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78
“총은자님. 곧 백소운 공자가 도착한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남궁세가와 제갈세가, 황보세가 고수들과 함께 오는 모양입니다. 조금 전 천풍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다행한 일이오. 백 공자가 오게 되면 무슨 방도가 생길 것이오. 옥 소저는 지금 어디에 있소?”
“유령귀의 소굴로 의심되는 곳을 동정어옹, 남북쌍괴와 함께 수색하고 있습니다. 그들 역시 곧 돌아올 겁니다.”
“알겠소. 백 공자가 오면 회의를 열어야겠소. 준비하시오.”
“네.”
노인 한 명이 고개를 숙인 후 대청 밖으로 나갔다.
혼자 있게 된 금의노인, 즉 총은자가 안색을 굳혔다.
‘오늘이 고비다. 유령귀 그놈들이 오늘 밤 우리 모두를 죽이겠다고 공언했으니, 죽든 살든 결판이 날 것이다.’
한편 총은자가 있는 곳은 은자각(隱者閣)으로, 은자림 고수들이 모여 회의를 여는 곳이었다.
은자각은 은자림에서 유일하게 만들어진 건물이었다.
대부분의 은자들은 은자림 내에 수없이 많이 있는 동굴 속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처럼 은자림은 동굴도 많고 숲도 우거진 곳이었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깊은 계곡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 모두는 진법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따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은자림은 장사 변두리에 있는 한 야산에 불과했다.
물론 주위에는 사시사철 안개가 끼어 외부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다.
안개가 마치 미로와 같아 생로를 모르면 은자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안개 역시 진법의 작용으로 만들어진 셈이었다.
총은자가 수심에 잠겨 있을 때.
대청 안으로 세 명의 노인이 들어왔다.
그들은 바로 남궁백, 제갈휘, 황보무였다. 각각 남궁비, 제갈설아, 황보방의 증조부들이기도 했다.
“어서 오게.”
총은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반겼다.
남궁백 등은 이번 유령귀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고수들이었다.
은자림 장로들이기도 한 그들은 각 출신 세가에 연락을 취하기도 했었다.
그 결과 남궁통, 제갈숭, 황보량 등이 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 오면서 들었습니다. 백소운 공자가 온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오늘 밤 결전에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다행히 시간 내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총은자가 천풍개가 백소운 등을 데리고 온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잘되었군요. 하지만 허깨비와 같은 놈들이라 백 공자도 쉽게 처리하지 못할 겁니다. 기대를 모았던 옥 소저도 아직 놈들을 만나보지 못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놈들이 오늘밤 총공격을 공언했으니 우리도 합심해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은자림에 있는 고수들에게 총소집령을 발동했으니, 밤이 되기 전 전체 회합이 있을 겁니다.”
“네. 준비는 총관이 잘 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평소에는 잘 보기 힘든 은자들이 모두 모일 것이니 기대도 됩니다.”
“하지만 벌써 백 명이 넘게 의문의 피살을 당했습니다. 몇 명은 죽기 전에 유령귀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으나,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지요.”
“그래도 지옥맹의 짓이라는 심증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지옥맹이란 단체 자체가 알려진 게 거의 없는 곳입니다. 실혼인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줬다는 이야기 등 지엽적인 것은 밝혀졌으나, 놈들의 본거지라든지 실체 등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지요.”
총은자가 말을 하며 다시 안색을 굳혔다.
사실 그가 맡은 총은자 자리는 명예직이었다.
서로 구속받기를 싫어하는 은자들이라 대표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바로 그 때문에 이번 사태의 해결이 늦어지고 있기도 했다.
“동정어옹, 남북쌍괴, 옥 소저 등이 돌아오셨습니다.”
전각 입구를 지키던 호법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와 보고했다.
곧바로 동정어옹, 남북쌍괴, 옥려군, 임소혜, 괴추노인이 들어왔다.
“백 공자가 온다는 게 사실인가요?”
옥려군이 먼저 물었다.
“그렇습니다. 수색을 나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놈들의 소굴을 찾는 데 실패했어요. 워낙 흔적을 남기지 않는 놈들이라······.”
옥려군이 안색을 굳혔다.
