지. 내 말이 맞느냐?”
“천마신은 그대요. 본인은 사실 천무성자라고 하오.”
“천무성자? 그럼 네놈이 바로 천무신이란 말이냐?”
백소운이 처음으로 안색을 굳혔다.
“그렇소. 백소운 그 친구는 아쉽게도 이미 죽었소. 반년 전 천계로 와서 대공을 성취하려다가 그만 주화입마되어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소. 그래서 지금까지 그 친구의 성장을 도왔던 내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오.”
“천무신은 서약에 의해 이곳 강호에서 활동할 수 없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것이냐?”
백소운이 불신의 표정을 지었다.
“모든 일에는 예외란 게 있소. 서약도 마찬가지요. 천마신 그대가 천하를 어지럽히는 데 어찌 가만히 있겠소. 다만 본인이 이곳 강호에서 활동하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오.”
백무형, 아니 천무성자가 두 손을 들었다.
백소운 역시 왼손마저 들어 균형을 맞췄다.
두 사람의 무형지기 대결이 벌어진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백중세였다.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안 되겠다. 역시 천무신이구나. 이대로는 양패구상하고 만다. 어쩔 수가 없구나.’
백소운이 급히 특수전음을 어디론가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바로 그 순간.
백소운의 시신이 있었던 제단 주위 허공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백 명의 고수가 나타났다.
한데 그들은 바로 조금 전 백소운에게 소멸당한 신비백맹 수장들이 아닌가.
“죽어랏!”
신비백맹 수장들이 일제히 장력을 날려 천무성자를 공격했다.
꽝.
“으윽!”
천무성자가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뒤로 날려가 쓰러졌다.
한데 그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은 중상을 입은 사람이 내공의 소실로 역용이 풀리는 과정이었다.
“오라버니!”
진하림이 천무성자의 본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뛰어갔다.
그랬다.
천무성자가 드러낸 본 얼굴은 바로 백소운의 것이었던 것이다.
“으으······ 하림아.”
천무성자가 창백해진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 이분이 진짜 소운 오라버니예요. 정말이에요.”
진하림이 천무성자를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단전이 파괴되어 무공을 잃은 그였다.
곧이어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 달려와 함께 부축했다.
“아저씨들······.”
천무성자가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자운신녀가 백소운을 보며 말했다.
“설마 했는데 당신이 가짜 맹주였군요. 아니 천마신이 틀림없어요. 당신이 죽였다는 신비백맹 수장들이 다시 나타나 그대를 도왔으니 말이에요.”
“하하하!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렇다. 나는 백소운이 아니라 천마신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사실 내가 모두 예견한 것이다.”
백소운, 즉 천마신이 껄껄 웃으며 얼굴을 한번 문질렀다.
그의 이마에 동전만한 큰 붉은 점 하나가 나타났다.
그리고 잠시 윗옷을 벗어 등을 보여줬는데, 검마왕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성화문신이 보였다.
군웅들이 그 모습을 보고 경악한 것은 물론이었다.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바로 검마왕과 천마대부인이었다.
천마대부인이 휘청거리며 물었다.
“정말 네 놈이 내 아들을 죽였느냐?”
“그렇다. 임자룡 그 아이는 태어나고 얼마 후 내가 안배한 저주를 받아 숨이 끊어졌지. 하지만 그 육신을 내가 오늘과 같은 날 사용하기 위해 특수처리를 해두었다. 그 때문에 살아 있는 것으로 오해한 지옥악마신이 이동대법을 펼쳐 그 아이를 낙양으로 날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역시 예상하였고, 저주력으로 그 시신을 모처에 숨겨둘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 천무신의 안배를 받아 백소운 저놈이 태어난 것이다. 천족의 후예라 그런지 천력이 매우 강했지. 다만 천리의 흐름을 벗어났기에 그 얼굴과 신체는 죽은 임자룡의 것을 빌릴 수밖에 없었지. 하지만 그것은 그 기운일 뿐, 진짜 육체는 내가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 이후 상황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니 생략하겠다. 아무튼, 지금 무공을 잃고 폐인이 된 저 녀석이 바로 진짜 백소운이다. 네놈들이 그렇게도 열렬히 지지하는 중원무맹주 백소운이 바로 저놈이지.”
