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82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죠? 아무래도 오라버니가 천룡백수를 무공폐쇄시킨 일 때문에 불안해요. 저들이 복수하려 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스스로 찾아온 사람에게 그렇게 바로 공격을 하겠느냐?”
백소운이 느긋하게 말했다.
하지만 진하림은 여전히 불안한 표정이었다.
함께 천룡궁 객청에 있던 임소혜와 괴추노인도 긴장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진 소저 말씀에 일리가 있어요. 애초에 무작정 이곳에 오는 게 아니었어요.”
“두고 보면 알겠지요. 어떤 경우라도 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보다 천마대부인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주시겠습니까?”
“대체적인 말씀은 드렸고, 남은 것은 제가 어렸을 때 어머님과 지냈던 세세한 추억뿐이에요. 아무래도 단서를 통해 뭔가를 추측하시려는 것 같은데, 어느 부분을 듣고 싶으세요?”
“잃어버린 아드님, 그러니까 임 소저의 친오빠 되는 분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습니다. 나중에 천마대부인을 찾게 되면 기억도 회복시켜드려야 하니까, 치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지요.”
“아, 듣고 보니 그렇군요. 어머님께서 오라버니 때문에 그렇게 되신 것이니, 그 문제만 해결되면 어쩌면 다시 기억을 되찾을 수도 있을 거예요.”
“잘 보셨습니다.”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사실 그는 내심 천마대부인의 정보를 모아 자신만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상태창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천룡궁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해보자. 천마대부인은 어디에 계신가? 이곳 천룡궁 안에 계신가?’
백소운의 의념을 낸 그 순간.
상태창 하나가 나타났다.
‘지금까지 웬만한 것은 다 알아내던 상태창인데, 직접 당사자를 보지 못해서 그런 건가. 아무튼, 확인되지 않는다는 말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란 말이겠군. 지금으로선 계획대로 오늘 밤 정밀 수색을 해볼 수밖에 없겠구나.’
백소운이 천마대부인을 찾을 방안을 여러모로 궁리했다.
그러는 동안 임소혜는 오빠와 관련된 여러 가지 소소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물론 그녀는 오빠 얼굴도 모른다.
하지만 천마대부인이 가끔 맑은 정신이 들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오빠를 찾는데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등에 새겨진 문신이에요. 성화 모양인데, 보기를 원하신다면 잠시 제 등에 있는 것을 보여드릴 수도 있어요.”
“아, 아닙니다. 그럴 필요까지야. 대신 손으로 그려주시겠습니까?”
백소운이 당황했다.
사실 그는 일전에 그녀를 구출하면서 그 문신을 본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죠.”
임소혜가 손에 내기를 담아 탁자에 성화 모양을 그렸다.
그림은 매우 정교했다. 섬뜩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여전했다.
“기억하셨어요?”
“네. 이제 지워도 됩니다.”
“네.”
임소혜가 성화 그림을 지웠다.
사실 이는 가문의 비밀이기 때문에 외부 사람에 보여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죄송하지만 이 성화문신 이야기는 다른 사람에게는 하지 말아주세요. 도마왕 쪽 사람들이 가짜 문신을 만들 우려가 있으니까요.”
“알겠습니다. 하림이 너도 알았지?”
“네. 걱정하지 마세요.”
진하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밝게 웃었다.
하지만 속마음은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백소운이 전격적으로 마교의 성녀를 돕고 있는 것이 너무 불안한 그녀였다.
하지만 백소운의 뜻이라면 일단 무조건 믿고 따르려는 그녀였기에 내색은 하지 않았다.
‘오라버니도 뭔가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것이겠지. 내가 나설 일은 아니다. 오히려 입을 함부로 놀리면 큰 화를 자초할 수 있다.’
진하림이 스스로 다짐할 때.
한 소녀가 객청 안으로 들어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저는 종리교라고 해요. 반가워요. 어느 분이 백소운 공자이시죠?”
“접니다. 반갑습니다. 혹시 천룡궁주님의 여식이십니까?”
“네. 저를 알고 계셨나요?”
종리교가 얼굴을 조금 붉혔다.
