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57
동정장원.
늦은 밤이었지만 객당 회의실에서는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낮에 개방 분타에서 돌아온 백리영과 유덕, 진하림을 비롯하여 천향, 서경, 서풍, 고성준 등이었다.
천향을 제외하고 각자 임무를 맡고 장원을 떠났다가 돌아온 그들은 슬픔과 분노, 기쁨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먼저 분노의 이유는 단연 운송대 무사들의 몰살이었다.
서경과 서풍이 풍운대 척후 무사들을 데리고 가서 확인했었다.
반면 기쁨의 이유는 역시 백소운의 활약 덕분이었다.
구월방의 멸문, 그리고 동정장원을 공격하기 위해 오던 사사천교 무사들의 패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까 사사천교 부교주 원청쇄와 부군사 대두선생, 그리고 실혼인 삼개 조가 모두 무명객께 몰살당했다는 말씀인가요?”
“네. 사사천교 궁수대 무사 오백 명도 포함됩니다. 물론 아까 말씀드렸듯이 구월방주를 비롯한 구월방 무사 오백 명 역시 몰살당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고성준의 보고에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유덕과 진하림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직급이 낮아 원래 이런 작전회의에 참석할 수 없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백리영의 특별 배려로 함께 하게 되었다.
지금 그들 두 사람의 머릿속은 정기와 막총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했다.
생존자가 정말 한 명도 없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회의의 흐름을 깰 수 없어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궁금해하던 부분을 백리영이 질문했다.
“정말 운송대 무사들이 전멸한 건가요? 생존자가 한 명도 없었나요?”
서경이 대답했다.
“저희가 갔을 때는 이미 싸움이 끝나있었습니다. 탐문 결과 쟁자수들은 따로 잡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데 그 압송 장소가 대의문 총단이 아니라 절강성 쪽인 것 같습니다.”
“절강성이라면 혹시 실혼인을 만들려고 잡아간 건가요?”
“네. 잘 보셨습니다. 대략 오백여 명이 사사천교 총단이 있는 절강성 쪽으로 압송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 한데 왜 그 보고는 미리 안 했나요?”
“목전에 닥친 위기 해소가 우선이라 생각했습니다. 무명객님 덕분에 숨통은 트였으나, 대의문 총단에 놈들이 여전히 대병력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모두 합해 칠천 명이 넘는 무사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놈들이 전열을 가다듬어 이곳을 공격한다면 그야말로 속수무책일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죄 없이 붙잡혀 간 사람들이 실혼인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는 없어요. 실혼인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죽임을 당한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네. 일단 죽인 뒤 자신들의 명만 받도록 특별한 주문을 건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간단한 말과 의사소통도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좋아요. 그 문제는 다시 논의하기로 하고, 운송대 무사들을 이끌고 계셨던 장덕수 대장님과 추보승 장로 두 분의 생사는 모르나요?”
“네. 하지만 지금 놈들에게 잡혀 있는 한삭 당주님처럼 포로로 잡혀갔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사사천교는 이전부터 적의 지휘부 고수들을 인질로 삼아 자신 측 고수들과 교환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확실하게 알려면 대의문 총단에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서경이 안색을 굳혔다.
인원 부족으로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알아오지 못한 게 아쉬운 것 같았다.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운송대 무사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전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거예요. 최소한 장 대장님과 추 장로님은 살아계실 것으로 믿어요. 그리고 사로잡힌 쟁자수 중에 우리 무사들이 섞여 있을 가능성도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정기와 막총 그 두 분은 쟁자수로 오인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니,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군요.”
백리영의 마지막 말은 바로 유덕과 진하림에게 한 것이었다.
“감사드립니다. 저도 두 동생이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혼인으로 만들어지기 전에 반드시 구출해야 합니다. 끌려간 사람 중에는 제 친동생도 있을 가능성이 커 꼭 구출하고 싶습니다. 구출 작전을 고려해주시겠습니까?”
유덕이 과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곧 고성준의 반대가 이어졌다.
“이미 늦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보낼 전력이 없습니다. 저희 풍운문과 함께 하기로 했던 문파 네 곳의 무사들이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해도 총 칠백 명 정도입니다. 한데 놈들은 칠천 명입니다. 그들에 대한 구출은 맹의 연락망을 이용해 절강성을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강서성 지부 무사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그들로서도 부족하다면 인접해 있는 안휘성의 남궁세가 무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지금 이곳으로 오고 계시는 총군사께 말씀드리면 적절한 방안을 마련해주실 겁니다.”
“하지만 다른 성의 무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하면 대처가 늦을 수밖에 없어요. 아직 호남성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니, 소수 병력이라도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한데 중립문파들과는 연락이 되었나요?”
“네. 하지만 대부분 좀 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합니다. 무명객께 사사천교 무사들이 상당한 타격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그들은 계속 중립을 지키려 할 겁니다. 사사천교 놈들이 자신들에게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어졌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한데 정말 구출부대를 편성할 겁니까?”
“네. 백 명 정도만 보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보낼 수가 없어요. 풍운문 무사들뿐이니까요. 내일 아침 오기로 한 무사들이 도착하는 대로 편성을 해서 보내기로 하죠.”
“알겠습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고성준이 안색을 조금 폈다.
사실 그는 백리영이 풍운문 무사들을 보낼까 걱정했던 것이다.
한데 다른 문파 무사들을 그것도 백 명만 보낼 거라고 하니까 안심되는 표정이었다.
유덕이 급히 말했다.
“아가씨.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여유가 없습니다. 저와 하림이 두 사람이라도 지금 바로 출발해 척후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말 두 필만 내주십시오.”
