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88
극마도인의 등장은 무림맹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임소혜와 괴추노인 두 사람은 그가 데려온 면사여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바로 그녀가 천마대부인이기 때문이었다.
백리영이 다소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가 지옥맹 장로란 말인가요?”
“그렇소. 백리 소저. 천하제일미라는 소문답게 정말 미인이시구려.”
“흥! 지금 그따위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군요. 여태까지 귀맹의 공격으로 전사한 본맹 무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앞에 뻔뻔하게 나타나다니 간도 크군요.”
“하하하. 본인은 본맹의 특사 신분으로 온 것이오. 사실 천룡궁에서 볼일을 마치고 무림맹으로도 가려고 했소. 한데 백리 소저와 총군사인 자명선생까지 이곳에 오셨으니, 내 어찌 그대들을 만나보지 않겠소?”
“무슨 뜻인가요? 조금 전에 들으니 천룡궁과 연합을 시도하러 왔다고 하더니, 본맹과도 연합을 모색하는 건가요?”
“하하하. 무림맹과는 평화협정을 맺고 싶소이다. 몇 가지 우리의 조건을 받아준다면 굳이 싸움할 필요가 있겠소?”
“흥! 말이 좋지 실제로는 투항을 말하는군요. 그 조건이란 것이 본맹 지휘부의 퇴출 같은 것이 아닌가요?”
“역시 총명하시군요. 오직 그 길만이 무림맹의 살길이 될 것이오. 본인의 말을 맹주께 전해주시겠소?”
“전하고 말고가 없겠군요. 투항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거절한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천룡궁과의 연합도 용납하지 못해요. 천룡궁은 본맹과 연합할 테니까. 그러니까 지금 당장 귀맹으로 돌아가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사신 임무에만 국한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고 공격을 가하겠어요.”
백리영의 말에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극마도인을 포위했다.
무심선생이 말했다.
“백리 소저. 무림 관례상 사신은 공격할 수 없소. 포위를 푸시오. 잠시 생각을 할 시간을 가집시다.”
“무슨 뜻인가요? 백 공자 말씀대로 정말 천룡궁이 지옥맹과 연합할 생각인가요?”
“아직 결정되지 않았소이다. 하지만 몇 가지 정도는 명확해졌소. 백리 소저가 우리 대공자님과 혼인한다면 무림맹과 뜻을 같이할 것이오. 반대로 혼사를 파기한다면 그대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부득이 지옥맹과 연합할 생각이오.”
“영악하군요. 궁주님도 같은 생각인가요?”
“그렇소. 마지막으로 묻겠소. 내 자식과 혼인하겠소? 아니면 혼사를 파기해 본궁이 지옥맹과 손잡는 것을 지켜보겠소? 무림의 운명이 백리 소저에게 달려있으니 심사숙고하시오.”
“그야 당연히 혼사 파기예요. 최종적인 결정이니 더 이상 언급되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제 혼사와 지옥맹과의 연합은 별개의 문제예요. 자꾸 두 가지를 연결해 저를 압박하시는군요. 그렇다고 제가 흔들릴 줄 알았다면 오산이에요.”
“으음······.”
종리붕이 안색을 굳혔다.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백리영의 결심이 워낙 굳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최종적으로 혼사 파기를 선언하기에는 미련이 많이 남았다.
특히 당사자인 종리극이 전음으로 계속 혼사 파기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극마도인이 말했다.
“궁주께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 일단 예정된 혼사를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것참 좋은 생각입니다. 궁주님. 혼례부터 치르시지요.”
무심선생의 권유에 종리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소. 백리 소저. 내게 잠시 시간을 주겠소? 혼례식은 최대한 간소화해서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오.”
“좋아요. 저 역시 궁주님의 혼례를 방해할 생각은 없으니까.”
백리영이 한발 물러섰다.
사실 그녀도 강하게 나가긴 했으나 천룡궁과 지옥맹의 연합을 막아야 할 처지였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자명선생 등과 논의할 필요가 있었다.
한편 백소운은 이야기를 들으며 천마대부인에게 해금단을 복용할 시기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혼례를 먼저 진행하기로 하자 내심 기뻐했다.
혼례식이 거행되는 도중 극마도인과 천마대부인이 떨어져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심선생이 말했다.
