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7
호법당에서 돌아와 수련동에 다시 모인 백소운 등 다섯 하인은 또다시 숙의에 들어갔다.
맹찬의 엄포로 다른 하심무인들은 모레 출발 전까지 수련동에 발길을 끊은 상태라 그들 다섯뿐이었다.
“으음, 지금으로선 별다른 대책이 없는 것 같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조심해서 다녀오기로 하세. 문제는 맹찬 그자인데 아마도 내일이 고비가 될 것 같네.”
유덕의 말에 정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총관은 이대로 포기할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 꼬투리를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찌하겠나? 우리로선 아가씨만 믿고 있을 수밖에.”
“하지만 부총관이 공평성을 내세워 훼방을 놓는다면 아가씨께서도 끝까지 도와주기 어려울 겁니다. 더구나 어젯밤 자객의 침입으로 총단 내부가 매우 어수선합니다.”
“그렇긴 하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책이 없네. 뭔가 좋은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해보게.”
유덕이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시선을 백소운에게 향했다.
“운아. 네 생각을 말해보아라. 아직도 아가씨께서 천룡공자와 혼인할 생각이 없다고 보느냐?”
“네. 하지만 모든 것이 유동적인 상황입니다. 사실 우리가 운송에 참여하는 것이 복이 될지 화가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든 불확실한 바에는 자기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없을 테니까요.”
“으음, 좋은 생각이다. 사실 가장 좋은 결과는 우리가 가점의 도움 없이 실력으로 등룡관의 최후관문을 통과하는 것이겠지.”
유덕의 말에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뜻하지 않은 가점의 유혹에 대부분 잠시 욕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들 다섯 명만 함께 모여 이야기를 해보니 조금은 과욕이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모든 게 인연에 따라 흘러가겠지요. 하지만 찾아온 기회를 정정당당하게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백소운의 말에 막총이 고개를 조금 저었다.
“그건 아니다. 사실 단지 예물운송에 참여했다고 주는 혜택치고는 조금 과분하긴 하지. 하지만 나 역시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다. 일단 정식 무사가 되면 보다 수준이 높은 무공을 연마할 수 있으니 말이다.”
“수준 높은 무공이라면 혹시 무맹비고(武盟秘庫) 대개방을 염두에 두시는 건가요?”
무림맹 내외의 정보가 빠른 진하림이 끼어들었다.
“그렇다. 지금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 듣기만 해도 가슴이 뛰지 않느냐? 맹을 거쳐 간 수많은 옛 고수 분들의 무공비급을 직접 열람할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무맹비고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정식무사뿐이니, 어떻게든 그 전에 자격을 획득해야지.”
“아, 막 아저씨는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군요. 저도 어떻게든 이번에 일차 합격해서 무맹비고에 들어갈래요.”
“하하하. 무맹비고는 정식무사라 해도 아무나 들어가는 곳이 아니다. 철저한 신원 확인이 어떤 경우보다 우선되지. 그나저나 일단 명단에 올라갔으니, 다른 것은 생각하지 말고 운송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막총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사람들의 마음이 통일된 것 같았다. 특히 무맹비고에 대한 이야기는 또 다른 열정의 불씨를 피운 것 같았다.
백소운 역시 그들과의 무공 수준 차이와 상관없이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바로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렇다. 지금까지 내가 익힌 금단비서의 무공은 미리 안배된 느낌이 강했다. 즉, 시작이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야말로 나만의 무공을 새롭게 창안할 수 있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나의 의지가 된다. 그것이야말로 답답함을 풀어줄 열쇠가 아닐까.’
백소운은 문득 지금까지 배운 무공들을 모두 검토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무공 중에서 혹여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좀 더 바르게 고치고, 그것을 토대로 새롭게 무공을 창안해보고 싶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뭔가 막힌 것이 뚫리는 느낌이었다.
막연하게 무공의 끝을 보겠다고 생각했던 때보다 가야할 길이 좀 더 확실히 보였다.
