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65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전궁이 먼저 화두를 꺼냈다.
실혼비동이 파괴되고 벌써 한 시진이 지난 상태였다.
그동안 전궁, 유덕 등은 운공조식도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하지만 마냥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구출한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이 시급했다. 게다가 악양으로 복귀할 필요도 있었다.
전궁이 말했다.
“일단 풀려난 사람들 처리가 우선일 듯합니다. 여의공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운송관님. 이제 여의공자가 아니라 옥 소저라고 부르는 게 맞지 않을까요?”
진하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옥려군 역시 살짝 얼굴을 붉혔다.
“진 소저 말씀대로 옥 소저라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어요. 그동안 사정이 있어 남장을 한 점 널리 이해해주셨으면 해요.”
“별말씀을. 옥 소저께서 이번에 놈들을 제압해주시지 않았다면 큰일 났을 겁니다. 조금 전 들어보니 당시 운이도 무리를 해서 공력을 사용하기 힘든 상태였다고 하더군요.”
유덕이 옥려군을 칭찬했다.
“과찬이세요. 제가 없었다 해도 백 공자는 잘 해결했을 거예요. 한데 짧은 시간에 그렇게 무공이 강해진 것이 아직 이해가 잘 안 돼요. 무명객께 무슨 특수 대법이라도 받은 건가요?”
“잘 보셨습니다. 아까 비동 안에서 운이가 잠시 언급하기도 했지만, 사실 운이의 능력은 일시적인 겁니다.”
유덕이 말을 한 후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무명객이 큰 힘을 백소운에게 주었으나 언제 소실될지 모르는 불안한 것이라는 게 그 골자였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옥려군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전궁이 말했다.
“유 무사의 말이 맞습니다. 도와주시는 김에 옥 소저께서 계속 힘을 보태주셨으면 합니다. 한데 등선맹이란 곳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맹과 대립하는 곳이라는 것은 알겠습니다. 한데 솔직히 원강호니 신강호니 하는 말씀들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옥려군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소속해 있는 등선맹에 대해서는 나중에 때가 되면 설명해드리도록 하겠어요. 다만 한 가지 우리 등선맹이 여러분과 같은 편이란 사실만은 확실해요.”
“아까 들으니 옥 소저께서 등선맹주님의 따님이라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오백 명이나 되는 이분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기로 하지요. 백 공자님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제 생각으로는 일단 이분들을 모두 무림맹 지부로 모셔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지부 무사들에게 인계하면 알아서 집이나 원래 소속된 곳으로 보내줄 겁니다.”
백소운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진이 말했다.
“놈들에게 예물을 모두 빼앗겼으니 그것부터 찾아야 합니다.”
“지금 상황에서 예물이 강탈된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혼사도 물 건너간 것 같고요. 일단 백 공자 말씀대로 모두 지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전궁이 결정을 내리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옥려군이 안색을 조금 굳히며 말했다.
“여기 오면서 들으니 악양 사정이 심각한 것 같아요. 저를 비롯해 몇 명은 곧바로 악양으로 가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군요.”
“좋은 의견이십니다. 사실 그렇게 해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었는데, 누가 함께 가면 되겠습니까?”
“물론 백 공자이지요. 다른 분들은 지부로 가서 뒷마무리하고 천천히 악양으로 오셔도 될 것 같아요. 백 공자. 어떻게 생각하세요?”
“좋습니다.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힘이 남아있을 때 동정장원으로 가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저도 갈게요.”
진하림이 손을 번쩍 들었다.
유덕, 정기, 막총 세 사람도 질 세라 동참하기를 원했다.
사람들을 지부로 데려가는 일은 전궁과 소진이 맡아도 충분하다는 뜻 같았다.
옥려군이 난색을 표했다.
“죄송하지만 다른 분들은 함께 가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경공을 펼쳐 최대한 빠르게 갈 생각인데, 백 공자 외에 다른 분은 속도가 맞지 않을 것 같네요.”
“으음,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그럼 저희는 이곳 일을 마무리한 다음 곧바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운아. 옥 소저를 잘 보필해드려라.”
유덕의 말에 백소운이 고개를 숙였다.
“네. 유 아저씨.”
“오라버니. 몸조심하세요. 절대 무리하지 마시고. 아시겠지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아저씨들을 잘 보살펴라. 나중에 악양에서 보자.”
백소운이 사람들에게 작별한 후 옥려군과 함께 떠났다.
휙휙휙.
두 사람의 경공은 매우 빨랐다.
지금 속도라면 생각보다 훨씬 빨리 악양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진하림이 안타까워했다.
“나도 무공이 높았으면 오라버니와 함께 갈 수 있었을 텐데······.”
“하림아. 무슨 걱정이냐? 우리에게는 무명심공이 있지 않느냐?”
유덕이 진하림을 위로했다. 정기와 막총 두 사람에게도 심법을 전수받은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나중에 자네들에게도 운이가 가르쳐줄 것이네. 그러니 걱정하지 말게.”
“아, 어서 빨리 배우고 싶군요.”
막총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진하림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도 구결만 배운 것이니까 제가 두 분께 가르쳐드릴게요.”
“고맙다. 하림아.”
정기와 막총 두 사람이 기뻐했다.
전궁이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 무림맹 남창 지부로 이동하겠습니다. 출발!”
전궁을 필두로 오백여 사람들이 일제히 야산을 내려갔다.
* * *
다음 날 아침.
동정장원 대청에는 백여 명의 무림맹 지휘부 고수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백리영, 천향, 서경, 고성준 등의 얼굴이 보이는 가운데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사람은 한 중년인이었다.
