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6
“피해라!”
유덕이 들고 있던 도끼로 파고드는 검들을 막아냈다.
까깡.
불꽃이 튀며 검 두 자루가 땅에 떨어졌다.
검초를 막아낸 것도 모자라 떨어뜨린 것이다.
정기와 진하림이 반사적으로 몸을 굽혀 검을 주웠다.
유덕을 중심으로 양옆에 서서 합공 태세를 갖췄다.
“운이를 데리고 어서 떠나라고 했거늘······.”
유덕이 진하림을 질책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현저히 줄어들어 있었다.
조금 전 방어 성공으로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든 때문이었다.
한편 무기를 떨어뜨린 영웅방 무사 둘은 급히 물러났다.
유덕이 수평으로 휘두른 도끼에는 분명 강한 내력이 담겨 있었다.
그 바람에 손아귀가 찢어질 듯한 충격을 받고 그만 검을 놓친 것이었다.
“호오. 내공이 제법이구나.”
사재홍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다시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이번에는 무사 세 명이 앞으로 나왔다.
유덕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이번에도 내가 상대하겠다. 너희는 후공을 맡아라.”
“네. 형님.”
“알겠어요.”
정기와 진하림이 위치를 벌리며 품자 형태로 만들었다.
유덕이 공격을 막아내면 곧장 합공을 가할 계획인 것 같았다.
그때였다.
천천히 다가오던 영웅방 무사들이 일제히 검초를 뿌렸다.
슈우욱. 슉.
파공성이 강한 것으로 봐서 내공을 최대한 실은 것 같았다.
순간, 유덕은 아득한 느낌을 받았다.
속도와 기세 모든 것이 자신이 감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전 방어에 성공한 경험이 있었다.
분명 놈들의 검과 부딪혔을 때 기운이 배가 되지 않았던가.
속도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늦었었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저절로 빨라졌다.
‘목숨이 경각에 달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니, 내가 그랬던 것 같구나.’
유덕이 이를 악물며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것 같았지만 이번에도 육합검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속도만 따라준다면 도끼의 무게가 내공의 부족함을 보완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의 도박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다소 무겁게 움직이던 도끼가 다시 마지막에 가서 공간을 접고 빨라졌던 것이다.
까까깡.
“으윽!”
“으음······.”
영웅방 무사들이 검들을 놓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손아귀에는 하나같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도끼와 부딪힌 순간 불에 덴 듯 반탄력을 느꼈었다.
그 결과 손아귀가 찢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기회를 노리던 정기와 진하림이 일제히 검을 찔러 들어갔다.
노린 부위는 어깨.
한데 그들 역시 이상한 힘을 느꼈다.
바로 검초를 뿌리고 얼마 안 있어 검이 스스로 빨라진 것이었다.
정기와 진하림은 놀랐지만 검을 놓치지 않았다.
사실 두 사람 모두 이렇게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실전이라 내기가 생각보다 강해진 것으로 생각했다.
푸푹.
영웅방 무사 둘이 각각 어깨와 팔을 찔리며 비명을 질렀다.
정기의 검은 의도대로 적중했다. 반면 진하림은 조금 느려 팔에 상처를 줬다.
유덕 역시 가만있지 않았다.
바닥에 떨어진 검 한 자루를 발로 차 나머지 한 명의 허벅지에 쑤셔 넣었다.
“으윽!”
공격을 가했던 영웅방 무사 세 명 모두 검상을 입게 된 순간이었다.
이 모두가 말은 길었지만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유덕 등 세 사람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하지만 상대 쪽에는 아직 무사들이 절반 이상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고수인 사재홍이 있었다.
“후훗! 육합검법을 제법 익숙하게 익혔구나. 하지만 아직 멀었다. 모두 물러서라. 내가 직접 상대하겠다.”
사재홍이 천천히 앞으로 나오며 기를 발산했다.
순간, 유덕과 정기, 진하림 세 사람은 누군가 몸을 조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꽉 막힌 방에 들어온 것처럼 숨도 답답해졌다.
