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79
55화 – 늦었다고 깨달았을 때?(完) >
“정말 제가 가수가 될…”
인문희는 강윤의 제안을 수락하려다 멈칫했다.
가수의 꿈이 다가왔지만, 그걸 다시 잡기에는 과거와 현재의 괴리감이 너무도 컸다.
‘지금 다시 가수를 해도 괜찮을까? 재미는 없어도, 편히 살 수는 있는데?’
그녀의 나이 스물일곱.
생각 없이 꿈을 좇기엔 겁이 많아지는 나이였다.
매일 한숨짓게 하는 직장이었지만,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포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을 알았던 걸까.
강윤은 멋쩍게 말했다.
“제가 성급하게 제 이야기만 한 것 같습니다. 지금 교사라 하셨지요?”
“아, 네.”
“지금 바로 결정하기엔 교사라는 안정된 직장이 만만치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문희 씨 입장을 배려하지 못했네요. 미안합니다.”
자신을 배려하는 강윤의 모습이 인문희는 신기했다.
오히려 그로서는 짜증나는 상황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그녀가 아는 엔터테인먼트 종사자들은 자기중심에 우격다짐이 강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배려를 가진 이들은 쉽게 만나기 힘들었다. 게다가 자신이 전도유망한 어린 연습생도 아니고, 나이도 많은 일반인이나 다름없는데…
“아니에요,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좋은 추억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전 인문희 씨가 멋진 가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제안 한 거니 신중히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오디션이 끝나고, 인문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윤은 그녀를 입구까지 배웅했다.
월드 엔터테인먼트 사옥의 허름한 입구를 나서며, 인문희는 강윤에게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좋은 꿈을 꾼 것 같았어요.”
“좋은 시간이었다니 다행입니다.”
인문희는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래할 때의 두근거림과 설렘이 쉽게 잊혀 지지 않았다. TV에 나오는 가수들이 자신의 노래에 집중하며 평하던 오늘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젠 꿈에서 깰 시간이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어. 다시 노래하기엔 너무 늦었잖아? 이게 맞아.’
인문희는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아쉬움에 쉽게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땠다. 하지만, 그녀의 동그란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이곳을 벗어나면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문희 씨. 잠시 만요.”
“네?”
강윤이 인사하고 가려는 그녀를 붙잡았다.
“문희 씨의 나이나 직업 등이 가수에 대해 쉽게 생각하기가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볍게 한 제안이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문희 씨라면 충분히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습니다. 저도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조만간 다시 뵙겠습니다.”
인문희는 강윤이 건네는 명함을 공손히 받아들고 월드 엔터테인먼트를 벗어났다.
길가의 여러 사람을 지나치며, 인문희는 복잡한 상념에 잠겼다.
‘가볍게 한 제안이 아니라고?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다? 하아…’
혹시, 진짜 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가는 그녀의 머리는 갈수록 복잡해져갔다.
.
.
.
인문희를 보내고, 강윤은 남은 일을 정리하다 희윤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희윤은 인터넷에서 김지민이 출연한 ‘명곡의 탄생’ 영상을 봤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 이번에 지민이 노래한 거 봤어. 우와. 완전…
전화로 들려오는 동생의 놀라는 어조에 강윤도 같은 생각이라며 차분히 답했다.
“이번에 지민이가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 소영이도 고생 많이 했고.”
김지민과 박소영 사이를 조율하고, 계효민을 섭외했으며 오케스트라 팀을 모아 거대한 무대를 만든 건 강윤,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공보다 다른 이들의 수고를 더 언급하며 높여주었다.
– 그래도 제일 수고한 건 오빠잖아. 그런 무대 만들려면 불협화음이 엄청났을 텐데…
음악 이론뿐만 아니라 프로듀싱에 대한 전반적인 수업을 듣는 탓에 그녀는 강윤의 고생을 잘 알고 있었다.
동생의 기특한 말에, 강윤은 웃음으로 답했다.
“우리 희윤이, 다 컸네. 그런 기특한 말도 할 줄 알고.”
– …원래 컸거든요? 하여간 맨날 애 취급.
“하하하.”
남매간의 훈훈한 대화가 오가고, 희윤은 조심스럽게 다음 화제를 꺼냈다.
– 내가 보낸 파일 받았어?
“재훈이 이번 곡 말이지? 이제 보려고.”
– 하아.
