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91
59화 – 노래의 계기(2) >
“안녕하세요? 작곡과 06학번 이현아입니다.”
이현아의 낭랑한 목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지자, 삽시간에 주변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노래가 아닌, 다른 것으로 무대에 섰다는 긴장감이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압박해왔다.
과연 ‘어떤 말을 들려줄까’라 기대하는 후배들의 모습부터 총장, 교수 등의 ‘들어줄 테니 한번 말해봐라’라는 태도까지…
‘후우.’
이현아는 짧게 한숨을 쉬며 긴장을 떨쳐내고 마이크를 고쳐 잡았다.
“먼저 저보다 다른 멋진 선배님들도 많이 계시는데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저를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부족하지만 후배님들과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으면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오오–”
예의 있게 하는 선배의 인사에 사람들이 기대어린 박수로 화답했다.
강윤은 이현아가 스스로 긴장을 떨쳐내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겁난다면서 끌고 와놓고선. 특별히 걱정할 것도 없겠네.’
강윤은 피식 웃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웃겼다. 이현아도 지금까지 무대에서 수년간 잔뼈가 굵어온 가수인데…
부탁을 받았다지만, 학교까지 쫒아온 자신이 바보가 된 것 같았다.
사람들의 무수한 시선을 받아넘기며 이현아는 자신이 어떻게 가수가 되었는지를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저는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렇다고 작곡에 큰 열정이 있던 것도 아니었어요. 굳이 좋아한 것이 있다면 노래? 직업으로 삼기는 싫었지만 취미로 즐기는 건 Yes. 진학해놓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웃기죠? 아무튼 전 작곡과에 입학했고 ‘리커버리’라는 소모임에서 가입하게 됐어요. 지금이… 5기 쯤 됐겠네요. 혹시 여기 리커버리 후배 분 있나요?”
그녀의 물음에 한 쪽에서 5명의 남녀가 손을 들었다.
후배들을 보자 이현아의 입가에 미소가 거렸다.
“오오. 제 직속 후배를 보니 정말 반갑네요. 끝나고 선배가 까까사줄까?”
“하하하하.”
이현아의 가벼운 농담에 강당의 분위기가 가벼워졌다.
‘저 무대체질.’
강윤도 피식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가리며 턱에 손을 올렸다.
사람들의 가벼운 웃음 속에서 이현아는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그녀는 지금의 사장인 강윤을 소모임 리커버리에서 만나 대학가요제에 나가게 되었고, 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게 계기가 되어 이후 자신의 팀을 만들었고, 이후 인디밴드로 활동을 시작했다며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팀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학생들은 팀이 결성되었다는 부분에서 박수를 쳤다.
“감사해요.”
이현아가 고개를 숙이자, 사람들은 더 크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녀는 인디 밴드로 활동하던 중, 강윤을 다시 만나고, 월드 엔터테인먼트에 들어가게 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이후 밴드 활동을 하며 있었던 에피소드들을 풀며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해갔다.
특히 강윤을 직접 찾아가 팀과 자신을 모두 받아달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는 학생들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이현아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 저는 운이 좋은 케이스였어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은 팀에서 나와 홀로 소속사와 계약하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비극이죠. 저도 어딘지 밝힐 수는 없었지만 월드로 가기 전에 따로 제의를 받은 곳이 있었어요. 다행히 우리 사장님을 만나 비극을 피했고요.”
이현아는 차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사실, 혼자서 더 큰 소속사로 가고 싶은 욕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죠. 지금 소속사에서는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게 해주거든요. 후배님들, 월드 정말 짱이에요. 월드로 오세요.”
“하하하하.”
깨알 같은 홍보에 학생들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저 녀석이…’
‘쿡쿡.’
강윤은 그녀의 돌발행동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최찬양 교수가 웃으며 강윤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옆에 앉은 총장도 웃음을 터뜨렸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넘나들며 이현아의 이야기가 끝을 향해 달려갔다.
“…OST 발매하고, 드디어 메이저 무대로 진출했어요. 그 OST가 아주 잘돼서 여기저기서 불러주고 이젠 정기공연 뿐만 아니라 전국 여기저기로 공연도 다니고 있고요. 현재 이현아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후, 이상입니다.”
“와아아–”
학생들이 박수로 그녀의 이야기에 화답했다.
그리고 곧 문답으로 순서가 이어졌다.
