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23
6화 – 공백을 극복하는 기획(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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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야야, 저 사람 세디아냐?”
“세디? 대박. 저 사람이 여기 웬일이야?”
MG 엔터테인먼트 로비 구석의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이준열을 보며 연습생들은 수군댔다. 창가로 비치는 빛이 그의 잘생긴 얼굴을 더더욱 두드러져 여자 연습생들은 특히 더 난리였다.
‘어린 것들, 귀엽네.’
연습생들에게 사인도 해주며 간간이 덕담도 해가며 이준열은 계속 로비에 머물렀다. 휴대전화 게임도 하며 창가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하염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연락을 넣었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직 이에요?”
“…돌아가시랍니다.”
벌써 10번째 연락을 넣었다. 이젠 로비 직원들도 지쳐서 전화도 안 넣어준다. 처음에는 그의 외모와 이름값에 전화도 꼬박꼬박 해주었지만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는 지금, 그 시선은 벌레 보는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허, 그놈 재밌어.’
이준열은 강윤이 궁금해졌다. 어떻게 자신을 이렇게 철저히 무시할 수 있는지. 화는 당연히 났다. 그러나 그것보다 궁금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마음대로 살고도 무사했는데 망한다고 확실하게 말하는지 말이다.
“아, 오늘 평가 망했어. 삼순아. 넌 어땠어?”
“망했지. 아주 시원하게 망했지. 정이 네는 어땠어?”
“…나 에일리야. 정은 성이고.”
밤, 그것도 중천에 오른 시간이 되어 마지막으로 보이는 연습생들이 떠들며 나왔다. 이미 로비 직원들은 퇴근하고 없었다.
‘뭐야? 이 자식은 아직도 회사야?’
이준열은 연습생들마저 모두 퇴근하고도 보이지 않는 강윤이 기가 막혔다. 그렇다고 이대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미 오기가 생길 대로 생겨 얼굴을 보지 않고는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다.
“…세디?”
연습생들이 가고 한참이 지나서야 세디가 그토록 보고 싶던 존재가 나타났다. 강윤이었다. 코빼기도 안 비치던 놈이 퇴근도 가장 늦어 야근까지 끝내고 나타났다.
“당신…?!”
“아직도 안 갔습니까? 더 할 말은 없는 거로 압니다.”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게 놀랍긴 했지만, 강윤은 그리 감흥은 없었다. 책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저 사람을 바꿔서 공연하겠다는 만화 같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 면에서 강윤은 현실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가서 말이지.”
“나랑 관련 없는 일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반말이야. 나이도 어린 게.”
강윤도 참지 않았다. 예의를 계속 지켜주면 기어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세디와 같은 부류였다.
이준열은 사람 모두를 자기 발밑으로 보는 스타병 말기 증세일터. 강윤은 괜히 그런 사람과 붙어있고 싶지 않았다. 강윤을 잠시 노려보던 이준열은 언제 그랬냐는 듯 허허 웃었다.
“하하하. 역시 재미있네. 그래, 형. 멋있네. 할 말 다하고.”
“가서 원래 하듯 여자나 안고 놀아. 양아치는 상대하지 않아.”
“크큭. 양아치라.”
모욕을 진하게 들었지만, 이준열은 웃기만 했다. 강윤은 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미쳤네. 더 이상 상대하면 큰일 나겠어.’
괜히 이상한 일에 휘말릴까 싶어 강윤은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었다. 기행이나 일삼고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세디와 엮여봐야 좋은 일이 없었다.
그런데 이준열은 강윤의 예상과 너무도 다른 말을 했다.
“형아. 나랑 같이 공연하자.”
그런데 이준열에게서 강윤에게 전혀 뜬금없는 말이 나왔다.
“뭐?”
“나 컴백시켜주라.”
강윤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뭐라는 거야? 컴백?”
“응. 컴백.”
강윤은 어이가 없었다. 세디의 얼굴을 보니 피식피식 웃는 게 장난기가 잔뜩 어려 있었다. 강윤은 속의 불을 한번 착 누르고 정색했다.
“거절할게. 아니 거절합니다. 지금 컴백해봐야 백 퍼센트 망할 텐데 그런 곳에 에너지 쓸 필요가 없지.”
“망해? 내가?”
“무조건 망하지. 목소리가 변했는데 어떻게 안 망하겠어.”
덥석!!
