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66
정오 무렵.
동정장원을 포위하고 있는 사사천교 진영에는 처형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죄수들을 대령하라!”
사사천교 장로 장간지가 소리쳤다.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이 쇠사슬로 묶인 세 명을 끌고 왔다.
바로 한삭, 장덕수, 추보승 세 사람이었다.
모진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그들은 이미 죽음을 각오한 표정이었다.
처형식을 관장하기 위해 마련된 단상 위에는 장간지 말고도 매소청을 비롯한 주요 고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처형식이 끝나는 대로 총공격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매소청이 옆에 앉아 있는 한 노인을 보며 말했다.
“총군사께서 직접 오실 줄은 몰랐어요. 그것도 실혼부대를 모두 데리고 말이죠.”
“이게 다 교주님의 식견 때문이지요. 교주님께서는 이번 싸움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예견하고 실혼부대를 모두 데려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예지력이 강한 분이세요. 그 때문에 지옥맹 고문단 분들과도 연결이 되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까지의 전황은 솔직히 좋지 못해요. 특히 남창에 있던 실혼비동이 파괴될 줄이야. 지옥삼객 중 두 분이나 그곳에 있었는데, 왜 그렇게 된 것이죠?”
매소청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동시에 불안함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 이곳 악양에 왔던 부교주 원청쇄가 부군사 대두선생과 함께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사사천교 총군사 만악선생(萬惡先生)이 실혼부대를 비롯해 정예 무사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다면 철수를 고려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만악선생이 온 이후에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바로 어제 남창에서 실혼비동 파괴와 무사 천여 명이 몰살당한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 결과 동정장원에 모인 무림맹 무사들에게 대한 총공격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그 출정의식으로 지금 처형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아가씨.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옥삼객도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겁니다. 이번에 파괴된 실혼인 제조시설 역시 얼마든지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약물과 처리비법이지요.”
“지옥삼객과 연락이 되고 있는가요?”
“네. 비룡객은 지금 모처에서 회복운공 중인데 거의 완쾌되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상춘객과 창랑객 두 분은 이곳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당도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니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실혼부대 중 정예라 할 수 있는 일조부터 육조까지의 실혼인 육백 명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뿜는 실혼강기라면 천지금강진 역시 금방 무너질 겁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군요. 사실 저는 실혼부대도 좋지만 본교가 자랑하는 고수들인 십대호법이 모두 온 것이 너무 든든해요.”
매소청이 미소를 지으며 뒤쪽에 앉아 있는 열 명의 노인들을 쳐다봤다.
그들은 사사천교의 호법들로 호법 중의 호법이라는 십대호법이었다.
그들 중 대표라 할 수 있는 대호법 담복(啖復)이 고개를 숙였다.
“교주님께서 아가씨 안전을 걱정하셨습니다. 저희 십대호법은 우선적으로 아가씨를 지킬 겁니다.”
“감사해요. 하지만 무명객이 올까 그게 가장 걱정이에요. 그리고 남창에서 뛰어난 무공을 보여주었다던 그 백소운과 옥려군 두 사람도 걱정돼요. 총군사께서는 무슨 대책이 있으신가요?”
“실혼부대만 믿고 있습니다. 놈들이 아무리 강해도 최상급 실혼인들의 상대는 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어딘가에 은신해 있을 지옥삼객들의 도움도 기대할 수 있으니,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네. 하기야 원 부교주의 복수는 꼭 하고 가야겠지요.”
“물론입니다. 자, 이제 처형식 준비가 대충 끝난 것 같군요. 놈들의 머리를 베어 사기를 올린 후 곧바로 동정장원을 공략하겠습니다. 바로 코앞에 있는 곳이라 공격하는데 일각도 채 걸리지 않을 겁니다.”
만악선생이 처형대 위에 무릎이 꿇려 있는 한삭 등 세 사람을 쳐다봤다.
