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69
53화 – 명곡의 재해석(1) >
——————————
음악의 신
53화 – 명곡의 재해석
——————————-
“아유, 어서 와요. 사장님.”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길례 여사는 강윤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가 멋쩍은 얼굴로 안으로 들어서자 김지민은 방석까지 내주며 자리를 내주었다.
‘좋은 집을 구했네. 불편하진 않나보구나.’
집안을 둘러보며 강윤은 안심했다.
이번 앨범이 잘 되자, 김지민은 연습생 때 강윤이 구해줬던 집에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갔다. 자신에게 드는 회사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커튼과 하얀 벽지의 조화가 아담한 크기의 집안과 잘 어우러지며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정길례 여사는 정성들여 차를 내왔다.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대추차였다. 달달한 향이 여독을 풀어주는 기분이 들어 강윤의 표정이 한껏 편안해졌다.
“선생님, 제주도에서는 즐거우셨어요?”
“즐거웠지. 지민이가 못 와서 아쉬웠지만.”
“저도요. 다음에는 꼭 같이 가고 싶어요.”
김지민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연예 기획사의 특성상 회사 내 사람들과 스케줄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 결국 이번에는 김지민이 희생해야 했다. 강윤도 그 일이 마음에 걸려서 도착하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고 말이다.
강윤이 제주도에서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자 김지민도 며칠 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동안 강윤이 에디오스 일 등으로 정신없었던 탓에 두 사람의 대화는 상당히 길어졌다.
“…그래서 VVIP에 갔었는데요.”
그런데, 김지민이 VVIP 소속사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자 강윤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잠깐. 그런 곳을 갔었단 말이야?”
“네. 죄송해요. 하지만 별 일은 없었어요.”
허락도 없이 다른 회사에 갔었다는 이야기는 민감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VVIP 소속사 아이돌, 황주겸을 따라 갔다니.
하지만 강윤은 크게 타박하지는 않았다.
‘주명 씨는 뭐 한 거지?’
그의 머릿속에 매니저에 대한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촬영 중에 연예인 옆에 계속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다른 회사에 가게 내버려둔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는 행동이었다.
‘내일 물어봐야겠어. 그런데 VVIP라니. 신인 빼 먹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잖아. 제지를 했어야지.’
며칠 자리를 비운 사이, 큰일 날 뻔 했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떴다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신인도 많은 현실이다. 자신이 사람을 잘 봤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했다.
신인이 소위 스타가 되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많이 받기 마련이다. 100명이 데뷔하면 1명이 뜰까말까 한 현실에서 신인을 육성하는 것 보다 이미 뜬 연예인을 채용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위약금을 내는 게 투자금보다 싸게 먹힌다는 생각을 하는 회사도 많았다.
VVIP 기획사는 그런 회사로 악명이 높았다.
“다음부터는 다른 회사에 갈 때는 꼭 나한테 연락해. 알았지?”
“네. 알겠어요.”
“그래도 아무 일 없었다니 다행이야. 선배한데 한방 먹여준게 마음에 걸리긴… 에이. 그런 놈은 맞아도 싸. 어디서 감히. 스타가 그 정도 성질은 있어야지. 소문이 이상하게 날까 걱정되긴 하지만… 그런 건 내가 어떻게든 할게. 뭐, 자기들도 나쁜 짓 하다 그런 거니 어쩔 수 없겠지. 여자한테 맞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김지민은 부끄러웠는지 혀를 빼꼼히 내밀었다. 그때 한 행동을 생각하면 사실 부끄럽긴 했다. 하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준 강윤을 깎아내리는 꼴을 그대로 듣고 넘기는 건 더 싫었다.
대추차가 절반정도 사라지며 따끈하게 올라오던 김도 많이 사라졌다.
강윤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화제를 전환했다.
“명곡의 탄생이라는 프로그램 들어본 적 있어?”
김지민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 금요일에 KS TV에서 하는 프로그램 아닌가요? 옛날 노래를 재해석해서 부르는 프로그램 맞죠?”
“맞아. 10대부터 50대까지 평가단이 555명에게 평가를 받는 프로그램이지. 이번에 너한테 섭외가 들어왔어.”
“아, 그거요? 저 그거 해보고 싶어요.”
김지민은 의욕적으로 나왔다. 옛날 노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데서 그녀는 충분한 매력을 느꼈다. 이 프로그램은 겉으로는 예능 프로그램이었지만 결국은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출연하기에 충분히 매력을 느꼈다.
의욕이 넘치는 신인을 보는 사장의 마음은 흡족했다.
“알았어. 그럼 내일 자료 줄 테니까 사무실에서 보자.”
“알겠습니다.”
강윤은 남은 차를 마시고 그녀의 집을 나섰다.
다음 날.
