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77
“제갈숭(諸葛崇)입니다.”
“제갈설아(諸葛雪蛾)라고 해요.”
“황보량(皇甫亮)입니다.”
“황보방(皇甫肪)입니다.”
장사 포구에 내리자마자 제갈세가와 황보세가 무사들과의 통성명이 이어졌다.
“백소운입니다.”
“진하림이라고 해요.”
“아, 정말 얼마 전 악양에서 대활약을 펼치신 백소운 대협이란 말씀입니까?”
“대협이란 호칭은 감당하기 힘듭니다. 저는 그저 무명객님의 힘을 일시 빌렸을 뿐입니다. 백 공자라 불러주십시오.”
백소운이 겸양했다.
제갈세가주의 동생인 제갈숭이 고개를 끄덕였다.
“겸손하시군요. 백 대협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백 공자로 부르긴 하겠습니다.”
“저도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소문을 듣고 꼭 만나 뵙고 싶었는데 정말 반갑습니다.”
황보세가주의 동생인 황보량이 호의 가득한 시선을 보냈다.
제갈세가주의 여식인 제갈설아와 황보세가주의 아들인 황보방 역시 백소운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며 눈길을 떼지 않았다.
남궁통이 말했다.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큰일을 겪었습니다.”
남궁통이 수적들과 괴어왕의 공격을 받은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제갈숭 등이 놀란 것은 물론이었다.
“장보도에 대한 소문은 우리도 들었습니다. 한데 벌써 그런 일이 벌어졌다니 놀랍군요.”
“그럼 지금 장보도의 행방은 묘연하다는 말씀입니까?”
황보량의 물음에 남궁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놈들이 분란을 조장하기 위해 헛소문을 퍼뜨린 것 같습니다. 특히 여기 있는 백 공자를 겨냥한 것으로 추측이 됩니다. 백 공자가 마치 장보도를 가진 것처럼 소문을 내 표적이 되게 만들려는 교활한 음모이지요.”
“으음, 하기야 이 시기에 갑자기 장보도가 나타날 리가 없지. 알겠습니다. 장보도에 대한 소문이 거짓임을 개방에 알리겠습니다.”
제갈숭이 곧바로 조금 전 내용을 서찰에 적어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실로 신속한 조치였다.
“잘하셨습니다. 제갈세가와 개방이 서로 긴밀히 협조한다고 하더니 역시 명불허전이군요. 개방이 소문을 가라앉혀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남궁통이 칭찬을 했다.
백소운 역시 감사를 표했다.
“제갈 대협께 감사드립니다. 뜻하지 않은 오해를 받아 앞으로 번거로워질 거로 생각했었습니다. 이제 마음을 조금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이제는 곧바로 신선객잔으로 가도록 하지요. 백 공자 역시 동정어옹의 부탁으로 은자림으로 간다고 하니 정말 든든합니다.”
“네. 미력한 힘이나마 도울 생각입니다.”
“자, 그럼 모두 출발합시다. 마침 마차까지 준비를 해두셨군요.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마차를 타면 될 것 같습니다.”
남궁통이 미리 준비된 마차에 올라탔다.
남궁비와 남궁연, 백소운, 진하림 네 사람도 마차에 타자 마지막으로 제갈설아가 올라탔다.
대단한 미인이자 역시 강호오봉 중 한 명인 그녀는 원래부터 마차를 타고 왔던 것 같았다.
“이럇!”
두두두.
마차가 출발하자, 서른 명에 달하는 제갈세가와 황보세가 무사들이 말을 타고 뒤따르기 시작했다.
* * *
신선객잔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백소운 일행이 타고 있는 마차 안도 무료함을 달래듯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특히 그들의 주된 관심사인 은자림 이야기가 심도 있게 전개되고 있었다.
“은자림 고수 분들이 하나둘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불과 며칠 전이었다고 해요. 하지만 정작 문제는 그 수가 날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지요. 동정어옹과 남북쌍괴 세분이 급히 은자림으로 복귀하면서 백 공자께 도움을 청한 것은 그만큼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일 거예요.”