“으음,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서풍 공자가 수고를 좀 해주실 수 있겠어요? 서 공자가 여기 두 분을 데리고 가서 잡혀간 사람들이 어디쯤 있는지 알아보세요. 연락을 주신다면 무사들을 보낼 때 도움이 될 거예요.”
“명을 받들겠습니다. 저 역시 그분들을 구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순히 포로들을 구출하는 문제가 아니라 실혼인 추가 제조를 막는 일이니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멀리 볼 줄 아시는군요. 서 지부장께서는 훌륭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과찬이십니다. 풍아. 어서 출발하도록 해라.”
“네. 아버님. 아버님도 몸조심하십시오.”
서풍이 서경을 비롯해 사람들에게 인사한 후 유덕과 진하림을 데리고 장원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빠르게 준비된 말을 타고 세 사람은 절강성 쪽으로 출발했다.
두두두.
* * *
동정장원을 출발한 서풍과 유덕, 진하림 세 사람이 강서성 접경 지역까지 도달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여기서 잠시 쉬었다 가지요.”
숲속 공터에 도착하자, 서풍이 말을 멈췄다.
유덕과 진하림 역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했던 터라 순순히 말을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에는 당장이라도 잡혀간 사람들을 구출하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막연하기만 했다.
게다가 정기와 막총 두 사람이 압송되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있을 거라는 것은 아직 희망 사항이었다.
싸움이 벌어졌을 때 정기와 막총 두 사람은 정식무사 신분이었다.
두 사람의 성격상 반드시 전투에 참여했을 거라는 사실을 간과한 게 문제였다.
“두 분 아저씨들이 정말 살아계실까요?”
진하림이 준비한 건량과 물을 서풍과 유덕에게 나눠주며 물었다.
“글쎄다. 괜히 나 때문에 하림이 네가 고생이구나. 네 의사를 묻지도 않고 사지로 데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무슨 말씀이세요? 전 반드시 따라갔을 거예요. 하지만 두려워요. 이런 게 우리가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는데 말이죠.”
진하림이 처연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마음이 황량해진 것 같았다.
“운이가 없어서 더 그런 것 같구나. 하지만 무명객께서 데려갔으니 꼭 돌아올 것이다. 혹시 아느냐? 무명객님께 무공이라도 배워 고수가 되어 불쑥 나타날지 말이다.”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아, 소운 오라버니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진하림이 백소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였다.
서풍이 급히 말했다.
“모두 조용히 하십시오. 인기척이 있습니다.”
“······.”
유덕과 진하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 그들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숲속 공터 가장자리에 있었다.
한데 문제는 말이었다.
말을 억지로 숲속으로 데려가 숨기려 하다가는 소리가 날 가능성이 높았다.
그때였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십여 명의 흑의무사들이 공터로 들이닥친 것이다.
“웬 놈들이냐?”
우두머리 보이는 중년인의 물음이었다.
서풍이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관부 사람들이오. 혹시 무림인들이오?”
“그렇다. 우리는 사사천교 수색대 무사들이다. 관부 사람들이라면 신분패를 보여라.”
“그럽시다.”
서풍이 품속에서 손을 집어넣더니 그대로 비수를 꺼내 사내의 가슴을 찔렀다.
“크윽!”
중년 사내가 비명과 함께 즉사하자, 사사천교 무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죽여라!”
“흥!”
서풍이 코웃음을 치더니 검을 빼내 무사 두 명의 목을 연달아 베었다.
그사이 유덕과 진하림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서풍이 처음 기세와 달리 합공을 당하고부터 수세에 몰리자, 그들 역시 싸움에 가담했다.
“이놈들!”
유덕이 검을 뽑아 사사천교 무사 한 명의 목을 잘라갔다.
하지만 그 무사는 가볍게 유덕의 검을 피하고 오히려 반격을 가해왔다.
쐐애액.
유덕이 급히 피했으나 조금 늦어 어깨를 베이고 말았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진하림이 유덕을 부축하려다가 그만 자신도 허리에 검을 맞고 말았다.
“아앗!”
진하림이 화끈한 통증에 주저앉았다.
상처 부위를 만져보니 온통 피범벅이었다.
“두 분은 물러나세요.”
서풍이 포위망을 벗어나 유덕과 진하림을 공격했던 사사천교 무사의 목을 베었다.
하지만 갑자기 자리를 이동한 것이 문제였다.
합공을 가하고 있던 사사천교 무사들이 비수를 날렸고, 그중 한 자루가 서풍의 등에 그대로 박혀버린 것이었다.
“크윽!”
서풍이 비명과 함께 그대로 고꾸라졌다.
“서 공자님!”
진하림이 소리쳤으나, 서풍은 대답이 없었다.
“후후후! 무림맹 놈들이 틀림없구나.”
사사천교 무사 여섯 명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 중 한 명이 진하림의 몸매를 훑어보았다.
“이 계집은 죽이기 전에 처녀 귀신을 면하게 해주는 게 좋을 것 같네.”
“좋은 생각이네. 후후후!”
피를 봤기 때문인가.
사사천교 무사들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죽일 놈들!”
유덕이 무서운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지풍을 한 대 맞고 혈도를 찍혀 버렸다.
“후후후! 물어볼 게 있으니 좀 기다려라. 계집의 몸을 취한 후 신문을 가하겠다.”
사사천교 무사 한 명이 진하림의 혈도까지 찍어버렸다.
“계집! 자세히 보니 정말 미인이구나. 네놈들이 우리 동료를 죽였으니 네년의 몸으로 보상을 해야겠다.”
사사천교 무사가 막 진하림의 옷을 벗기려던 찰나.
뒤쪽에서 담담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