아직 방학이라 등교를 하지 않은 김지민은 바로 회사로 향했다. 사무실로 들어서니 이현지가 그녀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머, 지민아. 오랜만이야.”
“안녕하세요, 이사님?”
김지민은 얼굴이 그을린 이현지를 보며 예쁘다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현지는 김지민에게 자기들만 휴가를 떠나 미안하다며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번 방송 끝나고 활동 끝나지? 그때 사장님이 휴가 주실 거야.”
“정말요? 그런데 저 학교… 우우…”
벽에 걸린 달력을 보더니 김지민의 표정이 우울해졌다. 이현지도 학교에 대해서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학교를 땡땡이치고 휴가를 간다? 강윤도, 할머니도 좋아할 리가 없었다.
‘애들도 힘들구나.’
이현지는 고등학생의 비애를 느끼며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기다리니 강윤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그의 표정은 드물게 상기되어 있었다.
“일을 어디서 배워서 온 건지.”
“왜 그래요?”
이현지가 의아함에 묻자 강윤은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주명 씨에게 이유를 물으니 지민이 표정이 너무 우울해보여서 꼭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고 말하네요. 아니, 무슨 매니저가… 결국 책임 팀장인 대현 매니저와 함께 호통을 쳤습니다. 연예인이 원한다고 다 해주면 그건 기계지 매니저가 아니니까요. 경력이 있다 해서 뽑았는데 사단을 내는군요. 아무래도 기초부터 다시 배우던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됐네요. 하지만 잘못하면 애써 키운 신인을 뺏길 수도 있었으니 강하게 해야죠. 주명 씨는 뭐라고 하나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까지 있었던 줄은 몰랐다며 울먹이더군요.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 없게 하겠다며 반성중입니다. 마인드가 잘못 된 사람은 아니니 기초부터 다시 배우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주명 씨는 당분간 에디오스와 다니며 일을 배워야 하니 명곡의 탄생 끝날 때까지 지민이는 제가 담당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매니저를 뽑을 수도 없고… 일이 또 생기네요.”
이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힘내라는 의미였다.
한편, 김지민은 신이 났다.
‘아싸.’
강윤과 함께 스케줄을 나가면 어깨가 든든했다. 무슨 일을 해도 될 것 같은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곧 강윤은 명곡의 탄생에 대한 설명을 하고, 그 곳에서 받아온 서류들을 김지민에게 주었다. 프로그램의 개요와 무대의 동선, 예시 등이 잘 나와 있었다.
서류들을 꼼꼼히 본 김지민이 말했다.
“1985년부터 87년까지 유행했던 노래? 저 이때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1994년생인 자신보다 역사가 긴 곡들의 향연에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강윤도 웃음이 나왔다.
“오히려 메이는 것이 없어서 신선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어. 잘 골라보자.”
“네.”
두 사람은 본격적인 곡 선정을 위해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에 있는 자료실에서 여러 곡들을 들어보고 신중히 골라 볼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박소영이 두터운 뿔테안경을 쓰고는 공부에 열중하고 있었다.
“소영아.”
“사장님. 안녕하세요? 지민아, 왔어?”
“언니, 안녕하세요.”
아침 일찍 온 박소영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고 악보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 강윤은 그녀의 노력에 기특했는지 말없이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김지민은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악보로 눈을 돌렸다.
“언니, 이거 무슨 곡인지 물어봐도 되요?”
“미안. 아직은 비밀. 나중에 꼭 말해줄게.”
“우우… 아쉽다.”
김지민은 가볍게 입술을 삐죽이곤 스튜디오 한 쪽 벽에 마련되어 있는 CD와 레코드가 가득 꽂혀있는 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국내 음반뿐만 아니라 해외 음반까지 잔뜩 실려 있었다. 틈틈이 강윤이 모아온 자료들이었다.
찬찬히 곡들을 보는 김지민을 보며 박소영이 말했다.
“사장님. 지민이 프로그램 선곡하는 건가요?”
“응. 소영이 너도 준비는 다 됐어?”
“…저 정말 부담되는데…”
박소영은 우물쭈물하며 팔을 꼬았다. 김지민과 ‘명곡의 탄생’의 편곡가로 나서라는 말을 들었지만 부담감이 앞섰다. 아직 편곡을 배우는 단계인데 이렇게 갑자기 방송에까지 나서라니…
“어차피 나도 같이 작업 할 거야. 소영이 너 혼자 모든 작업을 다 하는 게 아니니까 부담 가질 필요는 없어.”
“그, 그렇죠?”
“자신감. 어깨 펴고.”
강윤은 스스로의 어깨를 폈다. 박소영의 굽은 어깨를 펴라는 주문이었다. 박소영은 자세를 바로하며 힘없이 답했다.
“…네.”
“대답이 작아.”
