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84
먼저 장풍을 날린 것은 유가호였다.
바로 그의 독문무공인 극빙장(極氷掌)이었다. 이번 대결에 천룡궁의 명예가 달려있다는 점을 알고 처음부터 전력을 기울였다.
쏴아아.
거대하고도 싸늘한 암경이 다가오는 가운데 백소운이 가볍게 양손을 흔들었다.
바로 금단장이었다.
꽝.
두 사람 사이에 거대한 기의 폭발이 일어나며 연회장 전체가 흔들렸다.
“으윽.”
유가호가 신음과 함께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백소운을 상대한 것 치고는 선전한 셈이었다.
하지만 패배는 패배였다.
“내가 졌소.”
유가호는 백소운이 마지막으로 힘을 줄여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천룡궁의 체면이 달려있기 때문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방심했다면 제가 졌을 겁니다.”
백소운이 겸양하며 포권했다.
유가호 역시 포권하며 자리로 돌아갔다.
종리붕이 껄껄 웃었다.
“역시 명불허전이오. 하지만 대결이 너무 싱겁게 끝났소. 한 사람 더 상대해주시겠소?”
“그렇게 하지요.”
“좋소. 으음, 누가 좋을까.”
종리붕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대청 안에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칠십이 장로가 모두 참석해있었다.
죽은 궁반척 대신 새로 임명된 장로 역시 참석했기 때문에 한 명도 빠짐이 없었다.
‘으음, 아무래도 장로 중 한 명을 골라야겠군. 실력을 숨기고 있는 자 중에 한 명을 고르면 승산이 있을 것이다.’
종리붕이 장로들의 얼굴을 쳐다볼 바로 그때였다.
종리극이 나섰다.
“본인이 한번 가르침을 받아보겠소.”
“천룡공자시군요. 좋습니다.”
백소운이 그다지 놀라지 않고 태연하게 응수했다.
다만 종리극의 손에 들려 있는 기이한 물건에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우산 모양의 그것은 끝이 뾰족하여 병기로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이한 것은 표면에 천룡이 수놓아져 있다는 점이었다.
종리붕의 안색이 굳어졌다.
‘천룡망! 천룡망을 가지고 상대할 모양이구나.’
그랬다.
종리극이 가지고 있는 무기는 바로 천룡망이었다.
원래 천룡망을 사용할 고수는 따로 있었다. 하지만 종리극이 백소운을 제압할 욕심에 빼앗아 온 것이었다.
이 천룡망은 천룡궁의 법보 중 최상승의 것으로, 상대가 어떤 고수라도 포획할 수 있는 특징이 있었다.
특히 무형검의 고수에게도 통한다는 이야기까지 있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냈다.
하지만 아직 강호에 무형검의 고수가 나타난 적이 없어, 그 말은 어떤 고수라도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으로 여겨졌다.
‘저 녀석이 어쩌려고.’
종리붕이 당황하자, 옆에 있던 무심선생이 전음을 날렸다.
「궁주님.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비무 형식을 빌린 것이니 뒤탈은 없을 겁니다. 성공하면 놈을 제압해서 좋고, 실패해도 그만입니다. 사실 천룡망만큼 놈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만약 천룡망도 통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놈의 실력이 입증된 셈이니, 지옥맹과의 동맹을 조금 늦추고 사태를 관망하는 게 좋습니다.」
「중립을 지키자는 말씀이오?」
「네. 지옥맹 사자에게는 백소운 때문에 동맹을 맺기 힘들다고 하면,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양측의 싸움 결과를 보고 강한 쪽에 붙는다면 어찌 본궁의 존립이 위태롭겠습니까? 오히려 전력 약화를 피하고 최후의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겁니다.」
「좋은 계책이오. 어차피 벡소운 뒤에는 무림맹이 있을 것이니, 우리는 지옥맹과 무림맹의 싸움을 기다리면 되겠군. 한데 천룡망으로 생포를 하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 다시 풀어주기도 뭐할 것 같은데······.」
「우리에게 잡히면 그때는 가차 없이 죽여야 합니다. 명분도 있고, 무엇보다 그 정도 실력밖에 안 되는 자라면 이용가치가 없습니다. 차라리 놈을 죽인 후 지옥맹과 처음부터 손잡고 대업을 이루어 나가는 게 좋습니다. 이제 비무를 시작시키십시오.」
「알겠소.」
종리붕이 전음을 날린 후 대치하고 있는 백소운과 종리극을 쳐다봤다.
