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54
47화 – OST의 기적(完) >
강윤은 급히 차를 몰아 SBB 방송국에 도착했다. 그는 미리 마중 나온 AD의 안내를 받아 회의실에 도착했다.
‘어느 기획사에서 끼어들기라도 한 걸까?’
AD가 내준 차를 마시며, 강윤은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마음이 아프다’는 무척 반응이 좋았다. 방송에 나가자마자 음원차트 1위로 올라갈 정도였느니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보내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으니, 강윤은 당혹스러웠다.
‘…후, 그래도 매너는 있네. 원래는 통보도 없이 바꿀 수도 있는 건데.’
강윤은 쓴웃음을 지었다. 김덕중 PD 정도면 매너가 있는 PD라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이란, PD의 고유 재량이다. 드라마 장면에 OST를 삽입하는 것도 결국 PD의 고유한 권한이다. 말없이 바꿔도 아무도 뭐라 하기 힘든 사항이었다.
그가 여러 가지 상황과 해결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김덕중 PD가 빠른 걸음으로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오셨습니까.”
강윤이 자리에서 일어나 김덕중 PD를 맞아주었다. 그는 민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런 좋은 곡을 갑자기 못하게 되었다고 말하게 되다니 말입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겁니까?”
강윤의 물음에 김덕중 PD는 손짓으로 AD를 나가게 했다. AD가 가볍게 고개로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배우 시은을 아십니까?”
“시은이라면…. 여자 주인공으로 열연 중인 배우 아닙니까?”
“맞습니다. 후유….”
김덕중 PD는 진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진한 짜증과 분노가 묻어있었다. 그 한숨에 강윤은 뭔가를 느끼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군요.”
“…네. 원래는 시은이가 OST에 욕심을 내고 있었습니다. 원래 시은이는 배우와 가수 활동을 함께하는 엔터테이너였으니까요. 처음부터 계속 시은은 직접 녹음한 OST를 가져와서 드라마에 넣어달라고 부탁해왔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거절했었죠. 나쁘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은… 그저 그런 노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장님이 가져오신 ‘마음이 아프다’를 접했고, 반응이 매우 좋았죠.”
“그런데 왜 이렇게 갑자기 변경하게 된 건가요?”
“크흠…”
김덕중 PD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국장님의 지시였습니다.”
그는 눈을 한번 꽉 감더니,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부끄러운 것을 들킨 사람 마냥, 얼굴을 붉혔다. 아니,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참는 듯,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강윤이 더 묻기도 전에 김덕중 PD는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더 이상 말씀을 드리긴 곤란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국장님의 지시 때문에 앞으로 ‘마음이 아프다’를 내보내긴 힘들 것 같다는 겁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좋은 곡이었는데…”
“…..”
강윤은 그의 생략된 이야기를 정리해보았다.
SBB 국장, 배우 시은. 전혀 관련 없을 것 같은 이 둘을 잇다 보면 무언가가 나올 것 같았다.
‘김덕중 PD같이 고집 센 사람도 꺾을 정도라니. 하긴, 방송국이면 거의 완벽한 관료제니까 국장의 이야기를 거절하긴 힘들지. 그런데 시은이 소속사가 어디였지? 사이메나였나?’
이런 경우는 소속사에서 힘을 썼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특히 사이메나라면 잘 나가는 배우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배우업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힘 있는 소속사였다.
SBB 국장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은 충분했다.
‘지금 여기서 더 할 수 있는 건 없어.’
여기 더 있는 건 할 일 없이 시간을 죽이는 일이었다. 강윤은 일단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저희에게 신경 써 주신 거 감사합니다.”
“그저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렇게 끝나면 안 되는 건데…”
연신 안타까워하는 김덕중 PD를 뒤로하고, 강윤은 바로 회사로 돌아갔다.
월드 엔터테인먼트 사무실로 올라가니, 이현지가 강윤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나요?”
강윤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었다. 거기에 SBB 국장과 사이메나에 대한 자신의 예상도 가미해서 이야기하니 이현지는 눈을 감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럴 만 하군요. ‘그의 병원’이 시청률이 20%를 넘어가고 있는데, 파리가 안 꼬인다는 게 이상한 일이죠.”
이현지가 길게 한숨을 쉴 때, 강윤은 과제를 이야기했다.
“이번 일로 하얀달빛의 홍보가 너무 짧아졌습니다. 못해도 3주는 더 나갔으면 하는데…”
“이거라도 효과를 극대화 시킬 방안은 없을까요? 아니면 좀 더 서둘러서 앨범을 내는 게 어떨까요?”
