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5
“막 아저씨께 죄송해요. 함께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하지만 오늘 액땜을 했으니 방에서 푹 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런 것 같아요. 한데 정말 그 조사단장님이 연기를 했던 걸까요? 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거든요.”
진하림이 동조를 구하는 듯 같은 탁자에 앉아 있는 유덕과 정기, 백소운을 쳐다봤다.
어느 정도 식사를 끝낸 그들은 이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냥 일어나기가 아쉬워 아까 오전에 있었던 일을 다시 꺼낸 것이다.
한편 백소운 일행이 있는 이곳 무한객잔은 그야말로 만원이었다.
정기가 말했다.
“나 또한 이상하게 생각했었다. 분명 조사단장이 막총 그 친구의 단전을 파괴한 것으로 봤는데······ 아무튼 잘된 일이지. 아마 잘못되었다면 막총은 떠났을 것이다.”
“유 아저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도 이상하게 느꼈지만 모른 체 하는 게 제일이다. 우리로서는 이번 일로 아무도 해를 입지 않으면 그만이지. 만약 막총이 당했다면 우리 역시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엮어서 조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을 테니까.”
“역시 그랬군요. 전 모르시는 줄 알았어요.”
“그럴 리가 있겠느냐? 지금쯤이면 서로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 하인들에 대한 처분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지. 그 일에 대해서는 그만 말하는 게 좋겠다. 자칫하면 소문을 퍼뜨린다고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네. 한데 언제까지 총지부로 돌아가면 되죠?”
“아직 한 시진 정도는 여유가 있을 것이다. 이미 출발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라 사실 오늘 저녁때까지 할 일이 없으니까. 왜 그러느냐? 어디 갈 데가 있느냐?”
“헤헤. 시간이 있으면 저잣거리에 가서 장신구를 살려고요. 기념으로 말이에요.”
“지금 그럴 분위기가 아닌 것을 하림이 너도 잘 알지 않느냐? 무사들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 슬퍼하지는 못할망정 즐거워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지. 장신구 같은 것은 장사에 도착하면 사도록 해라.”
정기가 나무랐다.
“알겠어요.”
진하림이 뾰로통해져 있을 때.
객잔 문이 덜컹 열리며 대한 네 명이 들어왔다.
하나같이 덩치가 크고 험상궂게 생긴 자들이었다.
그들은 자리가 없자 백소운 일행이 있는 쪽으로 왔다.
아무래도 옷차림이 허름해 보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대한 중 막내로 보이는 자가 들고 있던 도끼로 탁자를 툭툭 쳤다.
“다 처먹은 것 같은데, 어서 꺼져라.”
“······.”
일순 충격을 받았는지 백소운 일행이 어이없어했다.
미리 낌새를 알아차리고 일어나려 했던 유덕이 다시 앉았다.
“그대들은 뉘시기에 이렇게 무례하오? 우리는 아직 식사를 끝내지 않았소. 아니 끝냈다 하더라도 그대들에게 자리를 내줄 생각은 전혀 없소.”
유덕이 침착한 표정으로 응수했다.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시는구나. 하기야 맹 내에서야 하인이지 바깥에 나오면 다르지.’
유덕이 자리를 내주지 않고 오히려 도발하자, 대한들 역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놈들이 죽으려고 환장을 했구나.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그러느냐?”
“뉘시오?”
이번에는 정기의 물음이었다.
그 역시 순순히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사람은 진하림이었다.
백소운은 여전히 담담했다.
한눈에 봐도 대한들이 덩치만 컸지 무공은 높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동네 건달들이군. 아마도 우리가 가장 만만해 보였겠지. 다만 도끼가 거슬리는구나.’
백소운은 한번 지켜보기로 했다.
최근 맹찬과 천룡공자 등에게 잇달아 수모를 당한 유덕과 정기 두 사람에게 맡겨보려는 것이다.
대한 중 가장 나이가 들어 보이는 자가 말했다.
“우리는 영웅방(英雄幇)의 영웅사걸(英雄四傑)이다. 좋은 말 할 때 비켜라. 보아하니 별 볼일 없는 녀석들 같은데, 아니 이 계집은 그렇지 않구나. 이런 삼삼한 미인이 있을 줄이야.”
영웅사걸 중 첫째인 일영웅(一英雄)이 음산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 영웅방이란 말에 유덕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냥 동네 건달쯤으로 생각해 백소운과 진하림 앞에서 체면을 세우려 했던 그였다.