제갈설아의 말에 남궁연이 눈을 빛냈다.
“심각하다는 말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뜻 같군요.”
“그래요. 마치 지난번에 청룡당 무사들이 실혼인들에게 전멸을 당한 것과 비슷할 거예요. 현 무림의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적이 등장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지옥맹이군요. 놈들은 백 공자와 옥 소저 정도 외에는 전혀 상대를 못 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남궁 소저의 말씀이 맞아요. 사실 이제야 밝혀진 것이지만, 은자림은 그동안 암암리에 지옥맹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었지요. 한데 그 때문인지 놈들이 선수를 친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은자림은 발칵 뒤집어졌고, 각자 출신 문파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지요.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해결책도 나올 것으로 판단한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동안 비밀에 부쳤던 은자림 위치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데, 그 점은 어떻게 된 걸까요?”
“그건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제가 알기로 은자림은 특정 장소에 고정된 게 아니라 십 년 정도마다 바뀐다고 해요. 이번에 사건이 해결되면 아마 다시 거처를 옮기게 되겠죠.”
제갈설아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소운이 물었다.
“은자림에 잠입한 적들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겠습니까? 은자림 고수 분들을 암습해 죽일 정도면 대단한 무공을 지닌 것 같은데······.”
“저도 잘 몰라요. 확실한 것은 사망자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죠. 하지만 언뜻 전해 듣기로는 놈들이 마치 유령처럼 신출귀몰하다고 해요.”
“유령 말입니까?”
“네. 한마디로 말해 귀신들이지요. 물론 진짜 귀신들은 아니겠지만, 밤마다 갑자기 나타나 공격을 가해오니 속수무책인 것 같아요. 오죽하면 증조부님께서 본가에 연락을 취했을 때 술법에 능통한 사람이 있으면 보내 달라고 했겠어요?”
“증조부님이라면 천기수사(天機修士) 제갈휘(諸葛揮) 대협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증조부께서도 은자림에 계시지요. 황보 공자의 증조부 되시는 천하패왕(天下覇王) 황보무(皇甫武) 대협도 함께 계시고요. 아, 물론 제왕검신 남궁백 대협도 함께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지요? 남궁 대협?”
제갈설아의 물음에 남궁통이 대답했다.
“그렇다. 세 분께서 함께 계시다고 하더구나. 아마도 이번 사건의 해결을 위해 힘을 모으고 계신 것 같다.”
“그랬었군요. 아마도 옛날부터 그 세분은 절친한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백소운의 말에 남궁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자세한 것은 도착하게 되면 알게 될 것이네.”
“네. 알겠습니다.”
백소운이 말을 한 바로 그때였다.
마차를 몰던 제갈세가 무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신선객잔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남궁통이 놀라며 마차 휘장을 걷어보니 객잔 하나가 보였다.
마차를 빨리 몬 것도 있지만 이야기에 집중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것이다.
“어서 내리도록 하지. 점심을 먹고 나면 은자림에서 오신 분이 우리를 안내할 것이다.”
“길잡이 고수분인가요?”
“그렇다. 은자림 주위는 진법이 펼쳐져 있어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지. 그분이 우리를 안내해줄 것이다.”
남궁통이 말을 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백소운 등도 함께 내려 곧바로 객잔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예약을 해놓았는지 점소이 한 명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특실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우리를 안내해줄 분이 벌써 와 계시는가?”
“네. 소인을 따라 오시지요.”
점소이의 안내에 백소운, 남궁통 등이 이 층 특실로 들어갔다.
물론 모두 특실로 간 것은 아니었다.
백소운과 진하림, 남궁통, 남궁비, 남궁연, 제갈숭, 제갈설아, 황보량, 황보방 이렇게 아홉 명이 들어갔다.
나머지 무사들은 일층에 모여 식사를 하게 했다.
