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48
우두머리로 보이는 중년무사가 서경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는 바로 사사천교의 전투부대 중 하나인 사사무적대(邪邪無敵隊) 대주 방민(方閔)이란 자였다.
“방민 네놈이!”
서경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노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지부가 공격을 당했을 때 적의 총지휘자가 바로 방민이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그러는 동안 서경, 백리영 등 아홉 명은 객잔 한구석에 몰리고 말았다.
객잔 안으로 사사천교 무사 백여 명이 모두 진입한 결과였다.
대문 쪽을 세 겹 네 겹 막고 있는 형국이 되어 도주하는 것도 불가능해 보였다.
“네놈들은 모두 무림맹 놈들이냐?”
방민이 백리영, 천향 등 처음 보는 사람들을 향해 물었다.
기세가 범상치 않아 보여 아직 공격은 가하지 않고 있는 상황.
공격에 앞서 신원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일행의 맨 앞에 서 있던 천향이 백리영을 쳐다봤다.
백리영이 전음을 날렸다.
「천 호위님. 저놈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나요?」
「네. 아가씨. 하지만 방민이라는 저자는 아가씨께서 직접 처리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싸움이 벌어지면 다른 분들의 안전은 책임질 수 없습니다.」
천향이 의식적으로 백소운, 괴추노인, 임소혜 세 사람을 쳐다봤다.
백리영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앞으로 나왔다.
“사사무적대주 방민이 그댄가요? 저는 백리영이라고 해요.”
백리영이 대담하게 역용을 풀었다.
절세미인의 얼굴이 드러났다.
방민을 비롯한 사사무적대 무사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천향, 유덕 등도 마찬가지였다.
백리영이 일부러 신분을 드러낸 이유를 몰라 당황하는 그들이었다.
“백리영! 백리천의 여식이란 말인가?”
“그래요. 이번에 사사천교에서 본맹 소속 대의문을 멸문시켰다고 해서 조사차 나왔어요. 대체 어떻게 된 것이죠?”
“대의문이 먼저 본교 소속 문파를 공격해 반격했을 뿐이다. 대의문이 가만있는데 우리가 왜 공격을 가했겠느냐?”
방민이 옆에 있는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무사 한 명이 빠르게 객잔 밖으로 나가 폭죽을 터뜨렸다.
펑펑.
아무래도 확실히 하기 위해 지원병력을 요청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백리영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대의문이 어딜 공격했다는 말인가요?”
“동정수로채(洞庭水路寨)! 대의문이 먼저 동정수로채를 공격해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
“정당한 방어였다는 말이군요. 좋아요. 그럼 왜 우리 청룡당 무사들을 공격했지요?”
“후후후! 복수하려고 달려드는 놈들을 어찌 말로 설득할 수 있겠느냐? 실혼인들이 없었다면 우리 역시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는 실혼인이 없다는 말이군요. 지원을 요청하는 것으로 봐서 방 대주 말고 다른 고수도 없는 것 같고······.”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무림맹주 딸이라고 해서 봐줄 것으로 생각하느냐? 어차피 전면전을 각오한 본교다. 네년을 사로잡아 교주께 바치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다. 뭣들 하느냐? 백리영 저 계집을 사로잡고 나머지는 모두 죽여라!”
방민이 명을 내리자 사사무적대 무사 십여 명이 앞으로 나왔다.
백리영이 백소운 등 포위를 당한 모든 사람에게 전음을 날렸다.
「놈들의 지원 병력이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예요. 제가 객잔 뒤편의 벽을 무너뜨리면 모두 서 지부장을 따라 동정장원으로 가세요. 이곳은 저와 천 호위가 맡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놈들은 저를 노릴 것이니 많은 무사가 여러분을 쫓지는 않을 거예요. 지금으로선 그 방법이 모두 사는 길이니 아무 말씀 마시고 따라주세요. 개인행동은 용납하지 않겠어요.」
백리영이 전음을 보낸 후 곧바로 신형을 돌려 쌍장을 날렸다.
콰콰쾅.
폭음과 함께 객잔 뒤편의 벽이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가공할 내공이었다.
백리영의 무공이 고강하다는 것은 대강 알았다. 하지만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듯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서 가세요. 서 지부장! 뭐 하세요?”
백리영이 소리쳤다.
서경이 잠시 주저했다.
백리영이 역용을 푼 이유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적들의 공격을 자신에게 집중시켜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엄한 명이라 생각해 무너진 벽 사이로 몸을 날렸다.