평소 곡을 보낼 때와는 다른 반응에 강윤은 의아해했다.
“왜 그래?”
– 오빠. 그게… 아니, 일단 보고 이야기 하는 게 좋겠어.
강윤은 희윤이 보낸 악보 파일을 열었다.
차분히 멜로디를 검토하던 강윤은 중반부에서 눈이 동그래지더니, 후렴부에선 입이 쩌억 벌어졌다.
“잠깐.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높아?”
후렴부 들어가기 전에 2옥타브 A, B를 넘나들더니 기어이 후렴에선 3옥타브를 넘어 C를 넘어 F까지 음이 치솟았다. 과거에 김재훈이 불렀던 노래와 거의 비슷한 음역이었다.
– …역시 안 되겠지?
희윤의 목소리에는 자신이 없었다.
월드 엔터테인먼트에 오기 전, 김재훈이 무리한 스케줄을 수행하다 성대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그녀도 알고 있었다.
“키를 낮추는 게 낮지 않겠어? 이걸로 활동한다면 목이 상할 것 같은데?”
– 나도 계속 말했어. 그런데 지르지 않으면 느낌이 안산다면서 말을 안 들어. 하아… 음이 높다고 노래가 무조건 좋은 건 아니잖아. 오빠가 재훈 오빠 좀 말려줘.
전화기에서 짙은 한숨이 들려왔다.
강윤은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알았어. 무조건 말려야지. 이 곡 이대로 활동하면 성대에 무리가 올 거야.”
– 역시…
“일단 내가 재훈이하고 이야기 해볼게. 폭탄을 지고 갈 필요는 없어.”
– 알았어. 그럼 난 오빠만 믿을게.
“재훈이는 내가 설득해볼게. 아, 이번에 지민이하고 소영이, 거기로 가는 거 알지?”
– 응. 소영이한테 연락 받았어.
한국은 명절과 함께 짧은 휴가가 시작되지만 미국은 아니었다.
졸업반이라 한국에 올 수 없는 희윤에게 박소영과 김지민이 가기로 결정했다.
“애들 왔다고 클럽 같은데서 밤새지 말고.”
– 알았어. 나 시끄러워서 클럽 안 좋아해.
“하하하. 셋이서 곡 작업하면서 놀면 되겠네.”
– 에이. 놀러 온 사람까지 부려 먹는 거야? 이 악덕 사장님 보게?
장난기 어린 동생의 말에 강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후, 개인적인 안부를 묻고는 통화는 마무리되었다
“현아 곡 받고 재훈이가 고음의 맛을 알았나. 왜 이런 곡을…”
강윤은 의문을 품고는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거실의 불을 꺼져있었고 김재훈의 방에서만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똑똑.
강윤은 김재훈의 방 문을 노크하곤 안으로 들어섰다.
“형. 오셨어요?”
“응. 잠깐 이야기 좀 할까?”
강윤은 김재훈의 침대에 앉았다. 그의 앞에 김재훈이 의자를 끌어다 앉자 강윤은 차분히 본론을 꺼냈다.
“오늘 희윤이에게 네 곡을 받았어.”
“아…”
김재훈은 바로 강윤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챘다. 누구보다도 자신의 목에 신경을 쓰는 이가 강윤이었으니까.
“재훈이 너도 알겠지만, 난 가수의 생각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 알고 있지?”
“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면서 그런 곡으로 활동하게 할 순 없어. 미안.”
강윤이 반대할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단호하게 직접적으로 말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김재훈은 순간 오기가 생겼다.
“형, 저 목 완전히 회복 된지 몇 년이 지났어요. 이만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해요.”
그의 말에 강윤은 고개를 흔들었다.
“완전한 회복이라. 성대가 나가면 완전한 회복은 없어. 약간 변형이 올 뿐이지. 지난 번 고음이었던 현아 곡도 3옥타브 C가 최고였잖아. 더 올리고 싶어도 버겁지 않았어?”
“그건…”
순간 김재훈은 멈칫했다.
그 반응을 보며 강윤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재훈아. 네 마음은 알겠지만, 이번 앨범 한번으로 활동 영원히 접을 건 아니잖아. 싱글 한번 내고 가수 안 할 거니?”
“……”
“지금이 2000년대 초반도 아니고, 고음 높게 지른다고 누가 더 노래 잘하나 봐주는 시대도 아니잖아. 내 생각엔 지금의 네 목소리를 가다듬는 게 어떨까 싶어.”
