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0
2화 – 일본을 휩쓸다(5)
“이유가 뭐죠?”
이현지 사장은 팔짱을 끼곤 답을 재촉했다. 가뜩이나 폐쇄적인 아사이 TV다. 거기에 외국인이 발들인 적이 없는 방송이 뮤직스테이션 무대다. 그 뮤직스테이션에 일본의 3대 기획사의 에이든과 하이드레아가 컴백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국가수가 데뷔무대를 가진다니. 제한된 생방송 시간을 잘라주면서까지 아사이 TV가 그런 무대를 준다는게 그녀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러나 강윤은 차분히 이야기를 풀어갔다.
“여기를 봐주시겠습니까?”
강윤이 USB를 꽂자 프로젝터에 사진이 재생되었다.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와 후드를 푹 덮어쓴 여자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호텔 프론트에 열쇄를 반납하고 나오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걸 멀리서 찍는 한 여자의 모습도 함께 사진에 나와 있었다.
“이게, 뭐죠?”
이현지 사장을 비롯, 모두가 답을 재촉했다. 사진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 안해도 알고 있었다. 에이든의 리더 류지와 하이드레아의 리더 리타였다.
“호텔에서 나오는걸 기자한테 찍힌 모양이군. 일본 기자들이 그렇게 지독하다더니…”
이현지 사장 옆에 앉아있던 중년의 이사가 사진을 바로 알아차렸다. 거대한 망원렌즈를 든 여자가 남녀를 찍고 있는 모습이 포착된 사진은 모두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허… 이거 엄청난 스캔들이로군. 이 팀장은 이 사진을 어떻게 활용을 할 생각인건가?”
원진문 회장이 강윤에게 물었다. 그는 겉은 태연했지만 이런 정보를 구해온 강윤에게 경악하고 있었다. 사진의 출처부터 이걸 어떻게 활용할건지 빨리 말하라고 채찍질이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회장, 무게를 잃을 순 없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는 이 사진을 절대로 ‘직접’ 활용하면 안됩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을 보여주는 이유가 뭐죠?”
이현지 사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녀는 지금 강윤의 답이 어떨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도 사장이라는 직함에 무게를 유지하느라 괜히 주먹만 꼭 쥐고 있었다.
“저희가 나서지 않아도 저들의 컴백무대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강윤은 단언했다. 이사들에게 그의 말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금까지 여러 기획들을 들어왔고, 시행했던 그들이지만 이런 변화무쌍한 기획은 단연코 처음이었다. 모두가 점점 강윤에게로 끌어당겨지고 있었다.
강윤은 레이져 포인터로 사진에 나온 거대한 망원렌즈를 들고 있는 여성을 가리켰다.
“저기 1000mm 구경의 카메라 렌즈를 들고 있는 여성이 보이실 겁니다. 구도, 각도 모두가 류지와 리타를 저격하는 구도입니다. 게다가 저 위치면 조명도 확보되어 누군지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의 사진이 나올 겁니다. 의혹만 퍼진다 해도 치명적입니다. 결론은 스캔들입니다. 스캔들이 결국 저들의 뮤직스테이션 컴백 무대를 막을 것입니다.”
이사들은 웅성였다. 저마다의 의견이 분분했다. 과연 스캔들 기사가 나올 것인가, 스캔들이 나도 컴백이 강행될 것인가 등등 저마다 경우의 수들을 생각하며 의견들을 분분히 나누었다.
이들의 웅성거림을 멈춘 건 원진문 회장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와 비슷하군. 이런 정보를 확보해 오다니, 놀라워. 하지만 불안해. 경우의 수가 너무 많단 말이지. 스캔들 기사가 터질지도 의문이고 설사 터지더라도 컴백무대가 막힌다는건 더더욱 의문이야. 그랬다간 스캔들을 인정하는 꼴이 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날까?”
“네. 반드시 터집니다. 그리고 컴백도 하지 못합니다.”
“근거는?”
사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건 과거를 알고 있었던 것도 있지만 운도 따랐다. 류지와 리타의 스캔들이 터지는 장소를 알고 있었지만 시간은 알지 못했다. 결국 그가 한건 스캔들이 터지는 호텔에서 죽치고 기다렸다. 그 결과 사진을 확보했고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다.
이제는 진짜 승부수를 띄울 때였다. 강윤이 알고 있는 미래를 저들은 알지 못했다. 스캔들이 터지고 그 여파가 너무 심각해 두 그룹 모두 컴백을 1주 미룬다. 남들이 들으면 도박이었지만 강윤은 당연한 길을 걸을 뿐이었다. 이제 남은 건 근거를 통한 설득이었다.
