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9
최씨 부인의 상태는 전해 들은 대로 엄중했다.
의식이 없는 것은 둘째 치고 안색이 흙빛이었다. 아무래도 곧 사망할 것 같았다.
진하림과 진호 두 사람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의원마저 가망이 없다고 돌아간 후라, 어떻게 해야 좋을지 갈피를 못 찾는 것 같았다.
백소운은 두 사람 옆에 앉아 그저 조용히 최씨 부인을 보고만 있었다.
그런 그의 눈빛은 다소 무심해 보였다.
진하림이 문득 그런 그를 보고 말했다.
“잠시 여기 있어 주세요. 옆집으로 가서 장 아저씨를 데려올 테니까.”
“그렇게 하시오.”
백소운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뭔가 도움이 되려고 따라온 그였다.
자리를 지키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진하림이 옆집으로 가자, 백소운이 그제야 손을 뻗어 미약하게 뛰고 있는 최씨 부인의 맥을 짚었다.
‘으음, 격공진맥으로 살펴본 바와 같군. 한 시진 내로 막힌 백회혈 자리를 뚫어주지 않으면 대라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한다.’
백소운이 최씨 부인의 손목을 놓으며 눈을 빛냈다.
그리고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호의 어깨를 한번 두들겼다.
“피곤하지 않으냐?”
“전 괜찮아요. 한데 정말 엄마를 살릴 수 없는 건가요?”
진호가 백소운을 바라봤다.
어린 마음에 진맥하는 것을 보고 의원을 대하듯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백소운이 담담히 미소 짓자 진호의 눈이 스르르 감기며 옆으로 쓰러졌다.
갑자기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든 것이었다.
물론 이는 백소운이 조금 전 수혈을 짚은 때문이었다. 워낙 기묘한 수법이라 자연스럽게 약간의 시간차가 난 것 같았다.
진호로서는 깨어나더라도 자신이 피곤해서 잠이 든 것으로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흐음······.”
백소운이 오른손을 최씨 부인의 정수리에 살짝 대며 심호흡을 했다.
금단비서에 수록되어 있던 수백 가지가 넘는 비술 중 의술과 관련된 것을 펼치려는 것이었다.
사람을 상대로 처음으로 시술하는 것이라, 조금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의술이라는 것이 하나같이 일반의술과는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는 침이 아니라 진기를 사용하는 점이었다.
물론 막힌 기를 뚫어 기혈순환을 원활하게 해주는 것은 똑같았다. 하지만 진기를 직접 투입하는 것이라 훨씬 위험했다.
그래도 그만큼 효과가 큰 것 또한 사실이었다.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금단환(金丹丸)을 먼저 복용시켜야겠구나.’
백소운이 정수리에서 손을 뗀 후 정신을 집중했다.
순간 그의 전신에 금빛 기운이 피어올랐다.
마치 아지랑이처럼 그의 몸을 감쌌다. 마치 금단비서를 익힐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백소운이 우수를 들어 눈앞에 보이는 금빛 공간 중 동심원 모양의 한곳을 건드렸다.
순간 동심원이 커지며 새로운 공간 하나가 보였다.
물론 이 또한 백소운의 눈에만 보이는 가상공간으로 금단비고(金丹秘庫)라 했다.
장방형의 모양의 그 공간에는 다시 수백 개가 넘는 문이 있었다.
백소운은 그 중 의(醫)라 적혀 있는 문을 건드렸다.
순간 문이 열리며 석실 하나가 나타났다. 석실 안에는 수백 개가 넘는 항아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항아리 겉에는 탕(湯), 산(散), 환(丸), 고(膏) 등 여러 글자가 적혀 있었다. 백소운은 그중 환(丸)이라 적혀 있는 항아리 속에 손을 넣어 구슬 모양의 단약, 즉 금단환 한 알을 꺼냈다.
그 순간 금빛 기운이 그대로 사라졌다. 석실 역시 사라진 것은 물론이었다.
백소운은 곧장 최씨 부인의 입을 벌려 그 안에 금단환을 밀어 넣었다.
순간 금단환이 스르르 녹아내리며 그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아······.”
신음과 함께 최씨 부인의 안색이 돌아오자, 백소운이 다시 오른손을 정수리에 대어 진기를 넣었다.