이준열이 강윤의 멱살을 거세게 잡았다. 사실 장난삼아 했던 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정곡을 찌를 줄은 몰랐다. 항상 웃는 낯의 이준열이었지만 순식간에 얼굴빛이 험악해졌다.
“감히, 감히, 감히…!!”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 스타는 환상이 깨지면 끝이야. 변신? 좋게 바뀌어야 변신이지 지금 네 목소리가 바뀐 게 변신인 것 같아? 그건 변신이 아니라 변형이야, 변형. 더 나쁘게 말해줄게. 변태야, 변태. 진화한 게 아니라 퇴보한 거라고.”
“으으으….”
강윤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독설을 했다. 그러나 이준열은 반박하지 못했다. 강윤의 멱살을 잡은 팔이 부르르 떨렸다. 유들유들하며 뻔뻔하게 말했던 세디는 이미 온 데 간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도 너는 노력은 하지 않고 여자, 담배에 찌들어 있지. 그런데 나더러 무대를 만들라고? 음악의 신이 온다면 모를까, 3주 안에 컴백무대를 가지고 음반을 판다? 말도 안 되지.”
“…..”
결국, 이준열은 부들거리는 팔에 힘을 풀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전신엔 힘이 빠졌다. 여유를 가장했던 이준열은 이미 온 데 간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한마디 해 준다면, 담배부터 끊어. 가수가 돼서 담배는 최악이니까.”
강윤은 이준열에게서 돌아섰다. 이미 이준열은 힘을 잃었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그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젠 안 오겠지.’
오만함은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넣는다. 비록 같이 일을 하진 않지만 그래도 강윤은 세디가 이 오만함이라도 끊어내길 바랐다. 좋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그냥 잘 되길 순수하게 바랐다.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지만.
‘이강윤, 이강윤……!!’
이준열은 강윤이 떠난 로비를 이를 부르륵 갈면서 계속 노려보았다. 핏발이 단단히 선 눈으로 온몸을 부르르 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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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는, 어디 보자. 어디 하나 부족한 데가 없구나.”
“감사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지는 개인면담 시간. 강윤은 서한유와 함께 회사 휴게실에서 음료수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물론, 설탕이 들어간 음료수는 전혀 없었다.
서한유는 자신을 평가해놓은 그래프들을 보며 바짝 긴장 중이었다.
“한유는 꾸준히 열심히 해온 보람이 있는 것 같아. 노래, 춤 어느 하나 부족한 게 없네. 선생님들 평가도 좋고 말이야.”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눈에 띄어. 뚜렷하게 눈에 띄진 않으나 제 몫을 해낸다. 이 평가는 뭘까?”
“…..”
강윤이 스타성 체크 부분을 짚으며 묻자 서한유는 침묵했다.
“한유야. 좀 더 적극적이 되었으면 좋겠어.”
“적극적이요?”
“쉽게 설명해줄게. 일단 트레이닝을 춤, 노래는 기본만 하고 다른 것들을 해보자. 밖에서 받는 훈련들 위주로 편성해야겠어.”
밖에서 받는 훈련이라는 말이 서한유는 움찔했다. 야외를 그리 좋지 않은 눈치였다. 그러나 강윤은 개의치 않고 기록들을 해갔다. 결국, 서한유는 밖에서 활동하는 특별 스케줄이 편성되었다.
스케줄을 다 짜고 강윤이 물었다.
“언니들하고는 잘 지내?”
“네. 잘 지내고 있어요.”
“크리스티하고는 같은 방이었지? 둘이 잘 맞니?”
“…언니가 코를 고는 것만 빼면 잘 맞는 것 같아요.”
강윤은 순간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너무 솔직해도 이런 게 문제였다. 그 도도한 얼굴에 코를 곤다니 이건 혼자 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강윤은 서한유를 보내고 올라온 예산안들을 결재했다. 사장실로 갈 안건들이었다.
‘잘 진행되고 있군. 그런데 이번 달 예산이 생각보단 덜 들었군. 다른 데로 돌릴 수 있겠어.’
보고서까지 작성하니 어느덧 밤이 되었다. 강윤은 기지개를 켜고 퇴근을 서둘렀다.
그런데….
“형!!”
로비로 갔더니 강윤을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세디?”
“형 보고 싶어서 왔어. 안녕?”
멱살까지 잡던 이준열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조울증이라도 있는지 그의 표정은 생글생글이었다.
“또 무슨 일입니까?”
“에이. 우리 말도 놓은 사이잖아?”
