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81
다음날 아침.
천룡궁 내궁 궁주 집무실.
천룡궁주 종리붕(鍾離鵬) 주재하에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참석 인원은 십여 명 정도로 천룡궁 수뇌부 핵심인물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얼마 전에 천룡궁으로 돌아온 천룡공자와 부궁주 구증, 그리고 태상장로 심종주의 모습도 보였다.
종리붕이 말했다.
“백리영이 내일 본궁을 직접 방문해 혼사를 정식으로 파기하려는 것 같소. 이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천룡공자가 안색을 굳혔다.
“아버님. 혼사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반드시 그녀와 혼인할 겁니다.”
“하지만 그녀가 싫다고 하지 않느냐? 나도 알아볼 만큼 알아봤다. 하지만 그 아이는 너와 혼인할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하다. 그래서 차라리 이번 기회에 무림맹 말고 다른 세력과 연합을 할까 생각 중인데,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소.”
“궁주님. 어떤 세력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혹시 사도맹입니까?”
구증의 물음이었다.
“아니오. 사도맹도 마도맹도 아니오. 물론 무림맹도 아니오. 이제 어딘 줄 아시겠소?”
종리붕의 말에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그때 천룡궁 총군사 무심선생(無心先生)이 입을 열었다.
“지옥맹과 연합할 생각이십니까?”
“허허허. 그렇소. 역시 총군사 선생이시오. 그것을 어떻게 알았소?”
“본궁과 연합할 정도의 세력은 현재 지옥맹뿐이지요. 지옥맹과 대립하고 있다는 등선맹은 체질적으로 우리와 맞지 않습니다. 오직 지옥맹이 본궁과 궁합이 맞습니다. 벌써 연합제의가 들어온 겁니까?”
“그렇소. 사도맹에 이어 그곳의 사람 한 명이 간밤에 다녀갔소. 아직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은 오늘 이 자리에서 정식으로 밝혀 의견을 구하기 위함이었소.”
“역시 그랬군요. 지옥맹과의 동맹은 여러모로 구미가 당기는 게 사실입니다. 비록 무명객과 백소운 두 사람에게 막혀 실패하긴 했지만, 그들의 힘은 거대합니다. 본궁 역시 원래는 천외천 세력이었으니, 서로의 이해도도 클 겁니다.”
“으음, 잘 봤소. 총군사 생각에 우리가 그들과 힘을 합치면 무림제패가 가능할 것 같소?”
“물론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그들의 힘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무명객과 백소운 두 사람의 능력이 뛰어나지만 절대 막지 못할 겁니다. 따라서 일찌감치 지옥맹과 손잡아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천하제패 이후 그들이 우리를 토사구팽시키지 않겠소?”
“그러지는 못할 겁니다. 정보에 의하면 놈들은 소수 정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하 무림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본궁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도 우리를 공격하려 한다면?”
“그런 조짐이 보이면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지요. 대비를 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무림 제패까지는 시간이 무척 남아있습니다. 미리 토사구팽당할 걱정을 한다면 대업을 그르칠 위험이 있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무림을 분할 통치할 수도 있으니, 일단 지옥맹과 동맹을 맺어두십시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소?”
“궁주님. 저 역시 지옥맹과의 연합에 찬성합니다. 놈들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그야말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다만 무림맹 역시 이대로 놓쳐서는 안 됩니다.”
“부궁주. 다른 복안이 있소?”
“네. 일단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이번 기회에 무림맹과 연합을 해두는 겁니다. 물론 그러면서 뒤로는 지옥맹과도 동맹을 맺어두는 것이지요.”
“그래서?”
“무림맹을 이용해 일단 사도맹과 마도맹을 치게 하는 겁니다. 지옥맹에서도 사도맹과 마도맹을 제거하려 할 것이니 분명히 좋아할 겁니다. 물론 우리는 갖은 핑계를 대어 싸움에 최대한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무림맹, 마도맹, 사도맹이 서로 힘을 소진했을 때 지옥맹과 연합으로 놈들을 쓸어버리는 겁니다.”
