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42
한삭이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자세를 바로잡았다.
“고수는 말보다 실력으로 증명하는 법. 실력이 나보다 출중하면 승리는 너의 것이 될 것이다.”
“후후후. 두말하면 잔소리지.”
음양마가 등에 멘 기형도를 꺼냈다.
반면 한삭은 보검 한 자루를 들고 있었다.
곧 벌어질 두 사람의 대결에 무사들이 긴장하며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었다.
유덕, 정기, 막총, 진하림 네 명의 하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로서는 처음으로 접하는 대규모 전투였다.
정식 무사도 되기 전에 이런 기회를 가진 것이 한편으로는 기쁘고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누가 이길까요? 아무래도 한 당주님이겠죠?”
진하림이 속삭이듯 말했다.
유덕이 고개를 저었다.
“장담할 수 없다. 음양마 저자의 악명은 나 역시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새외삼마의 합공이라고 하더구나. 일대일 대결이라면 아마도 한 당주님이 승리할 것 같다.”
“네. 유 아저씨는 아는 것도 참 많으세요.”
진하림이 미소를 지으며 좀 더 앞으로 나왔다.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고수들의 싸움을 관전하면 실력이 늘어난다는 것을.
특히 생사결은 각자의 실력을 십분 발휘하는 게 보통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더욱 컸다.
한편 백소운은 조금 전 인근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섣불리 개입하지 않고 사태를 관망 중이었다.
물론 은신술을 펼쳐 허공 속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발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이미 무림맹 진영에서 전사자가 나온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무거운 게 사실이었다.
‘으음, 새외삼마 저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문제가 없으나, 나머지 마교 무사들이 문제구나. 일반 무사들까지 그대로 죽이는 것은 왠지 내키지 않는다. 무사들도 너무 많고······.’
백소운이 안색을 조금 굳혔다.
이미 황하삼살을 죽인 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적을 죽이는 것은 성정에 맞지 않았다.
‘소마녀도 그렇지만 마교에 대해 왜 이렇게 관대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구나.’
백소운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한삭과 음양마의 싸움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싸움 전 서로의 기세 싸움에서 양측이 비등하다는 것을 확인한 상황.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출수는 제법 신중한 편이었다.
꽝.
한 차례 장력의 겨룸으로 폭음이 크게 일었다. 동시에 두 사람이 근접전에 들어갔다.
차차차창.
검과 도가 부딪히며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공수를 교환하며 원형으로 움직였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마치 두 사람을 중심으로 회오리바람이 일어난 것 같았다.
검기와 도기 때문에 땅바닥에 있던 돌과 모래 등이 일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자연히 보는 이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파파파파.
급기야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더니 두 사람의 모습은 일부만 잠시 보였다가 사라지곤 했다.
‘막상막하군.’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섣불리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한편 음양마는 생각보다 한삭의 무공이 강하자 일대일 대결에 응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장기전이 될수록 자신이 불리해질 것을 간파한 것이다.
“흥!”
음양마가 코웃음을 치며 뒤로 물러났다.
한삭이 곧바로 쫓아오며 검을 내밀어 검기를 발출했다.
반달 모양의 새파란 검기가 날아오자 음양마가 도를 비스듬히 세워 이를 막았다.
깡, 하는 소리와 함께 검기가 흩어졌다. 도를 쥐고 있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흥!”
음양마가 다시 코웃음을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음양마의 코웃음 신호를 들은 백골마와 혈루마가 빠르게 앞으로 나와 장풍을 날렸다.
쏴아아.
바로 백골장과 혈루장(血淚掌)이었다.
백골장은 아까 추보승을 중독시킨 것으로 증명되었듯이 독 기운이 매우 강했다.
한데 이는 혈루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장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미세한 붉은 기운이 바로 극독이었다.
게다가 두 장력 모두 일시 폭발하여 확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삭으로서는 예기치 않은 합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비겁한 놈들!”
한삭이 급히 검을 수직으로 세웠다.
검기가 검신 양편으로 마치 부챗살처럼 펼쳐져 검막을 형성해 장세를 막아냈다.
하지만 주공격은 바로 음양마의 도강이었다.
도기와 달리 연속해서 몇 번 펼치기 힘든 도강을 과감하게 발출한 것이었다.
도가 비스듬히 내리쳐지자, 기둥 모양의 도강이 그대로 검막을 강타했다.
장세를 막아내느라 힘이 약해진 검막이 그대로 찢어졌다.
파팡.
도강에 가슴을 강타당한 한삭이 고개를 숙이는가 싶더니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으윽!”
“당주님!”
장덕수와 계박이 급히 그를 부축했으나, 이미 내상이 깊은 후였다.
하지만 원래 공력이 심후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음양마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우리 새외삼마는 고수를 상대할 때는 항상 합공을 한다. 우리 삼형제의 합공은 돌아가신 교주께서도 경계하셨지. 그러니 한삭 네놈은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그만큼 무공이 강했다는 증거이니까.”
“으으······ 비겁한 놈! 애초 일대일 대결을 약속하지 않았더냐?”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소매로 닦아내며 한삭이 소리쳤다.
하지만 음양마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무슨 헛소리냐? 전장에서 그따위 약속이 뭐 그렇게 중요하냐? 전장은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자리다. 어떤 속임수나 모략도 통용되지. 합공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 역시 너의 부족함일 터. 구차한 변명은 집어치워라. 누가 또 나서겠느냐? 계박 네놈이 나서겠느냐?”
음양마가 내친김에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을 초토화할 작정으로 물었다.
마교 측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지만, 장담과 달리 전면전의 결과는 그 자신도 몰랐다.
무엇보다 병력 부족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계박, 장덕수 등 남은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마저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네놈이······.”
지목을 받은 계박이 음양마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부들부들 떨었다.
