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73
용왕채 수적들의 수장인 용왕채주 심태(審泰)는 지금 안색을 굳히고 있었다.
백소운 일행이 타고 있는 배를 향해 빠르고 다가가고 있었으나, 남궁세가 고수인 남궁통이 있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함께 지휘선에 타고 있는 삼인의 고수였다.
사파의 전대고수들인 그들은 장강삼사(長江三邪)라 불리는 인물들이었다.
각각 천사(天邪), 지사(地邪), 인사(人邪)였는데, 최근 장강수로십팔채의 수채들을 순회하며 무공을 전수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는 그들 모두 장강수로채 출신인 이유가 컸다.
그들이 중시하는 것은 장강수로채의 독자적 발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장강수로채는 그 세력이 방대했다.
비록 사도맹 소속이긴 하나, 사사천교의 직접 명령은 받지 않았다.
그 점은 사사천교 휘하 문파 성격이 강한 동정수로채와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도맹이라는 배경이 필요한 이유는 아무래도 무공의 부족 탓이 컸다.
그래서 자신들의 무공을 키워줄 수 있는 것이라면 정사를 가리지 않는 그들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강수로채 수적들의 대스승이라 할 수 있는 장강삼사는 그들의 자랑이요 희망이었다.
하지만 장강삼사 역시 사사천교주 매사행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다.
한데 오늘 갑자기 무상장보도의 출현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다.
용왕채에서 함께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던 그들은 곧바로 심태와 함께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자를 추적해왔다.
그리고 지금 그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배를 따라잡기 직전인 것이다.
“심 채주. 저기 서 있는 자가 남궁통인가?”
“네. 천사님. 벽력검협이란 별호에서 보듯이 검법이 매우 강한 자입니다. 현 남궁세가주와도 무공에 있어서 큰 차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지요.”
“우리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일단 모두 제압한 후 장보도를 찾아낸다. 이후 배에 불을 질러 모두 수장시키면 우리가 한 짓인지 어떻게 알겠느냐?”
“그래도 소문이 나면 남궁세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특히 남궁통과 함께 있는 저놈들은 바로 남궁세가주의 자식들입니다.”
배와 배 사이의 간격이 삼 장 정도로 좁혀졌을 때였다.
심태는 장강삼사의 확약을 받고 안심이 된 듯 손가락으로 남궁비와 남궁연 두 사람을 가리켰다.
천사가 눈을 빛냈다.
“저 계집이 남궁세가주의 딸이냐?”
“네. 남궁연이라고 옆에 있는 남궁비 저놈의 여동생이지요. 둘 다 강호오룡과 강호오봉 중 한 명입니다.”
심태가 안색을 조금 굳혔다.
그는 알고 있는 것이다.
천사가 여자를 밝혀 팔십이 넘은 지금도 매일 부녀자를 겁탈하고 있다는 것을.
물론 그 부녀자들은 수적들에게 붙잡혀 온 사람들이었다.
“남궁연이라. 저 계집은 일단 살려두도록 해라. 음기를 보충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저년 한 명만 빼고 모두 죽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대신 남궁통은 세 분께서 처리해주십시오. 어차피 우리가 장보도를 차지한 것이 소문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 죽여야 했는데, 잘되었습니다.”
“알겠다. 하지만 무상비급에 수록된 무공 중 가장 강한 것은 우리 세 사람의 차지가 될 것이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당연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전 기대가 큽니다. 비급에 수록된 무공이 한두 개가 아닐 것이니까요.”
“주제를 아니 다행이군. 일단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놈부터 물색해라.”
“네.”
심태가 장승처럼 서 있는 남궁통을 향해 소리쳤다.
“남궁통! 여기 계신 분이 바로 전설적인 고수분이신 장강삼사이시다. 장보도를 가진 놈을 찾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다른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겠다. 그러하니 허튼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심태가 일단 속임수를 썼다.
자칫 처음부터 싸움에 들어가면 장보도를 찾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흥! 장강삼사가 별거냐? 누구든지 우리 배로 건너오는 놈은 모조리 죽이겠다. 수적 놈들의 말을 우리가 순순히 따를 줄 알았느냐?”
남궁통의 말에 심태가 흠칫했다.
천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최근 강호 활동을 거의 안 했더니, 저런 애송이 놈이 강호 명숙이라고 거드름을 피우고 있구나. 막내야. 네가 좀 수고해줘야겠다.”
“네. 형님.”
