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76
배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은 바로 거대한 괴어(怪魚)였다.
물 위로 조금 모습을 드러낸 놈의 덩치는 놀랍게도 백소운 등이 타고 있는 배와 비슷했다.
처음에는 고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곳은 바다가 아니라 강.
생긴 것도 고래와는 딴판으로 수염이 달린 것이 오히려 메기와 비슷했다.
문제는 곧 배와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비록 물밖에 모습을 조금 드러내긴 했지만 그 속도를 늦추지 않은 결과였다.
“어서 막아야 해요!”
남궁연이 소리쳤다.
곧바로 손을 쓸 것 같은 백소운이 공격을 가하지 않자, 위기감을 느낀 것이었다.
“백 공자!”
남궁통이 백소운을 불렀다.
괴어의 크기와 속도로 봐서 이를 물리칠 수 있는 사람은 백소운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궁통 등 남궁세가 사람들은 아직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격이 자유롭지 못했다.
자칫 무리하다가는 주화입마의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괴어가 삼 장 정도 거리까지 좁혀 오자, 백소운이 우수를 내밀었다.
쏴아아.
장심에서 금빛 장력이 기둥처럼 뻗어 나와 괴어의 등을 후려쳤다.
꽈아앙.
천지가 떠나갈 듯한 폭음과 함께 물보라가 수십 장 높이까지 치솟았다.
동시에 괴어의 움직임이 멈췄다.
남궁통 등이 놀라서 보니 괴어의 등에서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다.
괴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녹색 피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괴어의 전신에서 붉은 광채가 한번 번쩍이더니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지혈이 되고 살점이 다시 생겨났다.
놀라운 재생력이었다.
한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었다.
괴어가 고개를 들더니 말을 하는 것이었다.
“네놈이 바로 실혼인들과 지옥삼객을 죽인 그 백소운이란 놈이냐?”
“그렇다. 네놈은 사람이냐 괴수냐?”
“나는 원래 사람이다. 지옥맹 소속 괴어왕(怪魚王)이라고 하지.”
“말벌왕처럼 108 괴수왕 중 한 명이군. 내 말이 맞나?”
“후후후! 본맹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군. 옥가 계집이 가르쳐 주더냐?”
“옥려군 소저 말이냐?”
“그렇다. 그 계집은 제 아비를 믿고 설쳐대지만, 이미 상호 협약을 위반했으니 더 봐주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잔말은 필요 없이 무상장보도를 내놓아라. 네놈이 가져간 것을 다 알고 왔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 장보도 때문에 수적들이 몰려와 제거한 적은 있으나, 나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 우리 배 안에도 자체 조사결과 장보도를 가진 사람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니 썩 물러가도록 해라.”
“흥! 내 눈은 속이지 못한다. 설사 네 말이 사실이라 해도 본맹의 고수인 지옥삼객을 죽였으니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으음, 대결을 피할 수 없게 되었군. 좋다. 일대일로 대결해보자.”
백소운이 배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강물 위로 내려섰다.
마치 평지와 같이 물 위에 서 있는 모습에 어느새 갑판 위로 몰려든 사람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오라버니. 조심하세요.”
진하림이 걱정하며 소리쳤으나, 그녀 역시 지켜볼 뿐이었다.
‘오라버니를 믿어야 해.’
한편 백소운이 떠 있는 곳은 괴어왕의 오른쪽이었다.
둘이 싸우더라도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덜 가는 곳이었다.
이는 괴어왕의 무공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백소운의 배려이기도 했다.
괴어왕이 돌연 껄껄 웃었다.
“하하하. 인정이 많은 녀석이군. 하지만 네놈은 나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괴어왕이 말과 함께 입을 크게 벌렸다.
순간, 그의 입속에서 수없이 많은 새끼 괴어가 튀어나왔다.
새끼라고는 하지만 웬만한 잉어 정도의 크기였다.
한데 그놈들 모두 보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뾰족한 이빨을 가지고 있었다.
떼로 몰려들어 공격을 가하면 아무리 백소운이라 해도 위험에 처할 것 같았다.
