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22
36화 – 가을은 남자의 계절(完) >
잔잔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김재훈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나갔다.
“나 이젠 — 너에게 어떤 바램도 — 가질 수 없길 —”
김재훈의 노래가 무대를 가득 울려갔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는 곧 드럼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베이스의 슬라이드 소리가 터져 나오며 임펙트를 더했다.
반주에 힘이 더해지니 김재훈도 평소와 다르게 마이크를 들며 목에 힘을 주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네게 묻은– 나의 숨결을 — 느낄 수 있다면–”
평소의 저음이 거칠어졌다. 약간 갈리는 소리와 함께 사운드가 시원하게 퍼져나갔다. 갈리는 소리하며 거친 록하며 팬들에게나 관계자들에게나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거 뭐야?’
김재훈의 노래는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기본 내공이 어디 가지 않았다. 처음에 이질적으로 느끼던 관객들도 짙은 노래의 색에 점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오빠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
‘그런데 완전 좋다.’
‘오빠 완전 짱….’
음악스타일에 창법까지 지금까지의 김재훈의 스타일과는 완전히 다른 노래였다. 1절이 지나고 2절에 접어드니 관객들은 긴가민가했던 기색을 떨쳐내고 손을 들었다. 내려갔던 플래카드도 다시 올라왔다.
“과거엔 아픔이었던 — 이룰 수 없던 그 사랑- 하지만 이젠 다 괜찮아– 돌아와줘 –”
김재훈의 고음이 터져 나왔다. Gm 키라는, 남자가 소화하기 힘든 키에서 연이어 터져 나오는 고음들에 관객들은 놀라움과 탄성으로 눈을 반짝였다.
“우와아….”
“대박….”
원래 Fxm로 내리려던 키였지만 쇼케이스까지는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김재훈의 말을 강윤이 받아들인 결과였다.
업계 관계자들도 관객들과 반응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재훈이 칼을 단단히 간 것 같네요.”
“이거 타이틀곡 같은데요.”
“소름 돋는 군요.”
유통사부터 방송관계자들까지 모두가 한 목소리로 의견을 모았다. 묵직한 목소리에서 극도로 얇아지는 고음은 모두를 놀라게 만들었다. 김재훈이 파워풀한 록을 들고 나올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를 소름 돋게 만든 노래는 그렇게 끝이 났다.
“…..”
“…..”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뚫은 건 김재훈의 인사였다.
“감사합니다.”
그와 함께.
짝, 짝, 짝.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난 함성소리가 루나스를 뒤덮었다.
김재훈은 공연장 맨 뒤에 있는 강윤을 바라봤다. 강윤은 평소 그대로 당연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형 말이 맞았어요.’
김재훈은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강한 확신이 들었다.
다른 장르에 대한 도전. 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 말이다.
——————————
쇼케이스 종료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김재훈의 음반이 출시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시간을 지낸 김재훈의 앨범이라 사람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쇼케이스로 인해 팬클럽이 낸 소문들과 떠오르는 스타, ‘신희’를 섭외해 찍은 뮤직비디오, 거기에 특별무대를 준 케이블 방송국 KS TV의 뮤직카운터에서 화려하게 컴백무대까지 가졌다.
이 모든 것들이 홍보에 시너지효과를 더하니 김재훈의 음원에 대한 관심은 점점 더 커져갔다.
“이상한 일이군요.”
음원을 공개한지 9시간이 지난 아침 9시.
이현지는 아침 회의시간에 음원결과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재훈 씨의 1위는 당연한 일이지만, 설마 타이틀곡인 ‘너와의 시간’을 밀어내고 ‘Only One’이 1위를 하다니. 생각도 못 했네요.”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새로운 시도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것 같네요.”
그러자 김재훈이 이야기했다.
“고음 때문이 아닐까요? 역시 우리나라는 고음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요.”
“고음 선호도가 높기는 하지. 이번 노래는 고음이 잘 조화됐어.”
“맞아요. 그래도 역시 Gm로 계속 라이브를 뛰는 건 무리에요.”
김재훈은 고개를 저었다. 원키대로 불렀다간 목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강윤은 알았다며 다음에 이 곡을 부를 일이 있으면 Fxm키로 내리자고 이야기했다. 김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지는 다시 앨범이야기로 돌아갔다.
“1위부터 4위까지, 모두 재훈 씨의 곡이네요. 첫날이라 관심이 뜨거운 탓도 있지만 우린 이 기세를 오래 이어가야 해요. 실제로 음원을 통한 수익은 많지 않은 편이니까요.”
“모두 바빠지겠군요.”
