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74
“이것이 끝이 아닐 것이다. 우리 배 안에 정말 장보도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공격은 계속될 것이다.”
남궁통의 말에 선실 입구 가게 탁자에 앉아 있던 남궁비, 남궁연, 백소운, 진하림 네 사람이 안색을 굳혔다.
용왕채 수적들의 배가 불에 타고 수적들 또한 죽거나 도주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죽은 수적들의 시신은 수장시켰다.
갑판 위에 묻은 피도 닦아내 이제 뒷정리를 끝낸 셈이었다.
승객들 또한 진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사에 배가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밤을 보낸 후 내일 아침이나 되어야 도착할 예정이었다.
“숙부님 말씀이 맞습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남궁비가 안색을 상기시켰다.
남궁통의 치료 덕분에 그의 내상은 이제 거의 완쾌수준에 달해있었다.
그 때문인지 다시 적극적으로 나서려는 것 같았다.
“무슨 대책이라도 있느냐?”
“네. 놈들이 아무 근거 없이 우리 배로 오지 않았을 테니,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공격을 막기 위해서라도 장보도를 가진 자를 찾아내야 합니다. 안 그러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네 말은 우리가 장보도를 간수하고 있자는 말이냐?”
“네. 숙부님. 다만 이것은 강탈이 아니라 분란을 방지하는 차원입니다. 일단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총단에 보고해 처리하면 될 겁니다. 힘도 없는 자가 보물을 가진다면 혼란은 계속될 터. 지금 사람들이 배 안에 있을 때가 수색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으음, 일리가 있다. 하지만 강호 사람들은 우리가 강탈하려 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남궁통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궁비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숙부님도 초대맹주님의 비급을 갖고 싶어 하시는구나. 하기야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비급이지.’
자신감을 얻은 남궁비가 말했다.
“숙부님. 수색은 제가 하겠습니다. 혹여 장보도가 사마의 무리에게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침 의심스러운 자가 있으니 그자부터 살펴보려 합니다.”
남궁비가 가게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사내를 쳐다봤다.
그의 옆에는 보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백소운이 장보도를 가진 것으로 추정했던 바로 그 사내였다.
물론 지금은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지 않고 편안해 보였다. 하지만 아까 수적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너무나 표 나는 행동을 한 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때 백소운과 마찬가지로 남궁비 또한 그 모습을 본 것이었다.
“으음, 사마의 무리가 초대맹주님이 남기신 무공을 얻게 해서는 안 되겠지. 혹시 사마의 무리라면 강제 수색을 해보아라.”
남궁통이 허락했다.
그러면서 그 역시 구석에 앉아 있는 예의 사내를 쳐다봤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소운이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장보도를 입수하면 남궁세가가 독차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런 그들의 행동을 저지할 생각은 없었다.
사실 무림에서 비급과 같은 보물 쟁탈전은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니었다.
그 때문에 오랜 관행 같은 것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것은 어느 정도 힘에 의한 쟁탈전은 허용된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는 소지자가 그 보물을 소유한 기간이 극히 짧다는 것이 전제되었다.
남궁비가 벌떡 일어나 예의 보따리 사내에게 걸어가자, 백소운이 천리안을 펼쳐 보따리 안을 살펴봤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 했는데, 일단 어찌 될지 모르니 확인부터 해야겠구나.’
한데 생각과 달리 장보도로 보이는 것은 없고, 작은 금괴 하나가 보였다.
‘내가 착각했구나. 장보도가 아니라 금괴 때문이었군.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란 말인가.’
백소운이 내친김에 선실 가게 안에 있던 사오십 명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천리안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물론 각각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단 한번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인상이 험악한 털북숭이 사내 한 명의 소매 속에서 한 장의 양피지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둘둘 말려 있어 세부 내용을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외양은 장보도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때였다.
공교롭게도 예의 털북숭이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 위로 올라갔다.
남궁비가 보따리 사내에게 다가가자, 그 역시 불안을 느낀 것일까.
백소운이 흥미를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 뒤를 따라갔다.
진하림이 의아해했으나 그녀는 남궁비가 보따리 사내를 수색하는 것이 궁금해 따라가지 않았다.
아직 해가 저물기 전인데도 갑판 위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은 없었다.
혹시라도 수적들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갑판 위로 나왔다.
그 수는 십여 명 정도였다.
백소운은 거리를 유지하며 털북숭이 사내의 거동을 유심히 쳐다봤다.
그때였다.
털북숭이 사내가 소매 안에서 예의 양피지를 살짝 꺼내는 것이 목격되었다.
두 손으로 감싸 외부에서 보이지 않게 했으나, 천리안을 가동하고 있는 백소운을 속일 수는 없었다.
‘으음, 역시 수상하군. 남궁 공자 때문에 다른 곳에 일단 숨겨두려는 것인가. 하기야 다른 곳에 숨긴 후 하선할 때 찾아간다면 훨씬 마음이 편하겠지.’
백소운이 그의 다음 행동을 주시할 바로 그때.
털북숭이 사내가 들고 있던 양피지를 갑판 난간의 한 틈 사이에 집어넣었다.
미리 장소를 물색해놓은 듯 매우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렇게 양피지는 틈 사이로 쑥 들어갔다. 털북숭이 사내가 다시 손으로 입구를 쓱 문지르자 틈이 사라져 버렸다.
내공을 일으켜 나무를 변형시킨 것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그냥 풍광을 감상하며 난간을 손으로 매만지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사내가 고개를 돌려 백소운 쪽을 쳐다본 것은 바로 그 직후였다.
하지만 백소운은 이미 낌새를 알아차리고 반대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다.
백소운은 등 뒤의 시선을 느끼며 태연하게 선실 입구 가게로 들어갔다.
