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29
“하하하. 제게 좋은 수가 있습니다. 무명객이 진짜든 가짜든 상관없이, 놈들을 쫓아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조 문주께선 너무 비관적이신데,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일단 무명객이란 사람이 들어오면 모두 깍듯이 대하십시오. 영웅방 소방주가 아무리 간이 커도 감히 시험해보지는 못할 겁니다. 그러면 제가 세 치 혀를 이용해 놈들을 쫓아내겠습니다. 장주님과 무명객 두 분께서 친분이 있다고 소문나면, 앞으로 영원히 장주님 따님을 노리지 못할 겁니다.”
여의공자가 대청 가장 안쪽에 있는 면사여인을 쳐다봤다.
장주 부인인 한씨 부인과 함께 있는 그녀는 오늘 보호 대상인 은하장주의 여식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으면 더욱 위험해질까 봐 이렇게 함께 있게 된 것이었다.
은하장주의 여식, 즉 담소소(潭疏疏)가 말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소녀는 여러분께 평생 감사하며 살 겁니다. 반대로 오늘 놈에게 당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반드시 자진하여 명예를 지킬 겁니다.”
“소소야.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거라.”
한씨 부인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는 알고 있는 것이다.
딸의 결심이 굳건하다는 것을.
은하장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여의공자의 뜻대로 하겠습니다. 다만 여기 계신 하심무인분들 만으로 해결이 안 될 때 가짜 무명객을 내세워 놈들을 상대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의공자의 찬성이 있자, 은하장주가 하인에게 명했다.
“모셔오너라.”
“네.”
* * *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네.”
무명객, 즉 백소운이 하인의 안내를 받아 은하장원으로 들어갔다.
장원 안팎이 조용한 것이 아직 영웅방 소방주 일행이 온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군. 무명검 때문에 늦을 뻔했다. 그나저나 날 들여보내는데 시간이 걸린 것을 보니 내 신분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구나. 하기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 증명할 방도가 없으니까.’
마당을 지나 대청으로 들어가자, 은하장주 담학(潭學)을 비롯한 모두가 백소운을 맞이했다.
그중 가장 호들갑스럽게 반긴 사람은 바로 여의공자였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검마왕을 무찔러 천하에 평화를 가져오게 한 절세영웅이자 당금 천하제일인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웅께서 오심으로써 오늘 은하장원에 닥친 화도 모두 씻겨나가게 될 겁니다. 한데 생각보다 매우 어려 보이시는군요. 혹시 반로환동을 하신 겁니까?”
“무명객입니다.”
백소운이 간략하게 자신의 소개를 했다.
이미 대충 분위기를 알아챘기 때문에 많은 말은 필요 없다고 판단한 듯했다.
여의공자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반로환동 역시 일신 무공과 관련된 것인데, 함부로 물어봐서는 안 되는 사항인 걸 깜박했습니다.”
“아닙니다. 어느 분이 은하장주십니까?”
담학이 고개를 숙였다.
“접니다. 강호에 명성이 드높은 무명객께서 이렇게 와주신 데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정말 제 딸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오신 겁니까?”
“네. 객잔에서 우연히 이야기를 듣고 마음에 걸려서 왔습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영웅방 소방주 그자가 저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무슨 말씀입니까? 누가 감히 무명객님을 의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일단 여기 계신 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담학이 청죽선생, 청산객, 강무재, 조관, 여의공자, 유덕 등을 소개해줬다.
이문충 또한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간의 사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백소운으로서는 대략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의 눈길은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갔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여의공자에게도 관심이 갔다.
‘알 수 없는 사람이군. 보통 사람이 아니다.’
백소운이 여의공자의 무공 경지를 알아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대문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영웅방 소방주께서 오셨다. 어서 문을 열지 못하겠느냐?”
내공이 실린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담학이 안색을 굳혔다.
“놈들이 온 것 같습니다.”
여의공자가 말했다.
“일단 마당으로 나가지요.”
“그게 좋겠습니다.”
담학을 선두로 백소운, 여의공자 등 나머지 사람들이 대청 밖으로 나갔다.
