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50
“어동자. 문을 열어주어라.”
동정어옹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옹. 저희를 보호해주기로 하셨잖습니까?”
고성준이 항의를 했다.
“내가 언제 보호해준다고 했나? 사흘간 여기 머물러도 좋다고 했지. 저 녀석들이 굳이 자네들을 잡아가고자 한다면 어쩔 수가 없지. 다만 우리 은자림과 척을 질 각오를 해야 할게야. 뭘 하느냐? 어서 열지 않고.”
“네. 어옹.”
어동자가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흑의소녀 한 명을 필두로 한 수백 명의 무사가 보였다.
하지만 조금 전 동정어옹의 말을 들은 것인지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고 있었다.
흑의소녀, 매소청 옆에는 범상치 않아 보이는 노인 다섯 명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이 말했다.
“아가씨. 저놈이 바로 악양지부장 서경입니다. 그리고 저 계집이 바로 무림맹주 여식 백리영입니다. 하지만 이곳은 저 흰 수염 노인 동정어옹의 거처라 함부로 진입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알 게 뭐야.”
매소청이 내뱉듯이 말하며 동정어옹을 쳐다봤다.
“이봐요. 늙은 어부. 좋은 말 할 때 저자들을 내보내세요. 우리 사사천교 역시 은자림과 척을 지고 싶지는 않으니까.”
매소청이 매섭게 노려봤다.
한편 그녀의 얼굴은 의외로 매우 앳되고 귀여웠다.
하지만 악녀로 소문난 그녀였다.
그것은 조금 전 째지는 목소리와 어투에도 드러나 있었다.
“허허허. 그래도 막무가내는 아니군. 그래 네가 바로 사사천교주의 여식 매소청이냐? 부교주는 어디 있느냐?”
“부교주는 성 밖 무림맹 무사들을 치러 갔어요. 늙은 어부. 다시 말하지만 좋은 말 할 때 어서 저놈들을 내놓으세요. 안 그러면 그냥 모조리 죽여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성 밖 무림맹 무사들이라면 우리 운송대 무사들을 말하는 건가요?”
백리영이 안색을 굳히며 소리쳤다.
“그렇다. 네가 바로 백리영이구나. 소문보다 훨씬 못생겼군. 천하제일미라고 해서 난 또 대단한 미인일 줄 알았는데, 실망이 크군.”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운송대 무사들을 공격하러 떠났다는 말인가요?”
“물론이다. 실혼부대가 출동했으니 지금쯤 개미 새끼 한 마리 남지 않고 모두 죽었을 것이다. 한데 네놈들 중에 누가 감히 우리 십조 실혼인들을 죽인 것이냐?”
“무명객께서 도와주셨어요. 지금 장원 안에 계시니 계속 막말을 해대면 여러분도 살아남지 못할 거예요.”
보다 못한 진하림이 소리쳤다.
그녀는 무명객이 장원 안에 있는 것으로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미 운송대 무사들의 안위 때문에 백리영 등의 마음이 흔들린 상태였다.
서경이 말했다.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운송대 무사들은 무사할 겁니다. 실혼인들의 위력을 알고 있으니 알아서 정면 대결을 피했을 겁니다.”
“아, 그렇겠네요. 감사해요.”
백리영이 안색을 회복했다.
한편 매소청은 무명객이 장원 안에 있다는 말에 매우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가 이끌고 온 사사천교 무사들의 수는 오백여 명.
이미 장원을 세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다만 장로들의 권고로 직접 공격은 가하지 않고 있었다.
조금 전 이야기를 했던 사사천교 장로 장간지(張幹地)가 말했다.
“동정어옹. 입장을 확실히 밝혀주십시오. 본교는 은자림을 존중합니다. 그래서 어옹의 허락 없이 장원 안으로 진입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냥 돌아가던가.”
동정어옹이 인상을 찌푸렸다.
“철수하는 것 또한 불가능합니다. 이미 저들은 구월대주와 사사무적대주, 그리고 실혼십사자 등을 죽였습니다. 무엇보다 본교의 자산인 실혼인 백 명을 죽였으니, 반드시 복수해야 합니다.”
“나보고 어쩌라는 말인가?”
“저들을 장원 밖으로 내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양측이 정정당당하게 싸우겠습니다. 아니면 저희를 장원 안으로 들여보내주십시오.”
“으음, 이렇게 하지. 나는 이들을 사흘간 장원에 머물러도 좋다고 약속했으니, 그 말을 어길 수는 없네. 자네들이 장원을 포위하고 있는 것 또한 불가하네.”
“어쩌자는 겁니까?”
