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83
56화 – 고객(?)만족 서비스(完) >
“저도 이런 곳은 처음이에요. 우와, 멋있어요.”
민진서는 창가에 자리한 테이블에 앉아 작게 탄성을 냈다. 화려하게 수놓인 야경이 그녀의 마음까지 환히 밝혀주는 듯 했다.
강윤은 창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뭐 마실래?”
“음. 우리 분위기 한번 내볼까요? 와인 어때요?”
“와인? 뭔가 이상한데?”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지만, 강윤은 전화기를 들어 룸서비스를 신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룸서비스로 올라와 와인 테이블을 세팅해주었다.
강윤은 와인을 따서 그녀에게 따라주었고, 민진서는 눈을 감으며 은은한 와인 향을 음미…
“으, 맛없어…!!”
…하지는 못했다. 와인의 깊은 향을 느끼기에 그녀의 입맛은 소위 ‘초딩입맛’이었다.
그녀에겐 와인이나 소주나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술중의 술은 와인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동료들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찌푸려진 그녀의 표정에 강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선생님. 웃지 마세요.”
“미안미안. 하하하.”
가히 완벽에 가깝다는 외견과는 반전되는 모습은 큰 웃음을 주었다.
강윤은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말했다.
“초딩입맛은 여전하구나.”
“초, 초딩입맛이라니요. 저 애 아니에요.”
“하하하. 맵고 짜고 단 것을 좋아하는 입맛이라는 말이야.”
‘초딩입맛’이라는 말이 아직 사용되지 않던 말이긴 했다. 강윤 앞에서 어려보이기 싫었던 민진서가 발끈할 만 했다.
강윤은 과일을 포크에 찍어 내밀며 말했다.
“자자. 우리 진서, 아.”
“아, 진짜… 선생님.”
민진서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살짝 입을 벌려 강윤이 준 과일을 직접 받았다.
‘으, 부끄러…’
그러더니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빨개진 얼굴을 가렸다.
‘귀엽네.’
강윤은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처음, 비누향을 풍기며 들어왔을 때 잔뜩 긴장했던 초반과는 달리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풀어졌다. 덕분에 마음을 조금은 차분하게 다질 수 있었다.
맛없다는 와인을 옆으로 밀어놓고, 가볍게 다과를 즐기며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민진서는 눈을 빛내며 강윤과 눈을 마주했다.
“선생님은 왜 기획자가 되셨어요?”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강윤은 조금 당황했다.
그 모습에도 민진서는 눈을 빛내며 가볍게 강윤을 보챘다.
“혹시 곤란한 질문… 이었나요? 가르쳐주시면, 안 되나요?”
“그런 건 아닌데…”
“…전 선생님 믿고 저에 대한 많은 걸 말했는데, 막상 전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없어요. 이건 불공평해요. 저도 알고 싶어요.”
제주도에서 들은 강윤에 대한 이야기는 쏙 뺐다.
강윤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보니 자신에 대해 이야기 한 게 별로 없었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을 보니 가볍게 넘어가기도 쉽지 않을 듯 했다.
‘뭐, 상관없겠지.’
민진서가 남도 아니고.
강윤은 짧은 한숨과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구한테 이런 말을 해본 적은 없었는데… 막상 하려니 조금 부끄럽네.”
“제가 처음인가요? 이거 영광인데요?”
“그러게. 이 바닥은 적당히 거리를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그건 조금… 그러네요. 마음 둘 곳도 없고.”
강윤의 말에 공감하며, 민진서도 쓴 웃음을 지었다.
씁쓸한 기억을 떠올렸는지 강윤은 와인을 한 모금 입에 가져갔다.
“내가 매니저를 하던 시기는 기획사라는 개념이 막 자리 잡아가던 시기야. 나도 사실 돈이 된다는 소문만 듣고 아는 분을 통해 매니저가 됐었고. 매니저를 하는 당장에는 돈이 안 돼도 승진을 하거나 내 사업을 꾸릴 수 있는 미래에는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 바닥에 뛰어들었지.”
“아아…”
“그때 난 내가 담당할 첫 스타를 만났어. A양이라고 할게. 그때 A양은 갓 데뷔한 파릇파릇한 신인이었어. 보통 신인들끼리는 잘 붙여놓지 않는데, 회사 사정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지. 그래서 신입끼리 붙는 상황이 연출되었지. 아무튼 그 이후, 난 바닥에서 구르며 A양과 연예계 생활을 함께 했지.”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A양은 떴어. 그런데 문제가 터졌지.”
“문제요?”