사재홍의 기세에 단번에 눌린 것이다.
유덕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끝장이다. 도저히 우리 상대가 아니다.’
조금 전 놀랄만한 승리를 거두었었다.
하지만 상대는 어디까지나 일반 무사들이었다.
부대주인 사재홍과는 급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은 정기와 진하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자연스레 두 사람의 눈길이 유덕에게 갔다.
그의 결정에 맡기려는 것이다.
두 사람을 보자 유덕은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래. 내가 약해지면 정 아우와 하림이 역시 힘들어진다. 합공을 가한다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 같으면 생각도 못 할 자신감이었다.
실제 사재홍은 무림맹 정식 무사 열 명이 합공을 가해도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고수였다.
괜히 영웅방이 무한성의 흑도를 대표하는 게 아닌 것이다.
한편 사재홍 역시 확실한 승리를 장담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 움직임들이 무척 괴이했다. 갑자기 그렇게 힘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단 말인가. 합공을 가해온다면 패할 수도 있겠구나.’
사재홍이 유덕 등을 향해 말했다.
“하심무인들이라 했소? 실제 하인 신분이든 어떻든 무림맹 소속이 맞는다면, 강호의 관례대로 대표끼리 일대일로 겨룹시다. 내가 지면 깨끗이 승복하고 물러가겠소. 물론 이후 어떠한 항의도 하지 않을 것이오. 그 점은 이 사재홍이 맹세하리다. 어느 분이 나서겠소?”
유덕이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뭔가 결심한 듯 말했다.
“본인이오. 이름은 유덕이라 하오. 일대일 대결을 수락하겠소. 하지만 그전에 내 일행은 돌려보내겠소. 제안을 거절하면 어쩔 수 없이 합공을 가할 수밖에 없소. 어떻게 하겠소?”
“형님. 안 됩니다.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저자는 고수이니 합공을 가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정기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진하림 역시 마찬가지였다.
“끝까지 함께 해요. 우리가 합공하는 것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예요. 교활하기 그지없는 저자의 말에 넘어가서는 안 돼요.”
“아니다. 상대가 일대일 대결을 청해왔는데 굳이 합공을 하는 것은 무림의 법도가 아니다. 아직 우리가 정식 무사라고 할 수는 없지만, 싸움에 유리하다고 합공을 고집해선 안 되지. 사 부대주! 어서 대답하시오. 어떻게 하시겠소?”
유덕이 언성을 조금 높였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게 상당한 쾌감을 느꼈다.
영웅담을 들을 때마다 항상 부러워하며 꿈꾸던 순간이 아닌가.
강호 고수와 일대일로 당당하게 겨루어 승리하는 순간을.
많은 사람이 자신을 고수로 보는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어쩌면 또 이길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
용기백배한 유덕이 담담한 시선으로 사재홍을 쳐다봤다.
사재홍이 움찔하며 말했다.
“좋소. 그대의 제의를 수락하겠소. 나머지 분들은 나가도 좋소.”
“그럴 수는 없소.”
“흥! 누가 그런 속임수에 넘어간대요?”
정기와 진하림이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순간 유덕은 갑자기 일대일 대결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다.
‘아차, 내가 너무 호기를 부렸구나. 어찌 생사결에 있어 불확실한 운을 믿을 것인가. 냉정해져야 한다.’
유덕이 안색을 가다듬은 후 고개를 돌렸다.
백소운을 보기 위해서였다.
“운아. 너라도 먼저 총지부로 돌아가 있어라.”
“저 혼자 말입니까?”
백소운이 담담히 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 상황이 여기서 끝났으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덕 등이 승리한 것은 바로 백소운 덕분이었던 것이다.
그의 격공지력은 가히 만능에 가까워 아무도 모르게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적절한 순간에 기운을 따라 도움을 주기 때문에 간파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사재홍이 직접 나서게 된다면 조금 전보다 더 큰 도움을 줘야만 했다.
