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25
37화 – 약속을 지키다(完) >
예산청구안을 보며 이현지는 기겁했다.
“루나스 사무실을 만든 지 얼마 되지도 않았어요. 아무리 에디오스에게 필요한 공간이라지만, 사무실을 개조하면서까지 연습실을 마련하다니. 과하지 않을까요?”
이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공연장을 관리하는 관리인 외에 사무실에 상주하는 직원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앞으로 일이 늘어난다면 꼭 필요한 공간이었다. 그런데 개조를 하겠다니. 그렇다면 손님은 어디서 맞겠다는 말인가?
그러나 강윤은 괜찮다는 입장이었다.
“3층을 연습실로 쓰고, 4층에 업무를 통합하면 됩니다.”
“그래도 업무상 분리를 시켜놓은 건데….”
“중요도를 생각하면 연습실을 꾸미는 게 낫죠. 그리고 지하 창고도 개조했으면 합니다. 보컬 트레이닝을 할 수 있도록요.”
“아아….”
이현지는 머리를 붙잡았다. 에디오스와의 계약에 쓸 계약금에, 연습실 개조까지. 흰머리가 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강윤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었다. 에디오스뿐만 아니라 나중에라도 댄스가수를 육성하기 위해선 춤을 위한 공간은 꼭 필요했다. 거기에 보컬 연습을 할 수 있는 방까지 마련되면 가수들의 편의도 늘어난다.
다만, 준비하는데 돈이 들 뿐!!
“재훈 씨가 벌어온 돈이 눈 녹듯 사라지네요….”
“머잖아 에디오스가 더 많은 돈을 벌어다 줄 겁니다.”
강윤의 자신감 어린 말에 이현지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강윤이 말한 대로 되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당장 부족한 돈을 굴리는 일은 아주 힘든 일이었다.
그녀의 고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침 회의를 마친 강윤은 자리에 앉아 밀린 일들을 시작했다.
‘재훈이 스케줄이 지방으로 쏠리는군. 조절해야겠어.’
앨범이 잘되고 있는 김재훈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었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대도시에서도 김재훈의 스케줄은 빽빽했다. 강윤은 그가 가급적 피로하지 않도록 스케줄 조절에 신경을 썼다.
하얀달빛의 경우 정기공연에 오는 관객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여름에 록 페스티벌에서 보였던 강렬한 임펙트를 지금도 잘 유지하며 흥행하고 있었다. 게다가 매주 새로운 공연을 선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니 그들은 어느새 루나스의 터줏대감이 되어 있었다.
‘잘하면 메이저 데뷔 시기를 더 당길 수 있을 것도 같네. 조만간 넣을만한 공중파 방송을 한번 알아보자.’
이어 강윤은 김지민에 대한 것들을 검토했다. 김지민이 데뷔를 위한 종합 트레이닝에 들어간 상태라 예산소모가 엄청났다. 이사서명란에 기록된 이현지의 사인이 가늘게 떨려오는 게 그 예산을 증명했다.
‘10년 이상은 버틸 재목이야. 과감하게 투자해야 해.’
김지민이 지금 투자하는 비용쯤 앞으로 몇십 배, 몇백 배를 벌어다 줄 거라 확신하며, 강윤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가수들에 대한 검토가 끝나니 루나스에 대한 업무가 남았다.
‘10월 예약은 조금 준다 싶었더니 11월에는 늘었군. 그런데 12월은 또 줄어드네. 뭐지?’
강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계약 건수가 들쑥날쑥했다. 아직 오래되지 않아 일관된 데이터가 나오지 않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함께 첨부된 보고서에는 공연장에 관련된 갖가지 소식에 대한 것들도 있었다. 다른 공연장들이 루나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린다든지, 루나스에 예약하는 밴드들에게 갖가지 핑계를 들어 공연장을 대여해주지 않는다 등의 내용도 있었다.
‘대책이 효과가 있었나?’
강윤은 보고서 뒷장을 넘겼다. 루나스는 공연장들의 횡포에 피해를 본 밴드에게 루나스가 비어있는 시간을 더 할당해 주었다. 싸고 좋은 시설을 더 이용할 수 있으니 밴드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이와 같은 일들로 루나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매우 좋았다. 애초에 루나스로 금전적인 이익을 볼 생각은 없었다. 사람들의 호감을 사니 루나스의 터줏대감인 하얀달빛과 주인인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이름도 더 알려지고 있었다.
