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68
52화 – 제주도는 바람이 많은 섬이다(完) >
“우와아~”
강윤의 옆 좌석에 앉은 민진서는 에메랄드 빛깔의 바다를 보며 탄성을 냈다. 팬션에서 보는 바다와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머리칼이 바람에 흩날리며 비누향이 강윤의 코를 간질였다.
“좋아?”
“네!!”
강윤은 이상한 기분을 느끼며 민진서에게 물었다. 그녀는 밝게 웃으며 화답하자 강윤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묘한 향이네.’
코를 간질이는 비누향에 옆을 돌아보니 민진서의 밝은 표정이 한 눈에 들어왔다. 성숙한 여인의 향기였다. 그도 남자인지라 이런 향에 민감했다.
두 사람이 탄 차는 유명한 성게비빔밥 집에 도착했다. 작고 허름하지만 입소문을 타서 유명해진 곳이었다.
“어서 오세요. 어머, 강윤 매니저님!!”
식당의 여사장은 강윤을 알아보았는지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강윤도 그녀에게 반가운 얼굴로 화답했다. 오래 전, 강윤이 매니저일을 하던 시절, 담당 연예인이 제주도에서 드라마 촬영을 할 때 알게 된 지인이었다.
여사장은 강윤과 이야기하다가 선글라스와 몸 전체를 가볍게 가린 민진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머, 오늘도 담당 연예인과 오셨어요? 누구실까?”
“하하하. 오늘은 개인적인 일로 왔습니다. 남은 방 있나요?”
“물론이죠. 누가 왔는데 만들어서라도 드려야죠. 들어오세요.”
강윤과 민진서는 여사장의 안내를 받아 방 안으로 들어갔다.
민진서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강윤에게 물었다.
“여기 아시는 집이에요?”
“아아. 옛날에 매니저 할 때 알게 된 집이야. 진짜 맛있어.”
강윤이 매니저 출신 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매니저 일을 했던 과거를 물으려 할 때, 여사장이 반찬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뵈니 정말 반갑…. 어머? 민진서 씨?! 우와!! 강윤 씨는 대단한 분과 함께 다니네요.”
여사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과 중국을 아우르는 대스타, 민진서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더 잘해드려야겠네요?”
“하하하. 잘 부탁드려요.”
민진서도 부드럽게 화답했다. 여사장은 반찬을 놓고는 성게비빔밥과 갈치조림을 주문 받은 후 밖으로 나갔다.
곧 식사가 나왔다. 민진서는 고소한 향이 올라오는 성게비빔밥에 눈을 빛냈다.
그녀는 비빔밥을 열심히 비벼 한입 넣더니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맛있어요!!”
“그렇지? 입에 맞다니 다행이네.”
성게 특유의 향과 고소하게 올라오는 향이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게다가 갈치조림의 맛도 기가 막혔다.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벌써 다 먹은 거야?”
“…헤헤.”
민진서는 민망한지 혀를 빼꼼히 내밀었다. 강윤의 밥공기는 아직 절반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는 피식 웃으며 밥을 하나 더 주문해주었다. 항상 관리하지만, 민진서가 식탐이 있다는 걸 강윤은 잘 알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민진서는 빵빵해진 배를 두드렸다.
“잘 먹었습니다.”
강윤도 잘 먹는 민진서에게 만족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자연스럽게 계산대 앞에 섰다.
그때, 민진서가 달려왔다.
“제가 낼게요.”
“아냐. 가자고 한건 난데 내가 내야지.”
강윤과 민진서는 서로 자기가 계산하겠다며 잠시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은 민진서가 기어이 현금을 내밀더니 계산을 하며 승리했다.
“이런 걸 원한 건 아닌데…”
강윤이 민망함에 머리를 긁적이자 민진서가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제가 월드에 갔을 때 맛있는 거 사주세요.”
“그래? 알았어.”
점수를 따고, 다음 약속까지 받아내는 더블플레이. 최고의 결과에 민진서는 강윤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강윤이 나가고, 이어 민진서도 밖으로 나서려 할 때, 여사장은 민진서에게 A4 용지를 내밀었다. 걸어두기 위한 사인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민진서는 펜을 들어 ‘맛있어요’라는 센스 있는 사인을 해주었다.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민진서가 자신에게 궁금한 것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
“저, 이강윤 선생님과는 어떻게 알게 되신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매니저님 하고요?”