단정한 백의를 입고 머리에는 문사건을 쓴 선비풍의 그는 바로 무림맹 총군사 자명선생(自明先生)이었다.
“놈들이 오늘 정오까지 투항하지 않으면 한 당주와 장 대장, 그리고 추 장로 세 명을 처형한다고 알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어제 남창에서 실혼인 제조시설이 파괴되고 사사천교 무사 천여 명이 몰살당하자 급해진 것 같습니다. 좋은 의견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주십시오. 참고로 놈들과의 전면전 준비는 모두 끝난 상태입니다.”
자명선생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젯밤 늦게 도착한 남창에서의 승전보는 그들에게 큰 기쁨을 줬었다.
한데 날이 밝자마자 놈들이 포로 처형이라는 경고를 가해온 것이었다.
며칠 전 자명선생과 함께 온 백호당주 항윤현(項倫玄)이 입을 열었다.
“지난 며칠간 놈들의 줄기찬 공격으로 보호진이 파훼되기 직전입니다. 마땅히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력도 일만 대 일만으로 대등하고 놈들에게 실혼인도 없으니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인근 강서성에서 놈들의 지원 병력이 올 걱정도 없으니, 지금이 적기입니다. 아니, 조금 늦은 감이 있는 게 사실이지요.”
“항 당주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만에 하나 놈들이 절강성에 있는 실혼부대를 데려왔다면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 섣불리 보호진을 해제하지 않은 겁니다.”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그는 매사에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워 작전을 수행하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몇몇 고수들은 참을성이 부족했다.
항윤현이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중급 고수들이 소속되어 있는 백호당의 당주 직을 맡고 있을 만큼 무공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에 차 있었다.
“총군사님의 우려 역시 이해합니다. 하지만 천지금강진(天地金剛陣)은 기껏해야 이삼일이면 무너질 겁니다. 그때가 되면 어쩔 수 없이 놈들과 전면전을 벌어야 합니다. 그럴 바에야 놈들과 대등한 전력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 싸움을 벌이는 것이 유리합니다. 결단을 내려주십시오. 대체 언제까지 무명객을 기다릴 겁니까?”
“무명객만이 아닙니다. 전서구에 의하면 이번에 남창에서 큰 공을 세운 백소운 공자와 옥려군 소저가 이곳으로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들 두 사람은 아마도 실혼인에 대한 대처방안을 알고 있을 것이니, 무척 도움이 될 겁니다. 늦어도 오늘 저녁까지는 올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려보는 게 어떨까 해서 의견을 들어보려는 겁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정오에 처형을 한다고 하는데, 어찌 이렇게 무심합니까?”
항윤현이 언성을 높였다.
이번에 총단에서 데려온 무사 중 절반은 자신이 당주로 있는 백호당 무사들이었다.
백호당 무사들은 평균적으로 청룡당 무사들보다 무공이 훨씬 높았다. 그 때문에 그의 주장대로 전면전을 벌이면 승산이 높은 게 사실이었다.
“백리 소저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자명선생이 묻자, 백리영이 대답했다.
“저 역시 여의공자, 아니 옥려군 소저와 백소운 공자 두 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전궁 운송관의 보고에 따르면 백소운 공자의 무공이 무명객님과 큰 차이가 없다고 했으니, 반드시 큰 힘이 될 거예요.”
“하지만 백소운 그 친구의 무공은 일시적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무명객께 무공을 전수받았으나 그 힘을 몇 번 밖에 사용 못 한다면 실제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겁니다.”
항윤현의 반박에 백리영이 안색을 굳혔다.
그녀 역시 백소운이 엄청난 고수가 되었다는 보고를 완전히 믿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때였다.
“백 공자의 힘이 소실된다고 해도, 옥 소저가 있어요. 그녀가 실제로는 여인이었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혼자서 천 명의 무공을 폐쇄했다는 사실이에요. 그것을 가능하게 한 폐단주라는 구슬이 남아 있다면 우리 측이 승리할 확률이 대단히 높겠지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한 당주와 장 대장, 그리고 추 장로의 처형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당연해요. 그래서 저는 고수 몇 명을 보내 그분들을 데려오는 방안이 어떨까 해요.”
백리영이 눈을 빛냈다.
자명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입니다. 사실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임무를 맡길 고수가 마땅치가 않아서······.”
“제가 가겠어요. 두 분만 저와 함께 가주시면 좋겠는데, 어느 분이 수고해주시겠어요?”
백리영이 항윤현을 쳐다봤다.
“하하하. 좋습니다. 저 또한 가겠습니다.”
항윤현이 기꺼이 수락했다.
실패하더라도 자기 몸 하나는 탈출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는 그였기에 결정은 어렵지 않았다.
“으음, 한 사람만 더 있으면 좋겠군요. 이럴 때 동정어옹이나 남북쌍괴 중 한 분이라도 도움을 주시면 좋으련만······.”
“중립을 지킨다고 장원 밖으로 나간 그분들을 말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도 약속 기간이 지났다고 우리를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워해야지요.”
고성준의 말이었다.
백리영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임 소저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안채에 있습니다. 동정어옹께 물어볼 말이 있다고 아직 기다리고 있지요. 한데 왜 그녀를 찾으십니까?”
“임 소저는 대단한 고수예요. 지금은 내상도 완전히 회복되었을 테니 이번 작전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한데 수락을 해줄지 모르겠군요.”
백리영이 안색을 굳혔다.
그때였다.
대청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한데 그들은 바로 임소혜와 괴추노인이 아닌가.
“들어오면서 들었어요. 저도 기꺼이 참여하겠어요.”
임소혜의 말에 백리영이 기뻐했다.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