장원 마당은 연무장으로도 사용할 만큼 넓은 곳이었다.
하인들이 문을 열자 백여 명 정도의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영웅방 소방주 곽안보(郭安寶)와 황금방 소방주 방국진 등 고수들이 대거 몰려온 것이었다.
그렇다 해도 백여 명은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아무래도 본장원에 충의보와 정무문 무사들이 와 있는 사실이 알려진 모양이구나.’
한편 곽안보 일행 중에는 낮에 유덕 등과 싸웠던 영웅대 부대주 사재홍도 있었다.
사재홍이 유덕 등 하인들을 보고 급히 곽안보에게 뭔가를 보고했다.
“저놈들이 그 무림맹 하인들이란 말인가? 담 장주! 고작 우리를 막기 위해 준비했다는 것이 저까짓 하인들 몇 명이오? 장인어른으로 모시려고 했는데, 이거 정말 너무하는구려.”
곽안보가 말을 마치자마자 우수를 흔들어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
누구도 막을 시간이 없었다.
“으윽!”
“윽!”
유덕과 정기, 막총, 진하림 네 사람이 일거에 타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곧바로 자세를 바로 했지만, 아무래도 후유증이 있어 보였다.
백소운은 무공을 잠시 시험해보려는 의도로 파악해 간섭하지 않았다.
그런 이면에는 유덕 등이 자신의 한계를 알고 섣불리 나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방국진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곽 형님. 별것 아닌 놈들인데 손수 손을 쓰셨군요.”
“방 동생.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네. 비록 하인이라 하나 무림맹 소속이니 방심할 수 없지. 더군다나 영웅대 저놈들이 본방 망신을 다 시켜놔서 어쩔 수 없었네. 다만 생각보다 무공이 너무 형편없군.”
“그렇군요. 어서 담가 계집을 데리고 떠나시지요. 원래는 이곳에서 첫날밤을 치르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문제는 저자들이겠지?”
곽안보가 충의보와 정무문 무사들을 가리켰다.
특히 두 문파의 수장인 강무재와 조관 두 사람과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강 보주, 조 문주. 감히 본 소방주의 행사를 막겠다는 것이오?”
곽안보의 말에 강무재와 조관이 코웃음을 쳤다.
“흥! 영웅방에서 본보와 정무문 두 곳을 강제로 합병하려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소. 오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평소 친분이 있던 담 장주를 돕기 위함도 있지만, 그대들의 야욕을 막기 위함이 크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 날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우리 두 문파를 건들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시오. 그러면 더 이상 이번 일에 관여하지 않겠소.”
“본인 또한 마찬가지요.”
강무재와 조관의 말에 담학 등이 안색을 굳혔다.
‘진정으로 우리를 돕기 위해 온 게 아니구나.’
담학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그마나 믿을 수 있는 무력이 바로 충의보와 정무문 무사들이었다.
한데 곽안보가 제의를 수락하면 무용지물이 되는 것이다.
“하하하. 좋다. 강제 합병은 하지 않을 테니, 어서 저자들을 제압하라. 그러지 않으면 본방의 이름으로 너희 문파 두 곳을 멸문시키겠다.”
“알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강무재와 조관이 검을 뽑아 담학과 청죽선생, 청산객 세 사람을 향해 겨누었다.
그들 세 사람만 제압하면 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유덕 등 하인들은 비록 내상은 입지 않았으나 일시 전투 불능상태였다.
나머지 여의공자와 백소운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담학이 한탄했다.
“그대들이 이럴 줄 몰랐소.”
“유감이오. 담 장주. 우리도 곽 소방주가 제의를 선뜻 받아줄 줄 몰랐소.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상대였소. 순순히 혼인을 수락하시오. 장주께서는 혹시 아직도 저 가짜 무명객의 도움을 받으려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오?”
강무재가 백소운을 가리켰다.
방국진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가짜 무명객이라니 그 무슨 말이오?”