종리극은 천룡망을 앞으로 뻗어 발사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반면 백소운은 아까와 마찬가지로 두 손을 앞으로 뻗은 상태였다.
“시작하시오!”
종리붕의 말이 떨어졌다.
슈우웅.
천룡망이 그대로 발사되었다.
망이 펼쳐지며 백소운의 전신을 감싼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백소운이 흠칫하며 장풍으로 막으려 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무 소용이 없었다.
“으음······.”
백소운이 신음과 함께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천룡망은 그를 조여 왔다.
“하하하! 백소운 네놈이 드디어 잡혔구나. 버리지 같은 하인 놈이 무공이 높아졌다고 무게를 잔뜩 잡더니 꼴좋다.”
종리극이 껄껄 웃었다.
처음부터 백소운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였다.
백소운이 무명객에게 무공을 전수받은 사실을 듣고 난 후에는 더 했다.
하지만 부친의 명이 있어 지금까지 참아왔었는데, 이제 그의 뜻을 말릴 사람은 없었다.
“아버님. 저놈을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어쩔 셈이냐?”
“놈의 목을 잘라 무명객 그놈에게 본을 보이고 싶습니다. 이미 천룡망에 갇혀 내공을 사용하지 못할 것이니, 일검이면 가능할 겁니다.”
“내 검을 사용해라. 천룡망에 갇힌 사람을 죽이는 것 또한 보검이 없으면 쉽지 않을 일이다.”
종리붕이 혹시 종리극이 다칠 것을 염려해 천룡검을 풀어주었다.
“감사합니다.”
종리극이 천룡검을 받아 쥐고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진하림이 백소운 앞으로 나와 종리극을 막았다.
“오라버니는 아무도 못 건드린다!”
“후후후! 또 네년이냐? 따지고 보면 내가 이전에 당했던 모욕은 모두 네년 때문이었다. 네년부터 목을 잘라주마.”
“극아. 무슨 짓이냐? 죽이더라도 백소운 저자만 죽여라. 강호의 소문을 더 악화시킬 생각이냐?”
종리붕이 종리극을 나무랐다.
그러면서 백소운을 보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백소운. 솔직히 아쉽다. 네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기대도 안 했을 텐데······ 하지만 네가 지옥맹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죽일 수밖에 없다. 이해해라. 죽기 전에 할 말이라도 있느냐?”
“지금이라도 이 거추장스러운 것을 떼어내면 마음을 돌리실 생각입니까?”
“무슨 소리냐? 그럼 일부러 당한 체하고 있다는 말이냐?”
“······.”
백소운이 말없이 진기를 일으키자 천룡망이 그대로 가루로 변해버렸다.
그때였다.
종리극이 벼락같이 다가와 천룡검으로 백소운의 목을 베어버렸다.
쐐애액.
백소운이 신형을 비켜 검을 피했다. 이후 오른 주먹으로 종리극의 턱을 강하게 쳤다.
퍽.
“크윽!”
종리극이 비명과 함께 뒤로 날려가 쓰러졌다.
“극아!”
종리붕이 매우 놀라 종리극에게 날아가 그를 부축했다.
하지만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큰 상처는 아니니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먼저 저를 죽이려 했으니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종리붕의 안색이 굳어졌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돌연 껄껄 웃었다.
“하하하. 내가 실수를 했소이다. 백 공자의 무공은 천하제일인데, 이까짓 술수로 제압했다고 생각했다니. 용서해주시겠소?”
“내일 백리 소저가 올 때 흉계를 꾸미지 않는다고 약속하시면 이대로 물러가겠습니다.”
“물론이오. 내 어찌 그런 짐승 같은 짓을 할 수 있겠소? 아까 교아에게 듣고 깜짝 놀랐소이다. 절대 백리 소저에게 무례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오.”
종리붕이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이 너무 비굴해 보였다. 천룡공 고수들이 함께 수모를 당했다고 느꼈을 정도였다.
특히 칠십이 장로들은 이미 병장기를 뽑고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심선생이 중재에 나섰다.