“…..”
강윤은 머리가 아팠다. 그 모욕을 받고도 다시 오다니. 어떻게 쫓아야 하나 강윤이 머리를 잡고 있는데 이준열이 말했다.
“나 어제 많이 생각했어. 그래, 형 말이 다 맞아. 나 목소리도 변했고 노력도 안 했어. 담배? 시름 다 잊으려고 미친 듯이 피웠어. 악은 악으로 다스린다고 안 좋은 목에 안 좋은 담배를 하면 좋아질까 그런 어처구니없는 것도 믿었어. 그런데 결론은 이 꼴이네.”
“…..”
강윤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지금, 이준열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는 차분히 귀를 기울였다.
“결국, 막 나가기 시작했어. 목도 안 좋아지는데 돈은 엄청 많았어. 노는 게 재미있더라고. 여자? 질리게 만나봤어. 돈 있으니까 여자 만나는 게 무지 쉽더라. 비비고 뒹굴고 하고 싶은 건 그때 다 해봤어. 그런데 말이야, 놀면 놀수록 속에서 이상한 생각이 들더라고. 난 가순데, 가순데. 노래해야 하는데 이게 뭔가? 이런 생각 말이야. 그래서 녹음도 했어.”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녹음은 했는데 무대들이 하나같이 별로였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막상 노래하려니까 겁부터 나더라고. 내 변한 목소리,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까? 괜찮을까?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야. 무서웠지. 온몸이 바들바들 떨려왔어.”
“…..”
“하지만 남자가 가오가 있지, 이걸 어떻게 말해. 그래서 다 쫓아냈어. 안 한다고. 그러다 형을 만난 거야.”
“안 하면 되겠네. 난 고해성사 들어주는 신부가 아니야.”
강윤은 술 취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서 이야기하고, 혼자서 답하고, 혼자 흥분하고 이준열이 그랬다. 강윤은 더 들을 필요 없다 느껴 돌아섰다.
그런데 이준열이 그를 간곡히 붙잡았다.
“형. 내가 잘못했어. 내 무대를 만들어줘.”
“…..”
강윤은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건지 눈을 껌뻑였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어. 사실 나도 옛날만큼은 안 된다고 생각만 했지 망한다는 생각까진 해보지 않았어. 막연하게 이러면 안 된다 생각만 하고 있었지. 그런데 형은 정확하게 현실을 말해줬어. 처음엔 화도 많이 났는데 요즘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형 말이 다 맞더라고.”
“…..”
“이 목소리로 팬들 앞에 서기가 무서워. 하지만 형이라면, 날 제대로 말해주고 알아봐 준 형이 도와준다면 가능할 것 같아. 도와줘. 부탁할게.”
이준열은 돌아선 강윤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오는 이준열에게 강윤은 놀랐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강윤은 차분히 말했다.
“어제 이미 말했어. 가능성 없는 곳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고. 그리고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고 성공할 만큼 이 바닥이 만만한 곳은 아니잖아?”
“혀엉….”
“음악의 신이 온다면 모를까, 난 힘들 것 같아. 네 마음이 진심으로 바뀌었다면 다른 사람하고도 잘할 수 있을 거야.”
강윤은 이준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퇴근했다. 그의 뒤로 무릎을 꿇은 이준열을 뒤로하고 말이다. 찝찝한 기분이 들었지만, 강윤은 애써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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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저거저거 세디 아냐?”
“어머어머 저거 무슨 일이래니?”
다음날.
MG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은 출근하자마자 엄청난 장면을 목격했다. 가수 세디가 로비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장면이었다. 출입증을 찍는 곳에 있지 않아 문제가 없어 제지를 받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모두가 수군거렸다.
검은 세단과 함께 도착한 원진문 회장과 이현지 사장도 이 흔치 않은 장면을 보곤 어이가 없었다.
“요새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군, 현지 양.”
“그러게나 말입니다.”
그들은 비서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고 지시하고 집무실로 올라갔다.
이후로도 난리가 났다. 연습생들도 직원들도 이준열에 대해 저마다 입에 올렸다. 프러포즈 중이라느니 회장님의 숨겨진 아들이라느니 수많은 짐작과 낭설들이 MG엔터테인먼트를 휩쓸었다.
“이준열….”
“형, 왔어?”
이윽고, 문제의 핵이 도착했다.