“네. 알겠어요. 그런데, 사장님. 정말…”
하지만 강윤은 다른 답은 듣지도 않고 바로 김지민에게로 가버렸다.
“우으… 나 할 수 있을까?”
김지민과 곡을 고르는 강윤을 보며 박소영은 걱정에 발을 동동 굴렀다.
——————————
“손익분기점은 간신히 넘겼네.”
GNB 엔터테인먼트의 한영숙 사장은 가수 나엘의 활동성과를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나윤이라는 연습생을 선발해 많은 돈을 투자했고, 데뷔 시기까지 절묘하게 맞췄다. 그런데 월드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온 은하라는 가수와 비교되며 2인자로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외모는 나엘이 훨씬 나았지만 막상 무대에 서면 이상하게도 은하보다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국 나엘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노선을 전환해야 했고, 다행히 그 곳에서 인지도를 쌓아 나갈 수 있었다. 그 곳이 기반이 되어 이름을 알리고 행사 등으로 성과를 얻어 손익분기를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한영숙 사장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책상 위에 있던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하얀 연기가 사무실을 뒤덮었다.
“후우. ‘명곡의 탄생’을 끝으로 앨범 활동은 끝이네. 후련해.”
책상 위에는 ‘KS TV 명곡의 탄생 섭외요청서’라 적힌 서류가 놓여 있었다. 이미 서류에 그녀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어느 덧, 담배 하나를 다 태운 한영숙 사장은 전화벨을 눌러 비서실을 호출했다.
“나윤이 좀 불러줘.”
– 알겠습니다, 사장님.
유나윤을 위해 담배연기를 빼려고 한영숙 사장은 창문을 열었다.
.
.
얼마 있지 않아 KS TV 명곡의 탄생에 가수 나엘의 출연소식이 인터넷을 뒤덮었다.
——————————
여름 휴가를 다녀온 이후, 월드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이전보다 더 단단히 결속되었다.
소속 연예인들은 이전보다 확실히 가까워졌고, 직원들 사이에도 끈끈한 인맥이 형성되었다. 거기에 민진서까지 모두와 인맥을 형성하면서 이전에는 희미했던 월드 엔터테인먼트라는 개념이 모두에게 확고히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모두에게서 회사가 자신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월드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새로운 직원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유정민입니다. XX대학에서 이번에 졸업했습니다. 스물 여덟이고…”
모든 직원들이 모인 스튜디오에서의 아침회의 시간.
평범한 인상에 정장을 입은 남자가 긴장어린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자기를 소개하며 주위로 눈을 돌렸다.
‘에, 에디오스에 은하, 하얀… 헉…’
원래 연예기획사에 관심이 있던 그였지만 막상 연예인을 보니 인형 같았다. 옅은 화장을 한 여자 연예인들은 밖에서 보는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종족 같았으니 말이다.
그의 소개가 끝나자 강윤이 앞으로 나섰다.
“사무실에 새 식구가 들어왔습니다. 모두 박수.”
모두가 박수로 화답해주었다. 유정민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강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정민 씨는 혜진 씨 옆에 앉으면 됩니다. 혜진 씨는 정민 씨 일 잘 가르쳐주시고요.”
“네, 사장님.”
“후배 생겼다고 괴롭히면 안 됩니다.”
“하하하하.”
강윤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모인 귀한 시간이라 강윤은 간단히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모두가 자기 역할을 잘 해나가니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마지막으로 이현지가 말했다.
“여름이 곧 끝나가네요. 곧 가수 은하의 활동이 끝이 납니다. 같이 여행도 못간 막내, 잘 챙겨주세요. 선물 하나씩 해주면 좋겠군요.”
“네~”
김지민은 괜찮다며 펄쩍 뛰었지만 이현아가 어깨동무를 하며 손가락으로 돈을 넘기는 시늉을 하니 이내 안색이 달라졌다. 돈이 최고라는 뜻이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새얼굴 소개 겸 회의는 끝나고, 모두가 해산했다.
강윤이 옥상으로 올라가려하자 이현지가 그를 붙잡았다.
“사장님, 잠깐만요. 잠깐 시간 괜찮을까요?”
“네. 무슨 일 있습니까?”
이현지는 사무실안에서는 힘든 이야기인 듯, 강윤과 함께 옥상으로 향했다. 그녀는 옥상의 문까지 걸어 잠그더니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도 이제 필요한 시점인 것 같네요.”
“필요하다니, 무엇이 말입니까?”
강윤이 의아해하며 묻자, 이현지가 웃으며 말했다.
“연습생이요.”
“아, 연습생. 벌써 그렇게 됐군요.”
강윤은 수긍이 갔는지 강하게 손바닥을 쳤다.
회사의 미래가 될 연습생. 그녀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끝
ⓒ 이창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