강윤은 고민했다. 이현아의 OST는 며칠째 음원차트 1위를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에 노래가 나가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금방 이 노래를 잊고 말 것이다. 1위 자리는 사상누각이나 다름없었다.
‘5월은 너무 경쟁자가 많아.’
서둘러 앨범을 출시하는 다른 방안을 생각해봤지만, 강윤은 고개를 저었다.
인기 남자 아이돌부터 밴드들에 여자 아이돌까지. 한국의 5월은 음악축제이면서 전쟁터였다. 강윤은 레드오션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현지도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지만, 진퇴양난의 상황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다른 앨범 낼 시기를 기다리자니 OST로 인한 효과가 떨어질 것이 뻔했고, 앨범을 내자니 레드오션이었다.
“머리만 아파오는군요. 이럴 바에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노래만 부르게 하는 게 낫겠어요.”
이현지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은 그녀에겐 질색이었다.
‘잠깐?’
그때, 이현지의 말에 강윤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손바닥을 세차게 두드렸다.
“그겁니다.”
“네?”
“방금 말씀하신 그거요.”
이현지는 고개를 갸웃했다.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강윤은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 현아랑 나갔다 오겠습니다.”
“네? 이런 때 어딜 나가게요?”
“한 이틀 정도 돌아다녀야 할 것 같습니다. 에디오스 애들 부탁드리겠습니다.”
강윤이 급히 사무실을 나서자, 이현지는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뭐, 결과로 보여주겠지.”
하지만 이내 그녀의 표정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강윤을 믿고 있었다.
——————————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이상하게 설레는데요?”
모처럼 기타를 맨 이현아는 두근대는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녀 옆에는 김진대가 주변을 돌아보며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
“…이 오빠야. 침 떨어진다.”
홍대를 오가는 아름다운 허리선을 가진 여인들에 눈을 돌리는 김진대에게, 이현아는 짧은 한숨과 함께 잔소리를 퍼부었다.
한편, 강윤은 믹서와 스피커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빨리하자.”
“네!!”
김진대는 드럼이 아닌 잼배에 익숙하게 마이킹을 했다. 정찬규도 기타에 무선마이크를 장착했고, 이현아도 스탠드에 마이크를 끼우곤 높낮이를 조절했다.
홍대입구역의 번잡한 광장에서, 세 사람은 공연을 준비해나갔다. 간혹 이현아와 김진대를 알아본 사람들이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사운드 테스트가 끝나고, 강윤은 본격적으로 시작 신호를 알렸다.
“안녕하세요? 하얀달빛의 이현아라고 합니다.”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붙잡았다. 몇몇 모여있던 팬들은 물론이요, 조금씩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평소에 루나스에서 단련된 진행 솜씨도 한몫했다.
이현아는 길게 말하지 않고 바로 불러야 할 메인 곡을 소개했다.
“오늘 불러드릴 곡은… 직접 소개하려니 부끄러운데요. 저희 하얀달빛의 ‘마음이 아프다’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하얀달빛이 누군지도 모르던 행인들에겐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이었다.
“나 할 말이 있어 –”
‘마음이 아프다’라는 노래를 모르던 사람들도, 첫 소절을 듣자마자 입을 쩌억 벌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씩은 들어본 노래였다.
“이거 알아알아.”
“이게 쟤들 노래였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게다가 목소리도 비슷, 아니 똑같았다. 게다가 노래도 잘했다. 그런데 이런 노래를 거리에서 듣게 되다니… 사람들은 난데없는 횡재에 다리를 땅바닥에 딱 붙이고 섰다.
“네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너를 향해- 손을 뻗어도 내- 두 손은 언제나 — 비어 있었어 -”
느릿한 기타의 음색과 이현아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특히 이현아의 저음이 풍성하게 퍼져나가며 사람들의 가슴을 저몄다.
강윤은 기타 소리와 보컬의 소리가 잘 조화되는 것을 알고, 둘의 소리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하얀빛이 더더욱 강렬해지며 사람들에게로 찔러 들어갔다.
“오오…”
“와아…”
후렴을 넘어 1절이 끝났다. 이현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가 한번 쉬는 타임이었다. 사람들도 함께 그들의 노래에 빠져들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눈물 속에서 — 나의 사랑은 — 다시 피어나– 너를 사랑해 —-”
눈을 감은 이현아의 눈가에 얼핏 눈물이 맺혔다. 그녀 스스로도 노래에 강하게 빠져들고 있었다. 사람들도 그녀를 따라 노래에 빠져들었는지 표정에서 슬픔이 묻어나는 듯했다.
