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58
“웬 놈이냐?”
사사천교 무사들이 일제히 돌아봤다.
그들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진하림의 몸을 취하려던 그들은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만큼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는 신비롭고 기이한 힘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 뭔가 번쩍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사사천교 무사 여섯 명이 일제히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크윽!”
“으윽!”
유덕과 진하림이 놀라 쳐다보니 그들은 이미 즉사한 이후였다.
그때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창백한 표정이긴 하나 아는 얼굴이었다.
몹시 기다리던 사람이기도 했다.
“소운 오라버니!”
“운아.”
그랬다.
나타난 사람은 바로 백소운이었다.
무명객으로서가 아니라 직접 본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어떻게 된 것이냐? 저놈들은 네가 죽였느냐?”
“아닙니다. 무명객께서 처리하고 가셨습니다. 먼저 서 공자님 상처부터 살펴봐야겠군요.”
백소운이 쓰러져 있는 서풍에게 다가갔다.
맥을 짚어보니 미약하나마 뛰고 있었다.
하지만 죽음 직전이었다.
백소운이 금단환 하나를 꺼내 먹이자 안색이 조금 돌아왔다.
곧이어 유덕과 진하림의 상처도 치료해줬는데, 생각보다 큰 상처는 아니었다.
얼마 후 서풍이 미약한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으으······.”
유덕과 진하림이 매우 기뻐했다.
“서 공자님. 괜찮으세요? 돌아가신 줄 알았어요.”
“괜찮습니다.”
서풍이 가부좌하고 회복운공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등에 박힌 비수가 문제였다.
어서 비수를 뽑아내고 금창약을 발라야 했다.
서풍이 말했다.
“제 품속에 금창약이 있습니다. 내상은 어떻게 회복이 되는 것 같은데, 외상이 문제입니다. 비수에 독이 있어서······ 어느 분이 뽑아주시겠습니까?”
“소운 오라버니가 공자님께 약을 먹이셨어요. 무슨 약이기에 이렇게 약효가 좋은 것이죠?”
“무명객께서 주신 것이다. 비수는 유 아저씨께서 뽑아주시겠습니까? 금창약은 제가 발라드리겠습니다.”
백소운이 서풍의 품속에 손을 넣어 금창약을 꺼냈다.
유덕이 비수를 뽑아냈다.
“으윽!”
극심한 통증에 서풍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몸을 흔들거나 하지 않고 자세를 바로 했다.
백소운이 금창약을 상처 부위에 발라주자, 금세 시원해지며 통증이 가셨다.
“이제 됐습니다. 급한 불은 껐으니 회복운공만 하시면 괜찮아지실 겁니다.”
“고맙습니다. 백 공자. 이전에 의술을 배운 적이 있습니까?”
“네. 의서 몇 권을 본 적이 있지만 그렇게 내세울 정도는 아닙니다. 서 공자님을 살리신 분은 바로 무명객님이십니다. 그분이 주신 단약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보통 약이 아닌 것을 느낍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조만간 오히려 공력이 늘어날 것 같군요.”
서풍이 미소를 지었다.
기사회생한 것만 해도 기쁜 일이었다. 내공까지 늘어났으니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회복할 시간 동안 임무 수행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서 공자님. 말을 탈 수 있겠습니까?”
“으음, 그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부에 침투한 독은 무명객께서 주셨다는 그 단약으로 몰아내는 데 거의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혈맥이 아직 덜 회복되어 최소 하루 정도는 어디 조용한 곳에 가서 운기조식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그럼 저희라도 먼저 가보겠습니다. 절강성으로 넘어가기 전에 놈들을 따라잡아야 하니까요.”
유덕의 말에 서풍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제가 이번 작전의 지휘를 맡았는데, 어찌 여러분만 보낼 수 있겠습니까?”
“서 공자께서는 회복하시는 대로 저희를 쫓아오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마침 소운이가 왔으니 저희 세 명이 먼저 출발하겠습니다. 설마 공자님이 회복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저는 하루 정도만 쉰 후 곧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지휘는 유 무사님께 맡기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유덕이 고개를 숙였다.
이미 정식무사가 된 그였다.
지휘권을 인계받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유덕, 진하림, 백소운 세 사람이 말을 타고 가던 길을 다시 떠났다.