최씨 부인의 눈이 떠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아직 사람을 알아보지는 못하고 두 손을 들어 허우적대었다.
백소운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자신이 배운 대로 진기 치료를 마쳤다.
이 모든 게 일각도 걸리지 않은 일이었다.
이제 최씨 부인은 평온한 안색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진호 역시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났다.
백소운은 최씨 부인의 맥을 다시 짚어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성공이다. 금단환을 사용 안 했으면 어려울 뻔했다. 이 아주머니는 정말 운이 좋구나.’
한편 진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가 잠이 들었었나요?”
“그렇다. 피곤한 모양이더구나. 잠시 졸았던 것뿐이니 걱정하지 마라. 한데 네 누나가 아직 왜 오지 않는 것이지? 장씨란 분의 집이 옆이라고 했느냐?”
“네. 문 열고 왼쪽으로 내려가시면 바로 보이는 초가예요. 데려올까요?”
“아니다. 내가 가보마. 아, 그리고 아주머니는 아마 괜찮으실 것이다. 하늘이 도왔는지 저절로 좋아지는 것 같더구나.”
“그게 정말인가요?”
진호가 매우 기뻐하며 최씨 부인을 쳐다봤다.
한데 정말 백소운의 말대로 안색이 돌아오며 온몸에 기운이 살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기 있어라. 내가 옆집에 가보마.”
“네.”
* * *
“후후후. 네년이 여기 올 줄 알았다.”
“바쁜 우리를 기다리게 하다니. 꼬맹이가 이제 제법 물이 올랐군. 기루에 다시 팔면 충분히 돈이 되겠구나.”
네 명의 대한.
하나같이 우락부락하게 생긴 건달들이었다.
바로 황금방에 소속되어 빌려준 돈을 대신 받아내는 자들로, 그 수법이 흉포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장씨 사내를 만나보러 온 진하림은 그들을 보고 안색을 굳혔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어찌 그들을 잊을 수 있을까.
십일 년 전 자신을 잡아가 기루에 팔아먹은 낙양사흉(洛陽四凶)이 바로 그들이었다.
선친은 이를 따지기 위해 황금방에 갔다가 소방주의 일장에 맞아죽는 비극까지 일어났었다.
결국, 이 낙양사흉이 자신을 데려갔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낙양사흉! 황금방 소방주와 함께 내가 죽여야 할 자들이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에 손이 갔다.
하지만 검은 없었다.
하인 신분이라 수련동 외에서는 검을 차고 다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네놈들이······.”
진하림이 분노한 표정으로 노려봤다.
냑양사흉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답게 성장한 진하림의 몸매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그들 옆에는 두들겨 맞아 실신해 있는 장씨 사내가 보였다.
아무래도 총단에 사건을 알리고 돌아왔다가 이들 낙양사흉에게 당한 것 같았다.
낙양사흉 중 대형인 일흉이 말했다.
“진하림. 네년 때문에 십일 년 전 우리가 크게 다친 것은 알고 있겠지? 당시 네년을 기루에서 빼낸 그 늙은이의 일장에 맞아 중상을 입었었지. 그 후 수년을 고생한 우리는 이번 정마대전에 그 늙은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맨 먼저 네년부터 찾았다.”
“그럼 나를 유인한 것이냐? 우리 엄마를 저렇게 만든 것도 그 이유 때문이냐?”
“후후후. 네 어미는 혼자 발광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물론 어떻게든 네년을 유인하기 위해 적당히 패주려고 했었지.”
“으음, 날 어쩔 셈이냐?”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기루에 팔아버리겠다고. 십일 년 전 우리가 입은 손해가 만만치가 않아서 말이야. 물론 팔기 전에 네년의 몸부터 취하겠다.”
“짐승 같은 놈. 네놈들 때문에 내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느냐?”
“후후후. 그야 우리가 알 바 아니지. 그러게 왜 우리 소방주님께 따졌느냐? 소방주께서는 그런 귀찮은 일을 제일 싫어하시지. 지금도 마찬가지만 말이다.”
일흉의 말에 진하림이 몸을 떨었다.
애당초 복수를 위해 무공을 연마한 그녀였다. 하지만 아직 이들 낙양사흉의 상대가 되지는 않았다.
비록 황금방의 하수인이긴 하나 그 무공만큼은 무림맹 정식무사 급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중상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수년 전에 완쾌했었고, 지금은 오히려 무공이 더 높아졌다는 소문도 있었다.