인사가 고개를 한 번 숙인 후 경공을 펼쳐 백소운, 남궁통 등이 있는 배 위로 올라섰다.
“흥! 네놈이 어디라고!”
남궁비가 다짜고짜 검초를 뿌렸다.
슈우욱.
인사가 코웃음을 한번 쳤다.
“흥!”
그때였다.
기세 좋게 공격해 들어가던 남궁비가 뭔가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힌 듯 휘청한 후 뒤로 퉁겨 날아갔다.
“크윽!”
“오라버니!”
남궁연이 급히 남궁비를 부축했다.
“너희 상대가 아니다. 연이 너는 비를 데리고 선실 안으로 들어가거라.”
남궁통의 말에 남궁연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숙부님. 저도 돕겠어요.”
남궁연이 남궁비의 혈도를 몇 군데 두드려 막힌 기혈을 풀어준 후 앞으로 나섰다.
한편 백소운은 진하림 등 이십여 명의 무사들과 함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싸움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남궁통의 무공이 높아 자신이 나설 일이 없었으면 했다.
한데 장강삼사 중 한 명인 인사의 무공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역시 전대고수구나. 기를 갈무리할 줄도 알고. 남궁 대협 혼자서는 무리다.’
백소운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남궁통이 드디어 검을 뽑았다.
남궁연은 뒤로 물러나 만일의 경우를 준비했다.
남궁통이 남궁세가의 최고 검법 중 하나인 창궁검법(蒼穹劍法)을 펼치려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 창궁검법은 남궁통이 평생을 연마한 검법이었다. 그 위력은 제왕검형에 결코 못 하지 않았다.
특히 극성에 달하면 검에서 벼락을 뿜어낼 수 있다고 알려져 공포의 대상이었다.
“흥! 창궁검법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
인사가 코웃음을 한번 친 후 등에 멘 대도를 꺼냈다.
남궁통이 소리쳤다.
“장보도는 이곳에 없다! 그러니 그냥 돌아가라!”
“그것은 우리가 판단한다.”
상황을 지켜보던 심태가 말을 한 후 무공이 뛰어난 수하 백 명을 이끌고 배 위로 올라왔다.
아무래도 장보도를 지닌 자가 도주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였다.
척척척.
심태를 비롯한 수적들이 백소운, 진하하림 등 이십여 명의 무사들을 포위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자는 곧바로 죽이겠다.”
기세에 눌린 것일까.
백소운을 제외하고 무사들 모두 안색을 굳히며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그때였다.
남궁통의 검이 한번 움직이는가 싶더니 검광이 허공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 검광 속에 벼락같은 검기 네 가닥이 뻗어 나왔다.
검기들은 대치하고 있는 인사의 사혈을 향해 날아갔다.
사방을 포위하며 공격하는 태세라 피하기가 극히 어려웠다.
“흥! 제법이군.”
인사가 두 눈 가득 이채를 띠며 대도를 앞으로 내밀며 빠르게 신형을 회전했다.
땅땅땅.
검기들이 도신과 부딪히며 매운 소리가 났다.
한데 검기 중 하나가 되돌아가 남궁통의 오른쪽 어깨를 스치는 게 아닌가.
“으윽!”
남궁통이 신음과 함께 검을 떨어뜨렸다.
상처는 깊지 않았으나 병장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남궁통이 안색을 굳히며 급히 검을 다시 주우려 할 때.
지휘선에서 두 가닥 지풍이 날아왔다.
그 지풍들은 바로 천사가 날린 것으로 각각 남궁통과 남궁연의 혈도를 찍고 말았다.
“으윽.”
“으음.”
남궁통과 남궁연이 신음과 함께 갑판 위에 주저앉았다.
“훌륭하십니다. 역시 장강삼사의 위명은 대단하군요.”
심태가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가장 꺼렸던 남궁통이 제압되자 이제 거리낌이 없는 그였다.
백소운, 진하림 등 이십여 명의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네놈들부터 조사해야겠다. 일단 혈도부터 찍어주지.”
심태가 말을 한 후 지풍을 연달아 날렸다.
“으윽!”
“으윽!”
무사들이 썩은 짚단처럼 쓰러졌다.
백소운을 제외하고 모든 무사가 쓰러졌다.
‘어쩔 수 없군.’
백소운이 주위를 둘러보니 남궁통과 남궁연은 여전히 쓰러져 있고, 남궁비 역시 내상이 깊어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한편 심태는 백소운이 멀쩡하게 서 있자, 자신이 실수한 것으로 알고 겸연쩍어했다.
