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68
깡충깡충.
실혼사자들의 지휘를 받은 실혼인 육백 명이 백소운을 반원형으로 포위했다.
백소운이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실혼인들의 기세가 이전보다 훨씬 강했다.
‘최상급 실혼인들이라 역시 다르군. 혼자서는 힘들 것 같다.’
백소운이 무형금광을 준비하며 안색을 굳혔다.
아무래도 일초의 승부가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그의 마음을 읽은 것일까.
옥려군이 어느새 그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도 합공을 해야 될 것 같군요.”
“옥 소저께서는 전면에 나설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상황 나름이지요. 어차피 이미 본맹의 법보를 함부로 사용해 나중에 아버님께 꾸지람을 받을 거예요.”
옥려군이 싱긋 웃었다.
긴박한 상황이지만 여유가 있어 보였다.
“네년이 그 폐단주라는 것을 다시 사용할 생각이냐?”
만악선생이 소리쳤다.
옥려군이 대답 대신 품속에서 구슬을 꺼냈다.
모두 열 개였는데 바로 폐단주였다.
실혼부대의 위력을 고려하여 가지고 있던 폐단주를 모두 꺼낸 것이었다.
만악선생이 흠칫하며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어서 공격하라!”
“알겠습니다.”
실혼일사자가 고개를 숙인 후 우수를 높이 들었다.
순간 실혼인들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실혼강기를 발산했다.
쏴아아아.
무려 육백 명이었다.
그들이 발출한 실혼강기는 섞이지도 않고 백소운과 옥려군을 향해 쏟아져갔다.
반응을 먼저 보인 것은 옥려군이었다.
폐단주 열 개를 앞으로 던졌다. 그대로 폭발하며 푸른빛의 장벽을 만들었다.
꽈아앙.
실혼강기들과 장벽이 부딪히며 천지가 뒤흔들리는 거대한 폭발음이 생겨났다.
백소운이 무형금광을 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실혼인들이 비틀거리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쾅.
또다시 폭발음이 나며 실혼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쿵쿵쿵.
폐단주 열 개와 무형금광이 합쳐진 결과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쓰러졌던 실혼인들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옥려군이 안색을 굳혔다.
“놈들이 보호진법으로 충격을 외부로 흘려버렸어요. 폐단주도 이제 없는데 큰일이군요.”
놀란 것은 백소운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공력의 안배가 잘 되어 기가 고갈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느끼는 당혹감이었다.
“옥 소저. 무명검을 주시겠소? 사실 무명객께서 옥 소저를 만나게 되면 무명검을 받아서 사용하라고 하셨소이다. 이게 증거요.”
백소운이 금단비고에서 피리 한 자루를 꺼냈다.
물론 그 피리는 옥려군이 맡기고 간 것이었다.
옥려군이 반색했다.
“그랬나요? 좋아요.”
옥려군이 무명검을 백소운에게 주고 자신의 피리를 돌려받았다.
그러고는 곧장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바로 천상옥음이었다.
삘리리리.
순간, 실혼인들이 다시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동요는 조금 전보다 훨씬 심했다.
아무래도 보호진법이 음파를 차단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사이 백소운은 무명검을 들고 실혼인들 사이를 누볐다.
“케엑!”
“크윽!”
실혼인들이 목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백소운의 검초는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한번 휘두를 때마다 실혼인 십여 명이 목을 잃었다.
“빌어먹을!”
실혼인들을 지휘하던 실혼사자들이 분노하며 장력을 날렸다.
그들이 노린 사람은 바로 옥려군이었다.
실혼인들이 멍청하게 당하고 있는 것의 원인이 바로 천상옥음이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사실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
옥려군이 불고 있는 피리 역시 등선맹의 법보였다. 그것도 폐단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가치가 높은 상급법보였다.
피리의 정식 명칭은 천상피리.
특히 이 천상피리는 등선맹과 대립하고 있는 지옥맹의 마수나 강시들과는 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말벌왕이 도주한 것도 사실 천상피리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
쏴아아아.
삘리리리.
피리를 계속 불어대는 가운데, 실혼사자들이 날린 장력이 옥려군을 향해 날아갔다.
