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69
“천지금강진을 해체하라!”
무림맹 총군사 자명선생의 명이 떨어지자 동정장원을 둘러싼 보호진이 해체되었다.
조금 전 금단방패를 타고 장원 안으로 돌아온 백리영, 옥려군 등의 이야기를 들은 그의 결단이었다.
“모두 전진하라!”
대기를 하던 만여 명의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장원 밖으로 나갔다.
“서둘러야 해요. 혼자 남은 백 공자가 무사해야 할 텐데······.”
지휘 수레에 올라탄 백리영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수레 안에는 옥려군도 함께 있었다.
그녀는 어느새 줄어든 금단방패를 손에 들고 있었다.
반면 항윤현, 임소혜, 한삭, 장덕수, 추보승 다섯 사람은 몸을 추스르느라 장원 안에 남아 있었다.
따라서 두 사람만이 곧바로 다시 사사천교 진영으로 돌아오는 셈이었다.
사사천교 진영은 장원 바로 앞에 있었기에 곧바로 그 모습이 드러났다.
원래는 거대한 방책을 두르고 있어 내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대로 다 보였다.
아무래도 조금 전 들었던 대폭발의 영향인 것 같았다.
마치 폭격을 맞은 것처럼 방책이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
“저기! 백 공자가 보여요!”
옥려군이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역시 한 사람이 만여 명의 사사천교 무사들과 대치해 있었다.
조금 전 격돌의 결과인 듯 백소운 앞에 세 구의 시신도 널브러져 있었다.
“지옥삼객이 당한 것 같군요. 백 공자는 정말 대단해요.”
옥려군이 기뻐했다.
사실 백소운이 사람들을 데리고 먼저 장원으로 들어가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듣지 않으려 했었다.
백소운의 내상이 자신 보다 더 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담겨있었다.
그 때문에 군말 없이 따른 것이었다.
게다가 사실 지금처럼 곧바로 무림맹 무사들 모두를 데리고 나오려는 복안도 있었다.
실혼부대가 궤멸된 이상 양측의 전력은 대등해졌기 때문이었다.
한편 조금 전 백소운과 지옥삼객의 격돌을 목격한 만악선생과 매소청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보기에 백소운은 그저 검을 내밀었을 뿐이었다.
반면 지옥삼객의 공격은 압도적이었다.
특히 창랑객이 펼친 강기는 평생 몇 번 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한데 결과는 지옥삼객의 몰살이었다.
그 모두가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총군사님. 무림맹 놈들이 장원 밖으로 모두 나오고 있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만악선생이 정신을 차린 듯 장원 쪽을 쳐다봤다.
보고 그대로였다.
“어떻게 할 건가요?”
매소청도 놀라며 급히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두려움이 담겨 있었다.
물론 그 두려움의 대상은 바로 백소운이었다.
영입한 후 충직한 수하로 삼으려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조금 전 보여준 무위는 그녀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비록 백소운이 죽인 사람은 지옥삼객 세 명뿐이었지만 그만큼 사람들을 압도했던 것이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만악선생이 반문했다.
매소청이 입술을 깨물었다.
“지금 상태에서 전면전을 벌이면 우리가 불리해요. 실혼부대도 전멸했고, 지옥삼객도 죽었어요. 사기가 많이 떨어졌어요. 하지만 괴물 같은 저자는 건재하니 승리를 장담할 수 없어요.”
“하지만 궁수부대가 지금 놈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을 보니 필시 내상을 입어 꿈쩍도 할 수 없는 게 분명합니다. 놈만 제거하면 나머지는 문제없습니다.”
만악선생이 눈을 감은 채 묵묵히 서 있는 백소운을 가리켰다.
물론 무명검은 여전히 손에 들려있었다. 하지만 아래로 내리고 있어 당장 공격을 가할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전신에서 우러나오는 은은한 금빛 때문에 사사천교 무사들이 감히 공격을 가하지 못하고 있었다.