김재훈은 침묵했다.
강윤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욕심을 떨치기 힘들었다.
‘저 고집. 하여간.’
김재훈의 눈에서 고집을 읽은 강윤은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김재훈도 은근히 황소고집이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재훈아. 이대로 가 봐야 평행선이야.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난 이번 곡을 엎는 수밖에 없어.”
“형. 그런…”
강윤이 한번 한다면 한다. 사장의 기질을 김재훈이 모를까?
엄청난 초강수에 김재훈은 크게 당황했다.
자신이 활동을 시작하면 어떻게든 이익이 난다는 걸 김재훈은 잘 알고 있었다. 월드 엔터테인먼트에서 에디오스 다음으로 이익을 내는 가수가 그였다. 그런데 곡을 엎겠다니.
고집을 부리던 김재훈이 주춤해지자 강윤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문제가 생길 걸 뻔히 아는데, 누가 불을 지고 섶에 뛰어들겠어? 차라리 안하는 게 낫지. 나중에 생각이 바뀌면 이야기하자.”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김재훈이 그를 붙잡았다.
“자, 잠깐만요. 형.”
김재훈이 조금 물러난 기색을 보이니 강윤이 그를 돌아보았다.
“왜?”
“그게…”
“생각이 바뀌면 말해줘. 아, 혹여나 그 곡으로 연습을 하거나 그런 일은 없길 바래. 네가 월드에 있는 한, 그 곡으로 앨범을 내는 일은 없을 거야. 네가 다른 소속사로 간다면 모를까.”
이토록 강윤이 강하게 나오니 김재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강윤이 문을 나서려 할 때, 김재훈이 다급히 외쳤다.
“잠깐!! 알았어요. 안할게요.”
“뭐라고?”
“…이 곡, 안할게요. 안하면 되잖아요.”
김재훈은 결국 고집을 꺾었다.
그 말을 들은 강윤은 몸을 돌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약속 할 수 있어?”
“…네.”
눈을 질끈 감으며, 김재훈은 힘겹게 답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지만, 사장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별 수 없었다. 게다가 그게 자신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니…
그러자 강윤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알았어. 대신 나도 약속할게.”
“약속이요?”
김재훈의 물음에 강윤은 강한 어조로 답했다.
“목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고음을 지르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곡을 줄게. 실망시키지 않을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네. 알았어요.”
고음에 대한 아쉬움을 안고 김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곡을 어떻게 입혀야 하나…’
강윤은 악상을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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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선생.”
“…….”
“인 선생.”
“…….”
점심시간이 지나 수업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인문희는 멍한 시선으로 깊은 상념에 잠겨 있었다.
‘아직 늦지 않은 걸까? 그 사람은 아직 연락 한번 없고…’
하지만, 직장에서 멍하게 있으면 화를 부른다.
“인 선생!!”
“네, 네!!”
인문희의 뒤에서 눈을 가늘게 뜨고 있던 교감은 호통을 쳤다.
그제야 인문희는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고개를 세차게 흔드는 인문희의 모습에 교감은 혀를 찼다.
“쯔쯧. 지금 5분 지났어요, 5분.”
“네? 아, 에엣?!”
“에엣은 무슨. 수업 안 가나요?!”
인문희는 허둥지둥 수업자료들을 챙겨 서둘러 교실로 달려갔다.
교감은 급히 나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쟤는 안 돼, 젊은 애가 열정이 없어.”
인문희의 인사평가가 안 좋게 기록되는 순간이었다.
어린 학생들과 부대끼면서도 그녀의 머릿속에 있는 상념은 쉽게 떠나가지 않았다. 칠판에 적는 숫자는 음표 같이 보였고, 들려오는 음성은 멜로디로 들리는 것 같았다.
‘하아…’
물 백묵을 힘겹게 놓으며, 인문희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집중이 되질 않았다.
지난 토요일, 오디션을 보고 온 이후 계속 이랬다. 가수에 대한 미련을 떨치고 일상에 충실할 수 있을 줄 알았건만 실상은 그 반대였다.
“선생님.”
“……”
“선생님.”
“아, 미안. 왜 그러니?”
“선생님이 저 부르셨잖아요.”
“그, 그랬니? 미안해.”
심지어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하느라 조금 전 여자아이를 부른 것조차 잊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그녀는 작게 한숨지었다.