“먼저 스캔들 기사가 나는 근거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스캔들이 터질 신문은 사케다 신문. 일본의 가장 공신력 있는 연예신문이라 정평이 나있습니다. 이 신문의 무서운 점은 특종에는 늦지만 정확한 정보로 믿을 수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는 겁니다. 즉, 타협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소속사라 해도 돈으로 찍어 누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군.”
“기사를 막기가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기사가 터진다면 지금까지 순수한 이미지로 메이킹을 해온 에이든과 하이드레아는 수습할 시간이 필요해집니다. 만약, 바로 컴백을 강행한다면 역풍을 맞을 우려가 큽니다. 차라리 피했다가 다시 컴백을 준비하는게 손해가 적지요.”
“…..”
원진문 회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니, 강윤의 이야기를 들은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강윤은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설득 당했다. 물론 걱정은 있었다.
대표로 이현지 사장이 물었다.
“정리를 해보면 스캔들은 터질거고 그로 인해 12월 2주, 우리 시간이 날 수 밖에 없다는 말이군요. 그런데 지금은 12월 초에요. 기자들 특성상 최대한 빠르게 기사를 내보내려 할 텐데 2주차 컴백에 영향을 줄 수 있을까요?”
“아무리 신문사가 강경한 입장이라도 소속사들이 압력을 넣으면 기사를 내기 전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시간들을 고려해보면 기사가 나오는 시간은 대략… 12월 2주가 됩니다.”
강윤의 설명이 끝이 났다. 이사들은 저마다 의견들이 분분했다. 가장 중요한 핵심부분인 컴백무대, 리스크도 높았지만 메리트도 엄청났다. 하지만 리스크에 대한 대비는 필수였기에 원진문 회장이 물었다.
“만약 뮤직 스테이션 무대에 실패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는 데뷔는 늦추는 방향으로 갈 것 입니다. 지금 뮤직스테이션 일정에 맞춰 급하게 서두르고 있지만 1달 정도 시간을 더 준비하면 철저하게 준비 할 수 있습니다. 단 연말과 크리스마스가 주는 임펙트를 기대하긴 힘들어지겠죠.”
연말, 크리스마스가 주는 임펙트는 매우 크다.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기 때문이다. 강윤은 이 모든걸 강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이후 강윤이 혹여 있을 한 달 뒤의 대비책들을 설명하고 나자 프리젠테이션은 모두 끝이 났다. 이사들은 끝인사를 마친 강윤에게 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한 명, 한 명 강윤과 악수를 하고 덕담을 주고받은 후, 이사들은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멋진 프리젠테이션이었네.”
원진문 회장은 뒷정리를 하는 강윤에게 박수를 쳤다. 원진문 회장의 뇌리에 아직도 프리젠테이션의 여운이 남아있는지 그는 시종일관 미소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자네가 했지. 멋진 프리젠테이션이었네. 특히 뮤직 스테이션 전략은 위험하면서도 신선했어. 스캔들을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자네, 무서운 사람이었군.”
“그저 상황에 맞춰 움직인 것 뿐 입니다.”
스캔들을 직접 신문사에 찌른다거나 등의 치사한 전략은 쓰지 않았다. 그러나 저들이 뿌린 씨앗을 제대로 활용했다. 적을 만들지 않고 최고가 될 기회를 만들었다. 원진문 회장은 이 전략이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효과만큼 리스크도 만만치 않았으니 설레발은 금지였다.
“현지 말야.”
“네?”
“이 사장 말일세.”
이름으로만 말하니 강윤은 순간 헷갈렸다. 원진문 회장이 추가로 설명을 해주자 그제야 이해하곤 멋쩍게 어깨를 으쓱였다.
“현지가 자네를 주시하고 있다네.”
“사장님이 말입니까?”
“현지는 사람 보는 눈이 까칠하지. 일을 할 때 사람보다 일이 우선이라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네. 그래도 내 사람이다 싶으면 항상 우선으로 챙기는 사람이지. 이 사장이 자네에 대해선 계속 주시하고 있더군. 자네가 낸 보고서라던가 방송자료 들은 꼼꼼히 살피고 결제를 하고 있어. 우리 회사의 본격적인 해외진출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 이상으로 자네에게 집중하고 있다네.”
이건 좋아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강윤은 허허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사장의 주시를 받는다니, 어떤 표현을 해야 할 지 감이 오질 않았다.
“프리젠테이션도 끝났으니 이젠 일본에 가기 전 리허설 무대만이 남아 있겠군.”
“그렇습니다.”
“어때? 준비는 잘 되가나?”
