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91
안심장원에서 나온 백소운과 진하림이 향한 곳은 객잔이었다.
천무산까지 가려면 최소한 열흘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말과 건량 등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림아. 아무래도 너는 다시 무림맹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 나와 함께 있으면 계속 위험한 일이 생길 것이다.”
“다시 하인 생활을 하라는 말씀인가요?”
“그건 아니다. 네가 걱정되어 하는 말이다.”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저는 오라버니 옆에 있을 거예요. 수발을 들어줄 사람도 필요하고 말이에요. 다시는 그런 말씀 마세요.”
“하하하. 알았다. 네 마음이 확고하다면 나도 더 이상 만류할 수 없지. 내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아라.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면 해주마.”
“정말인가요? 그럼 오늘부터 제 무공 지도 좀 해주세요. 제가 강해져야 더는 오라버니 짐이 되지 않을 것 아닌가요?”
“알겠다. 오늘부터 시간 나는 대로 가르쳐 주마.”
백소운의 수락에 진하림이 기뻐했다.
그때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탁자에 점소이가 음식을 가지고 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고맙소. 한데 마차와 건량, 그리고 물을 구할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건량과 물은 당연히 본 객잔에서 사실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마차인데, 빌리시려는 겁니까?”
“아니오. 제법 먼 길을 가야 해서 이참에 한 대 사려고 하오. 얼마 정도면 되겠소?”
“은자 열 냥 정도면 괜찮은 마차를 사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소개비까지 모두 포함된 가격입니다.”
“좋소. 은자 열다섯 냥을 줄 테니, 마차와 건량, 그리고 육포, 물 등을 준비해주시오. 마부는 따로 필요 없소. 모두 준비되면 수고비로 은자 한 냥을 더 주겠소.”
백소운이 말한 후 품속에서 은자 열다섯 냥을 꺼내주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점소이가 매우 기뻐했다.
“언제까지 준비되겠소?”
“한 시진이면 충분합니다. 염려 마시고 식사하시면서 기다려주십시오. 대인.”
점소이가 꾸벅 절하며 물러났다.
백소운과 진하림은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많이 먹어둬. 일단 출발하면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
“네. 오라버니. 한데 이렇게 단둘이 다니니까 정말 좋아요. 오라버니는 어때요?”
“하하하, 녀석. 물론 나도 좋다. 친동생 같은 너와 다니니 한결 마음이 편하구나.”
“피. 굳이 친동생 같다는 표현을 써야 하나요?”
“그런가. 그럼 진 소저라 불러야 하나?”
“호호. 그건 아니에요. 그냥 계속 제 이름을 불러주세요. 그나저나 천마대회에는 정말 가보실 생각인가요?”
“시간만 되면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지금 임 소저와 천마대부인을 지지하는 세력은 미약하기 짝이 없으니 도움을 줘야 하겠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무림맹 눈치가 보여 적극적으로 움직이기가 좀 그렇구나.”
“아저씨들 때문이지요?”
“그런 면도 있지. 나 때문에 피해를 보시면 안 되니까.”
“알고 계시는군요. 하지만 이번에 임 소저와 천마대부인을 도운 일로 무림맹에서 말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오라버니의 공이 너무 커서 설사 맹주님이라도 해도 함부로 못 할 거예요.”
“그럴까? 두고 보면 알겠지.”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진하림이 물었다.
“천무산에는 왜 가려는 거예요? 그곳에 뭐가 있기에?”
“나의 출신내력과 관계있다는 것만 알고 있어라. 사실 나 혼자 가야 하는 곳인데, 하림이 너니까 특별히 데려가는 것이다.”
“호호호. 영광인데요? 그런데 천무산이 섬서성에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화산 근처인가요?”
“그렇다. 정마대전이 막바지에 달했을 때 천무산 인근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었지. 지세가 험하고 사시사철 운무가 끼어 인적이 드물어서 그렇지 명산이란다. 이번에 가면 과연 내가 찾던 곳이 있는지 다시 한번 자세히 살펴볼 생각이다.”
