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60
이 층 객방은 백소운과 유덕, 진하림 세 사람이 묵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점소이에게는 해 질 무렵까지 사용할 거라고 말해두었지만, 사실은 기약이 없었다.
“비파노인이 정말 올까요?”
“오겠지. 은자 삼백 냥을 벌 수 있는데······.”
“은자 삼백 냥이라고 하니까 나중에 총단에 복귀하게 되면 아저씨들이 받게 될 특별 격려금이 생각나네요. 세분 것을 모두 합치면 그 정도 되잖아요? 한데 무명객께서 활동자금을 얼마나 많이 주셨기에 그런 거금을 마음대로 사용하려 하나요?”
“무명객께서 주신 돈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 은자 몇백 냥은 돈도 아니지.”
“허억. 그게 진짜예요? 무명객님은 무공도 뛰어나지만 엄청난 부자시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한데 비파노인이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구나. 반시진 정도 후에 온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무명심공의 구결을 전수해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백소운의 뒷말은 물론 유덕에게 한 말이었다.
그동안 정기와 막총의 행방을 수소문하느라 구결 전수를 해줄 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반시진이지만 모처럼 여유가 생겼다.
게다가 구결 전수에 적합한 한적한 방 안이었다.
“물론이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기회가 있겠느냐? 아까 보니 전음을 할 줄 알던데, 전음으로 알려다오.”
“네. 모두 자리에 앉아 가부좌를 하십시오.”
백소운의 말에 유덕과 진하림이 가부좌 자세를 취했다.
두 사람 모두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무엇보다 어서 빨리 무공을 높여 정기와 막총 등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구출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정식 무사가 된 유덕의 바람은 특히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몇 번이지만 백소운의 도움을 받아 고수의 기분을 느껴본 그였다.
하지만 이번에 사사천교 수색대 무사들에게 크게 당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나 자신의 실력이 중요하다.’
유덕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무명객을 대하듯 백소운을 보며 마음을 새롭게 했다.
이는 진하림 또한 마찬가지였다.
벌써 몇 번이나 자신의 미색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바라야만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 무명객의 심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자, 벌써 힘이 나는 것 같았다.
백소운이 전음으로 천천히 동시에 말했다.
「무명심공은 무명객께서 직접 창안한 것으로, 일반인들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원리는 바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즉,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뜻이지요. 무명심공의 구결 또한 그 마음의 작용에 대한 법문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마음의 바탕이 밝으면 어두운 방에서도 푸른 하늘이 있고, 생각이 어두우면 환한 햇빛 속에서도 마귀를 보게 된다. 다시 말해 마음에서 기가 일어나고 기가 움직여······.」
백소운의 구결 전수는 계속되었다.
또한 특수 대법을 이용해 유덕과 진하림으로 하여금 한 번에 외울 수 있게 했다.
그 때문에 한번을 들어도 백 번을 들은 것과 마찬가지 효과가 있었다.
이윽고 구결 전수가 끝나자, 백소운이 확인을 했다.
“모두 외우셨습니까?”
“전 다 외웠어요. 정말 신기해요. 상당히 긴 구결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바로 외워졌어요.”
진하림이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하지만 유덕의 기쁨에 비교할 수는 없었다.
“나도 다 외운 것 같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구나. 혹시 일부러 우리 보고 한 번에 외우게 만든 것이냐?”
“네. 그렇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한 번씩 외워보십시오. 음파를 차단해두었으니 바깥에서 엿들을 위험은 없을 겁니다.”
“운이 네가 음파까지 차단할 줄 아느냐?”
“네. 실은 무명객께서 제법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나중에 사라질 가능성이 크니 써먹을 수 있을 때 실컷 사용해야지요.”
“아, 그랬었구나. 그나저나 조금 걱정이다. 나도 겪어봤지만 무공이 높아졌다가 나중에 실제 내 실력이 아닌 것을 알게 되면 그 또한 상실감이 크지.”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처음부터 알고 힘을 빌린 것이니까요.”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언젠가는 다시 평범한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그였다.
그 사전포석을 틈나는 대로 하고 있는 셈이었다.
곧이어 유덕과 진하림 순으로 구결 낭독이 있었다.
그 결과 두 사람 모두 한자도 빠짐없이 외우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 운공이었다.
일주천을 해야 기의 흐름이 느껴지고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무명심공은 한번 일주천을 할 때마다 기경팔맥의 막힌 부분이 조금씩 뚫리는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낙숫물이 돌에 구멍을 내는 것과도 같았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임독양맥을 타통하는 기연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을 낳게 하는 것이었다.
“일주천은 나중에 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백소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쪽을 쳐다봤다.
아닌 게 아니라 곧바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
“열려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네.”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인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바로 비파노인이었다.
그때였다.
대한 대여섯 명의 그림자가 비치는가 싶더니 비파노인이 쓰러졌다.
“웬 놈들이냐?”
유덕이 검을 뽑으려 했으나, 이내 쓰러졌다.
진하림과 백소운 역시 마찬가지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대한들의 뒤쪽에서 묵직한 저음이 들렸다.
“네. 지부장님.”
대한, 즉 사사천교 무사들이 고개를 숙였다.
흑의노인 한 명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무사 다섯 명이 함께 들어온 후 문을 잠갔다.
비파노인과 백소운, 유덕, 진하림 네 사람은 혈도를 찍힌 채 방 한구석으로 옮겨졌다.