“자, 그럼 지금부터 궁주님과 천룡부인 두 분의 혼례식을 거행하겠습니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본궁 관례에 따라 두 분이 맞절을 하는 것으로 혼례를 마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른 분들은 모두 의자에 착석해주십시오. 궁주님과 천룡부인 두 분은 혼례복으로 갈아입고 오십시오.”
“하하하. 알겠소. 함께 옷을 갈아입고 올 것이니, 극마도인께서는 이제 부인을 본인에게 넘기시오.”
종리붕의 말에 극마도인이 고개를 한번 끄덕인 후 천마대부인의 손을 놓았다.
바로 그때였다.
백소운이 기다렸다는 듯이 천마대부인에게 다가와 그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무슨 짓이오?”
종리붕이 놀라자,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천룡부인께서는 금제에 걸려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 정신을 차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인 의사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요.”
“백 공자. 천룡부인과는 무슨 사이기에 훼방을 놓는 것이오?”
“부인과 가까운 분으로부터 부탁을 받았습니다. 일단 금제부터 풀겠습니다.”
백소운이 소매 속에 넣어두었던 해금단을 꺼내 천마대부인의 입속에 넣었다.
그 바람에 면사가 벗겨져 땅에 떨어졌는데, 원래 역용했던 용모였다.
“아······.”
해금단을 복용한 천마대부인이 신음과 함께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임 소저. 부인을 좀 맡아주겠소? 얼마 후면 깨어나실 것이오.”
“네. 공자.”
임소혜가 천마대부인을 부축했다.
괴추노인이 호법을 선 것은 물론이었다.
종리붕이 언성을 높였다.
“백 공자. 천룡부인과 그대의 관계를 정확히 밝히시오. 그렇지 않으면 내 부인을 빼앗아간 것으로 알고 공격을 가하겠소.”
“혼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무슨 부인입니까? 공격을 가해 온다면 부득이 반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소운이 무형의 기세를 뿜어냈다.
종리붕 등 천룡궁 고수들이 압박을 받은 것은 물론이었다.
종리붕이 흠칫하며 극마도인을 쳐다봤다.
하지만 극마도인은 웬일인지 차분한 표정이었다.
“백소운 네놈이 마교와 결탁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구나. 천룡부인은 실제로 전대 마교주였던 검마왕의 부인인 천마대부인이다. 그리고 아마도 임 소저라는 저 계집은 실제로는 마교 성녀 임소혜겠군. 그 옆에 있는 노인은 마교 호법 괴추노인이겠고. 내 말이 틀렸느냐?”
극마도인의 말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종리붕이 먼저 말했다.
“아! 그게 정말이오? 나는 전혀 몰랐소이다. 사실 천룡부인은 일 년 전 기억을 잃고 본궁 근처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본인이 구해 지금까지 보살펴왔었소. 그러다가 정이 들어서 오늘 혼례까지 치르려 했던 것이오. 검마왕의 부인이었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오.”
이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였다. 하지만 후환이 두려워 재빠르게 발뺌을 한 것이었다.
문제는 백리영 등 무림맹 고수들의 태도였다.
“백 공자. 저자의 말이 사실인가요? 정말 저 두 사람이 천마대부인과 그녀의 딸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정이 있어 두 분을 돕게 된 것으로, 절대 마교와 결탁을 한 것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마교의 현 상황은 부교주인 도마왕이 권력을 장악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때에 임소혜 소저와 천마대부인을 도와 도마왕 세력을 제거한다면, 마교 역시 지옥맹에 대한 연합세력으로 충분히 역할을 하리라 생각입니다. 내분이 종식되면 더 이상 무림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도 받았고요. 무림맹 지휘부에 미리 말씀드리지 못한 점은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아, 그래서 무림맹을 떠나신 것이었군요.”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현 무림 상황으로 봐서 여기 계신 임 소저와 협력해 마교의 내분을 수습하고 함께 지옥맹을 상대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리가 있군요.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임 소저는 저번에 아버님을 암습하려다 체포된 후 도주한 전력도 있어서······.”
백리영이 난색을 표했다.
