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86
57화 – 소년(3) >
“제가 피처링을요?”
서한유가 되묻자 김재훈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응. 혹시 괜찮을까?”
“그게, 저… 어려운건 아닌데…”
“오, 그래? 그럼 괜찮은 거지?”
이미 머릿속에 불이 켜진 듯, 김재훈은 그녀에게 악보를 건네며 설명을 하려했다.
‘하하…’
서한유는 난감했다.
오늘 온 목적은 프로듀싱을 보기 위해서였다. 강윤이 하는 작업을 보고, 옆에서 조금씩 배우고 싶은 이유에서였다.
피처링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끌려가는 느낌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때, 조용히 두 사람 사이를 지켜보던 강윤이 부스 바닥에 팽개쳐진 모자를 가리켰다.
“재훈아. 저기에 너 모자 놓고 왔다.”
“아, 내 모자.”
노래를 얼마나 열심히 불렀는지, 쓰고 있던 모자가 벗겨진 줄도 몰랐다.
김재훈은 급히 머리를 가리더니 부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머리가 눌린 탓에 모자가 필수였다.
그가 없는 틈에 강윤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재훈이는 다 좋은데 한번 꽂히면 사람을 곤란하게 할 때가 있어.”
“하하… 좀 그러신 것 같아요.”
서한유는 작게 웃으며 한숨을 쉬었다.
평소에 과묵한 편이던 김재훈에게 이런 저돌적인 면이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으니 말이다.
“피처링이 곤란하다면 거절해도 괜찮아. 수습은 내가 해줄게.”
“사장님.”
“오늘은 프로듀싱 하는 거 보러 온 거잖아. 휴일도 많지 않은데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건 좀 아니지.”
“……”
서한유의 눈이 살짝 흐려졌다.
김재훈이 부스 안에서 머리를 가다듬고 모자를 쓰고 나올 때, 서한유가 조근한 어조로 말했다.
“사장님. 저라도 괜찮다면… 해볼게요.”
“괜찮겠어?”
강윤이 반문하자 서한유는 결심했는지 강한 눈빛으로 답했다.
“네. 그런데 제가 피처링은 처음이라 조금 걱정되네요. 잘 부탁드려요.”
서한유에게서 승낙이 나오자 김재훈은 얼굴을 환하게 밝히며 그녀의 손을 덜커덕 잡았다.
“고마워!! 그럼 같이 해보자.”
“어어? 오빠.”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김재훈은 서한유를 이끌고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가끔 보면 엉뚱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부스 안에서 곡을 가르치는 김재훈을 보며 강윤은 피식 웃었다.
– 아아. 아아–
피처링 할 허밍음을 다 배운 서한유는 허밍음을 냈고, 강윤은 믹서를 조절하며 소리를 잡았다.
볼륨을 조절하며 강윤이 물었다.
“모니터는 괜찮아?”
헤드셋으로 들어오는 사운드를 체크하며, 서한유는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렇게 녹음 준비가 끝나자 강윤이 신호를 보냈다.
“그럼 시작할게.”
MR이 흐르자 김재훈이 마지막 후렴을 부르자 서한유도 눈을 감으며 허밍을 시작했다.
– 아아아–
원래의 하얀빛이 더더욱 강해지며 힘을 받았다.
뭉쳐진 눈덩이 같던 빛은 서한유의 음표에 힘을 받았는지 눈덩이같이 불어가는 듯 했다.
허밍이 끝나고, 강윤은 마이크에 입을 댔다.
“둘이 목소리는 잘 맞는 것 같아.”
– 역시. 내 눈은 정확하다니까요.
김재훈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자 강윤이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일단 트랙 만들어야 하니까 재훈이는 나오고, 한유만 혼자 해보자.”
– 네.
김재훈이 부스를 나오고, 서한유 홀로 녹음이 진행되었다.
– 아아아–
서한유의 목소리를 듣던 김재훈은 눈을 감으며 미소 지었고, 강윤은 모니터에 뜬 주파수를 보며 턱에 손을 올렸다.
‘들을 땐 좋은 것 같은데 마스터링 할 때 손을 조금 봐야겠어. 느낌은 좋은데 약간 날카로운 것 같군.’
하얀빛에서 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뭔가가 아쉬웠다.
몇 번의 시도가 이어진 후, 김재훈이 궁금했는지 물었다.
“형, 어디가 안 좋나요? 저는 마음에 드는데…”
“나쁘진 않아. 믹싱하고 마스터링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고 있었어.”