“허허. 이런 실수가 있나.”
심태가 다시 지풍을 날리려 할 때.
휙휙, 하는 소리와 함께 천사와 지사가 이쪽 배로 건너왔다.
“왜 저 녀석의 혈도는 찍지 않았느냐?”
천사의 질문에 심태가 안색을 붉혔다.
“한꺼번에 혈도를 찍느라 실수를 했습니다. 일단 마무리하고 몸수색을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선실 안에 있는 놈들을 뒤져보면 장보도가 나올 겁니다.”
심태가 수하 한 명에게 명을 내렸다.
“놈을 죽여라. 어차피 죽일 놈들이니 차라리 그게 좋겠군.”
“존명.”
수적 한 명이 도를 높이 들고 백소운에게 다가갔다.
진하림이 소리쳤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비록 혈도를 찍혔지만 말은 할 수 있는 그녀였다.
천사를 비롯한 장강삼사가 그제야 그녀를 발견하고 감탄했다.
“대단한 미인이 있는 걸 몰랐군. 저 계집 역시 살려두어라.”
천사의 말에 심태가 고개를 숙였다.
“네.”
그때였다.
백소운의 목을 베기 위해 다가갔던 수적 한 명이 그대로 쓰러졌다.
쿵.
다른 수적들이 급히 다가가 부축을 했으나, 이미 심맥이 끊겨 절명한 상태였다.
“웬 놈이냐?”
심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수적들 백여 명이 차례대로 조금 전 죽은 수적들과 마찬가지로 쓰러졌다.
심태가 놀라서 보니 그들 역시 절명한 것이 아닌가.
한두 명도 아니라 백 명이 한꺼번에 영문도 모르게 쓰러져 죽은 것이었다.
장강삼사 역시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이목을 속이고 백여 명의 수적들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작 놀랄만한 사실을 다음에 벌어졌다.
사백여 명의 수적들이 타고 있던 지휘선이 콰콰쾅 소리와 함께 갑자기 불에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으윽!”
“크아악!”
삽시간에 배 전체에 붙은 화염 속에서 수적들이 비명을 지르며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몸에 불이 붙은 상당수의 수적은 수중고혼이 되고 말았다.
강가로 헤엄쳐 살아난 수적들은 이백 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심태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장강삼사 역시 뾰족한 수가 없는 듯 기를 끌어올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죽은 수적 중 한 명이 떨어뜨린 도 한 자루가 허공에 떠올랐다.
심태가 신형을 돌려 그 도를 바라보자, 눈이라도 달린 듯 빠르게 날아와 심태의 목을 자르고 말았다.
“커헉!”
심태가 두 눈을 부릅뜨고 즉사했다.
장강삼사가 흠칫한 것은 물론이었다.
“안 되겠다. 여길 뜨자!”
천사가 눈짓을 하며 지사, 인사와 함께 배에서 내려 도주하려 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날아온 지풍 세 가닥이 그들의 이마를 뚫어버렸다.
“켁!”
“크윽!”
전대고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 역시 절명을 하고 만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혈도를 찍혀 쓰러져있던 남궁통과 남궁연의 혈도가 풀렸다.
“아!”
남궁연이 놀라면서도 기뻐했다.
“혹시 소문이 자자한 백소운 대협이 이곳에 오신 것인가.”
남궁통이 소리쳤다.
“뭐 하느냐? 어서 쓰러진 사람들의 혈도를 풀어주어라.”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하림 등 이십여 명의 무사들의 혈도가 풀렸다.
물론 이 모두는 백소운의 솜씨였다.
아직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 최대한 자신을 숨겼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성공한 것이다.
남궁통이 기뻐하며 내상을 입은 남궁비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심각한 것은 아니라 금세 안색이 돌아왔다.
진하림은 백소운부터 살폈다.
“오라버니. 괜찮으세요?”
“그래. 하림이 너는?”
“저도 무사해요. 한데 우리를 도와주신 분이 누굴까요?”
진하림이 혹시 몰라 선실 쪽을 쳐다봤다.
그때 바깥 상황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봤던 사람들이 하나둘 갑판 위로 올라왔다.
백소운은 그중 한 사내가 유난하게 초조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두 손으로 보따리 같은 것을 품에 꼭 안고 있는 것이 수상했다.
‘혹시 보따리에 든 게 바로 장보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