“맞아요. 이번에 사장님이 재훈 씨랑 같이 움직이시나요?”
“대현 매니저에게 맡길 생각입니다. 전 하얀달빛 공연과 지민이에 신경 쓸 생각이고요.”
김재훈이 살짝 서운한 기색을 보였지만 강윤은 가볍게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이후 이현지는 김재훈에게 잡힌 스케줄을 보여주었다. 5월만큼은 아니었지만 방송출연을 비롯해 지방 행사들이 빼곡했다.
“꽤 많네요. 5월 정도는 아니지만.”
“그때 같이 무리할 필요는 없어. 이제는 여유 있게 돌면서 그 이후를 봐야지.”
“전국투어요?”
김재훈의 물음에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현지가 놀라서 물었다.
“잠깐. 전국투어? 우리 자금에 쉽지는 않을 텐데요. 당장 연말이라면 절대 무리인데….”
“올해 연말은 무리죠. 이번 앨범 성적을 봐서 시기를 결정해야죠. 행사 잘 돌고 성과가 괜찮으면 봄이나 여름 정도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빠른 감이 있지만, 그 정도면 자금에 여유가 생기고, 재훈 씨도 연습할 시간이 될 테니 딱 좋네요.”
그렇게 김재훈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김재훈은 스케줄이 있어 김대현 매니저와 함께 회사를 나섰다.
사무실에 이현지와 강윤 둘만 남았다. 그녀는 평소에 즐겨마시던 커피대신 물을 떠오며 다른 화제를 꺼냈다.
“이번에 하얀달빛도 정기공연을 하면서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고, 지민이까지 데뷔하면 이제 소규모 소속사에서 벗어나는 군요. 뭐, 흑자로 전환되는데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하얀달빛은 지금도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늦어도 내년 여름이면 메이저로 넘어갈 수 있을 겁니다. 정기공연에 현아가 재훈이에게도 곡을 줄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걸 홍보하면 메이저에서도 충분히 먹힐 겁니다. 조금씩 기사를 흘리며 홍보를 해야죠.”
“사장님. 저 일 좀 그만주세요. 힘들어요.”
이현지가 장난스럽게 앙탈을 부리자 강윤이 피식 웃으며 매몰차게 답했다.
“거절입니다.”
“우리 사이에 이러기에요?”
“네.”
이현지는 풋 소리를 내며 웃었다.
회사 분위기가 좋으니 두 사람의 이야기도 활기가 넘쳤다. 그러다 이현지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외부 동향에 대한 이야기였다.
“얼마 전에 이한서 이사를 만났어요.”
“미국에 다녀왔다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라도 들은 게 있습니까?”
“에디오스를 만났다더군요.”
“에디오스….”
강윤은 침음성을 냈다. 에디오스 이야기가 나오면 내내 마음에 걸렸다. 뭔가 얹힌 것 같은 그런 기문이었다.
이현지는 말을 계속 이어갔다.
“에디오스의 계약만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더군요. 그래서 생각이 어떤지 물어보러 갔다 했습니다. 그런데 에디오스 모두가 MG와는 재계약 할 생각이 없는 것 같더군요.”
“그럴 만 합니다. 무모한 전략을 내세워 자신들을 망쳐놓은 회사에 더 있고 싶지는 않겠죠.”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이현지는 강윤에게서 MG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잘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는 분노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는 차분히 에디오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한서 이사는 에디오스가 MG가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재계약을 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디오스의 몸값이 낮은 편은 아니죠. 예상하는데 김재훈과 계약했을 때의 3배는 들 거예요”
“생각보다 작게 잡았네요.”
“국내 공백기에 다이아틴까지. 지금 그 애들 가치가 많이 내려간 상황이니까요. 그렇다고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도 그렇고… 에디오스는 복잡하죠. 아무튼 에디오스와 계약한다면 이후 앨범에 대한 투자도 해야 합니다. 계약금에 앨범투자비에 일류 스타라고 대접도 해줘야 하고… 에디오스와 계약 할 만한 규모의 회사들은 차라리 더 어린 신인 그룹을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할 겁니다. 어차피 연습생들이야 갖춰져 있으니 선발해서 앨범을 만드는 게 더 싸게 먹힐 테니까요.”
“하긴.”
화가 났지만 강윤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데뷔 4년차. 이제는 ‘한때’ 잘나갔던 가수가 되어버린 에디오스다. 과연 투자한 비용을 뽑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 쉽게 결정할 회사들이 있을 리 없었다. 말 그대로 계륵이었다.
