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51
백리영과 매소청의 대결은 급히 마련된 단상 위에 동정어옹과 남북쌍괴가 자리하자 바로 실시되었다.
“못생긴 계집! 약속대로 아가리를 찢어주겠다.”
매소청이 검을 비스듬히 들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녀가 펼칠 검법은 바로 사사검법(邪邪劍法)으로 교주무공 중 하나였다.
부친인 매사행(梅事行)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정도로 가장 숙달된 무공이었다.
‘백리영 저년의 무공은 매우 높다. 절대 방심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절초를 펼친다.’
조금 전 장간지의 조언대로 사사검법 중 최후 절초라 할 수 있는 사사혈광(邪邪血光)을 바로 펼쳤다.
쐐애액.
순간, 핏빛 광채가 검신에서 우러나와 백리영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것은 보통 광채가 아니라 상대의 반응을 둔화시키는 효력이 있었다.
백리영은 매소청이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을 노리자 발끈했다.
쏴아아.
그녀의 장심에서 거대한 장세가 분출되었다.
바로 죽은 방민이 두려워했던 무적대라장이었다.
당시 그녀는 비장의 무기라 할 수 있는 무적대라장을 펼치지 못했다.
아직 완전히 익히지 못한데다가 산공독에 당해 공력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공력 회복이 구할 가량 되었다.
무엇보다 그녀 역시 내심 일초 승부를 노리고 있었기에 곧바로 대응할 수 있었다.
꽈아앙, 하는 엄청난 폭음이 일며 장원 전체 건물이 흔들렸다.
관전하던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랄 정도였다.
최소 백합 정도는 겨룰 줄 알았다. 한데 처음부터 대격돌을 벌인 셈이었다.
얼마 후 동정어옹 등이 결과를 보니 한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한데 그녀는 바로 백리영이 아닌가.
옆구리 부근에 피가 흐르고 있었으나 큰 상처는 아니었다.
“으으······.”
백리영이 상처를 손으로 지혈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된 년. 혈광에 독을 넣어두었구나.”
백리영이 매소청을 노려봤다.
하지만 패배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녀의 말대로 혈광 때문에 무적대라장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은 맞았다.
‘무적대라장을 대성만 했어도······.’
백리영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매소청이 애초에 검을 찌른 곳이 바로 자신의 입술이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 피하자 검이 사선으로 내려와 옆구리를 스쳤다.
한편 매소청은 승리를 했음에도 아쉬워하는 표정이었다.
“아가리를 찢어놓으려 했는데······ 백리영. 네년은 평생 가도 내 적수는 되지 못한다. 재수 없는 년.”
“네년이 정말······.”
백리영 역시 폭발하기 직전 동정어옹이 판정을 내렸다.
“매소청 승리!”
와아아.
사사천교 무사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매소청의 공식적인 첫 비무 승리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아들이 없는 매사행으로서는 내심 그녀를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으로 교를 이끌고 나가기에는 여러모로 힘들 것이라는 게 문제였다.
그리하여 파격적으로 교주무공을 배우게 한 것이었다.
“아가씨.”
천향이 백리영을 부축하려 했다.
백리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 괜찮아요. 독기는 일시적이라 바로 배출되었어요. 하지만 저처럼 승패를 가를 수 있으니, 천 호위께서도 조심하세요. 혈광이 뿜어져 나오면 호흡을 멈추는 게 좋을 거예요.”
“명심하겠습니다. 아가씨.”
천향이 비장한 표정으로 비무 공간으로 들어갔다.
매소청은 오만한 표정으로 그대로 서 있었다.
백리영 보다 무공이 아래로 보이는 천향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천향은 조금 전 기가 죽은 백리영의 얼굴을 보고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래 그 검초라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한번 펼치면 한 시진 동안 탈진할 수밖에 없는 검초라 하셨지.’
천향은 문득 자신에게 무공을 가르쳐준 사부를 생각했다.
그녀의 사부는 남해검파의 한 장로였다.
그는 강호행 중 부모를 잃고 내버려진 천향을 발견해 키웠다.
그렇게 해 자연스럽게 사제지간이 된 것이었다.
‘자질이 모자라 사부님의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검초만은 완전히 익힐 수 있었지. 그야말로 잠력을 모두 이끌어 내는 것이라 탈진할 수밖에 없지만, 지금은 일승이라도 거둬야 한다.’
천향이 기를 모았다.
