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3
정기와 막총 두 사람이 가져온 낭보의 위력은 매우 컸다.
특히 유덕은 미리 축하를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형님은 이제 정식 무사가 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차 관문이 아무리 어려워진다고 해도 형님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지요.”
정기의 말에 유덕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방심은 금물일세. 하지만 사실 일차 정도는 자신이 있네.”
유덕이 처음으로 자신감을 비치자, 축하의 말은 더욱 쏟아졌다.
다들 올해가 마지막 기회인 그의 예정된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정식 무사가 되면 어떤 보직을 원하세요?”
조금 전 자신의 방으로 가서 마실 것과 다과를 가져왔던 진하림이 방긋 웃으며 물었다.
다소 앞서간 질문에 유덕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글쎄. 정식 무사가 되는 것만 생각했지 구체적인 보직은 미처 생각 못했구나. 아가씨께서 도움을 주셨으니 그 은혜를 갚을 수 있는 호법당(護法堂)이 좋을 것 같군. 하지만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십중팔구 순찰당(巡察堂)에 배속되겠지.”
유덕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백소운이 담담히 물었다.
“순찰당은 총단의 경비를 맡은 곳이 아닙니까? 순찰당에서 근무하다가 승급심사를 통과하면 다른 당으로 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순찰당으로 일단 들어간 후 때를 봐 호법당으로 옮기시면 되겠네요.”
“소운이라고 했지? 서고에만 지냈다고 들었는데 역시 맹 내 사정에 대해서 아직 모르는 게 많구나. 우리 하심무인들은 설사 정식무사가 되더라도 평생 순찰당에서 벗어나기 힘들단다. 특히 신분이 정말 확실해야 하는 호법당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지.”
“그렇군요.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출신이 어떻든 실력만 있다면 설사 맹주라도 될 수 있는 게 무림이 아닙니까?”
백소운의 말에 다들 놀라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정기가 나무랐다.
“운아. 세상의 일이란 게 그렇게 생각대로만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란 분수를 알아야 하는 것이지. 네 말이 물론 틀린 것은 아니나 현실은 매우 냉정하단다. 특히 무공이란 걸 조금도 배워보지 못한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백소운이 고개를 숙였다.
막총이 미소를 지었다.
“지금까지 우리 하심무인들이 정식 무사가 된 경우가 백 번이 채 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그중 구할 이상이 순찰당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지.”
“나머지 일할은요?”
진하림이 재빨리 물었다.
여자라서 그런지 그녀 역시 호법당이나 현무당(玄武堂)을 원하고 있었다.
“청룡당(靑龍堂)이다. 팔대당 중 최대인원을 자랑하는 청룡당 무사들이 부족해질 때, 한 번씩 다른 당에서 인원을 받곤 하지. 하지만 하심무인들이 호법당으로 간 경우는 아직 없다고 알고 있다.”
“피. 그럼 백호(白虎)나 주작(朱雀), 현무당도 가능성이 없나요? 신의당(神醫堂)은 의술에 능통해야 하니 제외하고요. 집법당(執法堂)은 말할 것도 없고.”
“백호당과 주작당은 각각 중급과 상급 무공을 지닌 정예무인들로 이루어지니 언감생심이고, 현무당 역시 정보를 다루는 특성상 호법당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무인들만 받지. 하림이 넌 여자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여자 하인이 합격한 경우는 없어서 말이야.”
막총의 설명에 진하림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안색이 어두워졌다.
유덕이 담담히 말했다.
“모두 내 잘못이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게 없는데 이렇게 눈만 높여놨으니. 순찰당 무사로 평생 지내면 또 어떠냐? 무림대전이 발발하면 순찰당 역시 전장에 투입되는 것은 매한가지인 것을. 그리고 전장에서 공을 세우면 아까 운이가 말한 것처럼 맹주가 되는 것 또한 가능하지.”
풀이 죽어 있던 진하림이 다시 미소를 지었다.
“하기야 만약 우리 중에 이번에 검마왕 그자를 처치한 분이 있었다면 까짓것 출신이 뭐 그리 중요하겠어요? 전설에 따르면 초대맹주님도 하인 출신이라고 그러던데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 워낙 오래전의 일이라. 그나저나 검마왕을 죽인 영웅은 정말 누굴까? 벌써 무림인들 사이에 천하제일인으로 회자되고 있다던데······.”
유덕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때였다.
끼익하는 소리가 위쪽에서 들렸다.
누군가 수련동에 내려오는 것 같았다.
“으음,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정기가 안색을 굳혔다.
그도 그럴 것이 무공을 수련하는 하심무인들은 모두 모여 있었던 것이다.
백소운도 아까 진하림의 설명을 듣고 알았지만 하심무인의 수는 스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유동적이었지만 생각보다 적은 수임은 틀림없었다.
진하림 말로는 이게 다 부총관 맹찬의 압박 때문이라고 했다.
오랜 관례로 인정을 해오고 있었지만, 어떻게든 수련동을 폐쇄하려고 한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백소운이 고개를 들어보니 한 사람이 상기된 안색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한데 그는 바로 맹찬이 아닌가.
유덕을 비롯해 하인들이 모두 일어났다.
“부총관님. 어쩐 일이십니까? 야심한 시각에.”
유덕의 말에 맹찬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여기 모두 있었군. 잘 되었군. 내 할 말이 있어서 왔네.”
“말씀하십시오.”
유덕이 맹찬에게 의자 하나를 내주었다.