강약을 조절하며 잼배는 흘러갔고, 기타도 슬픈 멜로디를 연주해갔다.
악기들과 보컬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가며 강렬한 하얀빛을 만들어갔다.
‘조금만 더…’
강윤은 영향력이 조금만 더해지도록, 소리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뒤편에서 힘겹게 귀를 기울이던 사람까지 조금씩 만족했는지 눈을 감으며 이현아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아무 말 없이 내 맘은 말할게 – 널 — 사랑해 —”
기타가 은은하게 흘러가며, 이현아의 목소리를 받혀주었다. 그렇게 노래가 끝났다.
“와아아아—!!”
“최고다!!”
“앵콜!!”
거리가 떠나갈 듯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찬규와 김진대는 서로를 바라보며 가볍게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이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감사를 표했다. 그런 매너에 박수 소리가 더더욱 커져갔다.
그리고…
“한곡 더?”
“와아아!!”
쉽지 않은 버스킹 공연에서, 그들은 사람들을 이끌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
.
– 노래 누가 부른 거냐? 신발. 발로 불렀냐?
– 새 OST? 이창연 글 올린다는 소리보다 더 웃기는 소리다.
– 원래 노래 내놔!!
– PD 바뀜? 제정신 아닌 듯.
– 드라마는 재미있는데, 멜로에서 몰입이 안 되네요. 노래가 너무 생뚱맞았어요.
SBB 드라마 ‘그의 병원’ 9, 10회 방송이 나간 이후, 게시판은 항의가 빗발쳤다. 요지는 간단했다. 좋은 OST 어디에 갖다 치우고 이상한 OST를 삽입해서 몰입감을 떨어뜨리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 무명가수 무시하고, 인기연예인 넣으면 들을 줄 알았냐?
– 얼굴 좀 된다고 가수도 하고 싶냐?
– 시은? 걔 성형빨 아님? 강남 사는 언니 닮아서.
– 좋은 배우, 좋은 노래. 명품 드라마 탄생하는 줄 알았는데. 미친년이 다 망침.
‘마음이 아프다.’를 밀어내고 새로 그 자리를 대신한 OST ‘그 사랑’은 욕이라는 욕은 다 먹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드라마도 보지 않겠다며 심한 악플도 주저하지 않았다.
100개, 200개 달리는 수준이면 무시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 정도 숫자가 아니었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마다 모두 이 모양이니, 홈페이지 운영자는 때아닌 일감세례에 죽을 맛이었고, 기자들은 특종의 축복을 받고 기사들을 마구 터뜨리고 있었다.
11회 촬영이 있는 월요일, 김덕중 PD는 촬영도 가지 못하고 국장실로 불려갔다.
“바쁜 사람을 불러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후배들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김덕중 PD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국장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허, 이거… 난감하군. 이틀 정도 지나면 수습이 될 줄 알았건만.”
“갑질이 문제가 되는 세상이잖습니까. 큰 소속사가 작은 소속사를 밀어냈다는 유언비어까지 함께 퍼진 상황입니다.”
“크흠흠…”
국장은 헛기침을 했다. 사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배우 시은의 소속사, 사이메나의 부탁을 받아 김덕중 PD에게 지시한 건 사실이니 말이다.
“그 하얀… 뭐였나? 아무튼, 거기서 직접 거리 돌아다니며 노래 부르고 있는 영상 있었지?”
“네. 튠에 많이 돌더군요.”
“아, 진짜…”
국장은 아파오는 머리를 붙잡았다. 결정적으로 시청자 게시판에 악플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한 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게다가 남의 나라 이야기하듯 말하는 김덕중 PD의 꼴은 그의 불타는 마음에 기름을 들이붓고 있었다.
– 왜, OST를 드라마가 아닌 거리에서 듣게 만드냐?!
– 멀쩡한 가수는 왜 거리로 쫒아!?
하지만 국장은 그런 행태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결국 원인은 그에게 있었다.
드라마에서의 송출이 끊기자마자, 거리로 나온, 그들의 노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OST 외에 여러 노래를 불렀지만, 관객에게 가장 많이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OST ‘마음이 아프다’였다.
“…김 PD.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후유…”
“…..”
김덕중 PD는 어렵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결국, 이렇게 될 거면서.’
그러나 그의 입가를 진득하게 올라가 있었다.
——————————
끝
ⓒ 이창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