‘돈도 중요하지만, 인지도를 얻는 게 더 중요할 때지.’
강윤은 보고서를 보며 만족하고는 뒷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각 공연장이 가격을 내리기 시작했다는 내용이 있었다. 12월 계약이 줄어든 이유이기도 했다.
‘좋은 일이네.’
이익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중요한 목표를 달성해가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보고서를 보며 강윤은 씨익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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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 들었어? 데라스 가격 내린 거?”
“거기도 내렸어? 이번에 그린라이트도 가격 확 내렸던데?
홍대 카페.
인디밴드 사이에서는 갑자기 확 내린 공연장 대여료가 큰 화제였다. 루나스보다 더 낮아진 가격에 모두가 만세를 부르고 있었다.
잼배를 한 곳에 치우며 남자가 말했다.
“다들 루나스를 상대하려고 칼을 갈았나 봐.”
“루나스가 그렇게 좋아?”
다른 남자가 물었다. 그는 기타를 든 이였다.
“당연하지. 소리가 아주 그냥…. 짱짱하니 최고야. 조명은 말할 것도 없고. 외관은 허름한데 내부는… 가서 들어 봐야 해. 말이 필요 없어.”
“그렇게 좋단 말이야? 그런데 대여료도 싸고?”
“맞아. 그런데 이젠 루나스가 더 비싸졌네? 원래 이랬어야지. 괜히 시설도 나쁜 곳이 더 비싸면 이상하잖아?”
잼배의 남자와 기타를 든 남자의 대화를 들으며 다른 이들도 모두 동감했다.
“자자!! 기쁜 마음으로 잼이나 한번 해볼까?”
잼배를 든 남자의 말에 카페에 있는 모두가 각자의 악기를 꺼내 들었다.
그렇게 카페는 음악의 향연에 빠져들었다.
.
.
.
“그래요? 루나스와 계약하는 이들이 줄어들고 있다?”
강시명 사장은 비서의 보고를 들으며 만족하곤 다음 질문을 했다.
“우리 예산은 얼마나 나갔지요?”
“데라스, 그린라이트의 12월 예약이 가득 찼습니다. 거기에 라이브스타트에 스팟홀까지 지원해야 해서 적지 않은 예산이 소모되었습니다. 여기….”
비서는 조심스럽게 예산지원명세서를 내밀었다. 강시명 사장은 서류를 보더니 손을 부르르 떨었다.
“허, 잠깐. 뭐 이리 비싸?”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공연장 대여료가 워낙 비싼 탓에….”
“그래도 이건 너무 하네요. 얼마나 폭리를 취하길래….”
강시명 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금토일, 3일간 공연하는 대여료가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어라는 계산에 비서에게 처리하라는 식으로 보고서를 던져줬다. 그런데 공연장 주들의 폭리에 어처구니없는 예산이 빠져나가고 말았다. 게다가 한 곳도 아니고 여러 공연장에 지원금을 뿌리는 입장이니…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한다 했지요?”
“그게, 3개월입니다.”
“확실히 3개월이면 루나스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건가요?”
“그게….”
비서는 우물쭈물하다 루나스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체 루나스는 땅을 파서 장사를 하는 건지, 적자운영도 마다치 않는 듯했다. 루나스 정도의 시설이라면 운영비가 만만치 않을터. 그런데 그런 운영비의 압박도 없는지 그들은 큰 변화가 없었다.
더 웃기는 사실은 루나스는 홍보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러나 소문을 탔는지 인디밴드들이 알아서 계약하고 있었다. 가격전쟁에 12월의 계약이 줄어들긴 했지만 다음부터는 그도 자신할 수 없었다.
강시명 사장은 긴 한숨을 쉬었다.
“적자운영이라. 회사 수익에서 돈을 끌어와 운영하는 모양이군요. 후, 얼마나 가는지 보면 알겠지요. 일단 하기로 했으니 한번 해봅시다. 대신….”
강시명 사장은 눈에 힘을 주었다.
“좋은 결과를 바랍니다.”
“네!!”
비서는 잔뜩 기합이 들어 사장실이 떠나가도록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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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첫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평소보다 빠르게 다가온 추위에 사람들은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꺼냈고, 목도리를 둘렀다.
서로 온기를 나누는 연인들을 스쳐 지나가며 강윤은 거리를 바삐 걷고 있었다.
“으, 추워.”