“모두 저를 따라오십시오.”
“네.”
괴추노인과 임소혜, 진하림, 유덕, 서풍, 백소운 이렇게 여섯 명이 서경을 따라 객잔 뒤편으로 빠져나갔다.
“잡아라!”
사사무적대 무사 십여 명이 급히 그들을 쫓아갔다.
금세 잡힐 듯하자, 서경이 서풍에게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갈 것을 명했다.
그리고 혼자서 놈들을 막고 싸우기 시작했다.
차차차창.
서경의 검에 두 명의 사사무적대 무사가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하지만 사사무적대 무사들은 구월대 무사들과 달랐다.
하나같이 무공이 고강했다.
두세 명씩 뭉쳐 합공을 가하자 서경이 급격히 밀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서경은 이미 지부 전투에서 입은 내상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였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끝내 옆구리에 검을 맞고 말았다.
“으윽!”
서경이 비틀거렸다.
급히 앞뒤를 봤다.
백리영을 잡는 데 주력할 생각인지 객잔 쪽에서는 더 이상의 무사가 오고 있지 않았다.
반면 뒤쪽은 생각보다 도주를 많이 못 하고 있었다.
삼십 장 정도 떨어진 곳에 서풍이 일행과 함께 멈춰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못난 놈!’
서경이 침통해 했다.
자신이 지금 죽는다면 금방 따라잡힐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서풍이 서경의 위기를 목격하고 그대로 달려왔다.
“아버님!”
차차창.
사사무적대 무사 중 두 명이 서풍을 공격했다.
하지만 서풍의 무공은 일천하여 겨우 방어만 할뿐이었다.
서경 역시 마찬가지였다.
계속 상처가 늘어났다. 검을 막아내는 모습이 갈수록 힘겨워보였다.
한편 백소운은 뜻하지 않은 상황에 격공지력으로 도움을 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백리영의 무공을 믿고 그녀의 명에 따랐었다.
하지만 서경과 서풍이 위험에 처한 것까지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백소운이 공격하려 할 바로 그때.
유덕이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아직 제대로 된 경공을 배우지 못해 속력은 느렸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천하제일이었다.
“이놈들!”
유덕이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음에도 검을 수평으로 크게 휘둘렀다.
백소운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검에 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덕의 검에서 새파란 검기가 뻗어 나오더니 그대로 사사무적대 무사들을 덮쳤다.
“크아악!”
“허억!”
서경과 서풍 부자를 몰아세우던 무사 십여 명이 검기를 맞고 그대로 즉사해버렸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 시체들 상당수가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아······.”
서경이 한 손으로 옆구리 부근을 지혈하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공이 정말 대단합니다.”
“아, 아닙니다. 저도 모르게······ 잠력이 발동된 것 같습니다.”
유덕이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한 듯 어리둥절해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인지 잠력을 거론하며 얼버무렸다.
그러는 동안 백소운, 진하림, 괴추노인, 임소혜 네 사람 역시 급히 돌아왔다.
“고수셨군요. 그것도 엄청난······.”
백소운과 마찬가지로 도움을 주려 했던 임소혜가 놀란 표정으로 유덕을 쳐다봤다.
검기는 그녀 역시 발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혼전 중에 적들만 골라서 그것도 일검에 제거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하림이 병장기 소리가 들리는 객잔 쪽을 가리켰다.
“싸움이 길어지고 있어요. 아가씨께서 위험해요. 유 아저씨. 한 번 더 실력을 발휘해주시겠어요?”
진하림이 유덕을 쳐다보며 눈을 빛냈다.
‘무명객님께 벌써 한 수 배우신 게 분명해. 날 속일 수는 없지.’
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다. 당연하지.”
유덕이 다시 객잔 쪽으로 달려갔다.
백소운이 말없이 그 뒤를 따랐다.
서경이 소리쳤다.
“함께 갑시다.”
“네.”
서경, 서풍 등 남은 사람들이 일제히 유덕과 백소운을 따라 악양객잔으로 되돌아갔다.
얼마 후 도착한 객잔 안은 그야말로 시산혈해였다.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백리영과 천향은 마치 나찰과도 같았다.
사사무적대 무사 중 오십여 명이 죽고 남은 무사는 사십여 명 정도.
그리고 그들이 백리영과 천향 두 사람을 포위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한데 두 사람 모두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싸움 초반에 산공독에 당했다.
군자산 같은 일반 산공독이 아니라 사사천교 총단에서 직접 제조한 것이었다.
