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32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차후 인연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백소운이 포권하며 작별인사를 했다.
영웅방 무사들이 모두 물러간 마당에 더 이상 남아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보내주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담학은 한걸음에 달려왔다.
“대협. 이대로 가시면 저희가 어떻게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게 해주십시오.”
“소녀 역시 마찬가지 마음입니다. 잠시만 더 머물러주세요.”
담소소 역시 급히 다가와 말렸다.
“그건······.”
백소운이 난처해 했다.
백리영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말했다.
“무명객님. 저 또한 잠시 대협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가능할까요?”
“하하, 물론 가능합니다.”
까마득한 윗사람으로 생각하던 백리영 마저 만류하자, 백소운도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무림맹 사람들보다 조금만 먼저 총지부로 돌아가면 되었다.
진하림 역시 정식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소녀 진하림 약속대로 평생 대협의 하인이 되어 모시겠어요.”
“하하하. 아니오. 소저께서 무슨 약속을 했다는 말이오? 설령 그런 약속을 했다고 해도 내가 받아들일 수 없소. 원래 홀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본인이오. 그런 마음은 먹지 말고 열심히 무공연마나 하시오. 정신을 집중하면 반드시 뜻을 이룰 것이오.”
“아, 저를 이전부터 알고 계셨나요?”
진하림이 의아해했다.
자신이 무림맹 정식무사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무명객이 알 리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어쩌다 조금 알게 되었소. 사실 오늘 은하장원에 오게 된 것도 진 소저를 비롯해 여기 계신 하심무인들의 안위가 걱정되었던 면이 크오.”
“아, 저희를 객잔에서 보셨군요.”
“그렇소. 한데 여러분 중에서 혹시 몸이 아직 불편한 분이 계십니까?”
백소운이 서둘러 화제를 돌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제 어머님께서 혈도를 찍혔던 부분이 아직 얼얼하다고 하세요.”
담소소가 한씨 부인을 가리켰다.
“그렇습니까?”
백소운이 혈도가 막혔던 부분을 다시 살폈다.
“으음, 부인께서 지병이 있으셨군요. 평소 기가 허하고 종종 실신하시지 않았습니까?”
“아,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세요?”
한씨 부인이 신기한 듯 대답했다.
“공교롭게도 점혈을 당한 부분이 그 원인 부위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괜찮을 겁니다. 조금 전 치료까지 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한씨 부인의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정말 신기하네요. 얼얼하던 느낌도 감쪽같이 사라졌고, 온몸에 생기가 도는 느낌이에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허허. 제 처의 지병까지 고쳐주시다니 이렇게 고마울 수가······.”
“어머님 병을 고쳐줘서 감사드려요.”
“별말씀을. 하지만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그대로 방치했다면 차례대로 혈이 막혀 거동도 못 하실 뻔했습니다. 물론 숨을 쉬는 한 고칠 방법은 있습니다만, 아예 그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막는 것이 좋지요.”
“네. 대협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한씨 부인이 백소운의 아래위를 살폈다.
마치 사윗감을 고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와 뜻이 맞은 담학이 물었다.
“대협.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네. 말씀하십시오.”
백소운이 흔쾌히 말했다.
평생 서고 안에 박혀 살다가 처음 세상에 나왔다.
한데 이렇게 영웅 대접을 받게 되니 그 역시 솔직히 싫지 않은 기분이었다.
물론 자만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뿌듯한 것은 사실이었다.
“혹시 혼인하셨습니까?”
담학의 물음에 사람들이 다들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담소소와 백리영, 그리고 진하림 세 명의 소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조금씩 달랐다.
가장 적극적인 기대감을 표출하고 있는 소녀는 담소소였다.
그다음은 백리영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속으로는 담소소 못지않았다.
오히려 공개적으로 무명객에게 청혼한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은 바로 그녀였다.
마지막으로 진하림은 의외로 들뜨지 않았다.
다만 진심으로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할 뿐이었다.
‘무명객 저분이 참 멋있고 마음에 든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소운 오라버니가 있다. 내 어찌 다른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진하림이 백소운을 떠올렸다.
며칠 되지 않았지만 첫 만남 때부터 가슴이 설렜던 그녀였다.
하심수련동에 불쑥 나타나 자신의 무공 연마 모습을 뚫어지라 보던 백소운의 얼굴은 절대 잊히지 않았다.
‘제아무리 천하제일 영웅이라도 나는 소운 오라버니뿐이다. 오라버니는 내 마음을 전혀 몰라주지만, 이미 오라버니로 부르기로 한 때부터 결심했었지.’
진하림이 계속 백소운을 생각할 때.
백소운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진 소저. 진맥을 좀 해봐도 되겠소? 아까 몸에 무리가 가는 것을 봤는데, 지금 어떠한지 한번 보고 싶소.”
진하림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조금 붉혔다.
‘이러면 안 되는데······ 무명객 이분이 왜 소운 오라버니처럼 느껴질까.’
한편 담소소나 백리영은 조금 실망하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백소운이 진하림에게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백소운이 혼인 여부에 대해 답변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사적인 부분을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아서였다.
조금 전만 해도 진하림에게 안면이 있느냐는 지적을 받았었다.
자칫 실수하면 진짜 신분을 들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네. 한번 살펴봐 주시겠어요?”
진하림이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백소운이 진맥한 후 말했다.
