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71
53화 – 명곡의 재해석(3) >
[그대를 사모 – 하지만 — 당신은 내겐 먼 당신인 것을 — 나를 바라봐줘요 –]영상은 고기집을 비추고 있었다.
술병을 마이크 삼은 여자는 반주하나 없이 트로트를 구성지게 불러 나갔다. 일행인 사람들은 젓가락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흥을 돋웠고 여자의 노래는 분위기를 뜨겁게 달궜다. 일행이 아닌 사람들도 처음엔 눈살을 찌푸리다 그녀의 노래에 조금씩 동화되더니 손뼉을 치며 동조해갔다.
처음에 영상을 잘못 열었다 생각했던 이현지는 어느덧 영상에 빠져 눈을 빛냈고, 강윤도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팔짱을 끼었다.
‘다른 테이블 사람들도 빨아들이는군. 하긴, 이정도 노래면 누구나 좋아할 만하지.’
팔짱을 낀 강윤은 작게 신음성을 냈다.
여자는 어느덧 눈을 감고 술병을 들어 올렸고. 목소리도 점차 달아올랐다. 분위기는 더더욱 뜨거워져 몇몇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브루스까지 췄다.
여자의 노래로 점차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앵콜 요청이 쇄도했고 여자는 수줍은 표정으로 다시 소주병을 들어야 했다. 여자가 소주병을 들자 영상은 끝이 났다.
“조금 더 보고 싶었는데…”
강윤은 아쉬운 표정으로 팔짱을 풀었다.
이현지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괜찮은 노래네요. 하지만 우리가 회식 영상을 보낼 정도로 작은 규모는 아닌데… 그 점에선 의문이 드네요.”
자존심이 조금 상했는지, 이현지는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노래는 좋았지만, 장난같이 보낸 것 같은 이런 영상은 사양하고 싶은 게 본 마음이었다.
하지만 강윤은 생각이 조금 달랐다.
“일부러 이런 영상을 보낸 걸 수도 있습니다. 내 노래가 이 정도다. 실력과 영향력을 동시에 봐 달라는 생각일 수도 있겠죠.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네요.”
“흠, 그렇게 볼 수도 있을까요? 튀어 보이려는 의도라면 성공적이군요. 하지만 이건 오디션 영상인데… 평가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불쾌한 면이 있네요. 이건 넘어가고. 영상을 보면 지망생의 나이가 적은 편은 아닌 것 같네요. 우린 연습생을 원하는 건데, 개인적으로는 지민이 정도 나이는 되었으면 하는데 말이죠. 영상만 봐서는 저는 뽑아야겠다는 메리트가 느껴지진 않군요.”
이현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지망생의 나이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는 돼야 오랜 기간 준비를 해도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강윤도 이현지의 말을 일정부분 공감했다. 나이가 많으면 처음으로 데뷔하는 입장에서는 걸리는 게 많았다.
하지만 강윤은 노래를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일단 만나본 후 판단을 내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그래요? 흠… 사장님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신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현지는 강윤의 감이 정확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지금까지 그가 된다면 무조건 됐다. 이런 감은 연예계 전체를 통틀어서도 거의 없었다.
그녀는 그의 이런 감을 믿었다.
“일단 만나서 판단을 해야죠. 이 지망생을 키우면 스타성이 있을지, 그리고 그 지망생이 진짜 가수가 되고 싶어 할 지. 한 가수가 실패하면 엔터테인먼트 사는 큰 리스크를 지기 마련이니까 신중해야죠. 회식을 하고 있는 걸 보니 이미 자리도 잡은 직장인 같으니 더더욱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요. 혜진 씨.”
이현지는 정혜진에게 영상을 보낸 사람에게 연락을 넣어 달라 부탁했다.
“알겠습니다, 이사 님.”
정혜진은 바로 메일을 작성했다. 그녀의 옆에 앉은 신입사원 유정민은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며 눈을 빛냈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소영이한테 가보겠습니다.”
“아, 편곡 봐주셔야 하죠? 소영이가 얼른 커줘야 사장님 공백을 메워 줄 텐데…”
이현지는 턱에 손을 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박소영이 강윤만큼 편곡을 해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강윤은 웃으며 답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자기가 희윤이 정도가 안 된다는 황당한 생각만 안하면 누구보다도 뛰어난 재목이 되는 녀석이니까요. 그때까진 열심히 쪼아줄 생각입니다.”
“풋. 사장님도 이럴 때 보면 참 사악해요. 소영이 보면 사장님 눈치 엄청 보던데.”
“그런 소심함은 스스로 이겨내야죠. 남이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잘 성장해줘야 할 텐데… 그럼 전 가보겠습니다.”
강윤은 몇 가지 책들을 가지고 사무실을 나섰다.
그가 나가고, 정혜진은 옆에 앉은 유정민에게 일거리를 안겨주었다.
“정민 씨. 여기 섭외 온 곳들 있죠? 여기에 연락해주시고 이력 작성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모르는 거 있으면 꼭 물어보세요. 실수하면…”
정혜진은 자리에 앉은 이현지 쪽으로 눈짓했다.