“그래요? 아, 전 한유 목소리 정말 마음에 드는데. 차라리 가사 넣어서 편곡 다시 해보는 게 어떨까요? 아예 듀엣으로…”
서한유의 목소리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는지, 김재훈은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강윤은 고개를 저으며 난색을 표했다.
“그건 또 다른 문제라 생각해. 지금 이 편곡이 어울리지 않는 것도 문제고, 본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도 문제지. 거기에 가사도 듀엣곡의 성격에 맞게 수정해야 해. 지금 이 가사 자체가 독백하는 느낌이 강한데 듀엣이 맞을까?”
“그건 그런데… 아, 한유 목소리 정말 좋은데…”
김재훈이 아쉬워하며 물러나려 하지 않았지만, 강윤은 단호했다.
“한유와의 듀엣은 다음에 하자. 편곡에 가사까지 바꿔가며 듀엣을 하기에는 소모되는 시간과 에너지도 너무 많아.”
“…한유가 쉬는 기간이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김재훈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강윤은 말을 추가했다.
“…다음에 준열이와 주연이가 했던 것처럼 제대로 듀엣 하나 기획해보자. 알았지?”
“네, 형.”
부스 안의 서한유를 바라보며 김재훈은 이후를 기약했다.
그렇게 김재훈의 녹음은 계속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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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분기에 DLE 방송국에서 방영한 수목드라마 ‘마녀의 연예’는 ‘이민혜’라는 슈퍼스타를 만들어냈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CEO이면서 연예에는 서툰 주인공 ‘나마녀’역을 맡아 남자들은 물론 여자들의 워너비가 되어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다.
172cm의 키에서 오는 긴 다리, 거기에 동안 페이스와 사근사근한 말투지만 화끈한 성격은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스타가 뜨면 자연스럽게 소속사도 바빠지기 마련이다.
인터뷰와 섭외 요청, 기타 문의 등으로 그녀가 속한 키오드 엔터테인먼트는 시끄…
“민혜야, 그게 무슨 말이니?! 계약을 파기하겠다고?!”
…러워야 했는데, 전혀 속성이 다른 고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키오드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강기준은 당황스러운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는 이민혜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냉담한 표정으로 먼 산만 보고 있었다.
“지금 들은 그대로에요.”
“민혜야. 이건 아니잖아, 아직 계약기간도 3년이나 남아있고…”
“그깟 위약금, 드릴게요. 얼마면 되요?”
자신이 키운 스타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되다니…
강기준 사장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다.
이민혜를 스타로 키우는데 든 시간이 무려 4년이었다. 그동안 들어간 자금과 눈물, 남모를 노력들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통통한 볼살과 함께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너, 너 혼자의 노력으로 떴다고? 그러면 안 돼. 우리가 지금까지 몇 년을 함께 해왔는데. 4년이야, 4년. 4년 동안 함께 그 고생을 해왔다고. 그런데 그 시간들을 한 순간에 배신하겠다는 거니?”
속에서 피눈물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강기준 사장은 최대한 마음을 억누르며 부드럽게 이민혜를 타일렀다.
그러나 이미 답은 정해진 듯, 이민혜는 냉정하게 돌아섰다.
“…계좌로 위약금은 보낼게요. 나 오늘까지만 출근해요.”
“민혜야!!”
이대로 보내면 안 된다.
강기준 사장이 필사적으로 이민혜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녀는 대번에 그의 팔을 뿌리치며 차갑게 말했다.
“…지난 4년. 오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한테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지옥과도 같은 시간이었어요. 여기 계속 있으면 그런 지옥을 또 겪어야 할지 모르잖아요? 미안해요. 오빠한테 섭섭하지 않도록 톡톡히 챙겨드릴게요.”
“하, 미, 민혜야. 내가 그까짓 돈이 아쉬워서 이러는 것 같아?! 그런 것 보다…”
“안녕히 계세요.”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그녀는 사무실을 뛰쳐나갔다.
“민혜야!! 민혜야!!”
퉁실한 몸으로 강기준 사장은 건물 밖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가 도착하니 이민혜가 소재를 알 수 없는 밴에 올라타는 것이 아닌가?
“민혜야!! 이민혜!!”
강기준 사장은 밴으로 달려가며 소리를 질렀지만, 그의 마음을 모르는지 야속한 밴은 그대로 떠나버렸다.
한참이나 도로를 달려 밴을 따라갔지만, 사람이 차를 쫒을 수는 없었다.
“하하하, 이거 꿈… 이지?”
거리에서, 강기준 사장은 망연자실에 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하루아침에 스타를 잃은 그의 현실은 잔혹했다.
그리고 다음날.