학생들이 아닌, 상념과 싸우느라 지친 하루가 그렇게 흘러갔다.
“휴우…”
다행히 오늘은 야근이 없었다. 추석이 가까워온다고 학교 일이 줄어든 탓이었다.
인문희가 힘없이 털레털레 교문을 나서는데, 웬 남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사장님?”
“안녕하세요.”
강윤이었다.
그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왔다.
“불쑥 찾아와 죄송합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그게… 네. 괜찮아요.”
특별한 일정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강윤을 만나고 싶었다는 게 정답이었다.
저녁시간이라 강윤은 그녀와 함께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아, 어떻게 말을 해야 하지?’
하고 싶었던 말은 많았지만 막상 강윤을 마주하니 인문희는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강윤은 가수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그저 초등학교 이야기를 묻거나 누구나 공감할 만한 연예계 이야기를 하며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 뿐이었다.
스파게티를 포크로 돌돌 말며, 강윤은 조근한 어조로 말했다.
“담배를 처음 배우는 연령이 많이 내려갔다 들었습니다.”
“네. 저희 반에서도 두 명이나 담배 문제로 붙들렸어요.”
“저런… 교사도 쉽지 않네요.”
인문희는 질렸다는 어조로 담배 문제로 얽힌 학생들 이야기를 해나갔다. 부모님이 소환되어 왔는데 오히려 우리 애 기죽인다며 적반하장으로 나와 피가 거꾸로 솟았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해 주었다.
강윤은 그녀에게 공감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과보호가 아이들을 망치는 군요.”
“제 생각도 그래요. 적당히 엄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애들이 더 착하고 모범적이었어요.”
인문희의 학교 이야기로 한참이나 대화가 계속되었다.
메인 요리가 나오고, 빈 접시가 될 때까지.
분위기 있는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인문희는 괜히 강윤에게 미안해졌다.
‘사장님도 분명 바쁜 시간 내서 왔을 텐데…’
결국, 인문희는 참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내고 말았다.
“사장님. 그때 제안하신 가수 이야기 말인데요.”
인문희는 정중하게 거절하려 했다. 그런데 강윤과 마주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노래, 하고 싶은데…’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나이, 안정을 포기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계속 말하는 것을 망설이는 인문희에게 강윤이 분위기를 풀어주었지만, 그녀는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는 식탁 위에 풀썩 엎드리고 말았다.
“…으. 흑… 흑.”
“문희 씨?”
“으흑흑…”
결국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감정의 홍수가 터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강윤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이윽고, 붉어진 눈으로 그녀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죄송해요. 아, 추태를 보였네요.”
“아닙니다.”
“이거… 아, 부끄러워.”
인문희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더니, 부채질을 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녀는 연신 부채질을 하더니 잠시 후, 진정이 되었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래도 감정을 쏟아내니 조금은 정리가 되는 듯 했다.
“…월드에 다녀온 후로 여러 가지를 생각했어요. 과연 월드에서 나의 어떤 면을 보고 스카웃을 제안한 건지. 과연 내가 다시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요. 그런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사실, 크게 볼게 없는데…”
“있습니다. 문희 씨가 누구보다 감정을 잘 싣기 때문입니다.”
“감정을 잘 싣는다?”
인문희가 고개를 갸웃하자 강윤은 차분히 설명을 이어갔다.
“소리를 내는 스킬 등은 다른 가수들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음색 차이야 있지만… 이 부분은 트레이닝을 통해 더 특색 있게 만들어야 할 부분이라 봅니다. 하지만 감정은 다릅니다. 이건 가르치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애매합니다. 전 이걸 높이 평가했습니다.”
“아…”
“생각을 해봤습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는 건, 저도 좋은 방법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일단 학교를 다니면서 저희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받아보는 게 어떨까 합니다. 트레이닝을 받으며 3개월 뒤에 최종 결정을 하는 건 어떨까요?”
현실적인 제안이었다.
인문희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괜찮을까요?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은데…”
“하하하. 조금 손해이긴 하네요. 나중에 헤어지게 되더라도 홍보 잘해주세요.”
강윤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인문희도 마주 웃으며 화답했다.
“물론이죠!! 이런 호의를 받았는데 당연히!! 저, 열심히 할게요.”
“알겠습니다. 월드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걸 환영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두 사람은 손을 굳게 잡았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트로트 가수로 이름을 떨칠 그녀와 강윤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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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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