“오늘 일은 내일 백리 소저가 왔을 때 다시 의논하기로 하지요. 친목을 다지기 위해 했던 비무가 이렇게 변질되다니, 우리 모두가 뜻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던 것 같소이다. 백 공자. 그렇게 해주시겠소?”
“네. 물론입니다. 그럼 내일 뵙기로 하지요.”
“고맙소. 백 공자.”
종리붕이 안색을 풀고 말했다.
백소운이 계속 강하게 나왔다면 필살의 무공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이미 기세에 있어 백소운에게 눌린 그였다.
무엇보다 그는 백소운처럼 그렇게 천룡망을 가루로 만들 능력이 없었다.
그가 비굴한 모습을 보인 것 역시 바로 그 때문이었다.
‘내 적수가 아니다. 정말 보통 놈이 아니구나. 너무 과소평가했다.’
종리붕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룡검을 회수한 그는 사람을 시켜 종리극을 방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백소운의 말대로 종리극은 이제 안색이 많이 돌아와 있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종리붕이 다시 한번 정식으로 사과했다.
“백 공자의 무공은 가히 신과도 같소. 내 적극적으로 그대의 뜻에 따를 것을 고려해 보겠소. 한데 아까부터 이야기했던 그 여건이란 것이 혹시 본궁으로 하여금 지옥맹에 대항하라는 것이 아니오?”
“그렇습니다. 아마도 내일 백리 소저가 제시하는 조건과 비슷할 겁니다. 지옥맹의 움직임이 곧 본격화될 것이니 함께 힘을 뭉치자는 뜻이지요. 그러지 않고 놈들의 속임수에 넘어가 동맹을 맺는다면 반드시 토사구팽이 될 겁니다.”
“그럼 사도맹과 마도맹은 어떻게 되는 것이오? 본궁이 그들과도 싸워야 하오?”
“그 문제는 내일 백리 소저가 말할 겁니다.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사도맹과 마도맹 모두 힘을 합쳐 지옥맹을 상대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들의 힘이 그렇게 강하오?”
“네. 지금까지 보여준 힘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천룡궁이 살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음을 명심하십시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지요.”
백소운이 인사한 후 진하림, 임소혜, 괴추노인과 함께 객청으로 돌아갔다.
백소운 일행이 사라지자, 종리붕이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어찌 이런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저놈에게 이런 수모를 겪다니······.”
“잘 참으셨습니다. 아직 궁주님의 진짜 실력을 보일 때가 아닙니다. 만약 조금 전에 궁주님이 본 실력을 보여 놈을 죽였다면, 필시 지옥맹에서 경계를 했을 겁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진정으로 승리하는 법이니, 당분간 놈의 비위를 맞춰주는 게 좋을 듯합니다.”
무심선생의 위로에도 종리붕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분을 아직 못 푼 듯 오른 손바닥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대리석으로 만든 탁자가 그대로 두 동강 나버렸다.
“모두 돌아가라. 혼자 있고 싶다.”
종리붕이 손을 저으며 대청에서 나갈 것을 명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백여 명이 넘는 고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각자 처소로 돌아갔다.
연회장에 남은 사람은 종리붕과 무심선생 두 사람뿐이었다.
“총군사는 왜 계속 있는 것이오?”
“보고할 내용이 있었는데, 미처 말씀드리지 못해서······.”
“무슨 일이오?”
“그게······ 천룡부인(天龍婦人)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소?”
종리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급해 보이는 것이 천룡부인이란 여인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부인께서 떠나려 하십니다. 천룡장원(天龍莊園)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은 안 될 말이지. 내가 지난 일 년간 그녀에게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으음, 아무래도 최후의 수단을 써야겠소. 지금 당장 장원으로 갈 준비를 하시오. 그동안 예의를 다해 그녀의 마음부터 얻으려 했으나, 이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것 같소.”
“잘 생각하셨습니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여자입니다. 강제라도 부부의 연을 맺으면 어쩔 수 없이 궁주님을 따를 겁니다.”
“아니오. 지금 생각해보니 강제로 몸을 취하면 자진할 여인이오. 차라리 내일 이곳으로 데려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혼례식을 치르는 것이 낫겠소. 그동안 내가 그녀를 보살펴 주었으니, 강제라도 혼례를 치르면 어쩌면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조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