“후후후! 먼저 우리 애들인 혈괴어(血怪魚)의 공격부터 막아보아라. 참고로 한번 물리면 그대로 한 줌 혈수로 변하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괴어왕이 껄껄 웃는 가운데 혈괴어 수천수만 마리가 백소운 주위를 포위했다.
놈들이 빠르게 원형으로 회전하며 때를 노리자, 백소운이 흠칫했다.
기세가 너무 강했던 탓이었다.
‘지난번에 봤던 말벌 떼보다 훨씬 강한 놈들이다. 물속이라 그런 것인가. 방심하다가는 내가 당한다.’
백소운이 안색을 굳히며 급히 금단방패를 꺼내 몸에 둘렀다.
즉, 방패를 갑주 모양으로 변형시켜 갑옷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는 금단방패의 효용 중 하나로 갑주로 변하면 금단갑주(金丹甲冑)가 되는 셈이었다.
그때였다.
기회를 노리던 혈괴어들이 일제히 백소운을 향해 몰려들었다.
놀라운 것은 그중 절반은 날아서 공격한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혈괴어의 등에는 엷은 날개가 달려 있었다.
높이 날지는 못하지만 십 장 정도는 충분히 날 수 있는 것 같았다.
백소운은 금단갑주에 보호강기를 더해 공격을 막아냈다.
파파파파파.
콩 볶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혈괴어들이 튕겨 나갔다.
하지만 한 마리 한 마리가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갑주와 보호강기로 무장을 했던 백소운이건만 상당한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러는 가운데도 혈괴어들의 공격은 계속되었다.
튕겨 나간 놈들도 다시 순서대로 달려들었다.
파파파파파.
백소운은 휘청거리면서도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혈괴어들에 대한 정보를 습득해 그에 알맞은 공격을 한 번에 가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그가 주저하고 있는 점은 바로 혈괴어들의 반탄력이었다.
매끈매끈한 비늘 표면이 그 반탄력의 원인인 것 같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군. 아무래도 무형금광이 낫겠다.’
백소운이 작심하고 무형금광을 펼쳤다.
금빛 광채가 번쩍하더니 혈괴어들의 몸에서 피가 튀는 것이 목격되었다.
괴어왕이 벼락같이 날아와 백소운의 목을 문 것은 그 직후였다.
몸과 목 사이 갑주의 미세한 빈틈을 노린 절묘한 공격이었다.
이는 백소운으로서도 뜻밖의 공격이었다.
엄청난 덩치의 괴어왕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날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놈의 입에서 나온 뱀의 혓바닥같이 길고 끝이 뾰족한 촉수에 당한 후였다.
“으윽!”
백소운이 신음과 함께 반사적으로 오른 주먹으로 괴어왕의 목덜미를 후려쳤다.
팡, 하는 소리와 함께 괴어왕이 십장 정도 날아가 물속에 떨어졌다.
순간적이었지만 조금 전 일권에 백소운의 막대한 공력이 담겼기 때문에 큰 타격을 입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놈의 몸 주위로 녹색 피가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소운은 급히 지혈하였으나, 이미 괴어독(怪魚毒)이 몸속에 침투한 상태였다.
이 괴어독은 보통 독과 달리 무공이 높은 고수일수록 퍼지는 속도가 빨랐다.
만독불침이라 생각했던 백소운 역시 예외는 아닌 듯 반신이 마비되는 느낌이 왔다.
한편 혈괴어들은 백소운의 무형금광에 당해 떼죽음을 당해 있었다.
배를 뒤집고 둥둥 떠 있는 놈들의 사체는 보기만 해도 징그러웠다.
백소운은 자신의 혈도 몇 군데를 짚어 독이 퍼지는 것을 막은 후 천천히 괴어왕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괴어왕이 물속에 잠기며 도주하기 시작했다.
심각한 내상을 입은 놈이 위기를 느끼고 최후의 힘을 발휘해 도망치려는 것이었다.
“두고 보자. 어차피 괴어독에 중독되어 죽음을 피할 수 없겠지만, 만약 살아난다면 꼭 다시 와서 네놈의 머리를 뜯어 주겠다. 그리고 장보도 역시 회수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장보도 는 본맹의 것이라 할 수 있으니까.”