여사장은 강윤이 간 방향을 바라보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언제더라, 드라마 ‘바람과 함께’를 촬영하는 때였어요. OTS에서 한 드라마였는데 그때 주인공이 신창민이었나? 아무튼 매니저님은 그때 조연배우 매니저라 들었는데… 누군지 기억은 안 나네요.”
“아아.”
“그때 저희 가게가 어려웠어요. 2월에 촬영을 했는데, 그때가 장사가 잘 안되거든요, 겨울에서 봄이 되는 시기라… 그때 너무 장사가 안 되어 문을 닫아야 했었죠. 그때 매니저님을 처음 만났어요. 처음에는 담당 연예인과 함께 와서 맛있다며 사인까지 해주셨죠. 그 다음에는 다른 스태프들에게 추천해주고 이후에는 계속 같이 오셨어요.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나니까 사람들이 늘기 시작해서 그때부터 맛집이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자리를 잡았죠. 매니저님은 우리 가게를 구해 준 은인이에요. 요새는 작곡도 하신다 들었는데… 멋진 분이예요. 결혼은 하셨나 몰라.”
강윤의 과거 일을 듣게 되니, 민진서는 즐거웠다.
이 가게는 허름하지만 손님들은 계속 드나드는 장사가 무척 잘 되는 곳이었다. 이런 가게의 사장과 강윤이 의외의 인맥으로 연결되어 있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저도 자주 올게요.”
“민진서 씨라면 언제든 환영이에요!! 매니저 분이랑 오세요!! 서비스 듬뿍 드릴게요.”
여사장의 배웅을 받으며 민진서는 강윤과 함께 식당을 떠났다.
밥을 먹었으니 다음 목표는 커피였다. 식당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해안가에 전망 좋은 카페가 있었다.
두 사람은 카페로 들어가 직원에게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하고는 2층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없어서 두 사람이 이야기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평범하면서 사소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MG 엔터테인먼트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그녀의 얼굴에는 활기가 돋았다. 누구에게도 쉽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강윤에게는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배우가 마음에 안 들어?”
“조금? 아니, 조금이 아닌가? 세 달 전에 칼을 휘두르는 연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땅에 끌리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상대가 계속 옷자락을 밟아댔어요.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 그러니까 의심이 되더라고요. 알고보니 일부러 그런거였어요.”
“저런. 그래서 어떻게 했어?”
“소품칼로 배를 찔러버렸어요. 아주 세게.”
강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소품이라 당연히 박히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통증은 다른 문제였다.
되로 받고 말로 돌려준 격이었다. 민진서가 화가 났을 때 보이는 과격함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 정도 기 싸움은 배우들 세계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강윤은 잘 알았다. 특히 자국도 아니고 타국이라면 살아남기위한 기 싸움은 더더욱 살벌하리라.
그 이후, 배를 찔린 배우가 설설 기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강윤은 피식 웃었다.
“…얼굴을 다치게 하진 않았네. 그나마 다행이야.”
“그래도 배우잖아요. 얼굴이 생명인데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기 싸움에서 이겼다니, 다행이네. 하지만 다음부터는 조심해. 타국이잖아.”
“네, 선생님.”
강윤이 걱정을 해주니 이상하게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심하나 없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한참 동안 자신의 활동 이야기만 하다 보니 민진서는 강윤에 대해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강윤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다. 조금 전의 성게비빔밥 집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선생님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세요?”
조금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강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 강한 스트레스를 받아와도 내색하지 않고 어떻게든 넘겼던 것 같았다. 높은 목표가 그것을 극복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강윤은 차분히 말했다.
“글쎄… 딱히 스트레스를 푸는 법은 없는 것 같은데.”
“힘들진 않으세요? 목이 뻣뻣해 진다던가, 몸이 피곤하다던가?”
생각해보니 간혹 목 뒤가 뻐근해질 때가 있었다. 편곡이나 일에 열을 올릴 때 일시적으로 간혹 일어나는 일이었다.
강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진서의 얼굴이 걱정으로 물들었다.
“선생님, 스트레스는 풀어야 해요. 쌓아두면 좋지 않아요.”