옥려군이 피리 부는 것을 멈추고 피하기 직전.
백소운이 방패 하나를 날려 그녀를 보호했다.
바로 금단방패였다.
파파파팡.
장력이 방패에 부딪히자마자 그대로 되돌아갔다.
“크윽!”
“으악!”
실혼사자들이 피떡이 되어 날아갔다.
사람들이 놀라서 보니 실혼일사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자들이 모두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백소운은 그동안에도 실혼인들을 무차별 제거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벌써 실혼인들의 절반인 삼백여 명이 절명했다.
하지만 잠시 피리 소리가 끊어진 덕분인지 다시 실혼강기를 퍼붓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번에는 실혼일사자가 후유증을 각오하고 최고 강도의 실혼강기를 발산하게 했다.
그 결과 천상피리가 통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옥려군의 공력 부족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그녀의 부친인 등선맹주가 직접 부는 것과는 그 힘에 있어 차이가 컸던 것이다.
백소운이 무형금광을 다시 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역시 후유증을 각오하고 전력을 다해 펼친 것이라 그 위력이 엄청났다.
콰콰콰쾅.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실혼인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의 울부짖음과도 같았다.
투두두둑.
실혼인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찢긴 살점들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사람들이 보니 놀랍게도 실혼인들이 모두 절명해있었다.
그들을 끝까지 지휘했던 실혼일사자 역시 사지가 찢겨 죽은 것은 물론이었다.
백소운과 옥려군 또한 무사하지는 못했다.
실혼인들 상당수가 죽어 나가면서 동귀어진 수법으로 자폭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옥려군은 금단방패의 도움으로 내상이 가벼웠지만, 무형금광을 펼치느라 무방비상태였던 백소운의 내상은 심했다.
하지만 겉으로 내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이 시급하다.’
백소운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피를 도로 삼키며 금단방패에 기를 불어넣었다.
순간. 금단방패가 늘어나며 원형 비행체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옥 소저. 이분들을 데리고 동정장원으로 들어가 있으시오.”
“알겠어요.”
옥려군이 반문을 하지 않고 백리영, 항윤현, 임소혜, 한삭, 장덕수, 추보승 여섯 사람을 금단방패에 태웠다.
옥려군 역시 올라타자, 백소운이 우장을 날려 금단방패를 후려쳤다.
순간, 사람들을 태운 금단방패가 동정장원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만악선생을 비롯한 사사천교 무사들이 매우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비록 실혼부대의 전멸로 당황한 면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탈출할지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윽고 사람들을 태운 금단방패가 동정장원 안으로 사라지자, 사사천교 무사들의 이목은 백소운에게 쏠렸다.
그의 몸이 연신 떨리고 있어 아까와 달리 해볼 만하다는 표정들이었다.
만악선생이 애써 자제를 하며 말했다.
“방패가 사람을 나르다니. 천지금강진도 돌파하는 것을 보니 역시 보통 방패가 아니었군. 하지만 이제 네놈은 끝이다. 공력이 고갈되어 쓰러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잘 안다. 반면 우리 무사들은 만 명이 넘는다. 네놈이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물론이오. 아무 문제가 없소.”
“허세가 심하군. 네놈이 무슨 완전한 인간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금강불괴를 말하는 것이오?”
“그렇다.”
만악선생이 말을 하며 부쩍 수가 늘어난 수하들에게 눈짓했다.
일단 궁수대 일천 명이 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릴 준비를 했다.
그들 궁수대 무사들은 맹주 직속으로, 일전에 백소운에게 전멸당한 무사들보다 훨씬 강했다.
게다가 지금 백소운에게는 화살들을 퉁겨낼 수 있는 금단방패도 없었다.
백소운이 말했다.
“진정한 금강불괴는 육체에 한하는 것이 아니오. 정신적으로도 의미가 있소. 그런 의미에서 본인은 최후의 몸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오.”
“최후의 몸이라. 재미있는 표현이군. 말장난은 그만하겠다. 나는 네놈을 죽여줄 분이 따로 계시다고 믿는다. 지옥삼객께서 계시면 모습을 드러내주시겠습니까?”