“막 A양이 이름을 알리고 승승장구를 하려는 시기였어. 노래가 알려지고 행사들이 막 들어오기 시작할 때였지. 당시 소속사가 많은 부채를 안고 있었는데 그게 하필이면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던 거야. 결국 궁여지책으로 회사에서는 A양에 대한 권리를 다른 소속사에 위임하면서 돈을 받았지. 본인 동의도 없이.”
“네?!”
민진서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기획사가 연예인의 동의도 없이 권한을 위임하고 받는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었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건 당장 고소해도 할 말이 없지 않나요? 그런 계약은 무효잖아요.”
“네 말이 맞아. 지금 그런 상황이라면 당연히 지킬 필요도 없겠지. 그런 계약은 애초에 성립자체가 안 된다는 판례도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때는 판례도 없었고, 권한 위임에 대한 명확한 체계도 없던 시절이야. 결국 지난한 법정 싸움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야. 이제 막 뜨기 시작한 A양이 활동도 접고 법정 싸움에 몰두한 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그 시간에 TV에 얼굴을 더 비치는 게 낫지.”
“하하…”
민진서는 기가 막혔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연예인들에 대한 대우가 좋지 않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강윤은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때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원 소속사 사장님께 빌어도 보고 그쪽 소속사에 찾아가 빌어도 봤지만 어린애는 빠지라는 말만 들었지. 법적 조치도 알아봤지만… 법정싸움에 시간을 소비할 여유가 없었던 A양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그쪽 소속사에 가게 되었어.”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처음엔 잘 나갔지. 하지만, 반짝이었어. 그쪽 소속사는 원래부터 장기적인 계획보다 단기적으로 연예인을 소모시키는 회사로 악명이 높았거든. 계약기간이 끝나고 A양은 연예계를 떠나 소식도 알 수 없게 돼버렸어.”
“……”
민진서는 침묵했다.
과거의 연예계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녀는 그런 환경에서도 바른 생각을 하고, 이루어가는 강윤이 더 대단해보였다.
“그때 난 혈기가 왕성했었나 봐. 적어도 내 곁에 있는 가수들은 마음 놓고 노래할 수 있게 해주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 그 생각이 지금의 위치까지 이끌지 않았나 생각해.”
강윤은 들고 있던 빈 글라스를 내려놓았다.
과거에는 이런 생각으로 기획자에 도전했었고, 실패를 겪었다. 이후 기획사를 차려 가수를 키웠지만 역시 실패를 반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완전히 달라져 승승장구.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몇 년의 시간이 강윤은 뿌듯했다.
민진서는 의자를 당겨 강윤 옆으로 다가왔다.
“…처음 알았어요. 선생님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이거 쑥스럽네. 오글오글하기도 하고.”
“아니에요. 정말 대단해요. 역시, 선생님은 대단해요.”
민진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강윤은 씨익 웃으며 화답했다.
그녀는 조금은 굳은 얼굴로 화제를 바꿨다.
“후우, 저도 배우 말고 가수를 할 걸 그랬나 봐요.”
“그 재능을 썩히려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강윤은 손사래를 쳤다.
연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민진서가 누구보다도 연기를 할 때 빛이 난다는 것은 잘 알았다.
그런데, 그녀에게서 나온 말은 강윤을 굳게 만들었다.
“그랬으면 지금쯤 선생님하고 함께 하고 있었… 겠죠?”
민진서가 강윤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전 진심으로 월드에 있는 사람들이 부러워요. 선생님을 믿고, 하고 싶은 노래들을 마음껏 하고 있잖아요. 전… 지금의 회사를 믿을 수도 없는데… 솔직히… 너무 힘들어요.”
강윤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려왔다.
강윤은 한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때.
갑자기 그녀가 강윤의 품에 안겨들었다.
“지, 진서야.”
“…잠깐만, 빌릴게요.”
그녀는 강윤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강윤은 잠시 망설이다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긴 머리칼을 쓸어내렸다. 그러자 잠시 들썩이던 그녀가 진정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요새 많이… 힘들거든요.”
“……”
강윤은 말없이 그녀의 등을 다독였다.
의자에 앉은 불편한 자세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다독이려 애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촉촉이 젖은 눈을 들어 강윤을 올려다보았다.
“진서야. 진…!!!!!!!!”
쪽.
그녀의 입술이 강윤의 입에 맞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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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이 없는 스튜디오는 인문희의 차지였다.
학교에서 초등학생들과 전쟁을 치루고 월드 엔터테인먼트에 나온 인문희에겐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본어와의 전쟁이었다.
– こんにちは (안녕하세요)
컴퓨터에 앉아 일본어 동영상 강의를 보며 인문희는 펜을 열심히 굴렸다.