물론 백소운이 탄 말은 서풍이 타던 것이었다.
“이럇!”
채찍 소리가 연이어 나며 세 사람을 태운 말들이 속력을 내었다.
두두두.
* * *
“서둘러야 한다. 정기와 막총 두 동생이 지금 사사천교 총단으로 끌려가고 있을 가능성이 크니까.”
유덕이 말을 달리며 백소운에게 그간의 경과를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백소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사실 그 역시 정기와 막총 등을 구하기 위해 가던 중이었다.
모처에서 회복운공을 하는 동안 그도 차분히 생각을 해보았다.
이후 탐문을 해본 결과 실혼인 제조에 사용될 사람들이 압송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급히 가는 중에 유덕과 진하림 등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무명객께서 시키신 일은 다 하셨나요?”
진하림의 물음에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보상으로 몇 가지 무공을 전수받았지.”
“그게 정말인가요?”
진하림이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는 유덕도 마찬가지였다.
“운아. 그게 정말이냐?”
유덕이 말 달리는 속도를 조금 늦췄다.
유덕이 정 중앙에 좌우에는 백소운과 진하림이 보조를 맞춰 달리고 있었다.
“네. 아저씨. 무명객께서는 특수대법을 통해 제게 몇 가지 무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수한 방식이라 한 시진도 채 걸리지 않았었지요. 제가 그 특수대법에 알맞은 체질이라 가능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유 아저씨를 비롯해 무공을 전수해주기로 약속한 네 분께는 제가 대신해서 가르쳐드리라 하셨습니다. 무림의 상황이 급박해져 도저히 시간을 내기 힘들다고 하시면서 말이지요.”
“운이 네가 직접 우리에게 말이냐? 그러니까 너는 특수 대법으로 바로 익혔다는 말이냐?”
“네.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본심법부터 천천히 가르치고 있으면 시간 나는 대로 무명객께서 한번 살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워낙 바쁘신 분이라 이해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하. 그야 물론이다. 나중에 점검을 해주신다고 하니 큰 문제가 되겠느냐? 원래 무관에 들어가도 먼저 사형에게 기초부분을 배우는 경우가 흔하지. 다만 운이 네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올랐는지 궁금하구나.”
“높은 수준은 아닙니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그저 배운 것이라서. 제가 가르쳐드릴 것은 기본심법 정도일 겁니다. 무명객께서 말씀하시길 심법만 최소 일 년을 배워야 기초가 닦인다고 하시더군요. 그리고 이 심법은 모든 무공의 기초가 되는 것이라, 현재 연마하고 있는 무공의 위력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전에 따로 배운 무공이 없지만 아저씨들과 하림이는 육합계열 무공을 연마하셨지 않습니까?”
“그렇구나. 심법만 바꾸면 되겠군.”
“바로 그렇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구결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아저씨들을 구출하는 것이 급선무이니까요.”
“알겠다. 그 심법 이름이 무엇이냐?”
“무명심공(無名心功)이라고 합니다.”
“무명이라.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광대무변한 심법이라는 뜻이겠지. 아마도 무명객께서는 그 무명심공 한 가지를 우리에게 전수해주실 모양이다. 무명심공을 토대로 나중에 다른 어떤 무공이라도 위력을 배가할 수 있다고 하셨으니,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라 할 수 있지.”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저희가 무명객님의 제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더 이상의 욕심은 금물일 거예요. 소운 오라버니는 다른 무공도 배우신 거예요?”
“그래. 조금. 무명객께서 바쁘셔서 나를 통해 무림의 일을 돌보실 생각인 것 같았다. 하지만 특수 대법이라 심법을 제외한 것들은 언제 그 힘이 사라질지 모른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니까 제가 무명객께 무공을 배운 사실은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비밀에 부치는 것이 여러모로 편할 것이니까요.”
“물론이다. 너도나도 운이 너에게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안 될 테니까. 정기와 막총 그 친구들도 이 사실을 알면 좋아할 텐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두 분은 살아계실 겁니다. 유 아저씨 동생분과 그 가족들도 마찬가지로 무사할 겁니다. 이제 속도를 내시지요.”