만악선생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원래는 바로 화살 공격을 가하려 했었다. 하지만 백소운이 너무 태연해 혹시나 해서 지옥삼객을 불러본 것이었다.
“우리를 찾았소?”
담담한 목소리와 함께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비룡객, 상춘객, 창랑객 세 사람이었다.
스스슷.
그들은 품자 형태로 나타나 삼 장 정도 거리를 두고 백소운과 대치했다.
아무래도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다가 마침 만악선생의 말을 듣고 나타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들 중 대표라 할 수 있는 창랑객의 표정은 불만이 어려 있었다.
원래는 사사천교 무사들이 모두 나선 다음에 최후로 모습을 드러내려 했던 까닭이었다.
물론 자신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실혼인들이 모두 제거된 데 대한 분노로 더 이상 참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었다.
“백소운 네놈의 진짜 정체가 무엇이냐? 등선맹과 무슨 관계라도 있느냐?”
창랑객이 물었다.
옥려군이 자리에 없자 한결 여유로워 보이는 그였다.
“등선맹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소. 본인은 단지 무림맹 총단 하인일 뿐이오.”
“후후후! 끝까지 오리발이군. 좋다. 어차피 실력이 모든 것을 결정하겠지.”
창랑객이 허리에 찬 검을 천천히 뽑았다.
상춘객 역시 기형도를 뽑아 머리 위로 들었다.
백소운과 한번 겨뤄 패한 적이 있던 비룡객 역시 양손을 들어 올려 쌍장을 날릴 준비를 했다.
“우리 지옥삼객의 합공은 아무도 막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느냐?”
창랑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백소운이 지쳤음을 파악하고 승리를 확신하는 표정이었다.
한편 백소운은 지금 다시 무형검 경지가 상승 중이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깨닫고 정신을 집중한 결과였다.
그가 무명검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생각했다.
‘너무 빨리 베거나 느리지도 않게. 잡념을 남김없이 불살라 없애고 마음을 잘 다듬어야 한다. 의혹이 없어야 진정한 검도(劍道)를 완성할 수 있다.’
백소운이 천천히 무형검의 경지에 알맞은 검초를 떠올렸다.
무형검은 따로 형식이 없는 심검의 경지.
그 때문에 사실 초식이라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진짜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형식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검을 펼쳐야 한다.’
바람의 검.
백소운이 무형금광과 마찬가지로 무형검의 초입에서 자연스럽게 창안한 검법의 이름이었다.
사실 창안이라기보다는 그저 이름을 붙인 것에 가까웠다. 하지만 기존에 익혔던 금단검법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가장 큰 장점은 내공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형검의 원리는 단전에 대자연의 기운을 연결하는 것으로 시작도 끝도 없었다.
힘쓰는 것은 오직 마음뿐.
그 마음의 힘으로 무공을 펼치는 것이 요지였다.
이는 뭔가를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배우지 않은 것에 가까웠다.
형식, 즉 장애가 없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공의 원리와는 달랐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무형검은 깨달음의 무학이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고 어떤 것에도 매이지 않는다면 온갖 속박에서 벗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른 무공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되기 때문에 펼치지 않음과도 같다. 따라서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백소운이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급박한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 미소에 지옥삼객 모두가 분노했다.
“네놈이 정말 분수를 모르는구나. 그 자만심이 오늘 네놈을 저승으로 보내줄 것이다.”
창랑객이 빛과 같은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순간, 막대 모양의 거대한 검강이 형성되며 백소운을 덮쳐갔다.
상춘객이 휘두른 기형도가 길쭉한 도강을 만들어내며 그 뒤를 따랐다. 비룡객이 전신 기운을 하나로 통일해 쌍장을 날렸다.
슈우욱. 쏴아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공격이다!’
평생 자신의 진정한 무공 실력을 숨기고 지내왔던 만악선생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의 눈에는 벌써 백소운의 몸이 천 갈래 만 갈래 찢겨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백소운은 당황하지 않았다.
다만 무명검을 앞으로 조금 내밀었을 뿐이었다.
바로 바람의 검이었다.
마치 봄바람과도 같은 바람이 검신 양쪽에서 살짝 불었다.
콰콰콰쾅.
대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