“장 아저씨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저렇게······.”
“후후후. 이게 다 빌린 돈을 네년이 갚지 않아서이지.”
“헛소리마라. 당시 아버님께서는 가산을 털어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으셨다. 한데도 네놈들은 터무니없는 이자를 덧붙여 나까지 붙잡아갔었지.”
“후후후. 우리 계산법은 조금 틀려서 말이야. 윗선에 바치고 또 남는 게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제 네년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순순히 우리를 따라가자.”
“퇫!”
진하림이 역겹다는 듯 침을 뱉었다.
대화를 나눌수록 상종할 수 없는 인간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전에는 나이가 어려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현 상황의 타개였다.
어머니와 동생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무림맹 총단 소속인 줄 알면서도 이런 짓거리를 벌이는 것이냐?”
“식녀 주제에 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네년을 도와줬던 무림맹 장로 늙은이가 죽은 마당에 누가 널 돕겠느냐? 게다가 우리 황금방 또한 무림맹과 협력관계에 있는 것을 모르느냐?”
일흉의 말에 진하림이 안색을 굳혔다.
정마대전이 길어지자 부족한 자금을 위해 총단에서 정사지간의 단체에게 금전 지원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물론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하지만 황금방과 원수 사이인 진하림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후후후. 특히 우리 방주께서는 이번에 정식으로 맹에 가입하실 생각까지 하고 계시다. 한데 하녀인 네년 때문에 우리를 뭐라 하겠느냐?”
일흉이 막내인 사흉에 고갯짓을 했다.
덩치가 보통 사람 두 배 정도 되는 삼십 대 사내, 즉 사흉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진하림에게 다가갔다.
‘놈들을 물리쳐야 한다. 그래야 엄마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
진하림이 천천히 세 걸음 물러났다.
바로 육합보였다.
겉으로는 그저 물러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마당 한가운데라 방어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후후후. 세월이 빠르군. 네년 때문에 삼 년간이나 활동을 전혀 못 했던 것을 생각하면······.”
사흉이 빠르게 다가와 오른손으로 진하림의 목을 움켜쥐려 했다.
애당초 진하림이 무공을 연마하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그 속도는 매우 빨랐다.
슈우욱.
거칠고 큰 손아귀가 바로 진하림의 목에 닿기 직전, 진하림이 왼쪽으로 반보 움직여 이를 피했다. 동시에 오른손을 뻗어 사흉의 허리에 달린 도끼를 빼앗았다.
“아니!”
사흉이 매우 놀라며 도끼를 회수하려 했다.
하지만 진하림이 다시 옆으로 움직이며 이를 피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물러서는 듯하던 그녀가 어느새 빠르게 다가와 도끼로 사흉의 허리를 베어가는 게 아닌가.
“이년이!”
사흉이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조금 늦어 옆구리에 도끼날이 스치고 말았다.
푸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피보라가 솟구쳤다.
쓰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사흉이 크게 한번 휘청거렸다.
“무공을 배웠구나.”
일흉이 놀라 소리치자, 삼흉이 도끼를 빼 들어 진하림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진하림이 당황하지 않고 도끼를 들어 막자, 깡 하는 금속성이 들렸다.
하지만 힘에서 밀린 탓인지 진하림이 손에 든 도끼를 놓치고 말았다.
그때였다.
상처를 입은 사흉이 빠르게 다가와 진하림의 허리를 껴안았다.
그리고 힘을 주어 척추를 부러뜨리려 했다.
피를 보자 타오르던 음심이 사라지고 대신 살심이 솟은 모양이었다.
진하림이 고통에 찬 표정으로 몸부림을 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검만 있었으면······.’
진하림이 뒤늦게 후회했다.
육합검법을 나름 정묘하게 익힌 그녀였다.
상승검술은 아니지만 익숙하게 익혔다. 낙양사흉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혔다.
“아아아······.”
척추가 부러지려는 그 순간.
진하림은 허리 부분이 시원해짐을 느꼈다.
그것은 해방감이었다.
잠시 영문을 몰라 하다가, 고통으로 자신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낙양사흉 모두가 피를 토하며 쓰러져 있었다.
“케켁!”
“크윽!”
진하림이 놀랄 때 홀연히 한 사람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