명령도 없이 건드렸다가 자신들이 전멸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 것이었다.
한편 백소운은 지옥삼객을 처치한 후 필생 몇 번 없을 수도 있는 깨달음의 기회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금 이곳이 비록 생사가 결정되는 전장이기는 하나 그에게는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물론 공격이 가해지면 방어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최대한 무형검의 경지를 올려둘 생각이었다.
무형검은 그 단계가 27개나 있기 때문에 기회를 놓치기가 너무 아까운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마치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욕망을 버리고 거센 강을 건너야 다음 단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백리영과 옥려군의 음성을 듣고 난 후 명상은 지속될 수 없었다.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야겠군. 그래도 많은 진전이 있었다.’
백소운이 천천히 눈을 떴다.
“허억!”
매소청이 화들짝 놀랐다.
그때 자명선생이 이끄는 무림맹 무사 만 명이 다가왔다.
이십 장 정도 앞에 위치한 그들이 진군을 멈췄다.
사사천교 무사들이 공격을 가하려 했으나 만악선생이 이를 저지했다.
백소운이 건재하다는 것이 확인된 마당에 섣부른 전면전은 피하려는 것 같았다.
백리영이 소리쳤다.
“백 공자! 어서 돌아오세요. 우리 진영으로.”
백소운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백리영과 옥려군 두 사람 외에 장원 안으로 들어갔던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분들처럼 쉬고 계시지 어찌 또 나오셨습니까?”
아직 하인 신분인 그였다.
백리영을 대할 때마다 공손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하인이 아니라 대협을 대하는 표정이었다.
“괜찮으세요?”
“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아가씨께서는 어떠하십니까?”
“견딜 만해요. 회복운공을 하게 되면 완쾌될 거예요.”
“잘되었군요. 나중에 한번 봐 드리겠습니다. 옥 소저는 어떠하십니까?”
“호호호.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저는 말짱해요. 약간의 내상을 입었으나 단약을 먹고 바로 완쾌되었어요. 일단 방패부터 받으세요.”
옥려군이 금단방패를 던져 백소운에게 돌려주었다.
휙휙휙.
방패가 힘차게 돌아가는 것으로 봐서 완쾌되었다는 그녀의 말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수레에서 훌쩍 몸을 공중으로 떠올린 그녀가 두 발을 힘껏 휘저으며 백소운 옆으로 날아왔다.
“다시 돕겠어요.”
“고맙습니다.”
백소운이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때 만악선생이 말했다.
“백소운! 네놈이 무공을 믿고 우리를 허수아비로 생각하는구나. 지금 전면전을 벌이면 양패구상할 것임을 정말 모르고 있는 것이냐? 자명선생 그대가 한번 답해보시오.”
“흥! 상황이 불리하니까 이제야 싸움을 물리려는 것이냐? 어림도 없다. 네놈에게 당한 대의문 무사들과 청룡당 무사들의 복수를 반드시 할 것이다.”
자명선생이 소리쳤다.
내심은 어떨지 모르니 사사천교 무사들이 물러나는 것을 수수방관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
“자명선생. 기어코 우리와 동귀어진하자는 것이냐? 우리도 피해가 만만치가 않다. 네놈이 백소운 저 녀석을 믿고 있는 모양인데, 조금 전 공력을 무리하게 사용해 아마도 더 이상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물러나려 할 때 가만있는 게 좋을 것이다.”
“어디로 가겠다는 말이냐?”
자명선생이 반응을 보였다.
사사천교 무사들이 잠시 물러나 대의문 총단에서 대열을 정비하려 한다면 용납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절강성으로 철수한다면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곳 악양으로 오기 전 맹주인 백리천으로부터 밀명을 받았었다.
그것은 바로 전선을 너무 확장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마교의 소탕이 우선으로 자칫 사사천교와 싸움이 길어지면 전선이 둘로 갈려져 어렵게 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자명선생 또한 백리천과 생각을 같이하고 있던 터라 기꺼이 명을 받았다.