“고맙네.”
맹찬이 의자에 앉아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백소운은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좋지 못한 소식 같구나.’
잠시 뜸을 들인 맹찬이 냉랭하게 말했다.
“자네들은 이번 예물 운송 임무에 투입될 수 없네. 아가씨께서 비록 은혜를 베푸셨다고 하나 일손이 부족한 시기라 어쩔 수 없네. 그러하니 내일 아침 직접 총관님께 임무를 맡을 수 없다고 말씀드리게.”
“그럼 회의 때는 왜 아무 말씀 하지 않으셨습니까?”
막총이 언성을 조금 높였다.
평소 조용하던 그의 성격상 생각지 못한 반응이었다.
맹찬이 인상을 찡그렸다.
“운송호위를 맡은 호법당과 이야기가 된 일이네. 회의 때는 나도 급작스러운 일이라 미리 말하지 못했을 뿐이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까짓 예물 운송에 따라갔다고 해서 특혜를 준다는 것은 공평성을 해치는 것이지. 물론 일손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이유네. 모양새가 가장 중요하니, 내일 말씀드릴 때 절대 강요받았다는 느낌을 줘선 안 되네. 총관님께서는 잘 모르시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덕이 상기된 안색으로 말했다.
하심무인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그의 단호한 말에 맹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하극상을 하겠다는 겐가? 미천한 하인 주제에 감히······.”
“······.”
유덕이 안색을 굳혔다.
분위기가 급속도로 차가와졌다.
맹찬이 벌떡 일어났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라. 내 말을 끝내 거역할 사람은 앞으로 나와라. 그 사람들은 내가 이번에 총관으로 승진하면 책임지고 짐을 싸게 해줄 테니까.”
유덕과 정기 등 하인들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이번 전쟁의 논공행상이 곧 있을 예정이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공이 많았던 내총관 왕지가 장로로 승격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한데 총관 후임자가 맹찬이라니, 확실한 사실은 아니지만 전혀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후후후, 하인들을 쫓아낼 수 있는 권한이 총관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 말을 거역하고 예물 운송에 합류하면 복귀하는 즉시 그날로 내쫓겠다. 어떻게 할 테냐?”
최후통첩이었다.
일순 정적이 흘렀다.
그의 말을 거스른다는 것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무엇보다 운송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와 등룡관이 열릴 때까지의 시간 간격이 문제였다.
자칫하면 가점을 얻고서도 무림맹에서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후후후. 참고로 다시 확인을 해두지만 가점을 주는 것은 현역으로 있을 때뿐이다. 일단 쫓겨난 후에는 가점이고 뭐고 다 필요 없지. 무엇보다 아가씨께서도 이번에 천룡궁에 가면 정식 혼인날까지 계속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네놈들에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못하신다고 봐야지.”
맹찬의 말에 막 앞으로 나오려던 유덕과 정기 등이 주춤했다.
진하림이 빠르게 물었다.
“아가씨께서도 이번에 가시는 건가요?”
“그렇다. 아직 천룡공자와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직접 가서 사람됨을 살펴보신다고 하더군. 하지만 천룡공자의 무공과 인품이 훌륭하다는 것은 이미 정평이 나 있으니, 확인해 보는 차원일 것이다.”
“저희가 아가씨께 부탁드리면 부총관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예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온 사람을 쫓아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요.”
“네년이 감히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식부에 있다고 간덩이가 부었구나.”
맹찬이 노성을 터뜨렸다.
식부의 총책임자인 총주방장은 소림출신으로 내총관 왕지의 명만 받고 있었다.
하지만 형식적으로는 맹찬의 휘하에 있었다. 그 때문인지 총주방장과 맹찬 두 사람 간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존재했다.
다만 총주방장의 무공이 매우 뛰어나다는 소문이 있어, 그것을 겉으로 표출하지 않고 있는 맹찬이었다.
“그게 아니라······.”
진하림이 깜짝 놀라며 안색을 굳혔다.
맹찬이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유덕이 앞으로 나왔다.
“죄송합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번 운송에 참여하겠습니다.”
“유덕 자네가 기필코······?”
맹찬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하심무인 중에서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유덕이었다.
특히 이번에도 정식무사가 되는 데 실패하면 스스로 하인 일을 그만두겠노라고 공공연히 밝힌바 있는 그였다.
무엇보다 올해가 마지막 기회인 그를 쫓아낸다면 문제가 될 소지도 컸다.
“재고할 수 없겠나?”
“네. 제 생각은 확고합니다.”
“으음, 좋다. 내 특별히 자네 한 명은 허락하지. 하지만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된다. 그럼 그렇게 알고 내일 모두 포기 의사를 밝힐 수 있도록. 혹여 허튼소리 하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맹찬이 자신의 말만 하고 돌아가려던 그때였다.
잠자코 있던 백소운이 입을 열었다.
“선택은 저희가 합니다. 강요는 곤란합니다.”
“네놈이 감히?”
맹찬이 백소운을 노려봤다.
하지만 백소운은 그저 담담한 표정이었다.
맹찬이 자신도 모르게 기가 풀리는 것을 느끼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좋다. 네놈들 중에 내 말을 무시할 배짱이 있는 녀석이 있는지 두고 보겠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허락한 사람은 오직 유덕 한 명뿐이다. 만에 하나 한 명이라도 더 나선다면 유덕 자네 역시 못 가게 만들어주겠다.”
맹찬이 신형을 돌려 수련동에서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