“좋은 생각이오. 사실 무림맹과의 연합은 본궁이 오래도록 공을 들여온 것이었소. 어떻게 백리영 그 아이를 며느리로 삼을 방안이 있겠소?”
“쌀이 익어 밥이 되면 돌이킬 수 없는 법이지요. 마침 내일 본궁을 방문한다고 하니 그때······.”
구증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끝까지 말은 안 했지만 그 뜻은 모두 알고 있었다.
천룡공자 역시 만족하는 듯 표정을 밝게 했다.
“저 역시 찬성입니다. 하지만 우리 뜻대로 될지 그게 걱정입니다.”
“대공자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본 군사에게 알맞은 독이 하나 있으니, 내일 백리 소저가 먹을 음식에 그것을 탄다면 공자께서는 부인을 한 명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것을 총군사께 맡기겠습니다. 한데 뒤탈은 없을까요? 무림맹주 백리천이 바보가 아닌 이상 딸이 당했다는 것을 알 텐데······.”
“하하하. 이미 부부의 연을 맺은 후에는 아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무엇보다 백리천 그자는 마교 궤멸에 대한 집착이 무척 강한 자입니다. 본궁과의 동맹이 맺어진다면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그렇게 하지요.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 역시 찬성이다. 그렇게 추진하도록 하자.”
“네. 아버님.”
천룡공자가 기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금세 안색이 어두워졌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정보에 의하면 백소운 그놈 또한 본궁에 온다고 합니다. 놈은 대단한 능력을 지니고 있으니, 우리 계획을 간파할 수도 있을 겁니다.”
“백소운 그놈은 우리 천룡백수의 무공을 폐쇄했으니 살려둘 수 없다. 한데 우리가 복수할 것을 알고도 감히 오려 하다니 간이 큰 놈이구나.”
“백리 소저가 신변 안전을 위해 백소운 그자에게 부탁을 한 모양입니다. 한 마디로 본궁을 우습게 보고 있는 것이지요. 한 사람만으로 본궁 전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심종주가 분노한 표정을 지었다.
천룡공자가 말했다.
“이번 기회에 놈을 꼭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오겠습니까? 아마도 핑계를 대고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놈은 반드시 올 겁니다. 자신의 무공을 믿고 있으니, 어디로 가든 안전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게다가 놈은 무림맹 총단 하인 출신이라 백리 소저의 부탁을 거절 못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총군사.”
“놈은 백리 소저와 달리 음독으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부득이 본궁의 법보를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떤 법보 말이오?”
“천룡망(天龍網)을 사용하면 설사 상대가 무형검 고수라 해도 생포할 수 있지요. 천룡망에 갇히면 내공이 일시 사라지기 때문에, 그때 궁주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천룡검(天龍劍)으로 목을 베면 될 겁니다.”
무심선생이 말을 하며 종리붕의 허리에 달린 검을 쳐다봤다.
평범해 보였으나 그 기운이 예사롭지 않았다.
“천룡망에 천룡검이라. 천룡망을 한번 사용하면 일 년 후에나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게 마음에 걸리나, 놈의 무공을 생각하면 사용해야겠군.”
“네. 궁주님. 백소운 그자의 무공은 무명객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항간에는 무명객이 자신의 모든 공력을 놈에게 주고 등선했다는 소문도 있지요.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이오. 한 수에 천여 명의 무공을 폐쇄한 놈이오. 어찌 방심할 수 있겠소. 물론 내 적수는 안 되겠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놈을 죽일 때는 칠십이 장로 모두를 대기시켜두셔야 합니다. 그러면 필승입니다.”
“알겠소. 총군사의 의견에 따르겠소.”
종리붕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회의를 마무리하려 할 바로 그때.
무사 한 명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궁주님. 백소운이 왔습니다.”
“뭐라고? 벌써 그자가 와?”
종리붕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룡공자가 물었다.
“혼자 왔느냐?”
“아닙니다. 일행이 세 사람 있었습니다. 두 명은 소녀였고, 한 명은 노인이었습니다.”
