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192
59화 – 노래의 계기(完) >
“…자, 잠깐만.”
갑작스러운 고백에 강윤은 당혹스러웠다.
여지를 주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모양이다.
그는 이현아를 좋은 동생이라고만 생각했지, 여자라고 생각한 적은 없으니 말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현아는 옆으로 다가와 강윤에게 몸을 기댔다.
“처음 오빠를 만났을 때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냐고 생각했었어요. 작곡과 소모임에서 선배들 노래보다 제 노래가 더 좋다며 자신감을 가지고 보이라며 나서야 한다고 채찍질을 받았고, 그것 때문에 대학가요제까지 나가게 되었으니까요.”
“대학가요제는 최 교수님이 신청 한 거잖아.”
“그래도 오빠가 제 곡 안 보여 줬으면 불가능했어요.”
이현아는 눈에 힘을 주며 말을 이어갔다.
“대학 가요제 이후, 오빠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단순히 꿈만 꾸는 사람이 아니라 오빠는 그 꿈을 현실로 이루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혹시 이 오빠같이 살면 나도 꿈을 꾸고 이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이현아는 눈을 감았다.
그가 없었다면, 자신이 과연 가수가 될 수 있었을까? 그 이전에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작곡한 노래를 남들에게 보이조차 두려워했던 자신이다. 그런 자신의 등을 떠밀고, 무대에서 힘이 되어주었으며 이제는 마음껏 놀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준 존재.
그게 강윤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어찌 빠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는 오빠 등을 보면서 왔지만, 이제는 함께 앞을 보고 싶어요.”
이현아는 떨리는 눈동자로 이야기했다.
연인으로서 그와 마주하고 싶다. 마음을 온전히 전했다.
이제는 그가 답할 차례였다.
‘…상처 없이 끝낼 순 없겠구나.’
강윤은 잠시 눈을 감았다.
이현아는 그에겐 소중한…
‘가수고, 동생이지.’
이현아는 분명 매력적인 여인이었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외모도 어디에 밀리지 않는…
하지만 그에겐 이미 옆을 채워주는 여인이 있었다. 그 자리에 이현아가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이윽고, 긴 한숨을 쉰 강윤은 입을 열었다.
“…현아야.”
“……”
강윤은 몸을 돌려 그녀를 자신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러자 이현아는 불안한 눈빛으로 강윤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오빠…”
그녀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잔인한 말이 그녀의 가슴을 후비니 그녀의 눈가가 그렁그렁해졌다.
멈칫할 법도 했지만 한번 마음먹은 강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날 좋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사적인 감정으로 이야기할게. 난 네가 여자로 보이지 않아. 좋은 동생으로만 보일 뿐이지.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처럼 좋은 가수와 사장으로만 지냈으면 좋겠어.”
“오빠.”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그의 말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조금 남아있던 여지마저 끊어버릴 기세였다.
하지만, 이현아는 조금의 여지라도 찾고 싶었다.
“저, 정말로 하, 한 번도 절 다르게 새, 생각해본 적이…”
“없어.”
그의 말은 차갑게 그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이현아는 도저히 그와 더 말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하하…. 하하… 설마, 설마 했는데…”
그녀는 벤치에서 일어나 비틀대며 천천히 석양 속으로 걸어갔다.
위로 한마디 건넬 법도 하건만, 강윤은 냉담히 말했다.
“교수님 기다려야지.”
“죄송해요. 저, 머… 먼저 갈게요.”
이현아는 천천히 걷더니 이내 빠르게 거리를 달려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강윤은 쓴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가렸다.
‘미안해. 하지만 이게 최선이야.’
그녀뿐만 아니라 자신, 아니 모두를 위해서라도 여지를 남길 순 없었다.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에서, 강윤은 잘 태우지 않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
.
.
늦은 밤.
이현아는 텅 빈 루나스 공연장에서 홀로 멍하니 앉아있었다.
“하하, 하하하하하!!”
조명하나 들어오지 않는 공연장은 문틈으로 세어 들어오는 작은 빛이 전부였다.
속에 있는 것을 털어버리려는 듯, 그녀는 공연장이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아픈 마음은 쉽게 떨어져나가지 않았다.
“…그래!! 가 버려라!! 이 나쁜 자식아!!”
그때, 끼익 소리가 들려오며 공연장 문이 열렸다.
“현아 씨?”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이현아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보니 정민아의 굴곡진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하필이면…’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라니.
그녀는 얼른 눈을 비비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민아 씨? 웬일이세요?”
“이제 연습이 끝났거든요. 현아씨는 무슨 일 있나요? 여기서 뭐하세요?”