“네. 순조롭습니다.”
강윤의 편안한 답에 만족스러웠는지 원진문 회장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 그럼 다음 주를 기대하지. 자네가 만들어내는 주아, 정말 기대하고 있으니까.”
원진문 회장도 회의실을 나가자 강윤 혼자만이 남았다.
“후우… 끝났다.”
그제야 강윤은 긴장이 풀려 온몸에 기운이 쭈욱 빠져 버렸다.
이사들 앞에서 펼치는 프리젠테이션은 만만치 않았다. 각종 날선 질문들을 쏟아내는 이사들과 대립하며, 때론 부드럽게 달래기도 하며 의문을 풀어주어야 했고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런 것들을 준비하고 있다. 기대하고 있어라. 설득과 열변을 토해냈기에 진력이 모두 쇄진했다. 그래도 성과가 있어 강윤은 만족했다.
회의실 정리가 끝나고, 사무실로 향하던 강윤은 넓은 문의 연습실을 지났다.
‘어?’
그런데, 연습실 안에는 한 여자 연습생이 연습에 몰입하고 있었다. 몸에 착 붙는 트레이닝 복을 입은 작은 키의 연습생이 빠른 템포에 맞춰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윤의 눈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하얀색?’
빛이었다. 연습생이 팔을 뻗을 때, 스탭을 밟을때마다 하얀 빛이 일렁이며 연습실을 굽이쳤다.
‘춤에도 빛이? 허…’
노래에만 빛이 보이는 줄 알고 있었건만, 춤에서도 빛이라니. 강윤은 이 신비한 능력에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다. 그는 조용히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 연습생의 연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춰 연습생은 몸을 돌리고, 팔로 파도를 치며 춤을 만들어갔다. 바닥에는 구슬땀이 떨어지고 신발과 바닥의 마찰음이 사방을 울렸다.
그런데, 한참 연습에 집중하고 있는 연습생에게서 이상한게 비쳤다.
‘회색?!’
왼발에서 흘러나오는 빛, 칙칙한 회색이었다. 왼발이 나아갈 때 각도가 흐트러지며 전체 동작을 망가뜨렸다. 그리고 한번 망가지니 박자까지 흐트러졌다.
“잘 안되네… 아!!”
결국 연습생은 한숨을 쉬곤 음악을 정지시켰다. 그런데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강윤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아, 미안. 허락도 안 받고 들어와 버렸네. 미안.”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연습생은 무례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강윤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아까 틀렸던 부분을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시 왼발이 꼬이며 박자가 틀어져 버렸다.
같은 부분을 계속 틀리니 연습생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왜 안되는 걸까. 민아는 잘 하던데.”
같은 춤을 연습하는 정민아는 1번에 같은 동작을 소화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동작에서 몇 번이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지 몰랐다. 연습을 해도 해도 이 실수는 지독하게 보완이 되지 않았다.
그때, 강윤이 나섰다.
“저기, 왼발 스탭 말야. 원래 나가야하는 각도에서 틀어지는게 원인 같은데.”
“아!!”
“왼발을 잘 살펴서 해봐.”
강윤의 조언을 듣자마자 연습생은 바로 연습에 돌입했다. 그런데 거짓말같이 한 번에 동작에 성공, 음악을 재생해서 해봐도 바로 성공했다. 너무 간단히 되니 오히려 허무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뭘 이 정도로. 그럼 수고해.”
“네. 저, 혹시 성함을 알 수 있을까요?”
강윤이 뒤돌아 나가려는데 연습생이 그에게 물어왔다.
“이강윤이라고 해. 너는?”
“저는 한주연입니다. 오늘 도와주신거 감사합니다.”
예의 바르게 인사해오는 연습생의 소개에 강윤은 놀라 바로 돌아보았다.
“주연?!”
“네? 왜 그러세요?”
“아, 아냐. 아무것도. 그럼 나중에 보자.”
“네. 안녕히 가세요.‘
주연이라는 연습생은 왜 저러지라는 생각을 하며 갸웃거렸지만 이내 신경을 껐다. 그러나 강윤은 주연 때문에 매우 놀랐다.
‘EDDIOS의 메인보컬 주연이잖아? 하…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아니, 저 유명한 애를 왜 못 알아 본거지?.’
한주연은 지켜주고 싶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가수였다. 작은 얼굴의 동안으로 마치 여동생 같은 이미지가 강했다. 기껏 뿔테안경 하나 쓰고 있다고 못 알아보다니. 강윤은 실소를 냈다.
여러 가지로 만족스런 하루를 보낸 강윤은 사무실에 가서 정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