환상괴수의 일종인 유령귀는 그녀도 이름만 들어본 상태였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은 유령귀가 지옥맹의 비밀병기 중 하나란 사실이었다.
“임 소저는 어머님을 찾으셨소?”
총은자가 애써 여유를 찾으며 임소혜를 쳐다봤다.
임소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무래도 이곳에 안 계시는 것 같아요. 한데 이곳 은자림에 사도맹이나 마도맹 고수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임소혜가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그때 마침 은자림 총관이 들어오며 대답했다.
“얼마 전까지 함께 있었으나, 보름 전 그들은 따로 거처를 옮겼소이다. 그래서 지금은 없소.”
은자림 총관, 즉 심허노인(心虛老人)의 말에 임소헤가 안색을 굳혔다.
그녀는 은자림에 들어온 후 유령귀 수색에 참여하면서도 계속해서 모친인 천마대부인을 찾았다.
하지만 아무런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총은자나 심허노인도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마도맹이나 사도맹 고수 중 은자림에 들어온 고수들에게 물어보려 했던 것이다. 한데 그들은 거처를 옮겼다고 하지 않은가.
그녀로서는 미련이 남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모친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겠으나, 오늘 오후 은자회합이 있을 예정이니 그때 알아낼 수도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총은자님.”
임소혜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때였다.
호법 한 명이 다시 들어왔다.
“천풍개께서 백소운 공자를 비롯해 세가연합 무사 분들을 데려왔습니다.”
“아, 어서 모시고 오게.”
“네.”
* * *
은자회합은 백소운 일행이 도착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개시되었다.
그전에 백소운이 옥려군, 임소혜, 괴추노인 등과 만나 의견을 교환했음은 물론이었다.
해 질 무렵 은자각 앞 공터에 모인 고수들은 천여 명.
외부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현재 은자림에 있는 모든 고수들이 모인 셈이었다.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백소운, 남궁통 등 외부에서 온 사람들의 소개가 있었다. 하지만 은자림 고수 중에는 아직 백소운에 대한 소문을 듣지 못한 사람도 수두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이곳 은자림에 온 목적은 대부분 홀로 무공을 닦거나 수양하는 것이었다.
강호의 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주위의 은자들이 하나둘 피살되기 시작하자 그러한 여유는 사라졌다.
그래서 형식적이나마 은자림을 이끌어오던 총은자의 소집령에 다들 따른 것이었다.
무엇보다 은자들의 마음이 한군데로 모이게 한 이유는 적으로 추정되는 지옥맹의 정체였다.
아직 자세히 밝혀진 바는 없으나 지옥맹은 중원 무림이 아닌 일종의 외세라는 말이 많았던 것이다.
이는 은자림이 무림의 일에 개입할 수 있는 훌륭한 명분이 되기 때문에 호응이 매우 높았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은자회합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대부분 들어서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은자림 총관 심허노인이 말을 한 후 유령귀의 공격으로 백여 명이 목숨을 잃은 사실을 밝혔다.
“아니! 그렇게 많이 당했단 말이오?”
“정말 큰일이군.”
은자들이 술렁였다.
대부분 이삼십 명 정도 살해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이 매우 커 보였다.
심허노인이 다시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놈들이 오늘 밤 우리 은자림을 완전히 궤멸시키겠다고 협박을 가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놈들이 이곳에 나타나면 함께 격퇴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놈들을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까? 듣기로는 귀신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네. 목격자가 여럿 됩니다. 분명한 것은 놈들은 무공을 펼쳐도 그냥 통과되는 등 일반적인 무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놈들에게 한번 당하면 즉사입니다.”
심허노인이 호법들에게 지시하여 시신 한구를 가져오게 했다.
백여 명의 시신들은 은자각 옆 건물에 한군데 모아 두었는데, 시신의 직접 공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마 후 호법 한 사람이 들고 온 시신은 목이 없는 것이었다.
즉, 목 없는 시신이었다.
사람들이 술렁인 것은 물론이었다.
심허노인이 말했다.
“보시다시피 유령귀 놈들에게 당하면 머리를 잃게 됩니다.”