그렇게 될 경우 유덕 등 세 사람이 혹시 가지게 될 자만심이 문제였다.
백소운이 옆에 계속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실력을 과신해 낭패를 본다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백소운 역시 참기 어려울 것이었다.
‘지금이 가장 적당하다. 자신감을 가지고 더욱 분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테니까.’
백소운이 잠시 생각에 잠기자, 유덕이 재촉했다.
“어서 가거라.”
“아닙니다. 이제 곧 본맹의 장로이신 추보승 대협께서 오실 것인데, 굳이 제가 피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도 그분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닙니까?”
백소운이 임기응변으로 속임수를 사용하자, 진하림이 얼른 맞장구쳤다.
“오라버니 말씀이 맞네요. 추 대협은 이번 말벌떼 습격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온 특별 조사단의 단장님이시기도 하지요. 아마 총지부장이신 계박 대협과 장덕수 운송대장님도 함께 오실 거예요.”
사재홍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졌다.
어느 정도 허풍이 있는 것은 감지했지만, 진짜 무림맹 고수들과 대면할 가능성을 무시 못 하는 것이다.
“으음, 정말 무림맹 소속이오?”
“물론이오. 우리가 무림맹 소속 하인인 것은 확실하오. 하지만 백리영 아가씨의 배려로 이번 임무가 끝나면 절차를 거쳐 정식무사가 될 예정이오.”
유덕이 품속에서 하인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보여줬다.
확전을 꺼리던 정기와 진하림, 백소운 역시 패를 보여줬다.
사재홍이 돌연 껄껄 웃었다.
“하하하. 정작 보여주지 그랬소? 게다가 곧 정식무사가 될 분들이라고 하니까 이제야 이해가 가오. 사소한 자리다툼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 이 정도로 끝냈으면 하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영웅사걸은 아직 본방의 정식무사도 아니라오.”
“좋소. 우리 역시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겠소.”
“좋소이다. 그럼 먼저 가보겠소이다.”
사재홍이 급히 수하들과 영웅사걸을 데리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지켜보던 손님들이 박수를 보냈다.
짝짝짝.
“훌륭한 무공이었소이다.”
“그놈들 꼴도 보기 싫었는데 잘 쫓아냈소이다.”
“하심무인이라. 기억하겠소.”
칭송이 쏟아졌다.
유덕 등이 놀란 표정으로 포권했다.
“과찬입니다.”
“과찬이세요.”
겸양은 했지만, 뭔가 뿌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이만 총지부로 돌아가시지요.”
벡소운의 말에 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자. 놈들이 고수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 본분을 잊어선 안 되지.”
“네.”
얼마 후 일행이 막 객잔 밖으로 나가려던 찰나였다.
한구석에 앉아 있던 중년인 한 명이 다가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제발 우리 아가씨를 지켜주십시오.”
“일어나십시오. 저희는 하인들입니다.”
유덕이 중년인을 일으키려 했다.
굳이 하인이란 말을 다시 쓴 것은 더 이상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으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었다.
비록 오늘 일이 당장 무림맹 지휘부에 알려지지 않는다 해도 언젠가는 알게 될 가능성이 컸다.
지금은 그것을 수습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도 모자랄 상황인 것이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해주실 때까지 일어나지 않겠습니다. 저는 은하장원(銀河莊園)의 집사 이문충(李文忠)이라 합니다. 오늘 밤 영웅방 소방주가 우리 아가씨를 강제로 데려간다고 공언한 상황입니다. 무림맹 지부에도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을 당했습니다. 도와주려는 분도 몇 분 없어 모두가 걱정만 하고 있습니다. 대협들께서 도와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사정은 딱하지만, 저희는 그럴만한 상황도 능력도 안 됩니다. 게다가 더 이상 영웅방과 척을 지게 되는 것은 곤란합니다. 죄송합니다. 어서 가자.”
유덕이 거절하고 객잔 밖으로 나갔다.
정기와 진하림 역시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뒤따랐다.
일행 중 남은 사람은 백소운뿐이었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