물론 현재 마교와 사사천교가 동맹을 맺은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 전선의 분리는 어쩔 수가 없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은 말뿐인 동맹이었다.
마교와 사사천교 역시 서로를 불신하는 것은 여전했다.
그래서 잘만하면 이전처럼 사사천교를 절강성에 묶어둘 수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만악선생의 즉답이 없자, 자명선생이 다시 말했다.
“이곳 악양을 떠나 네놈들의 총단이 있는 절강성으로 돌아간다면 막지 않겠다. 그러지 않고 계속 악양에 머문다면 지금 전면전을 벌여 네놈들을 몰살시키겠다.”
“흥! 우리가 네놈들이 무서워서 이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냐? 총단으로 철수하는 것은 맹주님의 명이 있어야 한다. 우리에게 사흘의 시간을 다오. 대의맹 총단에서 기다리다가 맹주님으로부터 답이 오면 곧바로 철수하겠다. 어떻게 하겠느냐?”
“으음······.”
자명선생이 안색을 굳히며 옆에 있는 백리영을 쳐다봤다.
백리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 즉시 절강성으로 철수하는 것 외에 타협은 없어요. 총군사님. 더 이상 저들과 이야기할 가치도 없어요. 총공격 명령을 내리도록 하세요.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들었느냐? 마지막 경고다. 어떻게 하겠느냐? 절강성으로 철수하겠느냐? 아니면 여기서 전멸을 당하겠느냐?”
자명선생이 소리쳤다.
만악선생이 안색을 굳혔다.
옆에 있는 매소청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무림맹 무사들이 아니었다.
바로 백소운이었다.
그를 상대해줄 것으로 믿었던 실혼부대와 지옥삼객이 죽은 마당에 갑자기 힘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셈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서쪽 방면에서 한 무리의 무사들이 일제히 다가왔다.
만 명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다.
무림맹과 사사천교 양측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지금 균형을 완전히 깰 수 있는 숫자였다.
게다가 무사들의 기세도 남달랐다.
다들 무공이 뛰어나 보였다.
말에 탄 무사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경공을 펼치고 있었다.
그 속도가 말을 탄 무사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데 맨 앞에서 말을 타고 오는 청년은 바로 천룡공자가 아닌가.
그의 옆에는 천룡궁 태상장로 심종주의 모습도 보였다.
“천룡궁 무사들이다!”
무림맹 무사들이 기뻐하며 소리쳤다.
물론 그들 역시 백리영과 천룡공자의 혼사가 파탄지경에 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천룡궁과 가까운 쪽은 아무래도 무림맹이었다.
물론 속단할 수 없는 노릇이긴 했다.
항간에는 사사천교가 천룡궁에 동맹을 제의했다는 소문도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천룡공자의 말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
“하하하! 백리 소저. 오랜만이오. 어디 다치신 것이오? 본 공자가 그대를 구하기 위해서 왔소이다.”
“흥!”
백리영이 코웃음을 쳤다.
상황이 정말 어렵다면 모르겠으나 기선을 제압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룡공자는 불청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명선생은 달랐다.
잘만하면 천룡궁과 합세해 사사천교 무사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만 되면 굳이 혼사를 맺지 않아도 천룡궁과 사사천교는 원수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천룡공자. 우리를 돕기 위해 오셨다니 정말 감사하오. 힘을 합쳐 극악무도한 저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입시다.”
“물론입니다. 다만 그 전에 한 가지 확약을 받을 게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총군사께가 아니라 백리 소저께 듣고 싶은 대답입니다.”
천룡공자가 득의에 찬 표정을 지었다.
백리영이 안색을 굳힌 순간, 그가 다시 말했다.
“백리 소저께서 저와의 혼인을 수락해주신다면 곧바로 합공을 가해 사사천교 놈들을 모조리 제거하겠습니다. 백리 소저. 내 청혼을 받아주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