마혈에 이어 아혈까지 찍힌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흑의노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별 것 아닌 놈들 같은데, 일단 아혈을 모두 풀어줘라. 음파를 차단해두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네. 지부장님.”
무사 한 명이 백소운 등의 아혈을 풀어줬다.
하지만 조금 전 음파를 차단해두었다는 말을 들었는지 고성을 지르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유덕이 대표의 자격으로 물었다.
“누군데 우리 혈도를 찍었느냐?”
“나는 사사천교 남창 지부장 두준도(豆俊道)라고 한다. 이들은 내 호위들이지.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네놈들의 접선 현장을 기다렸다.”
“흥!”
유덕이 코웃음을 쳤다.
“이놈이! 어디서 콧방귀냐?”
호위 한 명이 유덕의 뺨을 후려쳤다.
철썩.
“으윽.”
신음과 함께 유덕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 번 더 지부장님께 불경한 언사를 하면 귀를 한쪽 자르겠다.”
예의 호위가 검을 뽑아 들었다.
그는 다섯 호위 중 수석호위로 이름은 심가(審加)라 했다.
늘 두준도를 호위하며 책략에도 뛰어나 군사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심 호위.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 더듬거리거나 대답하지 않는 놈은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게.”
“알겠습니다.”
심가가 검을 바짝 가까이 대며 대기했다.
두준도가 물었다.
“먼저 비파노인 네놈에게 묻겠다. 분명 이놈들에게 실혼인과 관련해 정보를 알려주려고 했었지? 어서 말해라. 놈들이 뭘 알려달라고 했나? 실혼인으로 만들기 위해 붙잡아 온 사람들이 있는 곳을 묻더냐?”
“네. 지부장님. 하지만 저는 정말 그곳을 모릅니다. 다만 은자 삼백 냥을 준다고 하기에 그냥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돈만 받으려 했습니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제가 보안 사항까지 누설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건 나도 잘 알지. 네 말을 믿어도 되겠느냐?”
“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좋다. 네놈은 아직 쓸모가 있으니 살려주마.”
두준도가 지풍을 날려 비파노인의 혼혈을 찍었다.
“으윽.”
비파노인이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사흘 후에나 깨어날 것이다. 나중에 점소이가 발견하면 손녀에게 연락을 취하겠지.”
“지부장님. 그냥 죽여 버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본교의 일을 떠벌리고 다니는 놈입니다.”
“무림맹 놈들 일도 떠벌리지 않느냐? 이놈을 죽이면 다른 정보상인들이 우리와 거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오문 말씀입니까?”
“하오문도 있고, 정보상인 일을 하는 곳은 여러 군데가 있지. 본교와 거래하는 곳은 흑점(黑店)이 대표적이지.”
두준도가 유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네놈이 이들의 대표냐?”
“그렇다.”
유덕이 바로 대답했다.
똑바로 대답하지 않으면 손가락을 자른다는 말에 그의 안색이 굳어있었다.
자칫 손가락을 잘리면 검을 쥘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오히려 죽음보다 더한 형벌이었다.
“실혼인 제조시설이 있는 곳을 알아내려는 일행이 또 있느냐?”
“없다.”
철썩.
다시 뺨이 돌아갔다.
“공손하게 대답해라.”
심가가 다시 협박했다.
하지만 유덕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했다.
죽으면 죽었지 존대는 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심 호위. 그만하게. 신출내기 무사인 것 같은데,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군. 이놈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실혼인 제조를 보고 싶어 하니 소원을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내일 아침부터 제조 공정이 시작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게 낫겠군. 확보한 오백 명 중 몇 명이 탈출을 시도하다가 처형당했으니, 이들 세 명이라도 채워놓는 게 좋겠군.”
두준도가 지풍을 날려 유덕의 혼혈을 짚었다.
유덕은 자신은 물론이고 진하림, 백소운마저 실혼인으로 만들려는 그들의 의도를 간파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당하고 말았다.
이제 남은 사람은 진하림과 백소운.
백소운은 태연한 반면, 진하림은 독이 오른 표정이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놈들이 자신의 몸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내 몸에 손을 대면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겠다.”
진하림이 소리쳤다.
두준도가 껄껄 웃었다.
“하하하. 맹랑한 계집이구나. 생각 같아서는 네년의 몸을 취하고 싶지만, 대사를 앞두고 재수 없을 수도 있으니 참겠다. 하지만 네년 역시 실혼인으로 만들어질 것이다. 뭐, 별다르게 물어볼 것도 없겠군.”
두준도가 지풍을 날려 진하림의 혼혈을 짚었다.
이후 백소운에게 물었다.
“네놈이 가지고 있던 전표는 어디서 났느냐? 은자 백 냥짜리와 삼백 냥짜리라 했던가? 심 호위. 놈의 몸을 수색해 소지품을 모두 꺼내 보게.”
“네. 지부장님.”
심가가 기다렸다는 듯이 백소운의 몸을 뒤졌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그가 허리에 차고 있었던 군자검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는 백소운이 혈도를 찍히면서 순간적으로 군자검과 소지품을 모두 금단비고 안에 넣어두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당연한 이야기지만 백소운은 혈도를 찍히지 않았다.
겉으로는 혈도를 찍힌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는 동시 해혈을 했기 때문에 움직임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내 예상이 맞았구나. 실혼인으로 만들기 위해 데려가려 하니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그때까지 유 아저씨와 하림이만 무사하다면 참는 게 좋을 것 같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