한데 영웅방이라니.
영웅방은 무한을 주름잡고 있는 흑도방파였다.
게다가 그들의 뒤에는 사사천교가 있었다.
녹림칠십이채 등 흑도로 분류되는 방파들은 대부분 사사천교를 종주로 떠받들고 있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사사천교를 중심으로 사도맹(邪道盟)이라는 단체를 결성한 바 있었다.
“후후후! 뭐 그렇게 똥 씹은 표정이냐? 우리 신분을 알았으면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일영웅이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폭 수준인 도끼파의 졸개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도끼파를 비롯한 여러 곳이 영웅방에 흡수되자, 소속 역시 바뀌게 된 것이다.
영웅사걸이란 별호도 최근에 지은 것이었다.
이름 역시 원수가 많아 각각 일영웅, 이영웅(二英雄), 삼영웅(三英雄), 사영웅(四英雄) 이런 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그들이었다.
유덕이 잠시 망설인 후 일어나려 할 때, 진하림이 소리쳤다.
“우리는 무림맹 소속이에요. 얼른 그 더러운 눈길을 치우지 못하겠어요?”
그녀가 영웅사걸 중 막내인 사영웅을 특히 지목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영웅은 침까지 흘리며 진하림의 몸매를 훑어보고 있었다.
유덕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자리를 피해 충돌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도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이미 객잔 안의 많은 손님이 무림맹이란 말에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그냥 가면 맹의 체면을 떨어뜨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못했구나.’
유덕이 다시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한편 무림맹 소속이란 말에 일영웅은 기가 조금 죽어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영웅방이란 방파를 내세운 후였다.
“으음, 정말 무림맹 소속이오?”
“그래요. 지금이라도 그냥 돌아가면 문제 삼지 않겠어요.”
“무림맹 어디 소속이오? 육대당 중 한 곳이오?”
“그건 알아서 뭐하게요?”
진하림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하인이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걸 놓칠 일영웅이 아니었다.
“계집! 우리를 속였구나. 그러고 보니 무림맹 소속 무사 복장도 아니고 대체 네놈들은 뭐냐? 막내야. 이 계집을 제압해라.”
“네. 큰 형님.”
사영웅이 기다렸다는 듯 솥뚜껑 같은 두 손을 내밀었다.
한데 그 방향이 바로 진하림의 가슴 쪽이 아닌가.
진하림이 깜짝 놀라며 의자에 앉은 채 물러났다.
날렵한 동작이었다.
사영웅은 그 바람에 탁자를 건드려 음식을 담았던 그릇들이 바닥에 떨어졌다.
쨍그랑.
“음적!”
물러났던 진하림이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며 사영웅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사영웅이 뒤로 두세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워낙 배가 튀어나온지라 타격이 덜한 것 같았다.
격노한 사영웅이 도끼를 들어 진하림의 머리를 갈라갔다.
쐐애액.
대전 경험이 부족한 진하림이 주춤했다.
원래 실력대로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다. 하지만 막상 도끼가 다가오자 두 발이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병장기가 없는 것도 문제였다.
옆에 있던 정기가 탁자를 들어 도끼날을 막아낸 것은 그 직후였다.
탁자가 그대로 두 동강 났지만, 속도를 지체시켰다.
그 사이 유덕이 하림을 옆으로 끌어냈다.
“이놈들이! 애들아. 모두 죽여라! 무림맹을 사칭한 놈들이니 죽여도 상관없을 것이다!”
지켜보던 일영웅이 명을 내림과 동시에 유덕을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그가 보기에도 우두머리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쐐애액.
같은 도끼질이라도 사영웅과는 속도부터 달랐다.
하지만 유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몸을 살짝 비틀어 도끼를 피한 후 왼 팔꿈치로 턱을 가격했다.
퍽.
“으윽!”
일영웅이 턱을 잡고 주저앉은 순간.
유덕이 오른발로 복부를 걷어찼다.
일영웅이 비명과 함께 일장 정도 날려간 뒤 그대로 뻗어버렸다.
유덕이 바닥에 떨어진 도끼를 주워들고 소리쳤다.
“어느 놈이 또 나서겠느냐? 본맹을 우습게 보는 놈은 용서치 않겠다.”
“정, 정말로 무림맹 소속이오?”