청승맞게 빈 공연장에서 소리나 지르고 있다니.
정민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생각할게 있어서요. 별거 아니에요.”
이현아는 뭔가 말을 하려다 관뒀다.
정민아에게 오늘 강윤에게 차였다고 말을 하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하지만, 여자로서의 감이라도 느낀 걸까.
정민아는 성큼성큼 들어오더니 이현아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
“……”
그리고 침묵.
이현아도 딱히 정민아에게 가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정민아가 말했다.
“…아저씨 나빴죠?”
“맞아요. 나쁜 자식.”
거짓말처럼 두 사람은 공감대를 찾아버렸다.
평소라면 나쁜 자식이라는 말에 길길이 뛸 정민아였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도 느낀 걸까?
“…사람 마음도 모르고.”
“그러니까요. 사람 홀려놓을 때는 언제고.”
“길가다 넘어져라.”
“하하하.”
자고로 빠르게 친해지는 법은 남 욕하는 거라 했던가.
두 사람은 언제 어색했냐는 듯, 순식간에 가까워지더니 이후 밤새 술자리를 가지며 빠르게 친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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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오스의 숙소에는 최근 서한유 때문에 프로듀싱 열풍이 불고 있었다.
서한유는 강윤에게 프로듀싱을 배우며 그가 내준 과제들을 해나가고 있었다.
“거즈아일 피아노 소리가 더 낫지 않아?”
편곡 프로그램으로 피아노 소리를 선택하는 서한유에게 크리스티 안이 물었다.
크리스티 안은 서한유가 프로듀싱을 할 때마다 와서 작업하는 것을 보며 배우곤 했는데, 듣는 귀가 좋아 서한유도 그녀의 말에는 귀 기울이곤 했다.
“그래요? 여긴 좀 더 묵직한 소리가 낫지 않아요?”
“아냐아냐. 멜로디를 봐. 그리고 베이스음이 너무 낮잖아. 거즈아일보다 머티프가 더 나을 것 같아.”
서한유는 크리스티 안의 말대로 프로듀싱을 했다. 피아노 소리를 바꾸고, 밸런스를 맞춘 후 재생했다.
곧 이전보다 한층 좋아진 소리가 흘러나오자 서한유는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역시. 언니는 센스가 있어요.”
“얘는. 아냐.”
말은 그렇게 했지만, 크리스티 안은 기분이 좋았다.
서한유가 작업을 진행해가며, 크리스티 안도 조언을 해나갔다. 그녀의 악기 선택 센스에 서한유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짧은 악보 프로듀싱은 크리스티 안의 도움으로 빠르게 끝났다.
“휴우, 언니 덕에 금방 끝났네요.”
“그래? 그런데 지금 뭐하던 거였어? 이것도 앨범에 낼 곡이야?”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서한유는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며 고개를 흔들었다.
“에이, 아니에요. 그러려면 아직 멀었죠. 사장님이 해보라며 준 과제에요.”
“지난번부터 배운다던 그거구나?”
“네. 언니도 같이 해보실래요?”
“난 기계치라서.”
크리스티 안은 고개를 흔들었다. 간단한 인터넷도 하기 힘든데, 이런 복잡한 프로듀싱 프로그램을 다뤄야 한다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 같아. 배우고는 싶네.’
크리스티 안은 서한유가 작업을 하는 방에서 떠나지 못하며, 계속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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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윤과 이현아가 한려예술대학에 다녀 온 다음날.
옥상에서 강윤은 홀로 담배를 태우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아가 나간다 해도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지.’
강윤이 내뿜은 연기가 하늘을 흩뿌려놓았다.
사람 마음까지 그가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법이다. 어제 일로 이현아가 나간 다해도 그는 감수할 생각이었다.
강윤이 담배를 끄자마자 옥상 문이 열리며 이현아가 들어왔다.
“오빠.”
“날 마주하기 껄끄러울 텐데 오라고 해서 미안해.”
“……”
어제의 기색은 온데간데없고, 이현아는 덤덤한 눈매로 강윤을 바라보았다.
강윤은 차분하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혹시 연습이나 공연하기가 힘들다고 하면 휴가를 줄게. 잠깐 쉬었다가 와. 아니면…”
“괜찮아요.”
이현아는 강윤의 말을 끊더니 차분한 어조로 이야기했다.
“사적인 일에 공적인 일을 결부시키는 건 오빠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원칙에도 어긋나고. 그러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이번에는…”
강윤은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어제,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이현아의 모습은 진심이었다. 모든 걸 걸고 부딪치는…
“저도 프로에요. 이런 일로 미끄러지면 곤란하죠.”