그 결과 일부 중독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놈들을 빨리 제거하고 백소운 일행을 따라가려던 계획이 어긋난 가장 큰 이유였다.
무엇보다 공력을 사용할수록 산공독이 퍼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백리영과 천향 두 사람 모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곧 있으면 놈들의 지원 병력이 당도할 것이다. 실혼인들이라도 오면 정말 목숨을 내놓아야 할 것 같구나. 너무 자만했다.’
백리영이 다시 돌아온 백소운 등을 발견한 것은 최후 공격을 준비할 때였다.
“왜 돌아오셨어요?”
백리영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함께 죽으러 온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유덕이 급히 말했다.
“소인이 돕겠습니다.”
유덕이 검을 사사무적대 무사들을 향해 겨누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검기는 발출되지 않았다.
“유 아저씨. 뭘 하세요? 아까처럼 쓸어버리세요.”
진하림이 답답한 듯 소리쳤다.
답답한 것은 백소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도 격공지력으로 기를 넣어주려 했다. 하지만 유덕이 너무 과도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나름 다시 잠력을 발출한다고 죽을힘을 다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타인의 기를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상황에도 백소운이 무리를 하면 공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이 매우 심각할 가능성이 높았다.
‘할 수 없구나. 직접 처리할 수밖에. 격공지력으로 공격하면 아무도 모를 것이다.’
백소운이 공격을 가하려 할 바로 그때.
임소혜가 앞으로 나왔다.
“산공독을 사용했군요. 백리 소저와 천 호위 두 분은 뒤로 물러서세요. 제가 막아보겠어요.”
이제 자신밖에 상대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한 걸까.
유덕이 허둥대자 전격적으로 무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것 같았다.
그때였다.
쿵쿵쿵, 하는 소리와 함께 일단의 무사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이번에도 백여 명 정도였다.
한데 하나같이 눈빛이 흐릿하지 않은가.
서경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실혼인!”
“하하하! 마침 잘 오셨소이다!”
방민이 껄껄 웃으며 실혼대(失魂隊)를 이끌고 온 흑의중년인을 반겼다.
창백한 안색의 그는 바로 실혼인들을 지휘하는 실혼사자(失魂使者) 중 한 명이었다.
이름은 따로 없고 실혼사자 중 열 번째라 해서 실혼십사자(失魂十使者)라 불렸다.
참고로 사사천교의 비밀부대로 최근 창설된 실혼대는 현재 총 천명의 실혼인을 거느리고 있었다.
편제는 실혼사자 한 명이 백 명의 실혼인을 거느리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런 실혼인도 그 무공 수준에 따라 등급이 나뉘었다.
가장 무공이 높은 실혼인들은 실혼일사자(失魂一使者)가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타난 실혼인들은 최하급이었다.
하지만 이들만으로 대의문을 멸문시킨 것을 볼 때 그 위력은 가공하다고 할 수 있었다.
방민이 백리영을 가리켰다.
“저 계집이 무림맹주 백리천의 여식 백리영이오. 사사산공독(邪邪散功毒)에 중독되어 우리가 사로잡기 직전이었소. 하지만 마지막 발악을 할 것 같으니 마무리는 실혼인이 처리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소. 보시다시피 두 계집 모두 생각보다 무공이 대단해 수하들이 많이 죽었소. 물론 백리 계집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모두 죽여야 할 것이오.”
“알겠소이다. 피를 머금은 꽃이라. 역시 소문대로 천하절색이군.”
실혼십사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백리영을 쳐다봤다.
음산한 미소를 짓는 것이 분명 딴생각이 있어 보였다.
백리영이 그런 그를 마치 벌레를 보듯 했다.
“네놈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백리영이 잠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제16장] 사사천교(邪邪天敎) 4“계집!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구나. 어서 저 계집을 제압하시오.”
방민이 소리쳤다.
그때였다.
백리영이 좌수를 뻗어 일장을 날렸다.
쏴아아.
공격 상대는 바로 방민이었다.
“흥!”
방민이 코웃음을 치며 쌍장으로 맞받아쳤다.
꽈앙.
“으윽.”
백리영이 신음과 함께 비틀거렸다.
입가에 피가 흐르는 것이 내상을 입은 것 같았다.
잠력을 발휘했지만 아무래도 산공독 때문에 제대로 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한편 방민은 생각보다 백리영의 장력이 약하자, 득의한 표정이었다.
애초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무적대라장이었다.
무적대라장은 백리천의 대표적 무공.