“으음, 진하림 그년과 함께 무림맹에서 나갔으니 계집 한 명은 그년이겠군.”
“잠깐, 극아. 지금 무어라고 했느냐? 백소운 그자가 무림맹에서 나갔다고?”
“네. 아버님. 아직 모르고 계셨습니까?”
천룡공자, 즉 종리극(鍾離克)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심선생이 눈을 빛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궁주님. 혹시 그자를 포섭하시려는 겁니까?”
“생각 중이오. 무림맹에서 나왔다는 것은 뭔가 불만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소? 하기야 하인으로 생활했다고 하니 그동안 업신여김을 많이 받았겠지. 혹시라도 우리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본궁의 천하제패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소.”
“하지만 그자는 본궁의 정예인 천룡백수를 무공폐쇄시킨 바 있습니다. 그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하하하. 물론 천룡백수가 아까우나 이미 무공이 폐쇄되어 다들 고향으로 보내지 않았소? 게다가 본궁에는 고수가 바닷가의 모래알보다 많소. 백소운 그자만 얻을 수 있다면 그 일은 없던 것으로 넘어갈 수 있소.”
“과연 궁주님의 배포는 대단하십니다. 사실 저 역시 아까운 인재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우리 편이 안 되면 나중에 화근이 될 수 있어 제거하려 했지요. 궁주님 말씀을 듣고 보니 한 번쯤 포섭을 해볼 필요가 있겠군요.”
“물론이오.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소. 백소운 그자를 극진히 대접하도록 하시오. 기회를 봐서 내가 직접 마음을 떠보겠소.”
“네. 하지만 돈보다는 미인에 흔들리는 게 바로 젊은이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저기 앉아 계신 종리 소저에게 접대를 맡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무심선생이 한쪽 구석에 앉아 있는 한 소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경국지색의 미인이었다. 뜻하지 않게 자신이 언급되었음에도 놀라지 않고 태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친인 종리붕은 그러질 못했다.
“백소운 그자를 사위로 삼으라는 말씀이오?”
“그 정도 조건을 제시해야 마음이 움직일 겁니다. 결단을 내리십시오.”
무심선생의 말에 듣고 있던 종리극이 버럭 화를 냈다.
“총군사. 내 여동생을 이용해 그놈을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이오? 절대 안 될 일이오.”
“종리 소저와 진짜 혼인을 시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일단 미끼를 물게 하고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지요. 백소운 그자는 현재 거의 유일하게 지옥맹 고수들을 상대할 수 있는 자입니다. 향후 혹시 모를 지옥맹과의 최후 결전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게다가 저대로 놔두면 백리 소저 또한 그자에게 마음을 뺏길 우려가 있습니다. 그자에게 백리 소저를 뺏기고 싶으십니까?”
“그건 안 될 일이지. 으음, 좋소. 나는 관여하지 않겠소. 아버님께서 최종 결정을 내리십시오.”
“으음, 일단 교아 너의 생각부터 듣고 싶구나. 이 아비의 대업을 위해 네가 수고를 좀 해줄 수 있겠느냐? 물론 네가 피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단지 몇 마디로 그 녀석을 미색에 빠지게 하면 된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지만 백소운 그자는 이미 강호의 영웅이 되었는데, 소녀에게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군요.”
“하하하. 제아무리 여색에 무심해도 교아 너에게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너는 특별한 매력을 지니고 있으니까. 이 아비는 너만 믿는다. 어서 백소운 그자를 데리고 오너라.”
“네. 아버님.”
종리교(鍾離嬌)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간 착잡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님께서 아직 천하제패라는 허욕을 버리지 못하고 계시구나. 백리 소저에게 음독을 사용하려는 계획에 찬성하신 것도 그렇고. 딸을 이런 일에 이용하려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자식 된 도리로서 따라야겠지. 그나마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던 사람이라서 다행이긴 하다. 안 그랬으면 딱 잘라 거절했을 텐데······.’
종리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물론 그녀가 가려는 곳은 백소운 일행이 대기하고 있는 객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