강윤은 어제의 복장 그대로 무릎을 꿇고 로비에서 자신을 맞아주는 이준열을 보며 기찬 한숨을 내쉬었다.
“세디….”
출근 시간, 로비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그 가운데에 이준열이 자신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수군거렸다. 강윤은 현재 회사의 핫아이콘, 이준열은 과거에 잘나갔던 가수. 한쪽은 무릎을 꿇고 한쪽은 받고 있으니 사람들은 당연히 난리였다.
“설마 여기서 밤샌 거야?”
“맞아. 형 기다렸어.”
“하….”
강윤은 어이가 없었다. 연예계획사의 특징상 밤을 새우는 경우가 많다 보니 24시간 오픈이긴 했다. 물론 보안은 철저하다. 강윤은 어제 야근근무를 한 경비원을 붙잡고 물었다. 맞는다는 말을 들으니 기가 찰 따름이었다.
“대체 왜?”
“말했잖아. 도와달라고.”
“어제 답은 다 들었을 텐데.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돌아가.”
밤새 이러고 있는 모습이 놀랍긴 했지만, 강윤은 냉정했다. 출입증을 찍고 바로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도 세디는 활기차게 소리쳤다.
“기다릴게!!”
강윤은 어이가 없어 한숨이 나왔다. 이런 막무가내 가수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살짝 안쓰럽기는 했다.
황당한 트러블이 있었지만, 강윤의 하루는 평소와 같았다. 결제하고 결제받고, 회의하고 그의 하루는 크게 어긋남이 없었다.
문제는 저녁이었다.
“하아….”
일이 일찍 끝나 퇴근을 위해 로비로 가니 이준열이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나갈 때마다 수군거렸고 로비 직원들은 그의 앞에 먹을 것까지 가져다줬는지 앞에 김밥과 빵이 놓여 있었다.
“하하….”
자신에게 손을 흔들고 있는 이준열을 보니 강윤은 메마른 웃음이 나왔다. 사실 어제부터 강윤은 밤새 이준열에 대해 많이 고민했지만 리스크와 이익 사이에서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설마 오늘도 있겠어 생각했지만, 오늘도 있었다.
“왔어?”
“너도 대단하다….”
“말했잖아. 형이 아니면 안 된다고.”
“거절했을 텐데. 이렇게 나와도 소용없어.”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 해줄 건데? 정말 난 아무 가능성이 없는 거야? 목소리가 변해버려서? 사람들은 이런 나를 정말 안 받아줄까? 난 이대로 끝인 거야?”
“…..”
“우리 식구들이나, 작업한 형들이나 다 이렇게 말했어. 너는 세디다. 네 노래는 통한다. 이렇게 말이야. 그런데 형은 다르게 말해. 그래서 불안해. 그래서 형이 된다고 하면 진짜로 될 것 같아. 형이 된다고 하면 분명히 될 것 같아.”
“…진짜 안 되는 이유를 말해줘야겠네.”
강윤은 이준열 앞에 아예 철퍼덕 주저앉았다.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느껴졌지만, 강윤은 개의치 않았다.
“목소리는 큰 불안요소야. 하지만 그 불안요소를 세디, 너는 극복하거나 이용하려고 하지 않았어. 그걸 피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지. 담배, 술, 여자. 이런 것들을 적당히 즐기는 거야 좋지만 넌 절제를 못 했어. 난 이런 가수와 못….”
“다 그만둘게.”
“뭐?”
“전부 그만둘게. 담배고 술이고 여자고다. 형이 하라는 대로 할게.”
이준열의 눈에선 결의가 느껴졌다. 강윤에게도 그게 전해졌다. 그러나 불안했다. 말은 누구에게나 쉽다.
‘결국, 세디는 잘되지 않았어. 내가 이걸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불안함을 안고 갈 이유는 없다. 어차피 일은 계속 들어올 거다. 게다가 이미 이현지 사장에게 안 한다고 보고까지 한 상황이다. 하지만 주아도 더 나은 미래로 바꿨고 다른 연습생들도 미래를 바꿔가고 있다. 세디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을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강윤으로 인해 오리콘 차트 10위권에서 만족해야 했을 앨범이 최고의 자리에 올라 일본의 돈을 휩쓸고 있었다. 이렇게까진 아니더라도 미래는 바꾸면 되는 거 아닐까.
한참을 고민하던 강윤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먼저, 네 목소리부터 들어보고 결정하자.”
“정말? 그럼….”
“목소리부터. 일단 가자.”