가능하면 백소운의 뜻을 존중해주려는 생각에 순화해서 말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림맹과 마교는 상극이었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아가씨. 아직 임 소저의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임 소저. 스스로 본인 신분을 확실히 밝혀주시겠소?”
“그래요.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무얼 숨기겠어요? 제가 바로 마교 성녀 임소혜예요. 얼마 전까지 여러분에게 붙잡혀 이곳으로 압송되고 있었지요. 이분은 제 어머님이신 천마대부인이 맞고요.”
임소혜가 말을 한 후 자신의 역용을 풀었다.
곧이어 천마대부인의 역용까지 풀어줬다. 능숙한 것이 아무래도 마교 비전의 역용술 같았다.
두 사람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으음······.”
“역시 소문대로 뛰어난 미색이군.”
임소혜와 천마대부인.
특히 젊은 임소혜의 미모는 대청 안에 가득한 사내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백리영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미모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무림맹 사람 중에는 이전에 임소혜를 본 사람이 많았다.
운송대 출발 전 처형식 때 그녀를 봤던 것이다.
종리붕이 말했다.
“임소혜 저 계집은 원래 본궁으로 압송되어 오다가 도주한 년으로 알고 있소. 한데 무림맹에서 저년을 체포하지 않고 저렇게 내버려 둬도 되는 것이오?”
“그게······.”
자명선생, 추보승, 장덕수 등이 안색을 굳혔다.
다들 백소운의 눈치를 보고 있느라 임소혜에 대한 체포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 추보승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 총군사님. 천마대부인은 몰라도 임소혜 저 여인은 체포해야 합니다. 맹주님을 시해하려 했던 계집입니다. 물론 백 공자의 말도 일리가 있으나, 일단 신병을 확보한 후 맹주님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추 단장의 말씀이 옳습니다. 일단 체포해야 합니다. 백 공자도 우리를 막지 않을 겁니다.”
장덕수까지 가세하자, 백리영과 자명선생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종리붕이 말했다.
“마녀에 대한 처리 권한은 무림맹에게 다시 맡기겠습니다. 원래는 본궁에서 처리하려 했으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귀맹에게 도로 맡길 수밖에 없겠군요.”
“흥! 제가 무슨 물건인가요? 좋아요. 잡아가려면 가보세요. 하지만 순순히 붙잡히지는 않을 거예요.”
임소혜가 검을 뽑아 들었다.
괴추노인 역시 천마대부인을 등에 업은 상태였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할 수 없군요. 아가씨. 저들 세 명 모두를 체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백 공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백리영이 백소운을 쳐다봤다.
백소운이 담담히 말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특수한 상황입니다. 저분들을 제가 보호할 수밖에 없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저들을 두둔하면 본맹과는 척을 지게 될 거예요. 물론 백 공자의 계획에 일리가 있어 아버님께 적극적으로 검토해달라고 부탁드릴 생각이에요. 하지만 그전까지는 신병을 확보할 필요성이 커요. 본맹의 체면도 있으니까. 이해해주실 수 없나요? 백 공자와 싸우는 일은 피하고 싶어 드리는 말씀이에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백소운이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자명선생이 말했다.
“할 수 없군요. 부득이 무력을 사용해야겠습니다. 아가씨께서는 물러서십시오. 제 책임으로 마녀를 체포하겠습니다. 모두 들어라. 지금 당장 마녀를 잡아라.”
“존명!”
무림맹 무사 백여 명이 일제히 임소혜에게 다가갔다.
백소운이 말은 그렇게 해도 실제 무림맹 무사들을 저지할 수 없으리라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임소혜가 소리쳤다.
“저희 걱정은 하지 마세요. 저희가 알아서 빠져나가겠어요.”
“그럴 수는 없소.”
백소운이 무형강기를 일으켰다.
순간, 다가오던 무림맹 무사들이 일제히 동작을 멈췄다.
아니 혈도를 찍혀 꼼짝을 못 한다는 말이 옳았다.
“백리 소저. 자명선생님. 지금은 무림 전체가 힘을 합쳐 지옥맹을 상대할 때입니다. 우리끼리 싸워서는 안 됩니다. 임 소저. 어서 어머님을 모시고 이곳을 떠나십시오.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흥! 누구 마음대로!”
극마도인이 코웃음을 치며 백소운에게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