“벌써 오셨어요? 바람을 좀 더 쐬고 오시지.”
진하림이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눈짓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남궁비가 보따리 사내를 앞에 두고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미 보따리는 풀려 금괴가 보였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인 것은 물론이었다.
“황금이다!”
“한데 남궁 공자가 왜 저 사람의 보따리를 빼앗아 푼 것이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보따리 사내가 항의했다.
“다짜고짜 내 보따리를 빼앗아가 풀다니 이게 무슨 짓이오?”
남궁비가 안색을 붉혔다.
“아, 내가 착각한 것 같소. 사파의 무리가 장보도를 숨기고 있는 것 같아,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오. 미안하오.”
“흥!”
보따리 사내가 불쾌한 표정으로 보따리를 다시 가져갔다.
그는 상인이었다.
소속 상단의 지시에 따라 금괴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수적을 만나 혹시라도 빼앗길까 걱정을 했던 것이었다.
사실 진짜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를 내지 않았을 터였다.
남궁통이 다가와 보따리 사내에게 말했다.
“미안하게 되었소. 사실 내가 시킨 일이었소. 결례한 셈이니 보상을 하리다.”
남궁통이 은자 한 냥을 꺼내 주자, 보따리 사내가 기뻐하며 받았다.
“감사합니다.”
“아니오. 그럼.”
남궁통이 남궁비를 데리고 원래 앉아 있었던 탁자로 왔다.
남궁연이 말했다.
“생사람을 잡을 뻔했네요. 제 생각으로는 이 배에 장보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갑자기 무상장보도가 나타날 이유도 없지 않나요?”
“으음, 듣고 보니 네 말도 일리가 있구나. 그렇다면 장보도 이야기는 누군가 일부러 거짓을 흘려 무림을 교란하려는 수작이라는 말이냐?”
“네. 사도맹이나 마도맹 두 곳 중 한 곳일 가능성이 높아요. 무림, 특히 우리 무림맹의 눈길을 잠시 딴 곳으로 돌려 체제 정비를 할 시간을 벌려는 것이지요. 나타났다는 장보도도 하필 초대 맹주님과 관련된 것이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요?”
“그렇구나. 놈들이 사마연합을 해체했다고 하지만, 그 말을 믿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상황이지.”
남궁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처절한 비명 하나가 갑판 위에서 들렸다.
“크아악!”
사람들이 놀라 급히 갑판 위로 올라가 보니, 피를 토하며 쓰러진 사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한데 그는 바로 조금 전 양피지를 난간에 숨겼던 그 털북숭이 사내가 아닌가.
남궁통, 백소운 등이 급히 다가가 그자의 상태를 보니 이미 절명한 후였다.
“어떻게 된 것이오?”
남궁통이 급히 묻자, 한 사내가 말했다.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더니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습니다.”
“숙부님! 아무래도 독에 당한 것 같습니다.”
남궁비가 죽은 사내의 얼굴을 가리켰다.
입술이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암습을 받은 걸까요?”
“그건 아니다. 아마도 독에 당한 것을 모르고 있다가 조금 전 내공을 사용한 것 같구나. 어떤 독은 내공을 사용하면 일각 이내에 발작하여 숨을 끊어놓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독은 대부분 옛날에 사용하던 것들인데, 이상하군.”
남궁통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다시 수적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고 선실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갑판 위로 올라와 있었다.
그 때문에 수적이 아니라 승객 한 명이 죽은 것을 발견하고 오히려 안도하는 사람도 많았다.
독에 당한 것은 생각 못 하고 지병이 발작해 죽은 것으로 여긴 것이었다.
한편 백소운은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남궁 대협의 분석이 정확한 것 같다. 아까 양피지를 숨기면서 살짝 내공을 사용하던 것 같았는데, 그 때문에 독이 발작했구나.’
그때였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시신이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화골산에 당한 것처럼 연기를 내며 타들어 가다가 이내 한 줌 혈수로 변해버렸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다들 고개를 돌렸다.
남궁통이 소리쳤다.
“다들 제자리로 돌아가십시오. 수적이 나타난 것은 아니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대협.”
“남궁 대협만 믿겠습니다.”
승객들이 남궁통에게 고개를 숙이며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
털북숭이 사내가 비명횡사한 것을 봤기 때문인지 갑판 위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남궁통, 남궁비, 남궁연, 백소운, 진하림 다섯 사람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소지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남궁비의 말에 남궁통이 안색을 굳혔다.
“나도 잘 모르겠구나. 다만 이 사람의 죽음과 장보도가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단 선실 안으로 들어가자. 혹시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두 분도 함께 내려갑시다.”
“네.”
“네.”
백소운과 진하림이 대답과 함께 그들을 따라갔다.
다시 원래 앉았던 탁자로 돌아간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털북숭이 사내의 죽음 이후 다른 일은 발생하지 않아 분위기는 다시 부드러워진 상황이었다.
“백 공자는 오늘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남궁통의 질문에 백소운이 짐짓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뭐 알겠습니까? 다만 수적들을 무찌른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절대고수 한 분이 도움을 주셨기 때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그것은 누구라도 추측하고 있는 것이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그분이 무명객이라고 생각하오. 백 공자는 혹시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남궁 소저께서는 백소운 대협 그분일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분은 무명객의 제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때문에 아까와 같은 위력은 무명객 그분만이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잘 봤소. 하지만 또 어디로 가셨는지 도통 모르겠소. 하기야 워낙 신출귀몰한 분이니 그러려니 해야겠지.”
“네.”
백소운은 대답 후 묵묵히 식사에 열중했다.
급히 사람들을 따라 내려왔으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지배하고 있었다.
‘죽은 그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이제 주인이 없어졌으니 조금 있다가 그 양피지를 살펴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