아직 회복이 많이 덜 되었지만 구명절초 천지개벽(天地開闢)을 펼치는 데는 아무 무리가 없었다.
그녀의 나이 올해 스물둘.
호위를 위해 화장을 잘 하지 않아서 그렇지 그녀 또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매소청과 천향 두 사람은 준비하시오. 시작!”
동정어옹이 시합 개시를 알렸다.
매소청이 이번에도 검을 비스듬히 들어 내리쳤다.
역시 사사혈광이었다.
원래는 다른 검초를 구사하려 했었다.
하지만 천향의 기세가 심상치 않아 다시 한번 펼친 것이었다.
쐐애액.
천향의 몸을 두 동강 낼 듯 검이 다가왔다.
혈광 때문에 천향은 기가 위축됨을 느꼈다.
하지만 백리영의 조언대로 호흡을 멈췄다.
그리고 준비하던 천지개벽을 펼쳤다.
쐐애액.
차차창.
두 검이 그대로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불꽃이 튀며 검기가 두 검에서 뻗어 나와 상대의 요혈을 노렸다.
“으윽!”
천향이 신음과 함께 불에 덴 듯 급히 뒤로 물러났다.
검과 검이 부딪힌 순간 매소청의 검에서 괴이한 반탄력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 때문에 천지개벽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혈도 흔들렸다.
“흥! 호위주제에!”
매소청이 빠르게 다가와 오른발로 천향의 복부를 걷어찼다.
천향이 허리를 비틀어 피하려 했으나 그만 늦어 얻어맞고 말았다.
퍽.
“으윽!”
천향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매소청이 우수를 들어 그녀의 머리를 박살내려 하다가 그만뒀다.
“매소청 승!”
동정어옹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매소청이 끝까지 목숨을 앗아가려 했다면 지풍을 날리려 했던 그였다.
옆에 있던 북괴가 껄껄 웃었다.
“허허허. 사사천교주 여식의 무공이 대단하군. 생사결이었다면 벌써 죽였을 텐데 그래도 자제를 하는군. 출신만 좋으면 제자로 삼을 텐데 아쉽군.”
남괴가 즉각 반박했다.
“무슨 헛소리인가? 아까는 독기, 지금은 보검의 위력을 빌어 상대를 제압했으니 진정한 실력이라 할 수 없지. 오히려 천향인가 하는 저 아이의 용기가 가상하네.”
“흥!”
매소청이 불쾌한 표정으로 남괴를 쳐다봤다.
하지만 장간지가 그녀를 만류했다.
「아가씨. 마지막 시합이 남았습니다. 저들 말에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은자림에는 무수히 많은 고수가 있습니다. 정도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마도, 흑도, 그리고 본교 출신의 사도 고수들도 많이 있지요. 말은 저렇게 해도 우리 일에 쉽게 간섭하지 못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알고 있어요. 장 장로. 그냥 노려본 거예요.」
매소청이 전음을 보낸 후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와아아.
사사천교 무사들의 함성이 계속되고 있었다.
매소청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포권으로 감사를 표했다.
한편 천향은 겨우 일어나 풀이 죽은 채로 백리영에게 돌아갔다.
계획했던 초식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기진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백리영을 볼 면목이 없는 그녀였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아니에요. 저년의 술수가 뛰어났을 뿐이에요.”
백리영이 천향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뒤쪽을 한번 쳐다봤다.
혹시라도 무명객이 나타났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 큰일 났구나. 이를 어쩐단 말인가. 서 지부장의 무공으로는 절대 매소청을 이길 수 없는데······.’
장간지가 압박을 가했다.
“누굴 찾는 것이오? 무명객이 장원 안에 없는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어서 마지막 대표를 뽑으시오.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게 아니겠소? 어옹! 안 그렇습니까?”
“물론이네. 일각의 시간을 줄 테니 어서 대표를 내세우게.”
동정어옹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옆에 있는 남북쌍괴에게 전음을 동시에 날렸다.