“사장님이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
강윤도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이건 비즈니스였다. 정(情)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강윤의 결정에 영향을 받는 식구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의 생각을 알았는지 이현지가 말했다.
“이한서 이사가 조심스럽게 의사를 비쳤어요. 월드에서 에디오스를 받아줄 수 없겠냐고.”
“…..”
“이한서 이사는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 같더군요. 에디오스가 설 자리를 잃은 데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지고 싶어 했어요.”
“엄밀히 말하면 그 분 책임은 아니죠.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을 텐데.”
“MG에서 미국행이라는 무리수를 막지 못한 걸 내내 마음 아파하더군요. 아무튼 나 혼자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고 답을 보류해뒀어요.”
“알겠습니다. 일단 생각해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가볍게 결정한 사항이 아니군요.”
강윤은 더 말하지 않았다. 이현지도 강윤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느끼고는 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이후 김지민과 하얀달빛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아침회의는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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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스는 순조로웠다.
10월, 2주 정도 예약이 차지 않아 고생했지만 이준열의 팬미팅을 비롯해 지역행사, 거기에 하얀달빛의 꾸준한 공연 등이 인디밴드들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마지막으로 김재훈의 쇼케이스가 화룡점정을 찍으니 꾸준히 예약이 밀려들었다.
그렇게 되니 루나스를 낙오시키려는 홍대 공연장들이 비상이 걸렸다. 가격과 시설로 도무지 승부가 나지 않는 것이다. 특히 인기가 있어 한 번의 공연으로도 여유가 있는 인디밴드들은 루나스를 선호했다. 인기 있는 밴드들이 공연장에서 사라지니 공연장주들로서는 골치가 아파왔다.
결국, 작은 공연장들은 몰래몰래 루나스에서 공연을 하는 밴드들에게도 예약을 받기 시작했다. 한두 개의 공연장이 그러니 자연스럽게 여러 공연장들이 예약을 받았다.
공연장주들 사이에서 힘깨나 쓰는 그린라이트의 윤창선 사장에겐 머리가 아픈 상황이었다.
“으으….”
공연장 맨 위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그는 안절부절못하며 왔다 갔다 했다.
“그 루나스라는 곳은 땅 파서 장사하나? 왜 선량한 사람들 돈도 못 벌게 그 지랄이야?”
그는 애꿎은 루나스만 탓했다.
가격과 시설, 다른 공연장보다 뛰어난 그린라이트로도 루나스를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함부로 내부를 개조할 수도 없었다. 돈을 들였다가 수리비도 못 건지면 어쩌나, 그에겐 이런 걱정이 가득했다.
결론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고민만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렸다. 받아보니 예랑 엔터테인먼트 비서실이었다.
“아, 네. 안녕하십니까?”
평소와 다르게 윤창선 사장은 극도로 공손했다. 비서에게도 공손한 모습은 평소에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비서실에서는 무뚝뚝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이야기했다.
– 사장님께서 그때 말씀하던 건을 처리해주셨습니다. 가격을 낮추면 그에 맞춰 자금을 지원해 드릴 겁니다.
“정말입니까? 감사, 감사합니다!!”
– 영수증과 필요한 문서들을 잘 첨부해주십시오. 그럼.
전화기에서 업무 톤의 남자목소리가 사라졌다. 딱딱한 전화였음에도 윤창선 사장의 얼굴은 활짝 펴졌다.
“좋아, 좋아!! 다 뒤졌어!!”
그는 사방이 떠나가라 만세를 불렀다.
가격과 시설.
루나스라는 곳과 맞설 가격이라는 무기가 생긴 것에 씨익 웃었다.
——————————–
11월.
월드 엔터테인먼트는 선 순항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회사는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현지는 김재훈을 담당할 새 매니저를 선발했고 김대현에게 업무를 인수인계 받도록 했다. 새 매니저로 들어온 유지혜는 30대 초반의 후덕한 인상의 여자였다. 의상 코디네이터 경력에 성격도 활달하고 좋아 이현지는 그녀를 선발했다. 의상을 비롯, 여유 있으면서 활달한 성격이 김재훈을 잘 케어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생각대로 유지혜 매니저는 첫날부터 김재훈을 잘 보조하며 스케줄을 수행해 나갔다.
요새 박소영이 회사에 놀러오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나 누구도 터치 하지 않았다. 심지어 김진대는 박소영이 졸업하면 여기로 취업하게 될 거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 설레발에 이차희에게 한소리 듣긴 했지만.
하지만 정작 강윤도, 박소영도 취업에 관해선 쉽게 언급을 하지 않았다.