천마신이 우수를 가볍게 흔들었다.
순간, 군웅들 모두의 마혈이 다시 찍혔다.
검마왕, 옥려군, 옥청, 동정어옹 등 고수들이 뒤늦게 움직이려 했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후후후! 헛수고 하지 마라. 사실 아까 네놈들의 마혈을 풀어준 것은 가짜였다. 언제든 내가 다시 제압할 수 있게 했었지. 내가 그렇게 연극을 했던 것은 오직 백소운 저놈 때문이었다.”
천마신이 천무성자, 즉 백소운을 쳐다봤다.
진하림의 품속에 있던 백소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진하림, 유덕, 정기, 막총 네 사람 역시 천마신에 의해 혈도가 제압되었지만, 그는 아직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백소운의 안색은 매우 창백했다.
천무성자로 가장해 천마신의 정체를 밝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무공 대결에서 패했기 때문이었다.
천마신이 껄껄 웃었다.
“백소운. 이제 네놈을 완전히 제거할 때가 된 것 같다.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느냐?”
“세상의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법이오. 설사 오늘 본인이 죽는다고 해도 그대의 야망이 실현되는 경우는 없을 것이오.”
“후후후! 왜 내 수하들이 너무 적어 보여서 그러는 것이냐? 천계까지 장악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신비백맹 세력의 힘을 내가 모두 장악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신비백맹의 봉인까지 풀었단 말이오?”
“그렇다. 어차피 여기 모인 놈들로 만들 천마강시는 소모품일 뿐이다. 이미 신비백맹의 모든 힘은 내가 장악했지. 어리석은 놈.”
천마신이 껄껄 웃었다.
신비백맹 수장들도 놀라기는커녕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직접 보여주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소.”
“좋다. 보여주지. 어차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숨겨 두었으니까.”
천마신이 우수를 높이 들었다.
순간, 허공이 갈라지며 붉은 구름이 나타났다.
실로 끝을 알 수 없는 거대한 구름이었다.
한데 그 위에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무사가 일제히 도열해있지 않은가.
최소한 삼백만 명은 되는 숫자였다.
“저들은 신비백맹의 연합 무사들로, 모두 나를 받들고 있다. 네놈을 죽인 후 재정비를 한 다음 곧바로 천계로 향할 병력이지. 이제 내 말을 믿겠느냐?”
“봉인을 어떻게 풀었소?”
“후후후! 그것은 간단하다. 나의 봉인이 바로 신비백맹의 봉인이었다. 원래는 그렇지 않았지만 저주력으로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수장들만 봉인을 푼 것으로 속인 것은 오직 네놈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네놈이 겁을 먹고 나타나지 않을까 봐 걱정이었지.”
“왜 그렇게 본인을 두려워한 것이오?”
“그것은 바로 천기 때문이었다. 최근 읽은 천기에 의하면 네놈이 나의 대업을 막는다고 나와 있었거든.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그 천기를 뒤엎는 데 성공했다. 이제 네놈이 죽으면 천기는 완전히 바뀌어 나 천마신을 위해 흘러갈 것이다. 잘 가라. 더 이상의 말은 불필요할 것 같구나.”
천마신이 우수로 백소운을 가리켰다.
곧 최후 공격이 시작될 것이었다.
하지만 백소운은 방어할 힘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씁쓸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혈도를 찍혔던 진하림이 몸을 움직이며 백소운 앞에 섰다.
“오라버니를 죽이기 전에 나를 죽여야 할 것이다.”
“네년이 어떻게 혈도를 풀었느냐?”
천마신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진하림은 오직 백소운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백소운을 지켜야 한다는 그 간절함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 것이다.
백소운이 감격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래. 아직 포기할 때가 아니다. 하림이가 깨달음을 얻어 무공이 급상승했으니, 군자검을 사용한다면 가능성이 있다.’
백소운이 금단비고에서 군자검을 꺼내 곧바로 군자검법을 펼쳤다.
진하림이 이심전심으로 숙녀검법을 펼치며 합공을 가했다.
휙휙.
각각 군자검법과 숙녀검법의 마지막 초식이었다.
검초 이름은 군자태극(君子太極)과 숙녀무극(淑女無極).