강윤은 롱코트의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한 고급 찻집으로 들어갔다. 특정 마니아들만이 드나드는 값비싼 찻집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준비된 룸으로 들어가니 오랜만에 만나는 이한서 이사가 그를 반겨주었다.
“이 이사님.”
“강윤 팀장. 아, 이젠 사장님이군요. 반갑습니다.”
이한서 이사는 얼굴에 화색을 띠며 강윤의 손을 맞잡았다. 그는 팀장이라 부르려는 옛 습관을 교정하며 반가움을 표했다.
“가…. 이 사장은 변한 게 없군요. 그대로입니다.”
“이사님이야말로 그대로시네요.”
“이젠 나이가 들었죠. 차 구하러 나가기도 힘에 부칩니다.”
인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근황 이야기를 하다 보니 주문한 차가 나왔다. 이한서 이사는 강윤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더 좋은 차를 대접해야 하는데, 이런 차밖에 대접을 못 하네요.”
“아닙니다. 향이 아주 좋은걸요.”
달달한 과일 향과 꽃향기가 은은히 섞여 있는 게 강윤의 후각을 자극했다.
이한서 이사는 기품있게 자신의 찻잔에도 차를 따르고는 말을 이었다.
“이 사장에게는 더 좋은 차를 대접하고 싶었는데…. 아쉽네요.”
“아닙니다. 정말 괜찮습니다.”
“미국에 왔다 간 이야기, 민아에게 들었습니다.”
본론이 나왔다. 강윤은 꽃향기가 도는 찻잔을 내려놓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다들 얼굴이 수척해졌더군요.”
“제가 모자란 탓입니다.”
강윤이라면 그런 말을 할 만했다. 강윤도 그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알았기에 더 말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사들에 대한 이야기는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에디오스의 미국행은 생각할수록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가까이 일본도 있고, 무리한다면 중국도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이라니. 원진문 회장님도 미국 시장과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기 전까지는 미국에 눈독 들이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않으셨잖습니까.”
“그렇죠. 하지만 회장님이 와병으로 자리를 비우고 그 말들은 다 잊혀졌습니다. 그 후, 이현지 사장님이 밀려났죠. 지금은 원진문 회장님의 아들분이 회장님을 대리하고 있습니다. 인격적으로는 괜찮은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기계공학을 전공한 분입니다. 엔터테인사업에 완전히 문외한이셨죠. 원 회장님이 아드님에게 영향력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결국, 이사들에게 힘이 쏠리게 됐죠. 문제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이한서 이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몇몇 이사들이 뭉쳐 에디오스의 미국진출 프로젝트를 제출했다. 이한서 이사는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이사들이 점점 힘을 모아 압박을 하는 통에 결국 에디오스는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담당 이사의 권한조차 침해하는 완벽한 무리수였다.
그 생각을 하면 그는 지금도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미안해서였다.
강윤은 차를 한 모금 넘기며 말했다.
“…주아가 일본에 터를 잘 닦아 놨건만.”
“첫 성공이라는 타이틀이 중요했습니다. 일본진출은 이 사장이 MG에 있을 때 이루어졌었죠. 당시 주아가 미국진출에 실패했던 시기였습니다. 에디오스가 미국에서 성공할 수만 있다면 회사에서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힘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중국도 있잖습니까.”
“당시 중국은 민진서가 가 있었습니다. 결국, 남는 건 미국이었습니다.”
“아, 진서가….”
그놈의 최초라는 타이틀이 뭐가 중요하다고. 대체 권력이라는 게 뭔지. 생각할수록 기찬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민진서의 이름이 나오니 강윤은 그녀의 일이 궁금해졌다.
“진서는 어떻게 지냅니까?”
“진서는…. 후. 대단합니다. 지금 영화촬영 중인데 이게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과 촬영하는 거랍니다. 당연히 주인공이죠. 이사들 그 누구도 진서에게 함부로 하지 못합니다. 이사들 사이에선 이렇게 불립니다. 걸어 다니는 폭탄.”
“진서가 그럴 성격이 아닌데….”
강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진서에게 폭탄이라는 수식어가 붙다니.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당신 때문이야.’
차마, 이한서 이사는 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헛기침하며 에디오스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화제를 돌렸다.
결국, 이사들에 의해 강제로 에디오스는 미국에 진출했다. 하지만 한국시장도 잃고 미국흥행도 실패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재계약이라도 해서 망가진 미래에 대한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강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MG는 에디오스와 재계약을 할 생각이 있습니까?”
