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Emptiness RAW novel - Chapter 98
“여기가 동정협입니다.”
무사의 보고에 담대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 척의 배 중 지휘선에 탄 그는 무림맹 무사들의 지휘관이었다.
함께 지휘선에 탄 호법 철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천험의 요새라더니 이곳만 지키고 있으면 놈들의 함대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한 번에 두 세척 이상은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니, 대오를 갖춰 불화살을 날린다면 놈들도 진입하기 힘들 겁니다.”
“불화살은 배에서 날리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되면 놈들의 반격을 초래할 겁니다. 놈들의 배가 백오십 척 정도 된다고 볼 때 각개격파를 시도한다 해도 결국 우리가 당하게 되지요. 아, 물론 놈들의 피해는 우리보다 최소한 다섯 배 이상 날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협수로 양옆에 있는 언덕을 이용해야지요. 매복하고 있다가 화살을 날린다면 매우 효과적일 겁니다. 놈들의 공격도 피할 수 있고 말입니다.”
“배에 탄 무사들을 모두 언덕 위로 배치할 생각이오?”
“그건 아닙니다. 놈들이 저지선을 뚫고 들어올 수도 있으니까, 절반 정도만 보내면 될 것 같습니다. 각배에 이백 명씩 타고 있으니까, 백 명씩 차출하여 언덕에 배치하겠습니다. 언덕에 배치할 무사들의 지휘는 차 부대주께 맡기겠습니다. 가능하겠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지휘선에 타고 있는 저희 와룡대원 백여 명을 모두 데려가겠습니다.”
차성악이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좋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명을 하달하겠습니다. 놈들이 한 시진 후면 이곳에 도착할 것 같으니 그때까지 배치를 마무리하려면 서둘러야 할 겁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바로 그때였다.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거대한 괴어 한 마리가 무림맹 무사들이 탄 배를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데 놈은 바로 108 괴수왕 중 한 명인 괴어왕이 아닌가.
백소운에게 패해 도주했던 놈이 다시 나타난 것이었다.
콰콰콰쾅.
거대한 몸뚱이로 배를 들이받자, 배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말았다.
단순히 힘으로 부딪힌 것이 아니라 내공이 담긴 공격이었다.
“괴물이다! 놈을 죽여라!”
무사들이 일제히 화살을 날리고, 창을 던졌다. 무공이 높은 무사들은 장풍을 퍼부었다.
하지만 괴어왕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빠른 속도로 이동해 나머지 배들도 모조리 파괴해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무사들을 향해 혈괴어 수만 마리가 공격을 가했다.
원래 이들 혈괴어들은 이전에 백소운에 의해 모두 소멸하였으나, 괴어왕이 살아 있어 다시 만들어진 괴수들이었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혈괴어들은 괴어왕이 낳은 새끼들이었다.
그것도 암수교접으로 낳은 게 아니라 자체 괴력으로 생성된 것이었다. 일종의 마공이라 할 수 있었다.
“후후후! 모조리 죽여주마. 가소로운 놈들!”
괴어왕이 천둥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입에서 불을 내뿜었다.
그나마 남아있던 배들이 모조리 불에 탔다.
이제 유일하게 남은 배는 담대선생과 철구, 차성악 등이 탄 지휘선뿐이었다.
나머지 배는 결국 모두 침몰했다. 물에 빠진 무사들 역시 수장되거나 혈괴어의 독에 당해 절명했다.
순식간에 천팔백 명 정도의 무사가 목숨을 잃은 것이었다.
“이럴 수가······.”
담대선생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무사들이 반격을 가했으나 그 어떤 것도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지휘선만 무사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괴어왕이 구구궁 소리를 내며 물 위로 전신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마치 물 위를 평지처럼 꼬리를 딛고 일어선 것이었다.
“후후후! 어느 놈이 지휘자냐?”
“나다!”
담대선생이 애써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무림맹 군사냐?”
“부군사 담대선생이라 한다.”
“그래? 좋다. 네놈들을 살려 줄 테니 지금 바로 수채로 돌아가서 왕고륭 그놈에게 전해라. 동정수로채는 우리 지옥맹의 거점으로 정해졌으니, 모두 투항하라고. 투항하게 되면 목숨만은 살려줄 것이다. 어서 가서 전해라.”