그들은 제갈숭과 황보량이 데려온 세가 무사들로서, 사실 은자림 측에서는 일반무사들을 데리고 오는 것은 요청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최소한의 무사들을 데려온 것이었다.
한편 특실로 들어간 백소운 등은 이미 기다리고 있는 한 노인을 만날 수 있었다.
“아니. 개방의 천풍개 어르신 아닙니까?”
남궁통이 깜짝 놀라 나이를 추측하기 힘든 노인, 즉 천풍개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천풍개는 개방 태상장로 출신으로 전대고수였던 것이다.
태상장로 직을 그만둔 후 종적이 묘연했는데, 항간에는 그 역시 은자림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뜻밖에도 오늘 백소운 일행을 은자림으로 안내할 길잡이 고수로 나타난 것이었다.
“허허허. 오랜만일세. 이 중에 누가 백소운 공자인가?”
천풍개가 백소운부터 찾았다.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궁비와 황보방이 안색을 굳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제가 백소운입니다.”
백소운을 선두로 젊은이들의 소개가 잇달았다.
남궁통과 제갈숭, 황보량과는 이전부터 안면이 있던 터라 그들만 소개하면 되었던 것이다.
“천풍개라고 하네. 한데 자네가 바로 백소운이었군. 총은자께서 자네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를 특별히 보내셨네. 실혼인들을 제거했듯이 우리 은자림에 출몰하는 유령귀(幽靈鬼)들을 몰아내 주게. 부탁하네.”
“부족한 능력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네. 아, 자네들도 각자 전달받은 대로 가문의 법보들을 가져왔겠지?”
“네.”
“물론입니다.”
남궁통, 제갈숭, 황보량이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했다.
아무래도 유령귀를 제거하기 위해 각 세가에 있던 법보들을 가져온 것 같았다.
“좋네. 배가 고플 것이니 여기서 점심을 들고 곧바로 출발하도록 하지.”
“네. 선배님.”
남궁통 등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천풍개의 나이는 무척 많아 백 살을 훌쩍 넘은 상태였다.
하기야 은자림에 있는 고수들 대부분이 백 살 내외라 대단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특히 그들이 천풍개에 대해 예의를 차리는 것은 그가 이전에 행했던 수많은 협행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 목숨이 끊어진 악인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때문에 사마의 무리들은 그가 보이기만 해도 줄행랑을 치는 자들이 많았다.
“바쁘긴 하지만 실컷 먹고 가지. 유령귀 놈들이 비록 무섭기는 해도 낮에는 출몰하지 않으니까 여유는 있을 걸세. 허허허.”
“네. 주문부터 하겠습니다.”
남궁통이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점소이에게 음식과 술을 내오게 했다.
“최대한 빨리 가져오게.”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점소이가 급히 주방으로 내려가자, 천풍개가 은자림의 현 상황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백소운 등이 일제히 집중한 것은 물론이었다.
천풍개의 이야기는 식사 중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최근 은자림에서 희생된 사람이 백여 명에 달한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사람들이 매우 놀라워했다.
“그렇게 많이 돌아가셨나요?”
제갈설아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단다. 이제 우리가 외부 도움을 요청한 이유를 알겠느냐? 유령귀 그놈들은 무공이 높다고 잡을 수 있는 놈들이 아니란다. 오늘 밤 반드시 놈들을 제거해야 한다. 어서 먹고 출발하자. 가만히 생각해보니 여유 부릴 때가 아닌 것 같다. 총은자님을 만나 뵙고 작전회의를 열어야 하니 시간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네.”
빠른 식사가 진행되었다.
백소운은 이미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그러면서 조금 전 들었던 유령귀에 대해 생각했다.
‘술법이 고도로 전개되면 마치 환상과도 같은 모습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유령귀란 것들도 그런 환상괴수(幻想怪獸) 중 하나가 아닐까 싶구나. 내 짐작대로라면 은자림 고수들이 일방적으로 당한 것이 이해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