백소운이 말한 바로 그때였다.
객잔 문이 열리며 수십 명의 사람이 들어왔다.
복장으로 봐서 표국 사람들 같았다. 한꺼번에 들어와서 빈자리가 모자랐다.
그 때문에 부득이 그들 중 두 명은 백소운과 진하림 두 사람과 합석을 하게 되었다.
“실례 좀 하겠소.”
합석하게 된 일남일녀 중 건장한 체구의 중년인이 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진하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중년인과 함께 앉은 여자는 십팔 세 정도로 보이는 소녀였다.
중년인이 어려워하는 것으로 보아 표국 내에서도 높은 지위에 있는 것 같았다.
진하림처럼 남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끄는 미색을 지닌 그녀는 수심이 있는지 굳은 표정이었다.
“아가씨. 화산까지는 열흘 정도면 당도할 겁니다. 이번이 첫 표물 운송이라 걱정이 되어서 그러시는 겁니까?”
“네. 총표두님. 아버님께서 제게 처음으로 맡기신 표물이에요. 물론 총표두께서 알아서 해주시고 계셔 큰 걱정은 하지 않지만, 중원 무림의 상황이 녹록치가 않은 것이 가장 큰 걱정이에요. 우리가 가지고 가는 표물이 화산파에 전달되는 것이라 더욱 그러네요.”
“무공이 뛰어난 표사 삼십 명이 동행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 동방표국이 중원과 거래한 지도 벌써 백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큰 과오 없이 표행을 수행해왔으니 이번에도 성공할 겁니다.”
“네. 당연히 그래야지요.”
소녀가 말을 하며 그제야 백소운과 진하림을 쳐다봤다.
진하림이 물었다.
“동방표국 분들인가요?”
“그렇소이다. 우리 이야기를 들으셨구려.”
“네. 바로 코앞에서 말씀을 나누셨으니 어찌 안들을 수 있나요? 호호호.”
진하림이 웃음을 터뜨렸다.
중년인과 소녀 역시 미소로 화답했다.
중년인이 백소운이 찬 무명검을 한 차례 보며 물었다.
“무림인이시오?”
“네.”
“아, 역시 그랬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사문이 어딘지 알 수 있을까요?”
“사문은 따로 없습니다. 무명소졸이라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렇소? 우리는 동방에서 온 동방표국 사람들로 나는 총표두 김기성(金氣成)이라 하오. 옆에 계신 분인 국주님의 여식인 이미린(李美隣) 소저이시오.”
“진하림이라고 해요.”
“백 공자로 불러주십시오.”
“하하하. 만나서 반갑소이다. 그래 장사분들이오?”
“아닙니다. 곧 여기를 떠날 겁니다.”
“어디로 가시오?”
“천무산입니다.”
“아, 그곳은 안개 때문에 인적이 드문 곳인데, 어인 일로 가시오?”
“사적인 일입니다. 아까 들어보니 동방표국 분들은 화산으로 가신다면서요?”
“그렇소이다. 천무산으로 가려면 화산을 거치는 것이 빠르지요. 어떻소? 이것도 인연인데 함께 화산까지 가는 것이······.”
“글쎄요. 표행과 함께 가면 속도가 느려져서······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긴급표행이라 화산까지 가는데 열흘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오.”
“그래도······ 잘 알지도 못하는 저희와 함께 가려는 이유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백소운이 난색을 표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소. 우리 아가씨께서 걱정하시기에 무림 고수인 백 공자와 함께 가려는 것이오.”
“제가 고수라는 것을 확신하십니까?”
“그렇소이다. 조금 전 살짝 기파를 보내봤는데, 꿈쩍도 하지 않더구려. 최소한 나보다 무공이 높다고 봤소. 어떻게 안 되겠소?”
“네. 죄송합니다.”
“아, 할 수 없구려.”