「어떻게 이곳에 온 건가? 볼일을 보러 나왔다가 들른 것은 아닐 테고. 혹시 실혼인 때문인가?」
「그러하네. 실혼인을 만드는 데 사사천교가 외부 도움을 받은 것 같네. 총은자(總隱者)께서 혹시 외적이 아닌지 조사하라 하셨네.」
「으음, 중원 무림인들이 아니면 개입하시겠다는 뜻인가?」
「그런 것 같네. 그래서 밀명을 받고 우리 두 사람이 온 것이네.」
「그랬었군. 그렇다면 이대로 매소청 저 아이가 전승을 거두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지. 그래서 무명객이 오지 않는다면 우리 두 사람이 도와줄 생각이네. 안 그래도 마땅한 녀석을 찾았네. 무공은 전혀 없으나 기가 순수한 녀석이지.」
남괴가 전음을 날린 후 한쪽에 담담히 서 있는 백소운을 쳐다봤다.
그리고는 곧바로 전음을 날렸다.
「너도 무림맹 소속이냐? 맞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나는 동정어옹 왼편에 앉아 있는 남괴다.」
그의 전음에 백소운이 흠칫했다.
무림맹 측이 두 번 연속 패하자, 객잔에서처럼 가짜 백소운을 만들어 두고 무명객으로 나타날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였다.
‘무슨 계획이 있구나.’
백소운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곧장 다시 전음이 들렸다.
「지금 북괴가 백리영 저 아이에게 우리 계획을 설명 중이다. 너는 아무 말 말고 마지막 대표로 나설 준비를 해라.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너의 팔다리를 우리가 격공섭물 방식으로 조종할 것이다. 물론 공력도 일시 주어질 것이다. 네 녀석 손에 너희 일행의 목숨이 달렸으니 무조건 내 말에 따라야 한다. 잠시 후 백리영 저 아이가 네게 출전을 권하면 무조건 따르면 될 것이다. 알겠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나와 비슷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고 하는구나. 어차피 내가 나설 계획이었으니 따라주는 게 좋겠군.’
백소운이 당황했지만 이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때 백리영이 묘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백 공자. 마지막 대표로 나서주시겠어요? 무명객께 비밀리에 무공을 배운 것으로 알고 있어요. 부탁드려요.”
백리영이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백소운이 무명객으로부터 무공을 배웠다는 말에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쏠렸다.
‘백리 소저가 나름대로 머리를 썼구나. 어차피 기호지세이니 따라줄 수밖에.’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무명객께 무공을 배운 것은 맞지만 아직 초보 수준이라 기대에 부응할지 모르겠습니다.”
장단을 맞춰주자 백리영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백소운이 당황하여 실수할 것을 걱정한 터였다.
“무슨 말씀인가요? 사실 얼마 전 마교의 새외삼마를 실질적으로 제거한 분이 백 공자라고 알고 있어요. 저들의 무공이 비록 대단하나 그들보다는 못할 터. 부탁드려요.”
“아, 그 사실은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좋습니다. 아가씨.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백소운이 고개를 숙인 후 비무 공간으로 나갔다.
한편 그의 말과 행동에 사람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특히 유덕과 진하림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아, 그렇다면 당시 소운 오라버니가 복귀하지 않은 게 무명객님께 무공을 배우느라 그랬던 것일까. 아무튼, 잘된 일이다.’
진하림이 나름대로 추측을 하며 기대 어린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아직 믿기지 않는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오라버니! 힘내세요!”
진하림이 소리치자, 백소운이 씁쓸한 미소와 함께 손을 들어주었다.
“흥! 꼴에 애인은 있네. 무슨 개수작인지 모르겠지만, 네 녀석은 반드시 골통을 빠개주겠다.”
매소청이 불쾌한 표정으로 백소운을 노려봤다.
예상을 뛰어넘는 그의 등장에 장간지가 경계를 했다.
“귀하의 이름과 무림맹에서의 직책을 밝혀주시오.”
“백소운이라 하오. 총단에서 하인으로 일하고 있소.”
백소운의 말에 사사천교 무사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흥! 어디서 버러지보다 못한 하인 놈이 나선단 말인가? 진짜로 무명객에게 무공을 배운 것 맞아?”
매소청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백리영 역시 이번에는 안색을 굳혔다.
하인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그만 잊었던 것이다.
하지만 백소운은 태연했다.
“무림인이 무공이 높으면 되는 것이지, 그 신분이 뭐 그리 중요하겠소? 매 소저라고 하셨소? 생긴 것은 절세미인인데 그 입이 험하니 어찌 남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소?”
“지금 뭐라고 그랬어? 이 새끼가.”
매소청이 분노에 찬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절세미인이란 칭찬도 들었기 때문인지 곧바로 공격을 가해오지는 않았다.
그때 동정어옹이 말했다.
“백소운 대 매소청. 대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