그 모습이 너무 순수하고 청초해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천성적으로 매력이 있는 소녀로군.’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깊은 깨달음을 얻은 그가 미색에 현혹될 리는 없었다.
종리교가 살짝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백소운을 포섭하는 임무를 잊지 않고 있는 그녀였다.
백소운이 말했다.
“여기 오기 전 천룡궁에 대해 조금 알아봤습니다. 소저께서는 강남제일미로 소문이 자자하시더군요. 게다가 천성도 선량해 장사에 사는 분들로부터 인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호호호. 감사해요. 하지만 모두 허명이에요. 실속은 없지요. 그래 무슨 일로 본궁에 오셨나요? 사실 본궁의 천룡백수 분들이 공자께 무공을 폐쇄당해 윗분들이 다들 심기가 불편하세요. 그래서 제가 먼저 사정을 알아보고 아버님께 데려갈지 결정할 생각이에요.”
“그랬군요. 그보다 함께 온 분들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네. 제가 실례를 했군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백소운이 말한 후 진하림, 임소혜, 괴추노인을 소개해줬다.
“다들 만나서 반가워요. 이제 본궁에 온 목적을 말씀해주시겠어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백리 소저의 부탁을 받았다고 하시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네. 맞습니다. 역시 천룡궁은 정보가 빠르군요. 자, 이제 어떻게 하실지 결정해주십시오.”
“으음, 좋아요. 일단 아버님께 데려가겠어요. 다만 백 공자 한 분만 가능해요. 다른 분은 죄송하지만 이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본궁에 머무는 것이 결정되면 따로 객방을 내드릴 거예요.”
“알겠습니다.”
진하림이 대표로 수락했다.
원래 그녀와 임소혜, 괴추노인 세 사람은 백소운을 따라왔기 때문에 구태여 천룡궁주를 만나볼 필요가 없었다.
특히 임소혜 역시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자칫 천룡궁주 종리붕의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여기서 다들 기다립시오. 저 혼자 따라갔다 오겠습니다.”
“네. 조심하세요.”
임소혜가 고개를 조금 숙여 걱정을 표했다.
종리교가 두 눈 가득 이채를 띠었다.
‘두 소녀 모두 백 공자를 마음에 두고 있구나. 특히 임 소저는 무공도 매우 뛰어나다. 조심해야겠군.’
“절 따라오세요.”
“네.”
백소운이 종리교를 따라 궁주 집무실이 있는 천룡각(天龍閣)으로 향했다.
* * *
“하하하. 어서 오시오. 백 공자.”
종리붕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는 백소운을 반겼다.
백소운으로서는 생각도 못 한 환대였다.
함께 있던 십여 명의 천룡궁 지휘부 고수들도 환영했다. 다만 천룡공자 종리극 한 사람만이 안색을 굳혔을 뿐이었다.
“백소운입니다.”
백소운이 가볍게 포권했다.
어느새 담담한 기도를 회복한 그였다.
종리붕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지휘부 고수들을 소개했다.
“하하하. 백 공자. 어서 앉으시오. 교야. 너도 앉아라.”
“네. 아버님.”
종리교가 자리에 먼저 앉았다.
백소운 역시 착석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녀의 옆자리였다.
종리붕이 말했다.
“백 공자. 당금 강호 최고의 영웅께서 어인 일로 본궁으로 온 것이오?”
“백리 소저의 부탁으로 하루 앞당겨 오게 되었습니다. 백리 소저가 올 때까지 이곳에서 머물 수 있겠습니까?”“하하하. 물론이오. 그보다 지난번 악양에서의 싸움은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오해라니요?”
“본궁의 천룡백수가 백 공자를 공격한 일을 말하는 것이오. 내 분명 백 공자에게 공손하게 대하라고 명을 내렸는데, 그만 하달이 되지 않았던 것 같소. 아무튼, 그 결과 천룡백수 그놈들이 백 공자에게 좋은 가르침을 받았으니 잘된 일이오. 무공 폐쇄까지 당한 것은 좀 그렇다고 생각하나 이미 벌어진 일이 아니겠소? 그 일로 백 공자를 뭐라 할 생각은 전혀 없소이다.”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드립니다. 먼저 공격을 가해오지 않았다면 저 역시 공격하지 않았을 겁니다.”