강윤이 직접적으로 묻자 이한서 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회사는 재계약에 들일 비용으로 새로 데뷔할 아이돌에 투자할 생각입니다. 지금 에디오스와 재계약을 한다 해도 남은 수명은 2년 정도로 본 겁니다. 차라리 새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게 더 이득이라는 계산이었죠.”
“역시. 에디오스를 관리도 하지 않은 모습을 보며 짐작하기는 했습니다. 그래도 직접 들으니 입맛이 쓰군요.”
“저도 마음이 쓰린데, 이 사장은 오죽할까요. 이해합니다.”
이한서 이사는 내부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았다. 오히려 강윤이 이렇게 회사 사정을 털어놔도 되는지 걱정되어 물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한서 이사는 괜찮다며 힘없이 웃었다.
“에디오스가 나가면 저도 회사를 나올 생각입니다. 지금과 같이 경영을 하면 MG는 확실히 망합니다. 회사 주가가 내려가기 전에 가지고 있는 지분 팔아서 찻집이나 차릴 생각입니다. 그동안 어울리지 않는 곳에 계속 있었더니 차가 생각나네요.”
이한서 이사는 지쳐 보였다. 강윤은 이현지에게서 그가 에디오스를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뛰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았다. 그나마 더 망가질 뻔한 에디오스가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그의 공이었다.
“찻집이라, 어울리실 것 같습니다. 에디오스 애들 데리고 자주 놀러 가야겠습니다.”
“나중에 연락드리지요. 하하하.”
허탈한 웃음소리가 룸 안을 울렸다. 이한서 이사는 울적해 보였다. 강윤은 그가 얼마나 에디오스를 애지중지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어느새 강윤의 찻잔이 비었다. 이한서 이사는 강윤의 찻잔을 다시 채워주었다. 향긋하면서 부드러운 차 향이 다시 코끝을 간질였다.
“정말 차 향이 좋네요.”
“은은하면서 달달한 향이 좋지 않습니까?”
“네.”
이한서 이사가 차를 따르는 모습에는 남다른 기품이 배어 있었다. 팔의 움직임, 주전자를 잡는 손놀림 하나하나에 강윤은 감탄했다.
그때, 이한서 이사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에디오스를 잘 부탁합니다.”
작게 들려온 그 말에 강윤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사님.”
“제가 무능해서 그 애들에게 노래하기 좋은 환경을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엉망인 상태로 강윤 씨에게 그 아이들의 미래를 맡기는군요. 미안합니다.”
“…..”
처연한 그 말이 강윤에겐 아프게 다가왔다. 감은 눈이 파르르 떨렸다.
가라앉은 분위기를 돌리기 위해, 이한서 이사는 다시 부드럽게 웃었다.
“말은 바로 그만두겠다 했지만, 당장 이사직에서 물러나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리 병풍이었다 해도 이사는 이사니까요. 인수인계도 해줘야 하고, 지분 문제도 해결해야 하니까요.”
“퇴직의 꿈을 이루기도 쉽지만은 않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얼마나 여기 있을지 모르지만, 있는 동안 사장님께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오면 알려드리지요.”
강윤은 귀를 의심했다. 잘못하면 스파이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말이었다. 이한서 이사는 강윤이 걱정스레 바라보는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갔다.
“에디오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주고 싶습니다. 이 사장을 도우면 에디오스에게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지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네요.”
“이사님.”
강윤은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에디오스를 아꼈던 그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저희 회사로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나 같이 무능한 인사를 어디에 쓰려 그러십니까? 나중에 찻집 열면 에디오스 애들 데리고 와주세요.”
이한서 이사의 거절에도 강윤은 포기하지 않고 몇 번이나 권유했다. 계속 커지는 회사에 이한서 이사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꼭 필요하다며 세세한 이유까지 이야기했다.
“…생각해 봐야겠네요.”
“긍정적으로 고려해주세요.”
결국, 거듭된 권유에 이한서 이사는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계속 규모를 키워가는 월드 엔터테인먼트에 호기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었다. 찻집도 좋지만, 그곳에서 새롭게 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근 몇 년간 쌓인 패배의식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강윤은 이한서 같은 사람이 곁에 있으면 모두에게 따뜻한 휴식처가 되어줄 것 같았다. 그가 좋은 방향으로 생각해줬으면 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그렇게 여운을 남기며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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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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