‘코… 뭐라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었지만, 공부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필기도 해가며 공부에 열중했다.
그렇게 30분.
강의 하나가 끝나자 그제야 그녀는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 어려워. 엔카인지 잉카때문인지… 일어는 모르겠드아!!”
강윤의 지시로 듣게 된 일본어 강의였다. 차라리 영어였으면 나았을 것을…
하지만 사장이 하라고 하면 해야지, 별 수도 없었다.
인문희가 그렇게 온 몸으로 외국어를 거부하고 있을 때,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이현지가 들어섰다.
“이, 이사님.”
“문희 씨, 안녕. 내가 방해했나요?”
“아, 아닙니다.”
인문희는 당황했다.
혹여 이현지가 자신이 툴툴대는 걸 들었을까봐 걱정되었다. 이제 신입인데 벌써부터 찍히면 곤란한 일이 벌어질 테니…
그러나 이현지는 그녀의 생각과 다르게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일본어 공부는 잘 되가나요?”
“쉽지 않습니다. 제가 외국어는 워낙 부족해서…”
인문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자 이현지가 그녀 옆에 다가와 교재로 눈을 돌렸다.
“그래요? 그럼 어디 같이 볼까요?”
“네?”
인문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사와 함께 공부를 한다니… 도무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이현지의 위치가 학교의 교감정도 된다고 생각한 인문희에겐 큰 충격이었다.
“문희 씨. 앉아요. 보컬 연습도 하려면 여기에 투자 할 시간이 길지 않으니까요.”
“네!!”
인문희는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자리에 앉았다.
——————————-
중국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강윤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침비행기로 돌아온 그를 이현지가 마중 나왔다.
주차장에서 차에 짐을 싣는데, 강윤의 모습이 이상하게 풀려있었다.
그 모습에 의아했던 이현지가 물었다.
“사장님. 무슨 좋은 일 있었나요?”
“네?”
“표정이… 이상하게 좋아보이네요? 흐음, 나 몰래 좋은 거 드시고 오셨어요?”
갑자기 날아든 돌직구에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하하,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오늘 컨디션이 좋아서 그런가봅니다.”
“그런가요? 이상하네. 분위기가 조금 변한 것 같은데…”
평소의 강윤은 부드러웠지만, 쉽게 접근하기 힘든 그런 분위기를 풍겨왔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힘든 분위기는 온데 간데 사라져있었다.
이유가 궁금했지만, 이현지는 억지로 묻지는 않았다.
강윤은 바로 회사로 향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사장이라는 위치는 쉽게 휴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형. 오셨어요?”
스튜디오 문을 여니 먼저 도착한 김재훈이 악보를 내려놓으며 그를 맞아주었다.
강윤은 그와 손을 맞잡으며 반가움을 표하고는 바로 용건을 이야기했다.
“애들한테 받은 곡은 괜찮았어?”
“확실히 이전보다 나았어요. 편곡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분위기는 좋은 것 같아요.”
“그래? 목에는 무리 안갈 것 같고?”
“제 목이 유리도 아니고…”
김재훈이 가볍게 손사래를 치자, 강윤은 껄껄대며 웃었다.
강윤은 컴퓨터에서 희윤이 보낸 음악파일과 악보를 열어 재생했다. 곧 스피커에서 피아노 소리가 울려나왔고, 강윤은 모니터에 뜬 악보를 날 선 눈으로 바라보았다.
‘흠…’
하얀빛을 만들어내는 악보들은 이제는 당연한 듯 했다. 음높이도 적절했다. 3옥타브 C까지가 최대였다. 김재훈은 그 부분에 아쉬움을 드러냈지만, 그래도 곡에는 만족했는지 곡을 반려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얀빛이 천천히 사그라지는 모습을 보며, 강윤은 김재훈에게로 눈을 돌렸다.
“나쁘지 않네. 이제 남은 건 편곡이네.”
“후렴만 조금 굴곡지게 바꿨으면 좋겠어요. 아, 편곡은 형이 해 주시는 건가요?”
은연중에 김재훈은 강윤의 편곡을 기대하고 있었다. 강윤도 그걸 알았는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모처럼 힘 좀 써볼까? 안감이 잘 나왔으니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을 거야.”
“잘 부탁해요, 형.”
“너도 조금씩 연습해두고. 가사는 직접 써보는 게 어때?”
“그럴게요. 느낌이 괜찮아서 금방 나올 것 같아요.”
김재훈의 디지털 싱글에 대한 이야기는 그렇게 척척 진행 되어갔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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