매소청 역시 그들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사실 그녀는 처형까지 시킬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서로 교환할 사사천교 측 고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만악선생의 뜻에 따랐다.
만악선생이 한삭을 쳐다봤다.
“오랜만이오. 한 당주. 얼굴이 말이 아니구려. 지금이라도 투항을 약속하면 목숨은 살려주겠소.”
“흥! 어서 죽여라. 구차하게 목숨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죽겠다.”
한삭이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비록 혈도가 찍혀 있고 특수 쇠사슬로 포박을 당해 꼼짝할 수 없었지만 그 기개는 대단했다.
그 바람에 옆에 있던 장덕수와 추보승 두 사람도 용기를 내고 있었다.
만악선생이 껄껄 웃었다.
“하하하. 살기 싫다면 할 수 없지. 그래 나머지 두 사람은 어떠한가? 투항한다면 처형을 면하게 해주겠다.”
“헛소리! 더 이상 우리를 모욕하지 말고 어서 죽여라!”
“어서 죽여라!”
장덕수와 추보승이 소리쳤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그들이었다.
게다가 투항을 해도 어차피 죽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후후후. 어리석은 놈들은 아니군. 죽기 전에 그 알량한 명예까지 망가뜨려 주려고 했는데, 할 수 없지. 네놈들에게 죽은 본교 무사들의 수가 이천 명이 넘으니, 어찌 복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악선생이 우수를 높이 들었다.
그의 손에는 집행패가 들려있었다.
한삭이 옆에 있는 장덕수와 추보승에게 말했다.
“저승에서 다시 봅시다.”
그때였다.
연막탄 세 개가 처형장 안으로 날아들었다.
펑펑펑.
“독 연기다! 모두 숨을 멈춰라!”
장간지가 매우 놀라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터진 연막탄은 보통 연막탄이 아니라 독이 들어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천당문에서 제조한 독연막탄이었다.
그 영향 범위가 매우 넓은 것이 장점으로 사람을 구하는 데는 적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처형장 주위는 금세 검은 뭉게구름이 안개처럼 끼어 시야가 흐려졌다.
그리고 그 안개 속으로 세 명의 신형이 들어왔다.
스스슷.
바로 백리영과 항윤현, 그리고 임소혜였다.
이미 해약을 먹은 그들은 빠르게 처형대 위로 올라갔다.
처형대 옆에 서 있던 망나니 세 명이 그들을 발견하고 칼을 내리쳤다. 하지만 이미 항윤현이 세 가닥 지풍을 날린 후였다.
픽픽픽.
망나니 세 명 모두 머리에 동전 크기의 구멍이 뚫리며 즉사했다.
“으윽!”
“크윽!”
비명이 들렸으나, 여전히 연막탄 때문에 조금만 떨어져도 시야가 가렸다.
하지만 고수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막탄의 독이 그렇게 강하지 않음을 간파한 장간지가 먼저 달려들었다.
“이놈들!”
장간지가 고성을 지르며 장력을 퍼부었다.
쏴아아.
항윤현이 신형을 돌려 쌍장으로 맞받아쳤다.
꽝.
“으윽!”
장간지가 신음과 함께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일전에 백소운에게 당한 내상이 아직 완벽하게 낫지 않은 그였다.
한데 상대는 무림맹에서도 손꼽히는 고수 항윤현이었다.
“백호당주 네놈이었구나.”
장간지가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그와 함께 악양으로 왔던 사사천교 장로 네 명이 합세했다.
쏴아아.
장로 네 명의 장력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장간지 역시 내공을 끌어모아 검초를 뿌렸다.
항윤현으로서는 장력을 막아내다가 검에 당할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때 나선 것은 백리영이었다.
좌수로 무적대라장을 날리며, 우수로는 봉황검을 내밀었다.
항윤현 역시 쌍장을 날리며 이에 합세하자 거대한 폭발음이 들렸다.
콰콰쾅.
“으윽!”