백소운이 미소를 지었다.
종리붕 등의 속셈을 대강 간파한 그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대가 부드럽게 나오는데 일부러 험악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잘 이용해 천룡궁 역시 지옥맹을 상대하는데 끌어들일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백소운이 다시 말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천룡백수 그분들의 무공을 폐쇄한 것은 유감입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무공을 회복시킬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차후 여건이 조성된다면 제가 회복시켜드릴 것을 약속드리지요.”
백소운의 말에 종리붕 등 천룡궁 고수들이 깜짝 놀랐다.
한번 무공 폐쇄가 되었다가 공청석유의 도움으로 회복한 종리극 또한 놀란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무공 회복은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공청석유라고 해도 즉시 복용을 해야 했는데, 시간을 지체한 것이 그 원인이었다.
백소운이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다시 말했다.
“천룡공자 역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것 같군요. 여건이 조성된다면 천룡공자의 무공 역시 완전히 회복시켜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그 여건이란 게 무엇이오?”
종리극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가 무공이 폐쇄되었을 당시는 막 무공이 상승 경지에 접어들려는 찰나였다.
하지만 다시 무공을 회복하는 과정이 불완전해 이전 경지까지 다시 도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내일 백리소저가 오면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흥! 말장난으로 위기를 벗어나려는 것이오?”
“극아. 무슨 말버릇이냐? 백 공자는 당금 무림의 최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분이다. 당장 사과하지 못하겠느냐?”
“아버님······.”
종리극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종리붕이 한번 화를 내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총군사 무심선생이 말했다.
“궁주님. 노여움을 푸십시오. 백 공자 역시 대공자의 사과를 받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소? 백 공자.”
“네. 맞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환대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별다른 말씀이 없으시다면 객청에 돌아가서 쉬고 싶군요. 일행이 있어서······.”
“하하하. 물론이오. 그 전에 본 궁주가 약소한 선물을 준비했는데 받아주시겠소?”
“괜찮습니다.”
“아니오. 꼭 받아주시오. 받는다고 약속을 해야 보내드리겠소.”
“으음, 그렇게 하지요.”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리붕이 눈짓을 하자 무사 한 명이 철상자 하나를 가져왔다.
상자 뚜껑을 여니 각종 보석이 가득했다.
“부족하지만 내 선물이오. 약속했으니 받아주시오.”
“재물은 저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약속하지 않았소?”
“그 약속이란 게 도의에 어긋나지 않음을 전제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받은 것으로 하지요.”
백소운이 다시 한번 사양하자, 종리붕도 더는 권하지 않았다.
“하하하. 좋소. 그럼 오히려 한 가지 부탁을 드리겠소. 부탁은 들어주겠소?”
“네. 도의에 어긋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들어드리겠습니다.”
“다른 게 아니오. 내 딸 교아가 백 공자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고자 하니 무공을 좀 봐주시겠소? 오늘 하루만 지도를 해주시면 좋겠는데, 가능하겠소?”
“가능합니다. 점심 식사 후 시간을 내도록 하지요. 한나절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좋소이다. 오늘 밤 백 공자를 환영하는 연회를 열 생각이니 그때까지 지도를 좀 해주시오. 그리고 연회 때에는 함께 오신 분들도 모두 참석해주시면 좋겠소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맙소. 교야. 백 공자를 객청으로 다시 모셔다드려라. 그리고 점심때 음식 대접은 내가 책임지고 해드려야 한다. 천하제일고수에게 지도를 받는 데 어찌 공짜가 있겠느냐? 재물에 현혹되지 않는 대장부인 백 공자에게 식사 대접이라도 잘해드려야지. 알겠느냐?”
“네. 아버님.”
종리교가 미소를 지으며 백소운을 데리고 집무실에서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가자, 무심선생이 물었다.
“궁주님. 어떻습니까? 우리가 포섭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직은 모르겠소. 다만 교아를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으니 좀 더 두고 봅시다.”
“만약 포섭에 실패한다면?”“그럼 가차 없이 죽여야 하지 않겠소? 오늘 밤 연회 때 백소운 그자의 생사가 결정될 것이오. 천룡망을 발사할 준비를 확실히 해두시오.”
“네. 궁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