백소운은 무공이 폐쇄되었지만 잠력을 마지막으로 발동해 펼쳤고, 진하림은 단숨에 마지막 초식을 터득해 합검식의 위력을 더 했다.
“하하하! 제법이구나!”
천마신이 껄껄 웃으며 양손으로 원호를 그렸다.
꽈앙.
폭음과 함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으윽!”
“으으······.”
사람들이 급히 보니 백소운과 진하림 두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합검 공격의 위력이 뛰어나긴 했다. 하지만 너무 급조한 느낌이 있었는지 성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으으······.”
백소운이 힘겹게 몸을 일으켜 옆에 쓰러져 있는 진하림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이미 심맥이 끊어져 숨을 거둔 것이 아닌가.
그나마 육신을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은 백소운과의 합공 때문이었다.
안 그랬으면 천마신의 천마신공(天魔神功)에 의해 완전히 가루로 변했을 것이었다.
“하림아!”
백소운이 진하림의 이름을 부르며 분노했다.
지켜보고 있던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도 피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백소운을 향해 천마신이 다가가고 있었다.
“운이 좋구나. 계집의 도움을 받아 이번에도 목숨을 구했군. 하지만 내부 장기가 완전히 가루가 되어 일각도 더 버티지 못할 것이다.”
천마신이 득의한 표정을 지었다.
백소운은 하염없이 진하림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심수련동에서 처음 자신을 보고 살짝 미소 짓던 그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이제 그 미소를 다시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복수해야 한다.’
백소운이 눈을 빛내며 다시 일어섰다.
핏발이 선 눈빛은 가공했다.
“후후후! 그래봤자 너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 네가 지성에 도달하지 않는 한 절대 나를 이길 수 없다.”
천마신이 우수를 뻗어 백소운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하지만 백소운의 눈빛을 보고 흠칫했다.
극도의 분노를 뿜어내는 눈빛에 그 역시 기선을 제압당한 것이었다.
“복수를 하겠다.”
백소운이 온몸으로 금빛을 발했다.
그야말로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번쩍.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올 수 있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그 금빛은 무형금광도 아니었고, 그 무엇도 아니었다.
오직 복수를 하겠다는 한 인간의 처절한 의지였다.
“네놈이!”
천마신이 흠칫하며 천마신공을 펼쳤다.
하지만 역부족이라 느꼈는지 그의 몸이 급격하게 부풀어 오르며 악령의 모습으로 변했다.
천마신이 당황한 것을 본 신비백맹의 수장들이 공격에 가세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구름을 타고 상황을 지켜보던 신비백맹 삼백만 무사들이 신비경(神秘鏡)이란 특수 거울로 모든 힘을 모아 공격을 가했다.
이 신비경은 천마운(天魔雲)이란 특수 구름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모든 공력을 한곳에 모아주는 특징이 있었다.
천마신이 차후에 천계의 천제나 천후를 상대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천마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자동으로 개입하게 되어 있었다.
쏴아아.
꽈아앙.
실로 거대한 폭발과 함께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얼마 후 나타난 광경은 실로 놀라웠다.
기세등등했던 천마신과 신비백맹 수장들, 그리고 천마운에 타고 있던 신비백맹 무사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동시에 중원무맹 무사들의 마혈도 풀렸다.
아마도 천마신이 소멸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와아아아.
“맹주님 만세!”
함성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백소운은 그저 담담히 서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차례 크게 휘청거린 그가 진하림에게 다가갔다.
자운신녀가 소리쳤다.
“맹주님! 안 돼요! 진 소저는 이미 세상을 떠났어요. 마지막 진기마저 소모하면 맹주님 역시 돌아가실 거예요.”
“약간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포기할 수 없소. 내가 죽어 하림이가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가치 있을 것이오. 어차피 나 역시 얼마 버티지 못할 테니까.”
백소운이 자운신녀, 그리고 유덕, 정기, 막총 등을 한 차례 쳐다본 후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작별 인사를 한 셈이었다.
“운아. 안 된다.”
정기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하지만 백소운은 이미 진하림의 백회혈에 손을 대 마지막 남은 진기를 불어넣은 후였다.
그 진기는 백소운이 최후로 가지고 있던 깨달음의 원천 기운이었다.