“무림 관례에 따라 해결하지. 양측에서 세 명을 대표로 내세워, 먼저 두 판을 이기는 측의 뜻대로 하는 것이네. 무림맹 측이 이기면 자네들은 장원 근처에 얼씬도 해서는 안 되네. 반대로 자네들이 이기면 내 이름을 걸고 이들을 장원 밖으로 내쫓겠네. 물론 그때는 싸우든 말든 전혀 상관 않겠네. 어떤가?”
“좋습니다.”
“좋아요.”
장간지와 백리영이 동시에 대답했다.
백리영이 다시 말했다.
“대표삼결(代表三決)을 하기 전에 꼭 할 말이 있어요. 지금 복수 운운했는데, 정작 복수를 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예요. 대의문 무사와 청룡당 무사, 그리고 중소문파 무사들까지 합쳐 지금까지 삼천 명이 넘는 무사들이 전사했어요. 그분들이 흘린 피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야 할 거예요.”
“흥! 못생긴 계집. 말은 청산유수구나. 하지만 말은 바로 해라. 대의문이 먼저 우리 사도맹 소속 동정수로채를 공격했다. 그까짓 수적질 몇 번 했다고 기습 공격을 감행했지. 그때 죽은 백여 명의 사망자는 어떻게 할 거냐?”
매소청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백리영이 발끈했다.
“그까짓 수적질이라 했나요? 수적들이 죄 없는 양민을 해치니 지역의 대표 문파로서 당연히 응징을 했겠죠. 자세한 상황은 들어봐야 알겠지만, 모두 장강 일대를 장악하려는 그대들의 음모로밖에 들리지 않는군요.”
“백리영! 입만 살았구나. 좋다. 내 직접 네년의 아가리를 찢어 놓겠다. 첫 시합에 나올 용기가 있느냐? 물론 상대는 나다.”
매소청이 괴이해 보이는 장검을 들고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대표삼결의 당사자에게는 출입이 허락된 셈이라 아무도 저지하지 않았다.
장간지가 매소청에게 전음을 날렸다.
「내상에서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니,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여 단번에 제압하십시오. 강호에 나온 이후 사실상 첫 대결이라 할 수 있으니 반드시 승리하셔야 합니다.」
「알겠어요. 두 번째 대표는 장 장로이니 준비나 해두세요. 우리가 연속해서 두 번을 이기면 설사 무명객 그자가 나오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되지요.」
「물론입니다. 아가씨.」
장간지가 전음을 보낸 후 다른 장로 네 명과 함께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참관의 형식을 취했지만 실은 매소청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렇다 해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매소청의 무공이 그만큼 높기 때문이었다.
사실 매소청은 그야말로 무공의 천재라 할 수 있었다.
올해 십팔 세인 그녀는 최근 삼 년간의 폐관수련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수련 기간 내내 그녀는 사사천교주의 특별 배려로 교주동에 들어가 전대 교주들의 무공을 익혔다.
그 성과가 워낙 뛰어나 부친을 비롯해 교의 주요 고수들이 놀랄 정도였다.
사사천교주가 전격적으로 강호행을 허락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편 갑작스레 첫 상대로 나서게 된 백리영은 나머지 대표를 미리 선정하기 위해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두 번째 대표무사는 어느 분으로 하는 게 좋을까요?”
백리영의 물음에 사람들이 서로를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서경이 자원했다.
이미 백소운의 도움을 받아 내상이 거의 회복된 상태였다.
악양지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결심이 보였다.
하지만 백리영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풍운문주 고성준 역시 자원했으나 마찬가지였다.
백리영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사실 그녀는 내심 천향과 임소혜 두 사람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천향은 백리영 자신보다 무공이 아래였다.
게다가 내상 회복 정도가 아직 많이 미흡했다.
백소운의 말대로 하루 이틀 정도 회복운공을 해야만 완쾌할 수 있었다.
‘천 호위는 일단 가장 마지막으로 남겨두는 게 좋겠다. 끝내 무명객 그분이 나타나지 않으실 때를 대비해야 하니까. 문제는 임 소저인데 차마 먼저 부탁을 하기가 그렇구나.’
백리영이 그래도 기대 어린 눈빛으로 임소혜를 쳐다봤다.
한편 임소혜 역시 백리영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괴추노인이 전음으로 강력하게 말리고 있어 주저하는 중이었다.