사실 그는 용기가 없어 나서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전면전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무사들을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목을 받았는데도 모른 척한다는 것은 수치가 아닐 수 없었다.
엄연히 그 역시 무림맹 장로 신분이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엉뚱한 일이 발생했다.
무림맹 무사들을 일변하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던 혈루마가 한 소녀를 격공섭물로 끌어당긴 것이었다.
“아악!”
느닷없이 끌려간 사람은 다른 아닌 진하림이었다.
대결을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앞으로 나섰던 것이 화근이었다.
“이것 놔라!”
진하림이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몸은 혈도가 찍힌 채 새외삼마 바로 앞에 놓인 상태였다.
혈루마가 말했다.
“대형. 이 계집의 미모가 보통이 아닌 것 같아 미리 잡아두었습니다. 혼전이 벌어지면 자칫 실수하여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대형께서 허락하시면 제 첩으로 삼을까 합니다.”
전장에서 여인을 사로잡으면 먼저 대형인 음양마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 새외삼마의 관례였다.
그래서 형식적이지만 혈루마가 말을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예상과 달랐다.
음양마가 자신이 차지할 의도를 비친 것이다.
“막내야. 미안하지만 이 계집은 내가 취해야겠다. 척 봐도 음기가 맑고 풍부하니 기운 회복에 좋을 듯하구나. 고맙다.”
“네?”
혈루마가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음양마는 다른 곳을 보여 이를 무시했다.
그때였다.
무림맹 진영에서 세 사람이 달려 나왔다.
그들은 복장도 허술하고 어디서 빌린 것 같은 낡은 검 한 자루씩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진하림이 끌려간 것을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바로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이었다.
“이놈들! 하림이를 어서 내놓지 못하겠느냐?”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유덕이 소리쳤다.
정기와 막총이 신중한 표정으로 그의 양옆에 섰다.
세 사람 모두 검을 들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들의 실력을 잊지 않고 있어 삼 장 이상은 다가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무림맹 무사들을 격동시키기에 충분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이 계집과 무슨 관계냐?”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성격인 백골마가 물었다.
유덕이 떨리는 마음을 감추며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하심무인들이다. 하림이는 우리 가족과도 같은 아이니, 어서 돌려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가만있지 않겠다.”
“하심무인이 뭐냐?”
“무림맹 하인 출신으로 무공에 뜻을 둔 사람들이다.”
“크큭. 그럼 하인이란 말이냐?”
“그렇다.”
유덕이 기죽지 않고 말했다.
이번에는 음양마가 물었다.
“네놈들이 무슨 실력으로 우리에게 대드는 것이냐?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느냐?”
“어찌 알았느냐? 우리는 무명객님의 가르침을 받기로 예정된 사람들이다. 만약 우리를 건드리면 무명객께서 네놈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뭣이라고? 무명객?”
새외삼마가 동시에 흠칫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교 무사들 사이에서 무명객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신과 같은 존재였던 검마왕을 제압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었다.
음양마의 안색이 굳어졌다.
‘아직 내 세력이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명객과 척을 지는 것은 불리하다. 저놈들의 표정으로 봐서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를 어떻게 한다?’
음양마가 망설이자, 혈루마가 발끈했다.
“형님! 설마 이놈들 말을 믿는 겁니까? 설사 무명객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돌아가신 교주님의 복수를 하는 셈이 되니, 이놈들을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형님께서 안 하시면 제가 하겠습니다. 대신 이 계집은 제 것입니다.”
“막내야. 자제해라. 보는 사람이 많다.”
백골마가 눈짓했다.
하지만 혈루마는 가만있지 않았다.
“둘째 형님은 가만있으십시오. 큰 형님께 여쭤본 겁니다.”
“으음, 좋다. 막내 너에게 저 계집을 넘기겠다. 그리고 저놈들도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음양마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역시 자신이 너무 무명객이란 이름 앞에 주눅이 들었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한편 진하림의 소유권을 넘기겠다는 말에 혈루마는 뛸 듯이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제가 성격이 급해 형님께 언성을 높인 점은 용서하십시오.”
혈루마가 음양마에게 고개를 숙인 후 유덕과 정기, 막총 세 사람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너희 진영으로 돌아가라. 이제 이 계집은 내 첩이 되었으니, 굳이 너희를 죽이고 싶지 않다.”
“흥! 누가 네놈 첩이란 말이냐?”
진하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후후후! 제법 성격이 있구나. 그래 그런 계집이 몸에 좋지. 음기가 순수해서 그런 것이니까.”
혈루마가 마치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둔 것처럼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모습이 유덕 등을 더욱 자극했다.
“금수만도 못한 놈이구나. 우리가 비록 무공은 형편없으나 그 기개만큼은 네놈보다 나을 것이다. 정기, 막총 자네들은 물러나게. 나 혼자서 공격하겠네.”
“형님. 무슨 말씀입니까? 죽어도 함께 죽어야지요.”
정기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소리인가? 자네는 운이를 만나봐야지. 어차피 안 되는 싸움일세. 하지만 죽을지언정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는 않네. 자네들은 물러서게.”
“당치도 않습니다.”
막총이 완강하게 반대하며 먼저 공격을 했다.
슈우욱.
혈루마에게 뛰어가 가슴을 향해 검을 찌른 것이었다.
“막 아우!”
유덕이 급히 그를 부르며 자신 역시 달려 나갔다.
그의 검은 대담하게도 음양마를 겨누고 있었다.
정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은 백골마가 그의 상대였다.
세 사람 모두 육합검법의 검초를 구사했다.
하지만 새외삼마 눈에는 어린아이가 장난치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위력이 없었다.
하지만 목숨을 건 공격임은 틀림없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백소운이 격공지력으로 그들의 검에 공력을 불어넣은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