“현아야.”
“배려해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우리 사장님은 최고에요.”
이현아는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들었다.
그 모습에 강윤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해.”
“그만. 자꾸 그러면 제가 더 비참해져요.”
“……”
그녀는 강윤과 나란히 난간에 섰다.
“전 제 마음을 솔직히 표현했을 뿐이에요. 그리고 오빠는 제가 여자로 안보였을 뿐이죠.”
이현아는 가볍게 강윤을 끌어안았다. 강윤도 이번에는 그녀를 밀어내거나 하진 않았다.
“이걸로 끝. 짝사랑은 가슴 아프니까 그만할래요.”
그녀는 강윤을 가볍게 밀쳐냈다.
이젠 더 이상 이 일을 마음에 두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할 말 더 없으시면 이제 내려가 볼게요. 어제 좋은 곡이 떠올라서요.”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네, 사장님. 고마워요.”
이현아는 옥상 문을 조용히 닫고 연습실로 내려갔다.
“…미안해.”
강윤은 닫힌 문을 보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
.
.
하얀달빛의 연습실.
이현아는 테이블에 앉아 피아노를 치며 음표와 가사를 마구 써내려가고 있었다.
‘사랑했어요, 하루가 지나고 또 다음이 와도…’
머릿속이 마구 요동쳤다.
지금까지 썼던 노래들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멜로디가 정신없이 뒤엉키며 손가락 끝으로 밀려나오는 듯 했다.
한 페이지, 또 한 페이지.
빼곡해진 악보는 이내 꾸깃꾸깃해지더니 바닥에 흩어졌고, 그녀의 이마는 땀으로 흥건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젖어든 눈은 악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하하하하. 그래서 어제 클럽에서… 현… 읍읍…!!”
김진대와 이차희가 문을 열며 요란하게 연습실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현아의 집중하는 모습을 보며 이차희가 김진대의 입을 재빠르게 막아버렸다.
‘읍읍!!’
‘쉿. 나와.’
이차희는 그를 끌고 연습실을 조용히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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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언제 다 보죠?”
이현지는 서버가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UCC 영상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튠에 올린 영상이 효과가 있나보네요.”
“있지요. 아주아주.”
강윤이 커피를 마시며 묻자 이현지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페이지를 넘기고, 또 넘겨도 사람들이 접수한 UCC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
한 번에 다 볼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커피 잔을 들고, 편안한 모습으로 영상을 빠르게 보던 강윤도 엄청난 UCC 양에 입을 벌렸다.
“…나눠서 보도록 하죠.”
“진짜 많죠?”
이현지가 그것보라며 한숨짓자 강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컴퓨터를 끄고, 이현지는 강윤에게 서류를 건넸다.
“…연말에는 공연장을 대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네요.”
강윤은 12월 말에 장소를 대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미 다른 대형 가수들이 유명한 콘서트 장소들은 모두 대여해서 일정이 꽉 차 있었다.
“2월 말. 이때밖에 없더군요.”
“좋은 일정은 아니군요. 전국투어로 이으려면 그리 쉴 여력도 없을 텐데. 걱정입니다.”
강윤의 걱정에 이현지도 동의했다.
“재훈 씨 목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네. 무리한 일정을 수행하다 무리가 생기면 곤란하니까요. 그런데 시너지 효과를 얻으려면 일정을 너무 미루면 곤란한데… 그러자면 봄에는 콘서트를 해야 하고. 결국 다 얻을 수는 없겠군요.”
콘서트를 여름으로 미룰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여름에는 단독콘서트보다 다른 대형 행사들이 많이 잡혀있어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잠시 생각하던 이현지가 말했다.
“투어 횟수를 줄여야겠네요.”
“그러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업체 선정은 잘 되고 있나요?”
“네. 월드가 생기고 처음 하는 대형 프로젝트라 업체들도 많이 뛰어들더군요. 어렵진 않을 것 같아요.”
좋은 징조였다.
강윤은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갔다.
“이제 문제는 문희네요. 문희가 어떤 선택을 할지.”
“내년에 문희 씨가 계속 회사에 남아 있을지, 아닐지에 대한 거죠?”
언제까지 다른 직장이 있는 이를 가수로 데리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선택의 순간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강윤은 차분히 말했다.
“학생들 겨울방학이 오면 이제 기로에 설 겁니다. 문희도 알고 있겠죠.”
“…놓치기 싫죠?”
강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렇지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전 진심으로 이 길에 뛰어들겠다고 결심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으니까요.”
강윤은 식어버린 커피 잔을 들어올렸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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