“으으······.”
담대선생이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자신이 데려온 무사 대부분이 목숨을 잃은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냥 돌아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미 전의를 상실한 상황이었다.
지휘선에 있던 무사들이 모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와룡대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괴어왕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던 차성악이 소리쳤다.
“저놈만 죽이면 됩니다. 나머지 작은 괴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성악이 말을 마친 후 들고 있던 검을 그대로 던져버렸다.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날아간 검은 그대로 괴어왕의 목에 박혔다.
와아아.
무림맹 무사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그만큼 추성악이 날린 비검술이 놀라웠던 것이다.
사실 이는 그가 연마한 추룡십구검 중 최후절초인 추룡탈명(追龍奪命)이었다.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는데, 모든 공력을 쏟아 부은 것이었다.
괴어왕이 흠칫하면서도 피하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괴어왕이 침을 꿀꺽 한번 삼키자 목에 박혀있던 검이 그대로 뽑혀 나왔다.
녹색 피가 묻어 있기는 했으나 상처 부위가 그대로 아무는 것이 별 타격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후후후! 그 정도로 되겠냐? 내 적수는 천하에 백소운 그놈밖에 없다. 네 놈들은 나의 호의를 거절한 셈이니 모두 죽여주겠다. 어차피 투항해도 모두 실혼인으로 만들 계획이었다. 차라리 일찌감치 죽는 것이 깔끔할 것이다.”
괴어왕이 말을 마친 후 그대로 지휘선으로 돌진해 왔다.
그때였다.
지휘선 뒤편에서 인영 하나가 날아와 괴어왕을 향해 장력을 날렸다.
금빛의 장력은 기둥 모양으로 날아가 괴어왕의 머리를 타격했다.
퍽.
뇌수가 터지며 괴어왕이 즉사했다.
그만큼 조금 전 장력의 위력은 대단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분노한 인영, 즉 백소운이 전력을 기울인 때문이었다.
“백 대협!”
담대선생 등 지휘선에 탄 무림맹 무사 일부가 백소운을 알아보며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백소운은 대답 대신 신형을 다시 움직여 강물 위로 내려섰다.
바로 괴어왕의 사체가 떠있는 곳이었다.
수만 마리의 혈괴어가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온 것은 그 직후였다.
괴어왕의 죽음으로 혈괴어 역시 소멸할 것으로 봤는데, 예상과 달리 백소운에게 복수를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이윽고 혈괴어들이 일제히 몸을 날려 백소운의 몸을 뜯어먹으려 할 때 또다시 금빛 광채가 일어났다.
백소운의 전신에서 우러난 것으로 바로 무형금광이었다.
파파파팍, 하는 소리가 폭죽처럼 일어나며 혈괴어들이 배를 뒤집으며 모두 몰살당했다.
이 모두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백소운이 전사한 무림맹 무사들의 흔적을 보며 안색을 굳혔다.
“내가 너무 늦었구나. 이런 일을 가장 걱정했는데······.”
백소운이 탄식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었다.
향후 대책을 세우는 것이 시급했다.
결국 지휘선으로 돌아오자, 담대선생이 그를 반겼다.
“백 대협이 아니었다면 우리 모두 죽었을 겁니다.”
“아닙니다. 제가 늦게 와서 피해가 너무 컸습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놈들이 너무 강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담대선생이 백소운에게 모든 것을 맡기려는 듯 의견을 구했다.
이는 옆에 있던 철구와 차성악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으로서는 놈들의 본대 규모를 다시 확인하는 것이 급합니다. 일단 놈들의 선발대 격인 괴어들을 제거했으니, 예정대로 제가 먼저 놈들을 보고 오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수채에 이 사실을 알리고 그에 맞는 대비를 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백소운이 말을 한 후 진하림, 정기탁 등이 오고 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지휘선을 이곳에 그대로 두고 백 대협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채에 있는 태상호법님을 비롯한 삼천 무사들에게는 정 대주를 통해 연락을 취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백소운이 포권한 후 곧바로 신형을 날려 북쪽으로 향했다.
휙휙.
* * *
“소맹주님. 이제 곧 동정수로채입니다. 준비하시지요.”