이준열은 어린애처럼 기뻐했다. 조금이라도 고려해 보겠다는 의미였다.
강윤은 자리에서 일어나라 했고 이준열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너무 오래 무릎을 꿇고 있어 다리가 마음대로 펴지지 않았다. 결국, 강윤이 그를 부축해야 했다.
“매니저는 어디 간 거야?”
“휴가. 이런 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여줄 순 없잖아?”
“…잘났다, 진짜.”
강윤의 부축을 받고 지하로 내려가는 이준열을 보며 퇴근하는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그 수군거림 속을 뚫고 가며 강윤과 이준열은 지하 스튜디오로 향했다.
“이야, 내가 그 유명한 MG의 스튜디오를 다 들어와 보게 될 줄이야.”
“여기가 많이 유명해?”
“그럼. 3대 스튜디오 중 하나잖아. 소리 좋기로 유명해.”
“여건은 좋네. 그런데 다리는 괜찮아?”
“괜찮아. 앉아서 하면 돼.”
이준열은 절둑이며 자리에 앉았다. 강윤은 기계를 켜고 믹서에 앉아 세팅했다. 이준열의 목소리에 맞춰 세팅했다. 이준열의 노래가 없어 유명한 노래의 MR로 대체했다.
– 조금만 먼저 — 조금만 —
굵고 듣기 좋은 소리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팬들이 듣고 환호하던 처음의 그 저음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 하지만 — 내 사랑은- 그대로–
음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저음에서 팬들을 사로잡고 고음에서 터뜨리는 세디였는데 지금 고음에서 힘이 확실히 떨어졌다. 물론 큰 차이는 아니었다. 의식하고 들어야 알 수 있을 정도의 차이였다.
‘약해진다.’
강윤의 눈에 비친 세디는 처음에 흰빛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노래가 진행될수록 빛이 점점 흐려지더니 마지막에는 빛의 세기가 많이 줄어 들어갔다.
노래가 끝나고 스튜디오 안에서 이준열이 조심스레 마이크를 댔다.
– 어때?
강윤은 잠시 생각했다.
“옛날만큼은 안되네.”
– 역시 그런가.
“수고했어.”
좋지 않은 평을 들은 이준열은 긴장하며 밖으로 나왔다. 강윤은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옛날만큼은 안되나 보네. 어쩌지. 정말 힘든 거야? 아, 담배 땡기네.”
이준열은 평소처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가 이내 집어넣었다. 습관이란 이처럼 무서웠다. 강윤은 어이가 없는 듯 혀를 찼다.
“담배 끊는다며.”
“미안. 이번만 봐줘. 정말로. 에이, 이놈의 손, 이놈의 손!!”
“…됐다. 정리하자.”
“그럼 공연 같이하는 거야?”
강윤이 계속 이준열을 밀어냈지만, 이준열은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지배하고 있었다. 이미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라면 엇나가는 자신을 잡아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무언가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리스크는 언제나 큰 이익을 함께 가져오지.”
강윤은 생각했다. 세디의 컴백무대에서 반응이 좋다면 공연팀의 첫 출발로 이후 좋은 일들을 많이 받을 수 있으리라. 앨범까지는 몰라도 공연이라면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강윤은 결정했다.
“며칠 더 보고. 먼저 아까 말했던 거 다 지켜.”
“응응.”
담배, 여자 이런 것들을 말함이었다. 이준열은 어린아이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강윤은 불안했는지 한 번 더 강조했다.
“말은 누구나 쉬워. 특히 담배, 무조건 끊어. 만약 공연 준비를 하는 중에라도 담배를 한 대라도 태운다, 그러면 프로젝트는 끝이야.”
“알았어, 알았어.”
“이건 계약서에도 넣을 거야.”
“어?! 그럼….”
“며칠 본다고 했잖아. 다음 주까지 담배 끊어. 그 이후 이야기하자고. 이제 그만 가봐. 더 이상 무릎 꿇고 있으면 사람들이 나 독종이라고 소문낼까 두렵다.”
“고마워, 고마워.”
이준열은 그제야 활짝 웃으며 강윤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남자의 품, 강윤은 질색했다.
“이거 놔!!”
“하하하!! 고마워, 고마워.”
“저리 가.”