“그런가. 아직까진 괜찮은데…”
그의 태연한 말에 민진서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선생님, 그러다 큰일 나요. 선생님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데…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하하하, 설마 그러겠…”
“선생님,”
민진서는 단호한 시선으로 강윤을 째려보았다.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눈과는 사뭇 달랐다. 강윤은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녀석. 알았어. 신경 쓸게.”
“꼭, 꼭.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에요.”
“알았어. 확인이라도 받을까?”
“네. 매일 확인 받으세요.”
“하하하하.”
강윤은 너털웃음을 지었다.
‘진서가 걱정해주다니. 나쁜 기분은 아니네.’
사람들에겐 대배우, 국민 여동생 등 최고의 호칭으로 불리는 민진서였지만, 강윤에게는 제자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어느 덧 자신을 걱정해 주고 눈을 맞대고 대화를 나눌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분이 묘했다.
어느덧 두 사람의 잔은 작은 얼음 알갱이들만 남았다.
강윤은 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돌아갈까?”
“네.”
카페를 나서며 민진서는 강윤의 옆에 바짝 붙었다. 아직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워 볼 용기는 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그가 이상하게 느끼진 않을까 등등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강윤과 함께 걷는 그녀의 얼굴은 행복감에 물들어 있었다.
.
.
.
“꺅!!”
“해보자는 거야!? 좋아!! 다 덤벼!!”
서한유와 정민아는 자신들에게 물 공격을 퍼붓는 매니저들과 김진대에게 반격에 나섰다. 비키니라는 시원한 패션에 맞지 않게, 정민아는 격렬하게 물장구를 치며 자신을 공격하는 모두를 제압해나갔다.
“와우!! 야!! 튀어!!”
“꽥!!”
김진대와 이현아는 정민아의 엄청난 반격에 죽을 맛이었다. 그녀의 운동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물보라가 칠 때마다 얼굴을 덮쳐오는 물의 양이 상당했다. 덕분에 짠 맛을 제대로 느껴야 했다.
모두가 그렇게 물보라 속에서 놀고 있을 때, 차가 주차장에 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일행이 제주도에 도착해서 빌린 렌터카였다.
‘저 아저씨가?!’
‘뭐야 뭐야?!’
그런데,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을 보니 정민아와 이현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전석에서 강윤이, 조수석에서 민진서가 나란히 내리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차에서 내린 후 화기애애함이 물씬 풍겨 나오는 것이…
‘가자!!’
정민아와 이현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빛을 교환하고는 물장구를 멈췄다. 두 사람이 강윤을 가리키며 빠르게 걷기 시작하자 모두가 씨익 웃으며 따라나섰다.
한편, 다가오는 위협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윤은 민진서와의 대화에 빠져있었다.
“선생님. 오늘 감사합니다.”
“아냐. 나야말로 재미있었어. 오랜만에 아는 분도 만나서 즐거웠고.”
강윤은 씨익 웃었다.
자신을 걱정해주며 대화가 통할 정도로 성장한 민진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흐뭇해졌다.
강윤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뒤에서 이상한 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수영복을 입은 월드 엔터테인먼트 군단이 있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모두가 한 마음으로 소리쳤다. 그러자 강윤은 순간 깜짝 놀라 멈칫했다.
“잡아!!”
정민아의 외침과 함께 모두가 강윤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게 뭐하는 거야?”
“어허, 어허!!”
강윤은 졸지에 사지를 번쩍 들렸다. 정민아가 왼팔, 이현아가 오른팔을, 남자 두 사람이 다리를 붙잡았다. 물속에 던지려는 속셈이었다.
“쿡쿡.”
민진서마저 적으로 돌변했는지 강윤의 주머니에서 핸드폰과 중요 물품을 꺼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마음 놓고 던지라는 의미였다.
“어? 어. 이것들이…”
강윤은 어이가 없는지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장단에 함께 놀아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풍덩!!
강윤은 곧 가마니 던져지듯 내던져졌다.
“푸하하하하!!”
“하하하하하!!”
물에 강윤을 던져 넣자 모두에게서 웃음보가 터졌다. 큰일을 처리했다는 듯, 하이파이브까지 했다.
그런데, 물속에 들어간 강윤이 떠오르지 않았다. 금방 일어날 거라 생각했던 모두는 당황하며 강윤에게로 달려갔다.
“아저씨!!”
“오빠!!”