“크윽!”
잇단 비명이 터져나왔다.
장간지를 비롯한 다섯 장로들은 뒤로 물러나 비틀거리고 있었다.
봉황검에 의해 옆구리를 살짝 베인 장간지가 인상을 찡그렸다.
그러는 동안 임소혜는 빠르게 한삭과 장덕수, 추보승 세 사람의 쇠사슬을 풀고 있었다.
한데 아무리 힘을 줘도 쇠사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항윤현과 백리영이 돌아와 힘을 보탰지만 허사였다.
“잠시 비키세요!”
백리영이 들고 있던 봉황검으로 쇠사슬을 내리쳤다.
하지만 쩡, 하는 소리만 날 뿐 역시 허사였다.
급해진 항윤현이 한삭 등을 통째로 업으려 했다. 하지만 쇠사슬이 처형대 기둥과 연결되어 있어 그마저 실패했다.
그때였다.
상황을 지켜보던 만악선생이 품속에서 구슬 하나를 꺼내 던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연기가 구슬에서 흘러나왔다.
한데 그 연기가 연막탄을 깨끗이 걷어내는 것이 아닌가.
“빌어먹을!”
자신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자, 항윤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저놈들을 포위하라!”
만악선생의 명에 처형장 경계를 서고 있던 사사천교 무사 천여 명이 백리영 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들 무사들은 매소청, 만악선생 등이 묵고 있는 지휘막사 주위에 있던 자들로 정예 중의 정예라 할 수 있었다.
척척척.
시야가 확보되자 포위망은 확실하게 구축되었다.
백리영, 항윤현, 임소혜, 한삭, 장덕수, 추보승 이렇게 여섯 명을 에워싼 무사들은 다섯 겹이나 포위망을 만들었다.
만악선생이 소리쳤다.
“백리영. 항윤현 네놈들이 제 발로 올 줄이야. 하늘이 본교를 돕는구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흥! 무공이 우리에게 안 되니까 비겁하게 합공을 가하려 하는구나. 사사천교에 이렇게 고수가 없었느냐?”
백리영의 말에 매소청의 안색이 굳어졌다.
“백리영! 못생긴 년이 잘도 지껄이는구나. 대호법께서 저년의 아가리를 찢어주세요.”
“존명!”
담복이 고개를 숙인 후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의 무공 실력은 사사천교 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나머지 십대호법 역시 그의 뒤를 따르며 보조를 맞췄다.
“나는 사사천교 대호법 담복이라 한다. 누가 먼저 나와 겨루겠느냐?”
“나다.”
백호당주 항윤현이 나섰다.
“좋다. 명성은 익히 들었다. 하지만 오늘이 네놈의 제삿날이 될 것이다.”
담복이 말을 한 후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별안간 우수를 내질렀다.
순간 권풍이 일며 항윤현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흥!”
항윤현이 고개를 숙여 이를 피한 후 쌍장을 날리려 했다.
한데 피했다고 생각한 권풍이 다시 돌아와 그의 등을 후려치는 게 아닌가.
퍽.
“크윽!”
항윤현이 피를 한 사발 정도 토한 후 비틀거렸다.
그로서는 의외의 일격을 당한 셈이었다.
상대와 실력이 비등할 것으로 예상했던 그로서는 충격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담복이 다시 미끄러지듯이 다가와 권풍을 날렸다.
쏴아아.
아까보다 두 배는 더 강해 보이는 경력이었다.
그리고 속도마저 두 배 빨랐다.
내상을 입어 기혈이 흔들린 항윤현으로서는 위기의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도주하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 그였다.
급히 잠력을 끌어모아 장력으로 상대의 권풍을 막아냈다.
파앙.
가죽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항윤현이 다시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
“으으······.”
아직 정신은 있었으나 일어서지 못했다. 중상을 입은 것이 틀림없었다.
담복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누구냐?”
“나다.”
백리영이 입술을 깨물며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