“다행히 별 탈은 없는 것 같소. 한데 무공 자질이 매우 뛰어나구려. 스승만 잘 만난다면 장차 훌륭한 여협이 될 수 있을 것이오. 물론 진 소저와 일행인 저 세분도 마찬가집니다. 다들 대기만성(大器晩成)형이시군요. 잘만 가르치면 충분히 꽃을 피울 수 있을 겁니다.”
추가로 칭찬을 받은 사람은 물론 유덕과 정기, 막총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지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백소운이 혈도를 풀어준 것에 대해 감사의 인사는 조금 전 거듭했었다.
한데 자질까지 좋게 평가해주니 벅찬 기쁨을 얻은 것이다.
그 기쁨은 즉각 희망으로 이어졌다.
천하제일인이 평가를 해 준 것이기에 자신감이 솟아났다.
여의공자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네 분 다 왜 그렇게 눈치가 없으십니까? 지금 무명객께서는 여러분을 한 수 지도해주실 의향을 밝히신 겁니다.”
“아······.”
유덕이 평생의 기회라고 생각한 듯 즉시 무릎을 꿇었다.
그 속도는 가히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가 눈짓하자, 정기, 막총, 진하림 역시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대협께서 저희를 지도해주시면 평생의 영광일 겁니다. 정식제자는 감히 바라지도 않겠습니다. 저희를 무림맹 정식무사가 될 수 있게만 해주십시오. 스스로의 힘으로 당당하게 붙을 수 있는 실력만 갖출 수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겁니다.”
유덕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가 울자 정기, 막총, 진하림 역시 그동안 쌓인 감정이 터진 듯 눈물을 흘렸다.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을 걸어가던 그들이었다.
냉대를 받으며 가슴 속에 품었던 정식 무사의 꿈.
이제 그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었다.
그것도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천하제일인에게 지도를 받고 어찌 무림맹 정식무사 정도가 되지 못하겠는가.
“어서 일어나십시오.”
백소운이 매우 당황하며 무형의 기세로 유덕 등을 일으켰다.
“지도를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언제 어디서라고 확정지어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시간 나는 대로 제가 직접 여러분을 찾겠습니다.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저희는 대협께서 시키는 대로만 할 겁니다.”
유덕이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정기, 막총, 진하림 역시 잔뜩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그때였다.
천룡공자가 비아냥거렸다.
“묻는 말에는 대답도 안하고 하인들에게 장난이나 치고, 무명객께 실망이외다. 혼인 여부에 대해 답변을 못 하는 것을 보면, 필시 나이도 무척 많고 자식들도 있는 것 같은데 굳이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요? 진하림처럼 예쁜 소녀를 꾀어 어떻게 해보려는 수작이 아니오? 물론 다른 사람들까지 가르친다는 것은 남의 눈을 의식한 것이겠지. 여자만 가르치자니 사람들이 의심할 게 분명하니까. 아, 오해는 하지 마시오.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한 것이니. 설마 본 공자의 이런 말을 듣고 불쾌하게 생각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아무튼, 다른 여자는 모르겠으나 내 여자라 할 수 있는 백리 소저를 건드리면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오. 본궁의 힘이면 아무리 무명객 그대라도 어쩔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이 자리에서 깨끗하게 선언하시오. 백리 소저와는 아무 관계도 맺지 않겠다고.”
“천룡공자!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왜 공자의 여자인가요? 어머님 치료 때문에 그러는 것이라면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제가 검마왕을 죽여주는 사람에게 시집가겠다고 한 것은 무림의 평화를 위해서였어요. 한데 무명객님은 실제 검마왕을 죽이지도 않으셨어요. 그러니 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지요.”
“호오. 그러면 무명객과 한번 사귀어볼 생각이 있다고 한 말도 취소하는 것이오?”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것 역시 일방적으로 되는 게 아니니, 별다른 구속력을 가지는 게 아니에요. 물론 그렇다고 천룡공자에게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어머님을 치료해주시면 진지하게 한번 고려해보겠다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에요. 그러니 억측은 그만 부렸으면 좋겠네요.”
백리영이 중립적인 선언을 했다.
그녀가 굳이 백소운에게도 미련이 없는 듯이 말한 이유는 아무래도 진하림 때문인 것 같았다.
‘무명객 저분이 진 소저에게 관심이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구나. 내게 관심이 없는 것은 아마 내가 한 말들이 겸손하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백리영이 자책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집을 가겠다고 한 말이나 사귀어볼 의향이 있다는 말이나, 다소 일방적인 느낌이 없지 않았다.
백리영 자신은 의식하지 않았지만 미모와 배경이 그 밑에 깔리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어. 지금이라도 겸손하고 진실한 모습을 보인다면 가능할지도······ 한데 정말 혼인을 하신 걸까.’
백리영은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백소운은 천룡공자가 대담하게 자신을 헐뜯자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그런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반격은 필요해 보였다.
“제 나이는 올해 스물둘이며 아직 혼인하지 않았습니다. 천룡공자께서 오해를 하신 것 같군요. 하지만 공자의 말은 저에게 모욕으로 들렸습니다. 사과를 받고 싶군요.”
“흥! 내가 무슨 사과를 한 단 말이오? 그런 오해를 받게 한 장본인이 바로 무명객 그대가 아니오? 처음부터 제대로 답변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 아니오?”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그저께 밤 총지부에서 어떤 자가 진 소저를 납치해 강제로 범하려 했던 것을 본인이 발견해 구해준 적이 있소. 그 범인이 누군지 지금 밝혀도 되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