사회자는 간단하게 이현아에게 감사를 표하고는 곧 학생들에게 질문을 받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은 맨 앞자리에 앉은 머리띠를 한 여학생에게서 나왔다.
“안녕하세요? 1학년 실음과 이지솔이라 합니다. 선배님께서는 인디에서 메이저로 자리를 잡으신 거잖아요.”
“네, 맞아요.”
“그러면 선배님은 인디에서 메이저로 넘어가기 전에 어떻게 준비를 하셨어요?”
첫 번째 질문부터 만만치 않았다.
노래로 진로를 정한 학생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고민이라 할 수 있었다.
이현아는 잠시 생각하고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준비라. 특별히 메이저 무대를 위한 준비를 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다만?”
“꾸준하게 음악을 한 것.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스탠드의 마이크를 뽑아들고는 중앙으로 나섰다.
“전 가장 기본적인 것을 항상 지켰어요. 아니, 저 뿐만 아니라 팀원 전부가요. 매일 연습, 일주일 한 번의 공연, 때때로 사장님과 곡에 대한 이야기까지. 새로운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노래하기 위해 기본적인 것들을 지켜나갔어요. 이게 비결이라 할 수 있겠네요.”
그러자 질문한 여학생 옆에 앉은 남학생이 손을 들었다.
“선배님, 매주 공연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걸로 아는데 어쩔 수 없이 빠져야 했을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우린 공연을 빼먹은 적이 없었어요.”
이현아가 덤덤히 이야기하자 몇몇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흰 회사 소유의 공연장이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다른 밴드들보다 좋은 환경이 주어졌죠. 초기에 홍대 주변의 다른 공연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일도 있었지만… 공연을 쉬는 일은 없었어요. 이건 사실 우리 사장님 공이 커요. 큰돈을 들여서 저희 전용 공연장을 지어주셨으니까요.”
“우와아–”
공연장을 만들어 주는 스케일을 듣자 학생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어느 회사가 가수를 위해 공연장까지 지어줄 수 있겠는가?
학생들은 이현아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 정말 멋진 분을 만났죠. 지금도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이현아는 강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윙크를 날렸다.
강윤이 표정을 어찌 지어야 할지 몰라 안면근육을 떨자, 최찬양 교수는 가볍게 강윤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하하하. 현아가 저렇게까지 말하는 애가 아닌데, 존경받으시네요.’
‘…민망합니다.’
계속되는 금칠에 강윤은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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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정규수업을 마치고, 김지민은 교복을 입은 채 회사로 향했다.
‘집에서 연습을 하긴 그러니까…’
할머니도 쉬는 공간에서, 소리를 질러대며 연습을 하긴 곤란했다.
그녀가 스튜디오 문을 열고 안에 들어서 문을 여니 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문희 언니?”
“어? 지민 선배? 안녕하세요?”
스튜디오에는 선객이 있었다. 믹서를 조절하던 인문희였다.
“언니. 말씀 놓아도 괜찮아요.”
그녀는 김지민보다 나이도 훨씬 많았지만 선배선배하며 꼬박꼬박 예의를 지켰다.
김지민은 그녀대로 한참이나 나이차이가 나는 사람에게 선배라 불리니 불편했지만…
“아니에요. 지킬 건 지켜야죠. 질서 흐트러져요.”
“제가 불편해서 그래요.”
두 사람은 호칭을 놓고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은 김지민이 승리했다.
2~3년 차이도 아니고, 5년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인문희가 꼬박꼬박 존댓말을 하니 매우 불편하다는 말을 하니 인문희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김지민도 뒤에 붙는 선배라는 호칭은 떼어내지 못했다.
실랑이가 있었지만 나이어린 선배와 후배는 조금씩 친해지기 시작했다.
“언니는 어떤 거 연습하세요?”
김지민이 기타를 스탠드에 놓으며 묻자 인문희가 악보를 보기 좋게 정리하며 답했다.
“남훈 선생님이 연습하라고 과제를 줬거든. 그거 연습하려고.”
“아, 그래요? 괜찮으면 오늘 같이 놀아보려고 했는데… 그럼 힘들까요?”
기타로 선율을 내며, 김지민이 아쉬운지 입술을 내밀었다.
“…조금만… 놀까?”
“그래요, 언니. 언니가 부르는 트로트 짱 좋던데… 듣고 싶어요.”