“저자가 무명객으로 행세해 여러분을 겁주려 했다는 뜻입니다. 방 소방주께 말씀드릴 것이 또 있습니다. 저 하인 계집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르오. 내가 알 만한 사람이오?”
“네. 진하림이라고 얼마 전 낙양사흉을 죽인 자와 한 패입니다. 방 소방주와는 원수사이라고 하더군요. 오늘 싸움이 벌어지면 틈을 노려 원수를 갚겠다고 했습니다.”
“저 계집이 바로 진하림?”
방국진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고를 받고 직접 만나보려 했던 여자였다.
한데 지금 보니 듣던 대로 놀라운 미인이 아닌가.
“하하하. 네 아비를 내가 죽였다고 원한을 가진 계집이구나.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니 내 첩이나 되어라.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
방국진이 진하림에게 다가갔다.
“이놈!”
진하림이 발끈했으나 조금 전 충격의 여파로 힘이 모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곽안보가 소리쳤다.
“방 아우. 잠시 기다리게. 어차피 나의 장력에 당해 힘을 쓰지 못하는 상태이네. 서두를 필요 없네. 오늘은 내가 먼저 장가를 가야 할 날이 아닌가.”
“네. 형님. 죄송합니다. 강 보주, 조 문주. 어서 담학 저자와 두 늙은이를 제압하시오.”
방국진이 소리쳤다.
하지만 속으로는 씁쓸해했다.
‘곽안보 저자가 담소소만으로도 성이 안차 진하림 저년까지 욕심내는구나. 속이 쓰리지만 참아야 한다. 사도맹에 들어가 자리를 잡으면 네 녀석도 언젠가는 제거 대상이 될 것이다. 후후후.’
방국진이 앞날에 대해 나름대로 큰 꿈을 꿀 때.
강무재와 조관이 어렵지 않게 담학과 청죽선생, 청산객 세 사람의 혈도를 짚었다.
“여보!”
“아버님!”
한씨 부인과 담소소가 담학에게 달려갔으나, 두 사람 역시 혈도를 찍히고 말았다.
특히 담소소는 면사까지 벗겨졌는데 소문대로 대단한 미인이었다.
곽안보가 매우 흡족해했다.
물론 그러면서도 진하림의 얼굴을 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후후후. 그래도 꾸며놓으면 진가 저 계집이 더 아름다울 것 같단 말이야. 계집은 다다익선이니 방국진 저놈에게 빼앗길 수 없지. 내 비록 황금방의 돈을 보고 의형제를 맺었지만 계집까지 양보할 정도는 아니지. 후후후.’
곽안보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그의 뒤에 병풍처럼 서 있던 세 노인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소방주님. 축하드립니다. 미인을 둘이나 더 얻게 되셨군요.”
영웅방 칠대장로 중 한 명인 정십삼(鄭十三)이란 자였다.
한편 그를 비롯해 오늘 이곳에 온 장로 세 명은 곽안보의 최측근이었다.
영웅방주가 조만간 방주 자리를 물려주고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에, 그들의 곽안보에 대한 충성심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미인이 둘이라. 하하하. 정 장로는 역시 내 마음을 잘 아는구려.”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방 소방주. 뭘 하고 계시오? 저 진가 계집을 우리 소방주께 바친다고 약속하시오.”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우매해 형님의 마음을 못 읽었습니다.”
“고맙네. 동생. 첩을 스무 명 채우면 그때는 더 이상 욕심내지 않을 생각이네. 한데 이제 거의 다 정리가 되었나? 일단 담소소와 진하림 두 계집을 내 앞으로 데려오게. 여기 온 김에 두 계집과 첫날밤을 치르고 가야겠네. 물론 돌아갈 때도 계집들을 데리고 가야겠지. 하하하.”
곽안보가 껄껄 웃었다.
그 내공이 엄청나 장원 전체가 흔들릴 정도였다.
오랜 소방주 생활을 해오며 무공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은 결과였다.
한편 은하장원 쪽 사람들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유덕과 정기, 막총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느닷없는 진하림의 위기에 다들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공격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어 별도리가 없었다.
“하림아.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