“그러자. 한시가 급한 이 시각에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지.”
유덕이 다시 속도를 내자, 진하림과 백소운이 그 뒤를 따랐다.
* * *
백소운 일행이 강서성 성도인 남창(南昌)에 도착한 것은 서풍과 헤어지고 사흘 후였다.
그들이 이곳 남창에 온 것은 마차 백여 대가 이곳에 와서 머무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 일행은 하나같이 마차 안에 잡혀간 사람들이 타고 있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남창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른 아침에 성에 들어와 객잔부터 가는 중이었다.
조금 전의 마차 백여 대에 관한 소문도 한 객잔에서 들은 것이었다.
이처럼 강호에서의 객잔은 여러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곳이었다.
물론 대부분은 뜬소문에 불과했다.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안목만 있다면 객잔보다 빠르게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
“저 객잔이 가장 유명한 곳이지.”
유덕이 손으로 관도 인근에 있는 커다란 객잔을 가리켰다.
용문객잔(龍門客棧).
객잔의 이름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대협.”
점소이 한 명이 백소운 일행을 반겼다.
유덕과 진하림은 말할 것도 없고, 백소운도 검을 차고 있었다.
그 때문에 한눈에 무림인으로 판단한 것 같았다.
백소운이 차고 있는 검은 금단비고에서 꺼낸 것으로 군자검(君子劍)이란 것이었다.
한 쌍인 검으로 같은 서열 공동 2위인 숙녀검(淑女劍)도 비고에 있었으나, 남자인 백소운이 사용할 것은 아니었다.
“구운 닭 두 마리와 국수 세 그릇, 만두 두 접시. 그리고 죽엽청 한 병 가져오게.”
구석진 탁자에 앉은 일행 중 백소운이 주문하자 점소이가 주방으로 달려갔다.
백소운이 직접 주문하게 된 것은 그가 바로 물주이기 때문이었다.
정보 수집을 위해 객잔에 자주 들어가다 보니까 유덕과 진하림은 수중에 있던 돈을 다 쓰고 말았다.
반면 백소운은 시간을 내어 금단비고에 있던 무수한 보석 중 하나를 팔아 거금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유덕과 진하림에게는 무명객께 받은 활동자금이라고 둘러대었다.
그 액수는 유덕과 진하림이 알게 되면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엽차를 마시며 진하림이 말했다.
“그나저나 서 공자께서는 어째 보이지 않으실까요? 하루 정도 늦게 출발했어도 충분히 우리를 따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서 공자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었지. 최소 사흘이 지나야 무공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을 것이니, 어찌 우리가 있는 곳까지 따라올 수 있었겠느냐?”
“하기야 우리가 이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있을 테니, 차라리 우리 힘으로 해결하도록 해요. 놈들이 있는 곳만 확실히 알아내면 되잖아요? 아, 그렇지. 바로 무림맹 지부에 가보면 되지 않을까요?”
진하림의 말에 유덕이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그쪽에도 이미 연락이 갔을 것이다. 괜히 지부에 갔다가 지부장의 명을 받게 되면 개인행동이 어려워진다. 내가 지척에 두고 동생을 찾아보지 못했던 상황이 재발하는 것이지. 차라리 우리 힘으로 사람들이 붙잡혀 있는 곳을 알아낸 후 지부에 가더라도 가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듣고 보니 그렇군요. 아저씨 말씀대로 할게요. 소운 오라버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다만 내 생각이지만 놈들이 절강성까지 가지 않고 이곳에 있는 게 사실이라면, 실혼인 제조시설이 이곳 남창에도 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우리는 최대한 빨리 그곳을 알아내야 할 것이다.”
“운이 말이 맞다. 한데 어떻게 그곳을 알아낼지 솔직히 난감하구나. 분명히 비밀스러운 장소일 테니 말이다.”
“그래도 마차 백여 대가 들어왔으니 분명 목격자가 있을 겁니다. 물론 흔적을 지우려 했겠지만, 알아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겁니다.”
“어떤 방식으로 말이냐? 생각해둔 곳이 있느냐?”
“가장 유력한 곳은 아무래도 남창에 있는 사사천교 지부가 되겠지요. 그곳에 없으면 휘하 문파들도 조사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