정민아와 이현아를 앞세워 달려가는데, 갑자기 강윤이 벌떡 일어났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강윤은 일어나자마자 맨 앞에 있던 정민아에게 달려들어 어깨에 들쳐 멨다. 그녀의 건강미넘치는 몸이 순간 번쩍 들렸다.
“후후, 해보자 이거지?”
“아, 아저씨이이!! 눌려요, 눌려!!”
“후후후. 누가 먼저 시작했지?”
강윤은 사악한 눈빛을 하며 천천히 깊은 바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정민아는 도끼눈이 되어 강윤의 등을 두드려댔다.
“으아아앙!! 아저씨, 아저씨!! 잘못했어요!! 옷, 옷 벗겨진 다고요!!”
정민아의 울음 섞인 목소리와 일행의 폭소가 바닷가를 뒤덮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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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VIP 소속사는 지어진지 몇 년 안 된 깔끔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황주겸과 함께 VVIP 소속사 건물에 온 김지민은 내부를 둘러보며 눈을 반짝였다.
“우와.”
월드 엔터테인먼트가 작지만 실속 있는 시설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면, VVIP 엔터테인먼트는 화려하면서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주를 이루었다. 회사 직원들도 많았고, 그들 모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매니저는 어디 있니?”
“회사 근처에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황주겸의 물음에 김지민은 편안하게 답했다.
두 사람은 5층 건물을 하나하나 살폈다. 스튜디오를 비롯해 연습실과 월드 엔터테인먼트에 없는 각종 편의시설까지 모두 둘러보았다.
“…헬스장까지 있다니. 대단하네요.”
“직원들을 위해서 회사는 당연히 투자해야지. 그렇지?”
김지민이 연신 감탄하자, 황주겸은 입 꼬리를 말아올렸다.
모든 시설을 둘러본 두 사람은 곧 사장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대표 이병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요, 환영합니다.”
그는 볼록 나온 배를 살짝 어루만지고는 김지민을 맞아주었다. 전체적으로 후덕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눈매는 날이 선 이중적인 인상을 하고 있었다.
곧 비서가 차를 내오고, 이병진 대표는 편안한 어조로 물었다.
“회사를 둘러보니 어떤가요?”
“시설이 좋아요. 헬스장에 식당도 있고… 진짜 좋은 것 같아요.”
“직원들을 위해서 투자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김지민은 그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병진 대표라는 사람은 왠지 모르게 좋은 사람같았다.
대화를 나누며, 그는 VVIP 기획사의 여러 가지 장점들을 이야기했다. 기획사의 규모와 지원정도, 회사가 가진 인맥 등 여러가지 장점들을 김지민에게 어필했다.
“아아. 그래요?”
김지민이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자, 이병진 대표는 슬쩍 용건을 흘리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회사는 아무에게나 이런 지원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판단되는 연예인에게 확실한 투자를 하는 겁니다. 우린 은하 양이 그럴 가치가 있는 연예인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은하 양이 저희 회사에서 이런 지원을 받았으면 하는군요.”
“네?”
김지민은 당황했다. 돌고 돌아 결국 스카웃 제의였다.
이병진 대표는 자신감 어린 말투로 연신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은하 양을 지원한 만반의 계획과 시스템, 그리고 시설을 갖추고 있어요. 월드라는 작은 소속사에서 은하 양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를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은하 양이 뛰어났기 때문이예요. 우린 여기에 우린 날개를 달아 더 높게 날게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월드보다 우리가 더 낫다. 이병진 대표는 이 말을 돌려서 했다. 결국 여기로 오라는 말이었다.
월드를 깎아내리고, 자신들을 높이는 태도에서 김지민은 기분이 팍 상했다.
그러나 그걸 알지 못한 이병진 대표는 신을 내며 말을 이어갔다.
“우린 지민 양의 노래를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에서는 지민양의 노래에만 주목한 나머지 춤이라는 가능성을 철저히 무시했죠. 그리고 연기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할 생각이고요. 어떤가요? 우리와 함께 새롭게 시작해보지 않겠습니까?”
김지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사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사장님은 나한테 춤에는 재능이 하나도 없다고 못을 박았어. 그래서 악기를 배우게 했고, 노래에 올인 하게 했지.’