‘일할 때 이사님이 실수하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거든요.’
‘알겠습니다.’
‘사장님은 조금은 봐주시는데, 이사님은 얄짤 없어요. 엄하시거든요,’
유정민이 날선 눈으로 일을 시작하는 이현지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키자, 정혜진이 피식 웃었다.
‘후후. 그래도 쓸데없는 걸로 트집 잡는 일은 없어요. 아무튼, 시작해볼까요?’
‘네.’
새로운 신입직원과 함께 월드 엔터테인먼트의 사무실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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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SBB 음악나라 녹화가 있는 날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방송이다.
아침부터 스케줄을 끝내고 점심시간에 등촌동 공개홀로 온 김지민은 부랴부랴 배정받은 대기실로 향했다.
배정받은 대기실로 들어가니 먼저 와있던 이가 있었다.
“나윤아.”
“지민이?”
유나윤. 김지민과 함께 데뷔한 가수 나엘이었다. 두 사람은 반가움에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같이 데뷔한 게 인연이 되어 이제는 말도 많이 하고 친해졌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화장을 받으며,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았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와 스케줄 하는 동안 있었던 이야기, 잘 생긴 아이돌 이야기를 나누며 꽃을 피워갔다.
화제는 서로가 출연하는 ‘명곡의 탄생’으로 옮아갔다. 이미 두 사람은 서로의 출연을 잘 알고 있었다.
“준비 많이 했어?”
유나윤의 물음에 김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걱정이야. 아직 편곡도 못 끝냈어. 하아…”
사실이었다. 강윤의 도움을 받았다지만 박소영은 아직도 편곡을 끝내지 못했다.
그러자 유나윤이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에이. 사기를 치는 것이야? 천하의 은하가? 이제 녹화까지 일주일 조금 남았는데? 에이, 너무 눈에 보인다.”
하지만, 김지민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진짜야. 빨리 받아야 연습을 하는데… 하아. 넌 다 끝냈어?”
“나? 뭐… 대충은?”
“좋겠다…”
김지민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자 오히려 유나윤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그래도 넌 뮤즈가 편곡해 줄 거 아냐. 히트곡 제조기!!”
“……”
이번에는 뮤즈가 편곡하는 게 아니라고, 김지민은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사실, 강윤에게 왜 이번에는 편곡을 안 해주냐 따져 묻고 싶었지만, 열심히 하는 박소영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유나윤은 입술을 삐죽대며 말을 이어갔다.
“나중에 너희 사장님한테 말 좀 해줘. 곡 하나만 받고 싶다고.”
“하하하…”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며 키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 손에 의상과 검은 봉지를 들고 온 강윤이었다.
“지민아, 필요한 거 여기.”
“…감사합니다.”
김지민은 강윤에게 봉지를 받아들며 얼굴을 붉혔다. 그녀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봉지에서 내용물을 꺼내들더니 문밖을 나섰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겠지.”
그녀를 보며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유나윤이 궁금했는지 강윤에게 물었다.
“저기, 작…곡가님?”
“응? 나엘 씨군요. 무슨 일인가요?”
“네, 안녕하세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괜찮아요. 지민이 사장님인거 다 아는데…”
강윤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나윤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매니저 오빠가 해야 할 일을 하시는 것 같… 아, 죄송해요. 제가 말실수를 했네요.”
호기심어린 소녀의 눈빛에 질문이 잘못 나온 걸 안 강윤은 괜찮다며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지금 회사 인력이 모자라서 내가 매니저 역할은 대신하고 있는 거야. 사람이 모자란데 별 수 있나. 답이 됐니?”
“아아. 큰일이네요. 사람들이 빨리 찼으면 좋겠네요. 노래에 집중하셔야죠. 작곡가님 노래 짱 좋은데…”
“하하하. 고마워.”
유나윤에게서 진심이 느껴지니 강윤도 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뭔가가 떠올랐는지 손바닥을 쳤다.
“저, 작곡가님. 이번 지민이 곡 말인데요.”
“‘해피앤딩’말이야?”
“네. 저 그 곡 진짜 좋아해요. 작곡가님이 만드신 곡이죠?”
나엘, 자신을 짓누르는 곡이었지만 그녀는 기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곡에 대해 더 배우고 싶은 지 눈빛은 초롱초롱 빛났다.
그녀의 말에 거짓이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니 강윤은 놀랐다.
‘이러기도 쉽지 않은데…’
강윤은 차분하게 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 혼자 만든 곡이 아니야. 난 편곡 담당이고, 작곡은 동생이 했으니까. 나엘이 네 곡도 좋더라. 나도 즐겨 듣고 있어.”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곡 하나 부탁드리고 싶어요. 괜찮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나도 네가 잘 됐으면 좋겠어.”
서로 덕담 같은 대화를 하고 있으니 김지민이 돌아왔다.
“난 무대에 다녀올게.”
“네.”
강윤이 나가고, 대기실에는 다시 여자들만의 세상이 되었다.
유나윤은 김지민에게 바짝 붙으며 물었다.