혹시라도 백리영이 익혔다면 최후의 공격으로 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래서 실혼인에게 마지막 처리를 미룬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자신이 마무리할 욕심을 내비쳤다.
“후후후! 산공독이 이제 온몸에 퍼졌으니 더 이상의 발악은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직접 제압해주마.”
방민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실혼십사자가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그대로 두었다.
방민과 평소 좋은 관계를 유지해 왔었다.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공을 가로챌 마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백리영에 한해서였다.
나머지는 죽여도 좋다고 했기에 실혼인 한 명에게 눈짓했다.
퉁퉁퉁.
지목을 받은 실혼인이 강시처럼 껑충껑충 뛰며 앞으로 나왔다.
“잠시 대기해라. 백리영 저 계집이 사로잡히면 곧바로 나머지 놈들을 죽여라.”
“존명!”
실혼인이 다소 어눌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순간 그의 두 손이 파랗게 변했다. 바로 실혼인들의 절기인 실혼강기를 펼치기 위한 준비였다.
이 실혼강기에 당하면 상대는 곧바로 한 줌 혈수로 녹아버린다.
그 때문에 대규모 전투에도 매우 유용했다.
강기의 특성상 공중에서 넓게 퍼지게 할 수 있기에 한번 공격에 수십, 수백 명도 죽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방민은 지금 천향과 임소혜 두 사람의 저지를 받고 있었다.
“미친년들!”
방민이 우수를 한번 흔들자 천향이 비틀거리며 밀려났다.
이미 기진하여 잠력도 발동할 수 없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끝까지 백리영을 보호하기 위해 억지로 나섰던 것이다.
이제 남은 사람은 임소혜였다.
방민 역시 그녀의 강한 기도에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네년은 누구냐?”
“나는 약초꾼이다.”
임소혜가 허리에 찬 연검을 풀어 손에 쥐었다.
팽, 하는 소리와 함께 연검이 빳빳하게 펴졌다.
“미친년! 내가 누구라고!”
방민이 검을 뽑아 그대로 사선으로 내리쳤다.
역용한 임소혜의 얼굴은 평범하기 그지없었다. 그 때문인지 추호도 봐주는 기색이 없었다.
쐐액,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두 동강 나기 직전, 임소혜가 허리를 비틀어 피한 후 연검을 내밀며 수평으로 갈랐다.
지독한 쾌검식이었다.
스팟.
“으윽!”
방민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이미 검이 배를 스쳐 피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고 있었다.
“보통 년이 아니군.”
방민이 안색을 굳히며 급히 실혼십사자를 쳐다봤다.
실혼십사자가 준비하고 있던 실혼인에게 명을 내렸다.
“저년을 죽여라.”
“존명!”
실혼인이 고개를 숙인 후 곧바로 양손을 뻗었다.
순간, 시퍼런 강기가 그물 모양으로 뻗어져 나갔다.
워낙 빠르고 그 범위가 넓어 임소혜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교 성녀였다.
실전 경험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마교 내에서 손꼽히는 고수였다.
“흥!”
코웃음과 함께 검을 부채꼴로 휘둘러 검막을 형성했다.
꽈앙.
“으윽!”
임소혜가 뒤로 미끄러지듯이 밀려나가 벽에 부딪혔다.
하지만 곧바로 퉁기듯 몸을 솟구쳐 빠르게 다시 나왔다.
사사무적대 무사 네 명이 사방에서 검을 휘두르며 그녀를 공격했다.
백소운 일행을 포위하고 있던 그들은 공을 세울 욕심에 합공을 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실수였다.
내공을 폭발적으로 팽창시키고 있던 임소혜가 검을 휘두르자, 검기에 당해 모두 몸이 두 동강으로 갈라졌다.
“크윽!”
“으윽!”
하지만 그때 다시 실혼인이 실혼강기를 날렸다.
임소혜가 피하지 못하고 다시 뒤로 물러나 비틀거렸다.
“으으······.”
내부가 진탕되어 더는 공격할 힘이 없었다.
그나마 내공이 강해 아직 무사했지만, 한 번 더 공격을 받으면 그대로 녹아내릴 것 같았다.
그만큼 실혼강기는 강렬했고 피할 수 없었다.
청룡당 무사들이 당한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한편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는데도 백소운은 아직 개입하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의술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어려웠다.
‘이제 정말 내가 나설 때다. 다만 실혼인들 때문에 직접 무공을 펼쳐야할 것 같구나. 그렇다면······.’
백소운이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암암리에 무형공력을 펼쳤다.