“그렇다. 우리는 무림맹 소속 하심무인들이다. 일종의 특수 임무를 띠고 총지부에 머물고 있다. 한데 네놈들이 감히 시비를 걸다니 죽고 싶은 것이냐?”
“잘 몰랐소.”
이영웅이 주눅이 든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 그들로서는 무림맹 무사들과 싸울 수준은 못 되었다.
유덕이 다시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저놈을 데리고 사라지지 못할까? 당장 데리고 가지 않으면 목을 베겠다.”
“아, 아니오. 데려가겠소.”
이영웅이 일영웅을 업고 두 아우와 함께 객잔에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며 열 명 정도의 무사들이 들어왔다.
한데 그들은 정식 영웅방 무사들이 아닌가.
사실 영웅사걸은 아직 영웅방의 정식 무사가 아니었다.
도끼파 중 무공이 출중한 자들만 정식 무사로 받아들이겠다는 통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지금 나타난 무사들은 영웅방의 핵심 무력인 영웅대(英雄隊) 소속이었다.
“무슨 일이냐?”
영웅대주 휘하의 십대부대주 중 한 명인 사재홍(沙在洪)이 이영웅에게 물었다.
“사 부대주님. 저놈들이 글쎄 다짜고짜 우리 영웅방을 욕하면서 공격을 가해오지 뭡니까? 무림맹 무사라는 말에 제대로 덤벼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당했습니다.”
“뭐라고? 본방을 욕해?”
“네. 방주님이 희대의 색마라고······.”
이영웅이 말을 마음대로 꾸며댔다.
사재홍이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이었다.
“무림맹이면 다냐? 본방 뒤에는 사사천교가 있다. 그나저나 방주님을 모욕했으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 무림맹 어디 소속이냐? 청룡당이냐?”
“우리는 하심무인들이오. 귀방의 방주를 욕한 일은 없소. 그저 저자들이 우리 자리를 빼앗으려고 덤비다가 벌어진 일일 뿐이오. 탁자도 부서졌으니 우리는 이만 가보겠소.”
유덕이 일이 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서둘러 일행과 함께 객잔 밖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사재홍은 만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대번에 유덕의 무공 수준을 알아본 그가 길을 막았다.
“후후후! 설령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본방 사람들을 다치게 한 죄는 용서할 수 없다. 무림맹 또한 본방을 봐주고 있는 사사천교를 두려워하고 있거늘, 네놈들을 죽인다고 한들 무슨 일이 생기겠느냐? 하심무인이라 했던가? 대체 무슨 뜻이냐?”
“으음, 하심무인이란 총단 하인 중 무공에 뜻을 둔 사람들을 말하오.”
“엥? 그럼 하인들이란 말이냐?”
“그렇소.”
유덕이 자신들의 신분을 밝혔다.
계속 숨기는 것이 어딘지 모르게 당당하지 못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이는 정기나 진하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백소운은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상황을 살필 뿐이었다.
‘유 아저씨의 무공으로는 저들의 상대가 안 된다. 내가 나서야겠구나.’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사재홍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하인 주제에 그래도 총단 하인이라 이건가. 버러지보다 못한 놈들이······.”
사재홍이 옆에 있는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죽여도 좋다. 하인 놈들 몇 명 죽는다고 무림맹에서 신경 쓸 것도 아니고······ 내 참 기가 차서.”
“명을 받들겠습니다.”
척척, 하는 소리와 함께 영웅방 무사 두 명이 검을 뽑았다.
유덕과 정기 두 사람도 앞으로 나섰다.
진하림이 같이 나서려 했으나 유덕이 엄한 표정으로 저지했다.
“싸움이 벌어지면 즉시 운이와 함께 도망을 쳐라. 우리는 저자들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아가씨께 말씀드리면 꼭 복수를 해주실 것이다.”
그 시각 정기 또한 백소운에게 당부를 남겼다.
“하림이를 따라가거라. 운이 좋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우리 두 사람의 마지막은 아닐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고······.”
“아저씨.”
백소운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기는 심각한 것 같았다.
“아직 너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 있다. 사실 이십이 년 전 너를 발견했을 때 몸에······.”
정기가 말을 마치지 못했을 때.
“무슨 소리를 지껄이고 있는 것이냐? 어서 죽여라!”
사재홍의 고함과 함께 영웅방 무사 두 명이 검을 찔러 들어왔다.
슈욱. 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