강윤은 남자의 딱딱한 품보다 여자의 부드러운 품이 더 좋은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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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까지 희윤의 학교생활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못해도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투석을 받는 몸으로 바득바득 학교에 다녔지만 약한 몸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리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가난은 한창 꾸미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접근할 매력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었다. 희윤은 항상 혼자였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부터 희윤의 학교생활은 달라졌다. 옷차림부터 가방은 물론이고 주아의 친구라는 소문이 학교에 좍 퍼지면서 그녀에 대한 평판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 이렇게 푸는 거였어?”
“응. 여길 보면 극한값이….”
희윤은 모르는 문제도 서슴없이 물어볼 친구가 생겼다. 덕분에 학교생활도 무척 즐거워졌다. 오빠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학교 이야기도 거의 하지 않았던 과거와는 이제 안녕이었다.
“고마워.”
“아냐. 희윤아. 저기….”
“왜? 할 말 있어?”
수학 문제를 가르쳐 준 반장이 말을 더듬었다. 반장은 질문하기 어려운 게 있었는지 안경만 매만지다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저…. 저기, 주아 사인…. 하나만 받아다 줄래?”
“주아 사인? 저번에 못 받았어?”
“그때 줄이 너무 길어서….”
거부라도 가수 한번 보면 팬이 된다고 가수에 관심 없다던 공부벌레 반장도 마찬가지였다. 희윤은 알았다며 바로 승낙해주었다. 반장은 고맙다며 희윤에게 정리한 노트까지 복사해주었다.
오후 수업이 절반쯤 지났을 무렵, 희연은 조퇴를 했다. 투석을 받기 위해서였다. 평소처럼 가방을 메고 학교를 나섰는데 반가운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안녕?”
강윤이 교문에서 몸을 기대며 반갑게 자신을 맞아주었다.
“오빠, 일하는 시간 아냐?”
“오늘은 조퇴야. 병원 가야지.”
“혼자 가도 된다니까.”
언제나 바쁜 오빠라 시간을 뺏는 것도 부담이었다. 그러나 그 바쁜 오빠가 시간을 내주는 게 고마웠다. 희윤은 강윤이 항상 자신을 1등으로 생각해 준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병원에 도착해 투석을 시작한 희윤의 맞은편에 앉아 강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연습생들 이야기였다. 희윤은 강윤에게 또래 이야기를 듣는 게 가장 즐거웠다.
“풋. 그래서 그 민아라는 애는 계속 오빠를 아저씨라고 불러?”
“그러니까. 그러지 말라고 해도 계속 그래. 왜 그러는지 모르겠네.”
“오빠 좋아해서 그러는 걸 거야.”
“에이. 희윤이 너는 좋아하는 남자한테 아저씨라고 불러?”
“으음…. 아니. 그런데 내 말이 맞을 거야. 그 민아라는 애, 오빠 좋아해서 그러는 것 같아.”
“에이, 말도 안 돼. 그럼 나도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아줌마라고 할까? 희윤 아줌마?”
“그러기만 해봐. 혼난다?”
병원에서의 대화는 즐거웠다. 그러나 길진 않았다. 투석으로 인한 피로는 이내 희윤을 잠에 빠지게 하였고 강윤은 그동안의 경과를 듣기 위해 의사에게로 향했다.
의사는 크게 문제가 없다 이야기했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들은 강윤은 병원 입구로 향했다. 담배가 생각나서였다.
“후유….”
강윤이 시원하게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화려하지 않은 교복이었지만 눈에 띄는 키의 여중생이었다.
‘서한유?’
연습실로 가야 할 서한유가 병원이라니, 강윤은 의아했다. 그러나 뒤따라 가는 건 더 우스운 일이었다. 나중에 개인면담을 할 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담배를 태우고 잠시 시간이 지나 담배 냄새가 빠질 무렵, 강윤은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자는구나.’
아직 투석 중인 희윤이 세상 모르는 얼굴로 편안히 잠들어 있었다. 강윤은 희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희윤아. 오빠가 이번에는 반드시 오래오래 살게 해줄게. 결혼도 하고 애기도 낳고, 행복하게 살게 해줄게. 꼭, 꼭. 너는 걱정하지 말고 살아만 줘. 알았지?”
강윤의 가장 큰 바람, 그것은 동생이 건강하게 평범한 사람들처럼 뛰어도 다니고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을 위해 강윤은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었다. 전생에 모든 가수를 실패하고도 아득바득 버텼던 원동력은 바로 희윤이었다.
햇살이 부드럽게 비치는 희윤의 평온한 얼굴을 보며 강윤은 평온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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