쉽게 듣기 힘든 맛깔 나는 트로트의 구수한 가락.
김지민은 며칠 전 잼에서 들었던 인문희의 목소리에 반한 상태였다.
“어떤 걸로 할까요…?”
김지민이 신을 내며 악보에서 곡을 고르고 있는 그때.
스튜디오에 손님이 하나 더 들어섰다.
“아저~씨이.”
문을 열자마자, 누군가를 찾는 여인이 있었다.
평상복을 몸에 착 붙게 입어 라인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정민아였다.
큰 소리에 김지민은 연주하려던 기타에서 손을 땠다.
“민아 언니?”
“지민아, 안녕. 혹시 아저씨 여기 있어?”
“선생님이요?”
김지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출근 후 강윤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아, 진짜. 전화도 꺼져있고. 쳇. 오늘은 노리고 왔는데…”
사무실에도 없고, 스튜디오에도 없다니…
정민아는 고운 아미를 잔뜩 찌푸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이 휴일이 며칠이나 갈지 모른다. 이 소중한 기회를 이렇게 날리고 싶지 않아 정민아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데 그 마음도 모르는 작자는 대체 어딜 간 건지!!
그때, 인문희가 말했다.
“사장님 오늘 학교 가신다고 하셨어요.”
“학, 학교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정민아는 눈을 껌뻑였다.
의문어린 표정에 인문희는 말을 덧붙였다.
“어제 현아 선배 학교에 간다고 함께 가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오늘은 바로 퇴근하신다고 들었는데…”
“잠, 잠깐만요. 현… 현아 씨요?”
정민아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하필이면 이현아라고?! 고것하고 대체 왜?!
정민아에게서 검은 기운(?)이 느껴지자 인문희는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네? 네. 왜… 왜 그러세요?”
“…으으으.”
인문희가 떠는 것도 모르고, 정민아는 주먹을 부르르 떨더니 바로 스튜디오를 나가버렸다.
“서, 선배. 민아 선배 왜 저러는 거야?”
“…며칠만 있으면 알게 되실 거예요.”
김지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문희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채 큰 눈만 껌뻑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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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이현아와 학교 후배들과의 사진촬영을 끝으로 ‘선배와의 대화’의 모든 순서가 끝이 났다.
강당 앞.
강윤은 총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나누었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총장은 강윤에게 명함을 건넸고, 강윤도 그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원래 식사를 대접하고 싶지만 오늘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아닙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총장은 강윤과 인사를 나누고는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음에 꼭 대접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가 탄 차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강윤은 최찬양 교수와 이현아와 함께 교정을 걷기 시작했다.
“석양이 참 예쁘군요.”
최찬양 교수는 하늘을 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언덕이 참 운치 있네요.”
어느 덧, 석양이 내리기 시작했다.
강윤은 노을이 지는 언덕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현아가 말을 보탰다.
“우리 학교는 해질 때 풍경이 제일 멋있어요.”
“해뜰 때는 어때?”
“…그땐 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네요.”
강윤의 물음에 이현아는 혀를 빼꼼히 내밀었다.
세 사람은 언덕에 있는 최찬양 교수의 연구동으로 향했다.
건물 앞에서, 최찬양 교수가 말했다.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최찬양 교수가 짐을 가지러 가자, 언덕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강윤과 이현아는 언덕에 자리한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오늘 고생했어. 제법 선배답던데?”
“당연하죠. 어엿한 졸업생이라고요.”
강윤의 장난에 이현아는 스스로의 콧대를 높였고 두 사람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가벼운 분위기가 지나가고, 이현아는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오빠. 고마워요.”
“응? 뭐가?”
“…그냥, 다요.”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많은 것을 받았다.
강윤이 없었다면 과연 자신이 노래를 할 수 있었을까? 가수? 아니, 대학가요제에 나가는 것도, 노래를 만들어 보이는 것도 용기가 없어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요한 계기마다 강윤은 항상 곁에서 자신을 이끌어주었다.
“새삼스럽게. 사장이 가수를 챙기는 건 당연한 거지.”
강윤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이현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그녀가 강윤의 손을 잡는 게 아닌가?
“현아야.”
“…따뜻하네요.”
강윤이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이현아는 고개를 돌려 강윤과 눈을 맞췄다.
“저… 오빠 좋아해요.”
부드럽게 불어오는 바람이 강윤을 거세게 흔들기 시작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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