스타 이민혜와 VVIP 소속사가 계약을 채결했다는 기사가 온 인터넷을 가득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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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하고 재훈이 볼륨 차이는 조절했고, 다음은…’
따로 녹음한 소리들을 섞는 과정인 믹싱 작업의 막바지에 강윤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컴퓨터 안의 전자악기 소리들과 목소리의 밸런스를 조절하고, 듣기 좋은 효과들을 넣으며 빛의 변화를 관찰했다.
‘확실히 한유 목소리의 변화가 빛에 큰 영향을 주는군.’
강윤은 서한유 목소리의 이퀄라이저를 조절했다.
곡의 분위기가 팝보다 클래식한 느낌이 강하기에 중음역대를 좀 더 강조해주는 이퀄라이저를 사용했다.
이퀄라이저를 조절하니 빛이 미세하게 강해졌다.
‘고음역대의 Hz값이 조금 높나? 조금만 다듬자.’
그런데 작업을 하니 이번에는 빛이 조금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살짝 조절한다고 했는데, 실수로 음역을 나타내는 그래프를 건드려 전체 음이 출렁이고 만 것이다.
‘이런.’
강윤은 다시 이퀄라이저를 원래대로 돌리고 다시 조절해갔다.
그렇게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때, 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을 보니 이현지였다.
“네, 이강윤입니다.”
– 저에요. 일하는데 죄송해요. 잠깐 사무실에서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강윤은 곧 가겠다고 답하고는 바로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에 가니 이현지가 미실 것을 준비해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앉으세요.”
강윤이 소파에 앉자, 이현지도 마주앉았다.
그녀는 휴대폰으로 한 인터넷 기사를 열어 강윤에게 보여주었다.
– 기획사 VVIP와 이민혜, 5년간의 전속계약 체결. VVIP, 이민혜에게 대배우의 가능성 있어…
“말은 번지르르하군요.”
강윤은 드물게 악담을 했다.
지난번, VVIP 소속사가 김지민을 빼가려는 일 때문에 감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기사야 돈으로 사면되니까요. 편리한 시대죠.”
이현지도 콧방귀를 끼었다. 그녀도 저들이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저들을 보여주는 이유가 있었다.
“이민혜라는 사람도 뜨자마자 소속사를 바꿔 타는 걸 보니 싹수가 보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진서 이야기 기억하시죠?”
“그것과 관련이 있습니까?”
이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우린 배우 양성이나 마케팅에 관한 노하우가 없죠. 그래서 거기에 경력이 있는 사람을 필요로 하고 말이죠. 거기에 민진서 같은 배우를 맡길만한 사람이 필요하고… 그러자면 지금 이 사람이 제격일 겁니다. 강기준. 키오드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죠.”
“이민혜가 속해있던 곳의 사장이군요.”
“맞아요.”
강윤은 대번에 요지를 파악했다.
이현지는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키오드 엔터테인먼트, 아니 이민혜 한 사람만 있는 1인 소속사나 다름없었죠. 강기준이라는 사람은 이민혜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으니까요.”
“흠, 그렇다면 능력이 있다고 보기도 힘들지 않을까요? 1명에게 올인 했는데 배신이라… 그렇다면 사람 보는 눈이 있다 하기도 힘들다 생각합니다만…”
강윤은 난색을 표했다.
이번일의 경우, 확실히 스타에게 문제가 있다 할만 했다.
하지만 결국 책임을 져야 하는 이는 사장이었다. 그렇기에 처음 재목을 발굴할 때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했다.
강윤의 반응이 냉랭한 이유였다.
그러나 이현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사장님 말도 맞아요. 하지만 스타에게 쏟았던 정성, 그리고 기어이 스타를 키워낸 능력은 주목해야 한다 생각해요. 물론, 스타에게 뒤통수를 맞은 건 걸리지만… 이 부분은 우리가 보완을 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흠…”
강윤은 잠시 생각했다.
단 한 명의 연예인에게 4년 동안 지극정성으로 투자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스타가 되지 전의 연예인의 수익이 얼마나 되겠는가. 거기에 결국 스타로 만들었고.
‘일단 만나서 대화를 해보고 생각해 봐야겠어.’
“그 사람은 우리 월드에 올 의향이 있습니까?”
강윤의 물음에 이현지는 담담히 답했다.
“그쪽에서도 한번 만나보자고 말했어요. 하지만 크게 의욕은 없는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사님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든 것 같습니다.”
“한 사람에게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 사람은 쉽게 찾기 힘들거든요. 솔직히 마음이 가요.”
그녀의 말에 강윤은 일단 만나보고 결정하겠다며 약속을 잡아 달라 요청했다.
——————————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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