바로 그때였다.
수련동 문이 열리며 두 명의 인영이 내려왔다.
한 사람은 면사를 쓰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둘 다 여인이었다.
한데 그중 한 명은 바로 아침에 봤던 천향이 아닌가.
백리영의 호위무사인 그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천향이 함께 온 면사녀를 정중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백소운이 뭔가를 깨달았다.
‘그럼 저분이······.’
백소운이 속으로 놀랄 때.
유덕과 정기, 막총 세 사람이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유덕의 말에 백소운과 진하림 역시 빠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제야 총단 내에서 유일하게 면사를 쓰고 다니는 사람이 맹주 여식이라는 정기의 말이 떠올랐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면사를 쓰고 다니는 이유였다.
그건 바로 그녀의 얼굴을 본 젊은 남자들이 상사병에 걸릴 가능성이 커서 그런 사태를 방지하는 차원이었다. 그 때문인지 그녀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극소수라 전해졌다.
유덕과 정기, 막총 세 사람 역시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이 없는 것은 물론이었다.
면사녀, 즉 백리영이 맑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아침에 여러분을 직접 보려 했었어요. 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 때문에 천 호위만 보내게 되어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아가씨. 소인들에게 미안해하실 필요는 전혀 없으십니다.”
유덕이 황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백리영이 말했다.
“아니에요. 이번에 천룡궁에 함께 가게 될 인원이 다섯 분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 다섯 분이 여러분 맞지요?”
“네. 아가씨. 저희는 아가씨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할 테니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좋아요. 사실 여러분에게 가점을 주기로 한 것은 지난번에 한 약속도 있지만 사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예요. 물론 지금은 말할 수 없지만요.”
“아, 그럼 저희가 해야 할 특수임무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요. 일단 여러분 한 명 한 명에 대한 소개를 듣고 싶군요.”
백리영의 말에 유덕 등이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곧바로 자신들의 소개에 들어갔다.
이름과 나이, 직책 등을 기본으로 몇 명은 가족 사항과 자신의 포부까지 제법 세세한 것도 밝혔다.
한데 정작 백리영의 관심을 끈 사람은 백소운이었다.
백소운이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자, 정기가 처음 그를 발견한 당시를 설명해 주었던 것이다.
“이놈은 정말 특별한 녀석이지요. 세상에 온몸에서 그렇게 금빛을 뿜어내는 갓난아이가 있다는 게 믿기지 않더군요.”
정기가 다소 흥분한 모습으로 말했다.
백리영이 관심을 보이자, 더욱더 흥분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이면에는 어떻게든 백소운으로 하여금 백리영의 관심을 받게 하려는 바람이 있었다.
“사실 이 녀석은 수련동에 들어온 지 며칠 되지도 않는 왕초보입니다.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녀석이라 일차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하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제게 도움을 주려고 함께 가게 된 것이지요.”
정기가 말을 하며 자연스럽게 맹찬이 압박을 가한 일을 밝혔다.
원래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합의한 터이지만, 지금과 같은 기회는 다시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 때문인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백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맹 부총관 그분이 심하셨네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어떻게든 다시 이곳 총단으로 돌아오게 될 테니까요. 만에 하나 천룡궁에 계속 머물게 되더라도, 맹 부총관이 여러분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조처를 하겠어요. 제 이름을 걸고 약속드리지요.”
“감사합니다.”
유덕과 백소운 등이 다시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백소운을 제외한 네 명은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 기쁜 표정이었다.
물론 백소운 역시 기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정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정식 무사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기에 금세 담담해졌다.
백리영이 그런 백소운을 한번 쳐다본 후 말했다.
“백소운이라 하셨나요? 생각보다 매우 침착하시네요. 정말 이전에 무공을 배운 적이 없나요?”
백리영의 물음에 백소운이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러자 초조해한 것은 정기였다.
“아가씨. 아까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이놈은 무공을 전혀 배우지 않았습니다. 대신 글을 배워 아는 게 좀 많지요. 십 년 동안 서고 관리를 했던 터라······.”