이미 무형검의 초입에 들어선 그였다.
그래서 비록 서툴기는 하나 무형공력을 전개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무형공력의 효능은 무궁무진했다.
그중에는 상대를 잠들게 하는 동시에 내외상을 치유하는 것도 있었다.
즉 백리영, 임소혜 등 보호해야 할 일행을 실신시켜 치료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사사천교 무사들을 상대할 생각이었다.
“으음.”
“으으······.”
피피픽, 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백리영, 임소혜 등 일행이 모두 쓰러졌다.
신기한 것은 백소운 자신도 쓰러져 실신한 점이었다.
물론 이는 일종의 환술이었다.
일전에 막사에 자신의 환영을 두고 임소혜를 구출하기 위해 밖으로 나간 것처럼,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한편 방민 등 사사천교 무사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이 백리영 등이 쓰러지니 놀랄 만도 했다.
“실혼십사자. 혹시 독을 쓴 것이오?”
“아니오. 방 대주가 손을 쓴 게 아니오?”
“무슨 소리요? 내가 한 게 아니오.”
방민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제압하려던 놈들이었으니 잘 된 게 아니오? 백리 계집만 빼고 어서 죽이시오.”
실혼십사자의 말에 방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쓰러질 때도 되었지. 아무래도 놈들이 기를 서로 연결해 지금까지 버텼던 모양이오. 한데 한 사람이 기진하자 연쇄반응을 일으킨 것 같소. 백리 계집만 남겨 두고 어서 모두 목을 베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사사무적대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검을 높이 들었다.
특히 그들이 가장 먼저 목을 베려는 상대는 바로 천향이었다.
그녀 손에 동료들이 가장 많이 당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안개 같은 것이 객잔에 흘렀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흐려졌다.
곧이어 한차례 바람이 불어와 안개가 흩어졌다.
한데 한 사람이 그림처럼 서 있는 게 아닌가.
담담한 기도의 사내였다.
“네놈은 누구냐?”
방민이 매우 놀라며 소리쳤다.
마치 귀신처럼 나타났기에 사사무적대 무사들도 모두 그를 포위했다.
하지만 사내는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그곳에서 오신 분입니까?”
실혼십사자가 공손하게 물었다.
방민이 의아해했다.
“그곳이라니 혹시 저자를 아시오?”
“그건 아니오. 다만 우리 실혼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신 지옥맹 분인 것 같아서······.”
“아, 외부 고문단 말씀이오? 그분들이 바로 지옥맹 분들이었소?”
“그렇소. 보안 사항이라 아직 모르고 계셨구려.”
실혼십사자가 대답 후 다시 사내를 향해 물었다.
“지옥맹 분이 맞으시지요? 저번에 교육받을 때 보니 그쪽 분들은 항상 이런 식으로 아무 기척 없이 나타나시더군요.”
“본인은 지옥맹 사람이 아니오. 한데 사사천교가 지옥맹인가 하는 곳과 관련이 있었다니 뜻밖이군. 지옥맹은 이번에 많은 인명을 해친 말벌 떼가 소속된 곳이 아니오?”
“지옥맹이 아니라면 대체 누구냐?”
실혼십사자가 냉랭한 표정으로 돌변했다.
사내가 말했다.
“본인은 무명객이오.”
무명객, 즉 백소운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순간적으로 가짜 백소운을 남겨두고 무명객으로 역용해 다시 나타난 그였다.
한데 뜻밖의 정보를 얻게 되었다.
‘천외천 무림으로 추정되는 지옥맹이 사사천교와 연결되어 있었구나. 어쩐지 실혼인들의 무공이 너무 강하다고 생각 들더니······.’
백소운이 안색을 굳혔다.
한편 무명객이란 말에 방민 등 사사천교 무사들은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명객에 대한 소문은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져 있었다.
검마왕을 제압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나, 그 밖에도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무성했다.
한 수에 천명의 녹림도들을 죽였다는 등 모두가 듣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들이었다.
최근에는 은하장원에서의 활약 소식도 널리 퍼지고 있어, 지금 모습을 드러낸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무명객. 귀하와 본교는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는 데 왜 우리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오?”
조금 정신을 차린 방민이 물었다.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자신들 편에는 지금 무적의 강시라 할 수 있는 실혼인들이 있었다.
절대 꿀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오. 사사천교가 지옥맹의 도움을 받아 실혼부대를 만든 것이 결국 그대들의 목을 조르게 될 것이오. 지금이라도 돌아가면 목숨은 거두지 않겠소.”