「아가씨. 더 이상 저들 싸움에 개입해서는 안 됩니다. 아까 객잔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방관하다가 싸움이 벌어지면 몸을 피해 장사로 가셔야 합니다.」
「그래도 동정어옹 저분께 은자림 위치를 물어보지도 못했는데······.」
「아까 듣지 못하셨습니까? 외부인 출입을 금하는 이유가 뭐겠습니까? 그만큼 은자림이 있는 곳을 비밀에 부치려는 겁니다. 절대 알려주지 않을 겁니다. 자꾸 휘말리면 교주님의 복수는 물 건너갈 수 있습니다. 통촉해주십시오.」
「알겠어요. 호법의 뜻대로 할게요.」
임소혜가 백리영에게 말했다.
“죄송해요. 혹시 저를 생각하고 계신 거라면 내상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힘들겠어요.”
“아, 아니에요. 그럼 두 번째는 천 호위님으로 하겠어요.”
“네. 아가씨. 반드시 승리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리고 마지막은 일단 비워두겠어요. 운이 좋아 두 번 연속으로 이기면 마지막 대결은 치를 필요가 없겠지요.”
백리영이 억지로 표정을 밝게 했다.
하지만 이내 안색이 굳어졌다.
아무래도 임소혜가 빠진 것이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백리영이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 매소청과 마주 섰다.
한편 두 사람이 서 있는 마당 한복판에는 자연스럽게 비무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양 측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인지 백여 명 정도의 사사천교 무사들이 추가로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물론 이는 동정어옹의 묵인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동정어옹이 말했다.
“심판은 부득이 이 늙은이가 맡겠소. 먼저 쓰러지는 쪽이 패하는 것으로 할 테니, 최선을 다하기 바라오. 질문이 있으면 하시오.”
백리영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먼저 두 판을 이기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대표삼결의 원래 규칙과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원래는 먼저 세 명 모두 패한 쪽이 지는 게 아닌가요?”
“으음, 그러니까 한 사람이 여러 명을 상대할 수 있다는 그 말인가?”
“네. 가령 저 혼자서 상대편 세 명의 대표를 모두 상대해 승리를 거둘 수도 있는 것이죠. 물론 반대로 두 번 연속 패배를 당해 마지막 한 사람이 남아도, 그 사람이 상대편 대표 세 명 모두를 이기면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되는 것이지요.”
“그렇군. 그게 원래 대표삼결의 규칙이지. 하지만 요즘은 편한 것을 좋아해서 내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네. 좋네. 그렇게 하지. 어느 쪽이든 본래 규칙을 주장하면 따르는 것이 관례이니까.”
동정어옹이 흔쾌히 수락했다.
매소청이 발끈하려다가 장간지의 저지를 받았다.
「아가씨. 놔두십시오. 어쩌면 더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아가씨의 무공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무림맹 고수 세 명을 연달아 격파한다면 그 명성이 천하를 진동할 겁니다.」
「그러다가 진짜로 무명객이 마지막에 나오면 어떻게 할 거예요? 저 계집이 무명객 때문에 저러는 것을 모르지 않으실 텐데······.」
「무명객은 이곳에 없습니다. 설사 무명객이 와도 그놈을 죽일 고수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요?」
「지금 지옥맹 고문단 한 분이 와 계십니다. 은잠술을 펼쳐 보이지는 않지만 저에게 전음을 보냈습니다. 아마 무명객이 나타나면 직접 제거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호호호. 좋아요. 어떻게든 우리가 승리하게 되겠군요. 외부 고문단 그분들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으니까.」
매소청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다. 무명객 그놈을 기다리는 모양인데,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늘 위에 하늘이 또 있는 법이니까.”
그때였다.
스스슷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 두 명이 담을 넘어 장원 안으로 들어왔다.
한 명은 키가 작고 뚱뚱했고, 다른 한 명은 크고 홀쭉했다.
“허허허. 동정어옹. 마침 좋은 구경거리가 있었군.”
“남북쌍괴(南北雙怪)! 어서 오게. 안 그래도 혼자서 많은 사람을 상대하느라 힘이 부쳤는데, 마침 잘 왔네.”
동정어옹이 기뻐했다.
한데 남북쌍괴란 말에 사람들이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북쌍괴 또한 무림칠대기인에 속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 모두 은자림 소속이었다.
“어느 쪽이 남괴고 어느 쪽이 북괴죠?”
진하림의 물음에 유덕이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구나. 어옹과 마찬가지로 무림칠대기인에 속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괴추노인이 대신 대답해주었다.
“키가 작은 쪽이 남괴, 큰 쪽이 북괴입니다. 둘 다 성격이 괴팍해 정사지간으로 분류되지요.”
한편 백소운은 아까부터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문 옆 담장 위였다.
죽립을 쓴 한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한데 그의 눈에만 보이는 사람이었다.
‘은잠술이 대단하군.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혹시 지옥맹 고수일까? 내가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