김기성이 아쉬워했다.
하지만 가기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사실 표행은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무림인들도 함께 다니는 것을 꺼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게다가 동방표국은 중원에 있는 표국이 아니었다.
인근에 있는 나라인 동방의 대표적 표국으로, 아무래도 표물 역시 동방에서부터 운반된 것 같았다.
‘화산에서 급히 물건을 보내 달라고 했던 것 같군. 시기적으로 봐서 혹시 지옥맹의 출현과 관계있는 것이 아닐까.’
백소운이 눈을 빛냈다.
며칠 전 남궁세가 등 무림세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괴수들의 출현에 대비해 법보들이 주목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었다.
특히 화산파는 그러한 법보들을 특히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데 동방에서까지 직접 법보를 가져오려는 것으로 봐서 아무래도 큰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하기야 지옥맹에서 정말 자신들에게 위협적인 법보의 출현을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간파한 동방표국 사람들이 경호를 더욱 보강하려는 것인 것 같군. 하지만 내가 이런 일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다고 할 수 있지.’
백소운이 식사를 빨리했다.
부탁을 계속 거절하는 것이 그의 성미에 맞지 않았기에 최대한 자리를 피하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진하림은 일어설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오라버니. 천천히 드세요. 마차를 가져오려면 한 시진이나 걸린다고 했잖아요? 따로 갈 데도 없으니 이곳에서 차나 마시면서 기다려요.”
“그래. 그래야겠지.”
백소운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객잔 문이 열리며 일단의 흑의무사들이 들이닥쳤다.
모두 백여 명 정도 되었다. 그 기세가 매우 강했다.
“모두 꼼짝 마라. 누가 동방표국의 책임자냐?”
우두머리 보이는 흑의노인의 말이었다.
김기성이 굳은 표정으로 일어났다.
“본인이 동방표국 총표두요. 귀하는 뉘시오?”
“알 것 없다. 어서 태극신고(太極神鼓)를 내놓아라.”
“태극신고라니 무슨 헛소리요? 그게 무엇이오?”
“후후후! 어디서 시치미를 떼느냐? 네놈들이 화산으로 태극신고를 운반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 당장 내놓지 않으면 객잔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겠다.”
“우리는 모르는 물건이오.”
김기성이 강하게 나왔다.
표물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비밀을 지켜야 하는 게 표행에 있어서의 철칙이었다.
특히 이번 표행은 특이하게도 표물을 나르는 쟁자수들이 없었다.
경계임무를 맡은 표사 서른 명 정도가 전부였다.
당연히 김기성과 이미린을 비롯하여 그들 중 한 명이 표물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한데 난데없이 이들이 나타나 표물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교나 사사천교 분들인가요?”
이미린이 냉랭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년은 누구냐?”
“이미린이라고 해요. 이번 표행의 총책임자가 바로 저예요. 당신들은 누군가요?”
“우리가 누군지는 알 것 없다. 어서 태극신고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이곳에 있는 놈들을 몰살시키겠다.”
“태극신고는 없어요. 우리는 단지 미끼일 뿐이에요. 진짜 표행은 다른 길로 진행되고 있어요. 포기하세요.”
“후후후!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냐? 어차피 네년과 총표두라는 저놈 둘 중의 한 명이 품속에 가지고 있겠지. 옷을 모두 벗기면 분명 물건이 나올 것이다.”
우두머리 중년인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흑의무사들이 일제히 이미린에게 다가갔다.
그에 맞서 동방표국 표사들 또한 이미린 앞에 서서 보호막을 형성했다.
“우리 아가씨는 아무도 못 건드린다!”
“계집의 몸에 물건이 있는 게 확실하구나! 쳐라!”
우두머리 중년인의 명이 떨어지자, 흑의무사들이 일제히 공격해 들어갔다.
그 기세가 너무 강해 동방표국 무사들이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때였다.
객잔 문이 열리며 백의소녀 한 명이 들어왔다.
“멈추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