“지민아. 뭐하고 왔어?”
“…그게…”
김지민은 어려운 이야기였는지 뜸을 들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그날이야.”
“에엑? 그날?”
“…그런데 아무것도 안 가져와서… 선생님이…”
“……”
유나윤은 당황스러웠다. 강윤이 사온 검은 봉지가 여성용품이라는 말이었다.
“세… 세상에!! 그… 작곡가님, 그러니까 사장님 맞지?”
“응. 아…!! 아, 얼굴에 불나고 있어.”
“나야말로 충격이다. 매니저 오빠라면 이해하는데 사장님이? 세상에…”
유나윤은 그녀대로 충격을 받았는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아, 화끈거려…”
김지민은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갔고, 유나윤은 큰 눈을 껌뻑였다.
‘부럽기도 하네…’
결국 사장이 궃은 일도 마다않는다는 것 아닌가.
유나윤은 김지민이 괜히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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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곡의 탄생’ 녹화 날짜가 일주일도 남지 않았지만, 박소영의 편곡은 끝나지 않았다. 촉박해진 기한 만큼이나 그녀는 스튜디오에서 홀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여긴 이렇게… 아, 이게 아냐!!’
적어보고, 편곡 시스템에 입력도 해보며 여러 소리들을 조합해 봤지만, 그녀가 만족할 만한 소리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미 작업실이 된 스튜디오는 엉망이었다. 하지만 박소영에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정도의 여유 따윈 없었다.
‘이 소릴 서스테인으로 늘려봐? 아니면 뮤트로 죽일까?’
화면에 일렉트릭 기타 모습이 나오며, 서스테인을 표현하는 동그라미와 뮤트를 나타내는 엑스표시가 나타났다. 서스테인으로 소리를 길게 늘이자 음이 길게 늘어났고, 뮤트를 누르자 음이 끊어졌다.
효과들을 더해봤지만, 그녀는 만족하지 못했다.
‘기타, 스트링, 드럼… 어떤 효과를 넣어도 별로야. 이건 뭐 어쩌라고…’
원곡 = 최고의 명곡
‘가로수’라는 곡을 한마디로 평하면 그것이었다. 함부로 손을 대면 곡 자체가 심하게 망가지는 탓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걸 안걸까? 김지민도 심한 편곡을 원하지 않았고.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박소영은 헤드셋을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없이 많은 조합을 해보았지만 결국 만족할 만한 편곡은 나오지 않았다. 시간을 늘려도, 줄여도, 원곡에 충실해도 색다른 조합을 해도 이건 답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강윤이 들어왔다. 막 김지민의 스케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박소영은 그를 보자 풀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오빠…”
“작업은 잘… 안 되는 모양이네.”
강윤은 대번에 현 작업 상태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 없는 어조로 말했다.
“죄송해요… 믿어 주셨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어요.”
박소영은 힘없이 어깨를 떨어뜨렸다. 믿음에 어떻게든 답을 하고 싶었지만 과거의 명곡이라는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강윤은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어디서 막히는데?”
“…그냥, 전부다요. 어디서 어떤 악기나 효과를 써야 할지 감이 아예 안 잡혀요. 이대로가면 그냥 원곡을 그대로 부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래? 그건 최악의 경우로 남겨두자. 어떤 효과들을 써봤어?”
박소영은 지금까지 썼던 조합들을 모두 보여주었다. 세심한 그녀답게 파일들은 모두 저장되어 있었다.
“많긴 많네…”
강윤은 먼저 헤드셋을 연결한 선을 뽑았다. 그녀와 함께 작업한 내용을 듣기 위함이었다. 곧 스피커로 소리와 함께 음표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회색과 하얀빛들이 뒤섞여 빛나가 시작했다.
‘윽…!!’
예상은 했지만, 직접적으로 자신을 찌르는 듯 한 회색빛의 영향력에 강윤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1시간이 넘도록 그녀가 작업한 모든 파일을 들어본 강윤은 지친 기색으로 힘없이 웃었다.
“하하… 고생했네.”
“…죄송해요. 정말 별거 없죠?”
박소영은 힘없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렇게 노력했지만, 재능이 없어 미안하다는 의미였다.
강윤은 괜찮다며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확실히 지금까지는 별게 없었네.”
“……”
박소영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그의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길을 잘못 들었던 모양이야.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해 보자.”
“완전히 다르게?”
강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어조에 힘을 주었다.
“오케스트라 편곡으로 가보자. 학교에서 전공했었지?”
“네? 네. 그런데 많이는 못 배웠어요. 전공 선택으로 배운 정도니까요.”
“그 정도면 됐어. 오케스트라 느낌을 살려보자. 인트로만 약간 늘리는 정도로 원곡 느낌은 최대한 살려보자. 드럼, 베이스 이런 악기들은 완전히 빼고 오케스트라로 연주하는 느낌으로 가보자. 이러면 원곡 느낌도 살고 지민이도 만족하지 않을까?”
“우와…”
박소영은 강윤의 말에 침을 꿀꺽 삼켰다. 스케일이 급격히 확장되는 기분이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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