괴어왕이 떠나면서 한 말이었다.
백소운은 놈을 추적하는 것을 그만두고 다시 배 위로 올랐다.
“괜찮으세요?”
진하림이 급히 다가왔다.
그녀의 눈은 백소운의 목에 가 있었다.
괴어왕에 당해 시퍼렇게 변색된 부분이었다.
“나는 괜찮다. 독을 몰아내야겠으니 이곳은 남궁 대협께 부탁드리겠습니다. 놈들이 다시 오면 제가 다시 나오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남궁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운이 포권한 후 선실 안 자신의 객방으로 들어갔다.
회복운공을 통해 독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뒤따라온 진하림과 남궁연은 방문 앞에 서서 호법을 서 주었다.
혹시라도 적이 침입하면 소리쳐 알려만 주어도 백소운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다.
“감사합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백소운이 가부좌를 튼 채 운공조식을 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 * *
백소운이 회복 운공을 마치고 진하림, 남궁연과 함께 갑판 위로 왔을 때는 해가 완전히 떴을 때였다.
남궁통이 남궁비와 함께 다가왔다.
“백 공자. 몸은 좀 어떻습니까?”
“회복했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되었습니다. 다행히 그동안 별일은 없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제 곧 장사에 도착하겠군요.”
백소운이 어렴풋이 보이는 포구를 가리켰다.
그 포구는 바로 장사의 대표적 포구였다.
“네. 여기까지 온 것은 모두 백 공자 덕분입니다.”
남궁통의 칭찬에 백소운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모두가 고생하셨지요. 그리고 이제 말씀을 낮추십시오. 편하게 대해주시는 게 저도 좋습니다.”
“하하하. 정말 그렇게 해도 되겠나? 천하의 백 대협께 말일세.”
“물론입니다. 앞으로 많은 지도 편달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부탁은 내가 해야지. 알겠네. 백 공자 말대로 하지. 대신 앞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내게 말하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돕겠네. 그게 설사 장보도와 관련된 일이라도 말일세.”
남궁통이 의미 있는 미소를 지었다.
백소운은 속으로 뜨끔했으나 진심이 느껴져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장보도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아까 그 괴어왕이란 놈이 억측한 것이지요. 쓸데없는 소문이 생기는 것을 막아주십시오.”
“알겠네. 내 말은 만약의 경우를 가정한 것이었네. 사실 잠시 나 역시 욕심을 가졌지만 정말 무상선인의 무공이 발견된다면 그것은 백 공자 자네만이 익힐 자격이 있을 걸세. 다른 사람은 수준이 안돼 그 정수를 깨우치기 힘들 테니 말일세.”
“과찬이십니다.”
백소운의 말이 끝났을 때.
배는 빠른 속도로 포구로 들어갔다.
한데 포구에는 일단의 무림인들이 모여 있는 게 아닌가.
남궁비가 소리쳤다.
“숙부님. 세가연합(世家聯合) 무사들입니다. 마중을 나온 것 같습니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일 것이다. 함께 신선객잔으로 가면 되겠군. 잘 되었다. 안 그래도 고수들이 많이 필요했는데······.”
남궁통이 기뻐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세가연합 무사들은 서른 명 정도 되었다.
“제갈세가와 황보세가 분들이에요.”
남궁연이 낯익은 인물들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한편 백소운과 진하림도 장사에 도착하자 기뻐하고 있었다.
“오라버니. 장사예요. 뭍에 가면 그 괴물 같은 고기들은 나타나지 않겠지요?”
“그렇겠지. 하지만 놈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앞으로 어떤 괴수들이 출몰할지 모른다. 게다가 장보도 때문에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 하림이 너도 조심해라.”
“알겠어요. 피, 그놈의 장보도는 존재하지도 않으면서 헛소문만 나는 것 같군요.”
“······.”
백소운이 별 대답 없이 미소를 지었다.
‘분란을 막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계속 장보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척해야겠구나. 시간이 좀 흐르면 잠잠해질 것이다.’
그때 배를 몰고 온 선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사에 도착했습니다. 모두 하선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