“괴어왕에게서는 연락이 왔는가?”
“그야 보나마나 동정협에 도착한 놈들을 모조리 죽였을 겁니다. 아예 상대가 안 되는 놈들이니까요.”
“방심해서는 안 된다. 백소운 그놈이 이번에도 왔다면 어려워질 수 있다. 지옥사자들도 모두 오고 있겠지?”
“네. 지옥사자들에게 총소집령을 내렸으니, 지옥조(地獄鳥)를 타고서라도 모두 동정수로채로 집결할 겁니다. 한데 지옥사자들을 소집한 이유가 뭡니까?”
“몰라서 묻는 것이냐? 바로 백소운 그놈 때문이다. 당금 천하에 우리 지옥맹의 행사를 방해할 능력을 지닌 자는 그놈뿐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놈을 제거하려는 것이 이번 출정의 진짜 목적이라 할 수 있지.”
“그럼 소맹주께서 이번에 장강수로십팔채의 총채주가 되신 것도 바로 백소운 그놈 때문입니까?”
“그렇다. 아버님께서 지금 그놈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직접 나서게 된 것이지. 수적들을 모조리 데려온 것은 본맹의 본격적인 중원무림 진출에 앞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수적들의 무공이 비록 약하나 그 수가 많다. 무공을 대폭 올려주고 수하로 부려먹기에 제격이 아니겠느냐? 일부는 실혼인으로 만들어도 되고 말이야.”
“영명하십니다. 사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백소운 그놈보다 등선맹 고수들이지요. 그놈들이 등선회의(登仙會議)를 열어 곧 본맹과 전면전을 결정한다고 하는데, 맹주께서 대비를 잘하실지 걱정입니다.”
“그 문제는 아버님께서 알아서 하실 것이다. 나는 그동안 중원무림에서 기반을 다져놓으면 되는 것이지. 하지만 등선맹 문제도 결국은 내가 옥려군과 혼인하는 선에서 타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타협하려면 중원무림 공략을 포기한다는 조건을 수락해야 할 텐데요.”
“그러니까 그전에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설사 조건을 수락한다고 해도 그것은 형식적일뿐이다. 일단 옥려군 그 계집만 내 여자로 만들면 모든 것을 우리 뜻대로 할 수가 있지.”
“계획이 있군요. 미리 경하드립니다.”
세모꼴의 얼굴을 지닌 중년인 한 명이 소맹주라 불린 흑의청년에게 고개를 숙였다.
흑의청년, 즉 지옥맹 소맹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경하는 무슨. 하지만 이번에 백소운 그자를 내가 직접 죽이면 모든 것은 우리 뜻대로 흘러갈 것이다. 일단 중원무림과 등선맹을 장악하면 그때는 신비에 쌓인 나머지 맹들을 찾아내 차례대로 정복할 수 있을 것이다.”
“신비지맹(神秘之盟)까지 노리시는군요. 하지만 신비지맹은 아직 존재 자체도 확인되지 않은 곳이 아닙니까? 신비지맹이 몇 개의 맹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찌 그곳까지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모르는 소리 말아라. 중원무림 또한 최근까지 본맹과 등선맹 모두 몰랐던 곳이다. 이공간(異空間)을 이어주는 신비지문(神秘之門)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등선맹과 대립하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하기야 태곳적부터 본맹과 등선맹 같은 맹이 백 개나 된다는 말이 떠돌긴 했지요. 그래서 신비지맹을 다른 말로 신비백맹(神秘百盟)으로 부르기도 하는 게 아닙니까? 하지만 일단은 등선맹과 중원무림 장악이 먼저입니다.”
“그렇다. 그리고 이건 예지력이 뛰어난 지옥도사(地獄道士)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주장인데, 신비백맹을 발견하는 단서 또한 이곳 중원무림 어느 곳에 있다고 한다.”
“아, 그렇습니까? 지옥맹의 총순찰인 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옥염라(地獄閻羅)! 너무 섭섭해 하지 마라. 차기 맹주로 지정된 나 지옥대공자(地獄大公子) 역시 최근까지 모르고 있었으니까. 지옥도사들은 본맹 최후의 힘이 아니더냐. 그 문제는 다음에 또 이야기하자.”
“네. 소맹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