11월 초의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강윤은 집에서 가방을 싸고 있었다.
“지금 거기가 우리나라 가을 날씨라 했지?”
케리어에 가을 옷과 겨울 외투 한 벌을 넣고 몇 벌의 속옷을 넣은 강윤은 그 외 필요한 세면도구들을 챙겼다. 일을 위한 노트북 하나와 몇 가지 서류들을 넣으니 캐리어가 가득 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비행기 티켓과 여권까지 챙겨 책상위에 올려놓았다.
그런 강윤을 보며 김재훈이 물었다.
“이렇게 갑자기 미국이라니. 희윤 씨에게 무슨 일 생긴 건가요?”
“아니. 만날 사람이 있어서.”
“중요한 사람인가 보네요.”
강윤은 엷은 미소를 지을 뿐, 구체적인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강윤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현지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사양했다. 리무진 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밟으니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면세점에서 담배를 비롯해 몇 가지 물품들을 사다보니 탑승시간이 되었다. 강윤은 게이트로 이동해 이코노미 석에 몸을 실었다.
‘나중에는 꼭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사장이 되야지.’
창가에 앉은 강윤은 퍼스트 클래스 방향을 바라보며 다짐했다.
그렇게 12시간.
강윤은 LA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희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희윤은 오랜만에 보는 강윤이 반가웠는지 한달음에 달려와 안겼다.
“오빠,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만날 사람이 있어서.”
“나?”
강윤은 희윤의 장난에 피식 웃으며 동생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남매는 밤새도록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희윤은 학교에서 만난 친구 이야기에 눈을 빛냈다. 강윤은 희윤이 준 곡들을 부르는 가수들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곡을 받은 가수들 모두가 좋은 곡들이라며 감탄한다는 말에 희윤은 어린애처럼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날이 밝도록 이야기한 강윤은 아침이 다 되서야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정오가 넘은 시간이었다.
‘일단 가보자.’
강윤은 렌터카 업체로 가서 차를 빌린 후, 운전을 시작했다. 그가 향한 곳은 MG 엔터테인먼트 미국 지사였다. 강윤은 근처 유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지사가 잘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는 간단한 식사와 커피를 주문한 후, 노트북을 켰다.
‘드나드는 사람이 거의 없군.’
MG 엔터테인먼트 지사는 조용했다. 드나드는 이도 거의 없었고 건물내부도 조용한지 소음하나 들리지 않았다. 잘못 찾아온 건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강윤은 계속 기다렸다.
한 시간이 두 시간이 되고 세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지사에 들어가 직접 만날 수도 있었지만 소문나지 않게 조용히 만나고 싶었다. 번거롭지만 어려움을 감수했다. 에디오스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석양이 지기 시작할 무렵, 한 사람이 지사 문을 열고 나왔다. 긴 머리를 묶은 몸에 가볍게 붙는 트레이닝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찾았다.’
여인을 발견한 강윤은 눈을 빛냈다. 그리고 재빠르게 물건들을 챙겨 카페를 뛰쳐나갔다.
.
.
.
“하아….”
거리를 터덜터덜 걸으며 여인은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하는 연습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같이 연습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언제부턴가 다른 멤버들은 연습도 나오지 않았다. 그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한주연마저 다 부질없다며 방에 쳐 박혀 나오지 않는 지경이니 다른 멤버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에일리 고것은 계속 굴러만 다니면 뱃살 늘어날텐데 어쩌려고.”
그녀는 괜히 애꿎은 에일리만 탓했다. 그래도 같이 연습하러 가자고 하면 들어줄 줄 알았는데. 이젠 모두가 연습에 대한 의욕도 없는 듯 했다.
“뭐, 이정도면 충분하잖아.”
씁쓸한 생각에 인상이 가볍게 구겨졌다. 모두가 안한다는데 자기만 열심히 해봐야 뭐하겠나. 모든 게 다 부질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래. 여기까지 하자.”
“뭘 여기까지 한다는 거야?”
그녀마저 포기하려는 그 순간.
뒤에서 갑자기 웬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움찔했다. 돌아보니 이 곳에서 볼 거라곤 상상도 못한, 하지만 익숙한 한 남자가 웃으며 서 있었다.
“아…. 아저씨?”
“민아야. 오랜만….”
“아저씨!!”
인사할 틈도 없이, 그녀는 남자에게 달려가 안겼다. 감정이 터져 나와 그의 가슴팍이 눈물로 물들었다. 남자는 그녀의 머리와 등을 부드럽게 다독여주었다.
그런 두 사람을 붉게 타오르는 석양이 진하게 비쳐주고 있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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