백소운이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방민은 더욱 기고만장한 표정이었다.
백소운이 실혼인들을 두려워해 싸움을 피하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후후후! 무명객! 네놈의 무공이 강하다는 것은 인정한다. 네놈이 개입하려는 이유도 짐작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다. 저기 쓰러져 있는 백리 계집 때문이겠지. 하지만 우리 실혼인들은 천하무적이다. 도검불침은 물론이고 금강불괴라 우리 역시 놀라고 있지. 믿을 수 있겠느냐? 대의문과 청룡당 놈들을 이천 명 넘게 죽였는데, 실혼인은 단 한 명도 상처 입지 않았다. 제아무리 무공이 강한 놈이라도 실혼강기를 서너 번 이상 맞으면 녹아내리지. 피할 수도 없고 말이야. 네놈도 마찬가지다. 살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물러가라. 특별히 이번 한 번 만은 봐주겠다. 열을 살리겠다. 하나, 둘, 셋······.”
방민이 숫자를 헤아리며 겁을 줬다.
하지만 백소운은 태연했다.
실혼인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에게는 역부족인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말로는 안 되겠군.’
백소운이 끝까지 기다리지 않고 무형강기를 폭발시켰다.
상대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 몰라 전력으로 펼친 것이었다.
어차피 이번에 사사천교 무사들이 악양 무림인들을 공격하면서 양민들도 수백 명 이상 죽인 것을 들은 그였다.
일벌백계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시기였다.
한편 사사천교 무사들은 제대로 준비도 하지 못하고 당했다.
금빛의 강기가 동심원 모양으로 객잔 안팎으로 퍼져나가자 도저히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파파파파파파.
“크윽!”
“으윽!”
비명이 객잔 안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비명이 그친 후 백소운이 보니 방민을 비롯한 사사무적대 무사들이 모두 즉사해있었다.
실혼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실혼십사자는 사지가 찢겨 죽어있었고, 실혼인들은 가루가 되어 있었다.
반면 백리영, 임소혜 등 실신해 있던 여덟 명은 모두 무사했다.
“무형강기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밀집해 있어 그 위력이 더 강했던 것 같다.”
백소운이 시체들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실혼인들을 모두 제거했지만, 그 반발력이 무시 못 할 정도였던 것이다.
‘실혼인도 등급이 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최하급인 것 같은데, 최상급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겠구나. 무형검 진전이 곡 필요한 이유다. 지난번에 말벌왕 그자를 봤을 때도 그랬지만, 아무래도 나 혼자서 지옥맹을 상대하는 것은 역부족일 것 같다.’
백소운이 잠시 주위를 둘러본 후 백리영 등 쓰러져 있는 여덟 명을 깨웠다.
이미 치료가 어느 정도 되었기도 하지만 놈들이 다시 지원병력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으으······.”
백리영을 필두로 임소혜, 유덕 등 일행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백소운은 모습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은 바로 백리영이었다.
“아, 무명객님.”
“백리 소저. 놈들은 내가 처리했소. 안심하시오.”
백소운이 계속해서 깨어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치료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는 차원이었다.
물론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가짜 백소운이었다.
아직 분신술이 완벽하지 못해 두 사람이 동시에 활동할 수는 없었다.
“아, 무명객님.”
“무명객님.”
유덕과 진하림이 그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반면 임소혜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저 사람이 무명객이었구나.’
백소운이 임소혜와 눈을 마주친 후 흠칫했다.
하지만 당장 공격해올 것 같지는 않았다.
“여러분이 당한 상처와 독은 대충 치료해두었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 운공요상을 하면 괜찮아질 겁니다. 그럼 저는 중요한 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서 이곳을 떠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백소운이 대답도 듣지 않고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
“가셨네.”
여기저기서 아쉬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주위에 가득한 시체들을 보고 정신을 차린 듯 백리영이 말했다.
“어서 동정장원으로 가요. 꾸물대다가 다시 위기에 처할 거예요.”
“네. 어서 가시지요.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몰라보게 안색이 회복된 서경이 앞장을 섰다.
나머지 사람들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쓰러져 있었던 백소운이 살그머니 일어나 자연스럽게 합류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백소운이 깨어나지 않아 걱정하던 유덕과 진하림이 매우 기뻐한 것은 물론이었다.
‘장원에 가서 조금 쉬어야겠다. 무리를 한 것 같구나.’
여전히 깊은 밤이었다.
하지만 달빛이 그들의 길을 밝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