불사신공의 기운까지 포함하고 있어 그 회생력을 기대해 본 것이었다.
“으윽!”
백소운이 피를 한 차례 토한 후 그대로 쓰러졌다.
정기, 자운신녀 등이 급히 그를 부축했으나, 이미 숨이 끊어진 후였다.
“아! 맹주님!”
“운아!”
갑작스러운 죽음에 군웅들이 비통해 했다.
극적으로 무림에 평화가 찾아왔지만, 정작 주인공인 백소운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었다.
개중에는 대성통곡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진하림의 몸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유덕, 막총, 진호 등이 급히 다가와 그녀를 부축했다.
“으으······.”
신음과 함께 진하림이 깨어났다.
“누나. 정신이 들어?”
진호의 물음에 진하림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어떻게 된 거지? 오라버니는?”
진하림이 고개를 돌려 백소운의 시신을 발견하고 몸을 떨었다.
유덕이 착잡한 표정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운이가 너를 살리고 죽었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냐?”
“그럴 리가 없어요. 오라버니는 절대 죽지 않아요.”
진하림이 백소운의 시신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몇 번이나 확인했지만 백소운의 죽음은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푹, 하는 소리와 함께 진하림이 그대로 백소운의 시신 위로 쓰러졌다.
“하림아!”
유덕, 막총 등이 매우 놀라 확인하니 어느새 숙녀검이 그녀의 가슴을 관통한 후였다.
그녀의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백소운의 얼굴을 온통 적시고 있었다.
“진 소저가 자진했소.”
생사신의가 급히 와서 진하림을 살핀 후 말했다.
“아!”
사람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비통해했다.
진하림의 동생 진호와 어머니 최씨부인의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욱더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죽은 줄 알았던 백소운이 다시 깨어난 것이었다.
그는 조금 전과 달리 매우 편안해 보였다.
파괴되었던 단전이 복구된 듯 전신에서 성스러운 금빛까지 은은히 우러나오고 있었다.
그 금빛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금빛에 닿은 자운신녀가 매우 기뻐했다.
“맹주님! 마침내 지성에 도달하셨군요.”
자운신녀가 어느새 달라진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만졌다.
그녀의 얼굴은 경국지색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변해 있었다.
바로 그녀의 본 얼굴이었다.
백소운이 담담히 미소 지었다.
“역시 신녀는 미인이었구려. 그동안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소.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모든 것이 평안할 겁니다.”
백소운이 말을 한 후 옆에 쓰러져 있는 진하림에게 다가갔다.
“제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림이 덕분입니다. 하림이가 흘린 피 덕분이었지요.”
“하지만 하림이는 이미······.”
정기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백소운이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저씨. 깨달은 자는 죽지 않는 법이랍니다.”
백소운이 진하림을 향해 우수를 뻗었다.
순간 금빛이 우러나오며 진하림의 전신을 감쌌다.
숙녀검이 먼저 그녀의 몸속에서 빠져나왔다.
상처 역시 급속도로 아물었다.
얼마 후 진하림이 눈을 떴다.
그녀가 가장 먼저 본 사람은 바로 백소운이었다.
“오라버니!”
진하림이 백소운의 품을 파고들었다.
와아아.
짝짝짝.
군웅들의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백리영, 임소혜, 옥려군 등 많은 여인이 부러운 눈빛을 보내기도 했지만, 다들 두 사람의 회생을 기뻐했다.
“오라버니! 어떻게 된 거예요?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진하림이 붉어진 얼굴로 백소운의 품에서 나왔다.
백소운이 말없이 하늘을 쳐다봤다.
구름 한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 한 노인이 있었다.
백소운에게만 보이는 그 사람은 바로 풍운노인이었다.
“천제와 천후께서 진 소저를 한번 보고자 하시네. 이제 지성에 도달해 무공의 신이 되었으니, 아무나 데려갈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정리되는 대로 바로 가겠습니다.”
백소운이 진하림의 손을 잡았다.
영문을 모르는 진하림이 다시 얼굴을 붉혔다.
“하림아. 조만간 나와 갈 데가 있다.”
“어딘데요?”
“매우 높은 곳에 있다. 따라가겠느냐?”
“네. 오라버니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