“그럴만한 이유라도 있소? 놈들이 검을 쓰는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목격자에 따르면 허깨비와 같은 것이 나타나 한입에 목을 뜯어 먹는다고 합니다. 마치 거대한 구렁이처럼 한입에 머리부터 삼키는 것이지요. 전체를 먹지는 않고 머리만 떼어먹는 모양입니다.”
“식인귀라고 할 수 있겠군요. 유령귀 그놈들은 사람입니까?”
“지금 판단으로는 강시나 괴수에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강호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실혼인과 비슷한 셈이지요.”
심허노인이 말을 하며 백소운을 쳐다봤다.
동정어옹이 말했다.
“제가 백 공자에게 부탁을 드린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백 공자. 무슨 방도가 있겠소?”
“글쎄요. 직접 보기 전에는 뭐라 말씀드리기 그렇군요. 옥 소저께서 저보다 먼저 오셨으니 설명해주시겠습니까?”
백소운의 말에 옥려군이 안색을 굳히며 단상 앞으로 나왔다.
“제가 살펴본바 유령귀는 일종의 괴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지 않는 환상괴수이지요. 지옥맹 놈들이 비밀병기로 만든 것 같은데, 그 수가 많다면 오늘 정말 힘든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옥 소저. 말이 나온 김에 먼저 한 가지만 물어봅시다. 대체 지옥맹의 정체가 무엇이오? 듣자 하니 옥 소저는 등선맹이란 곳에서 오셨다고 하던데, 등선맹과 지옥맹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오? 그리고 그 두 곳은 어디에 있는 것이오? 중원 밖에 있소?”
은자 한 명이 근본적인 질문을 했다.
옥려군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죄송해요. 사정이 있어 제 입으로 그 부분을 말씀드리긴 곤란해요. 하지만 향후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아시게 될 거예요.”
옥려군이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총은자가 말했다.
“옥 소저는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분이니, 너무 다그치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유령귀를 제거하는 겁니다. 오늘 제거하지 못하면 우리 은자림의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겁니다.”
“알겠습니다. 한데 오늘 놈들이 오기는 오는 겁니까?”
“올 겁니다. 놈들은 우리가 모두 모이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총은자의 말에 장내가 술렁였다.
“그럼 우리가 함정에 빠진 것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오히려 역이용할 수도 있지요. 놈들은 우리가 백 공자를 모셔 온 줄은 모르고 있을 겁니다. 아, 물론 옥 소저도 계시지요.”
“아, 제발 계획대로 되어야 할 텐데······.”
은자들, 즉 은자림 고수들이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여 명의 고수들이 죽임을 당했음에도 유령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유령귀의 모습이 전해진 것도 놈들에게 당한 고수들이 죽어가면서 알려준 것이 전부였다.
만일 놈들의 경고대로 오늘 총공격을 가해온다면 은자림 고수들이 전멸당할 가능성도 매우 컸다.
“유령귀는 모두 몇 마리 정도 됩니까?”
“그건 아직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여러 곳에서 피해가 발생한 점을 미루어볼 때 최소 이삼십 마리는 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최대치는?”
“최대치는 백 마리 정도입니다. 우리가 천여 명에 가까운 것을 생각할 때 수적으로는 절대 밀리지 않습니다.”
총은자가 말을 하며 외부에서 온 무사들을 둘러봤다.
대략 백여 명 정도였다. 그들의 수는 대략 이번에 죽은 은자림 고수들과 같았다.
총은자가 말했다.
“백 공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좋은 생각이라도 있으면 말씀해주시겠소?”
“글쎄요. 저 역시 이곳에 우리 모두 함께 있다가 놈들이 닥치면 임기응변하는 것이 최선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경계를 서겠습니다.”
“감사하오. 백 공자만 믿겠소이다. 아, 물론 우리가 손을 놓는다는 이야기는 아니외다. 이미 각파에서 가져온 귀신 쫓는 법보들을 배치해두었소이다.”
“잘하셨습니다. 때론 그런 법보 하나가 강적을 물리칠 수 있는 법이지요.”
백소운이 남궁통 등이 가져온 세 가지 법보를 쳐다봤다.
그것은 모두 작은 항아리였다.
향 같은 것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실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해가 지고 있습니다.”
누군가 하늘을 가리키자, 심허노인이 호법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횃불을 밝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