“그랬었군요. 아무튼 여러분 모두 하인으로 있기엔 아까운 분들 같아요. 특히 진하림 이분은 자질이 매우 우수하군요.”
“감사해요. 아가씨.”
진하림이 기뻐했다.
백리영 역시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백소운 등과 친해 두려는 것 같았다.
“혹시 무공을 배우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네. 사실······.”
진하림이 망설이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녀가 무공을 배우는 이유는 수련동 내에서도 궁금해하던 차였다.
하지만 사적인 것을 캐묻지 않는 게 관례라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고 다들 생각 중이었다.
“말해보세요. 제가 도울 일이 있을 지도 모르니까.”
“아니에요. 복수는 꼭 제 손으로 할 거예요.”
진하림이 자신도 모르게 안색을 굳혔다.
복수라는 말을 그만 내뱉었기 때문이었다.
“복수라. 그렇군요. 좋아요. 자세한 사정은 천룡궁으로 가면서 듣기로 하지요.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하세요. 모든 일은 연습 없이 능숙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아, 그리고 일단 출발하면 전 여러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러니 여기 있는 천 호위에게 이야기해주세요. 아마 천 호위가 여러분을 통솔하게 될테니까요.”
백리영의 말에 유덕 등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질문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천향이 말했다.
“아가씨 개인 물품 몇 가지를 여러분이 끄는 수레에 실을 거예요. 나름 중요한 것들이라 제가 옆에서 지키게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아가씨 호위는?”
“제 호위는 운송대장님이 직접 해주실 거예요. 그러니 걱정 안하셔도 돼요.”
백리영이 몇 가지를 더 물어보고 천향과 함께 봉황각으로 돌아갔다.
다시 다섯 하인만 남게 되자, 막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금 이상하군. 굳이 우리가 끄는 짐수레에 아가씨 개인물품을 실을 이유가 있을까?”
“혹시 아까 아가씨께서 말씀하신 특수 임무가 아닐까요? 공식적으로 가져가기 힘든 물건이라 우리가 끄는 수레에 실으시려는 것이겠죠.”
진하림의 추측에 유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세세한 이유를 알 필요 없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을 것이다. 그 물건이 중요할수록 우리의 공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니, 더욱 떳떳하게 가점을 받을 수 있을 것도 같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형님. 모든 게 잘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 같다. 그럼 이만 각자 방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네.”
* * *
방으로 돌아온 백소운은 곧바로 자지 않고 아까 생각해둔 대로 자신의 무공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 무공들은 모두 금단비서에 수록된 것들이었다.
세상에서 백소운 혼자만이 볼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이는 여러 번 확인된 것이었다.
그의 몸에서 나오는 금빛은 외부인이 볼 수 있지만, 환상 같은 글자들은 오직 백소운의 눈에만 보였다.
그런 것이 처음에는 매우 신기했다. 무공의 내용도 전혀 어색하지 않고 저절로 이해되는 부분이 많아 흥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무공들을 대성한 지금 그를 지배하는 생각은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벌어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뭔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일까. 설마 그게 마교주를 죽여 정마대전을 끝내게 하는 것은 아니었겠지.’
백소운이 다시 한번 검마왕과 싸웠을 때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아무리 무리하게 혈도를 풀려 했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는다. 나중에 한번 자세히 알아볼 필요가 있겠구나. 소마녀가 잘못 알고 왔을 수도 있을 테니까.’
원래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던 문제였다.
어차피 검마왕을 죽였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의 딸인 소마녀를 구한 이후 마음이 조금 달라졌다.
만약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 날이 온다면 좀 더 떳떳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들고 있는 것이다.
‘휴우. 요 며칠 사이에 마음의 수양이 많이 얕아졌구나. 모든 게 비어있는 것을. 내 어찌 집착을······.’
백소운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무공을 천천히 점검하기 시작했다.
밤이 점점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