회사 방침이 강윤과 명확하게 달랐다. 김지민은 자신이 춤에 재능이 전혀 없다는 걸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했던가. 하지만 그걸 넘어 자신을 이 자리로 올려준 사람이 강윤이었다.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연기라니. 그녀가 생각한 길과는 완전히 다른 길이었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김지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이런 자리인 줄 모르고 온 것 같네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은하 양?”
“앞으로 뵙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한번 결정한 김지민은 단호하게 사장실 문을 열고 그대로 나가버렸다. 두려움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 하나하나는 강했다.
빠른 걸음으로 VVIP 소속사를 벗어나는 그녀를, 황주겸이 뒤쫓아왔다.
“지민아. 그래도 이야기는 끝까지…”
“선배님.”
김지민은 가라앉은 눈을 들어 그의 눈과 마주했다.
“이런 자리인 줄 알았으면 전 오지 않았을 거예요.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런데, 황주겸이 강하게 김지민의 손을 낚아챘다.
“야. 은하 네가 그렇게 잘났냐? 어?!”
갑작스럽게 그의 태도가 돌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완력을 사용하다니… 추했다.
김지민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두려움과 경멸이 섞인 눈으로 입술을 꾹 깨물며 차분하게 답했다.
“저희 소속사에서는 지금처럼 추하게 완력을 쓰지는 않아요. 다 말로 해도 알아듣거든요. 그리고 확실히 말하는데, 앞으로 할머니나 저한테 찾아오는 일, 없도록 해주세요. 전 저희 소속사를 떠날 생각이 없으니까.”
“이…”
김지민의 팔을 붙잡은 황주겸의 손이 강하게 떨려왔다.
“미친년!! 월드? 자기 소속사 빠순이 같은 게 어디서 훈계질이야?! 그런 코딱지만한 소속사에서 너 같은 게 얼마나 클 수 있을 것 같아?”
짝!!
김지민은 황주겸의 뺨을 올려붙였다.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김지민은 그를 노려보았다.
“말조심 하세요. 거지같다니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저를 가수로 만들어 준 곳이 월드라는 곳이에요. 제가 이 소속사에 거지같다고 하면 선배 기분이 좋겠어요?”
“……”
“이거 놔요. 빠순이가 배신자보다 백배는 낫거든요?”
김지민은 당차게 황주겸의 손을 뿌리쳤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황주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문을 나서는 그녀를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흥.”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밴에 오르며, 김지민은 콧방귀를 끼었다.
.
.
.
“수고하셨습니다.”
집 앞에서, 김지민은 벤을 보내며 손을 흔들었다.
VVIP 소속사까지 갔다가 전쟁을 치르고 나온 김지민은 피곤했다.
‘아, 몰라몰라!!’
김지민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생각하기도 싫었다.
오늘 있었던 가요계 선배에게 행한 무례가 부메랑처럼 돌아올까 걱정도 되었지만, 애초에 잘못한 쪽은 VVIP 소속사였다. 어디서 감히 소중한 소속사를 그런 식으로…
하지만, 혹여나 월드에 피해라도 갈까 걱정되었다.
“지민아.”
고개를 푹 숙인 김지민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아보니 강윤이 손을 들고 서있었다.
“선생님!!”
김지민은 놀라 소리쳤다. 오늘 돌아오는 날이기는 했지만, 지금 시간이면 집에 가 있을 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의 집 앞에 강윤이 있다니…
강윤은 김지민의 힘없는 표정에 걱정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힘이 없어 보이네?”
제주도에서 사온 특산물, 한라봉을 건네며, 강윤은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제주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에도 들르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는 말을 들으니 그녀의 눈빛이 감동으로 반짝였다.
이상한 소속사에서 받은 상처따위, 금방 사그라다는 기분이었다.
“에이. 별일은요. 그냥 날파리가 끼었었어요.”
“날파리?”
“원래 맛있는 음식엔 날파리가 끼는 거잖아요. 선생님, 잠깐 들어왔다 가실래요? 할머니도 좋아하실 텐데?”
강윤은 멋쩍은 표정을 짓다 그녀의 강권에 못 이겨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앞세우며, 김지민은 생각했다.
‘난 역시 여기가 좋아.’
이렇게 자신을 생각해주는 사장님을 두고 어디를 가겠나. 시설이고 뭐고 알아주는 사람 곁에서 계속 노래를 하고 싶어졌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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