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245
76화 – 프라이드가 살아있는 무대(3) >
회의실에 홀로 남은 강윤은 잠시 이마를 잡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예상한 일이야.’
갑작스럽게 굴러온 돌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거라고는 이미 예상했었다.
원래대로라면 천천히 신뢰를 얻으며 팀을 하나로 모으는 데 집중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내가 먼저 더 뛰어야겠군.’
강윤은 캐리 클라우디아가 댄서들과 연습을 하고 있는 연습실로 향했다.
[강윤!!]스트레칭을 마치고, 막 연습에 들어가려던 그녀는 강윤을 보곤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방해해서 미안합니다, 캐리.] [아니에요. 무슨 일?] [급하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습니다. 잠깐 시간 괜찮습니까?]캐리 클라우디아는 댄서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윤과 연습실 구석으로 향했다.
그녀는 강윤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지 벌써부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강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들 뛰어난 분들 같았습니다. 손발을 맞추면 어떤 공연이 나올지 기대가 되더군요.] [역시.]첫 회의에서 삐걱댔지만, 강윤은 팀장들에 대한 뒷담화를 하지 않았다.
캐리는 강윤의 말에 기뻐하며 그의 팔을 가볍게 잡았다.
강윤은 웃음을 멈추고 차분히 본론을 꺼냈다.
[캐리. 이번 공연은 콘서트 버전으로 합니까?] [응. 맞아요. 문제 있나요?] [아무래도 편곡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그러자 캐리 클라우디아의 표정이 묘하게 틀어졌다.
[편곡? 왜죠?] [콘서트에서 보여준 무대와 제미스에서 보여준 무대가 같을 순 없습니다. 아무래도 편곡이…] [싫어요.]그녀는 강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캐리.] [필요하면 인트로를 조금 줄이거나, 장치들을 조절하면 되잖아요. 굳이 편곡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가뜩이나 시간도 촉박한데…] [확실히 시간이 팍팍하긴 합니다. 그래도 모자라지 않게 맞출 수 있습니다. 캐리. 그러니까…] [편곡 없이 해요.]그녀는 완고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강윤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설득했다.
연예인이 고집을 부리면 설득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아는 강윤은 지금은 일단 한 걸음 물러설 때라는 걸 느꼈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죠. 충분히 생각해보고 말해주십시오.]
강윤은 연습실을 나섰다.
사무실로 올라가려는데, 문이 다시 열리며 큰 키의 머리가 없는 댄서가 강윤을 붙잡았다.
자신을 수석댄서라고 소개한 그는 강윤에게 심각한 얼굴로 용건을 이야기했다.
[콘서트 버전 ‘Take Good Care’의 편곡을 캐리가 직접 했습니다. 쉽게 편곡을 허락하지 하지 않을 겁니다.] [캐리가 편곡을 했다?] [네. 캐리는 자신이 편곡한 버전의 ‘Take Good Care’에 애정이 많습니다. 들리는 말에 캐리는 이 버전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습니다.]강윤은 이야기를 해줘서 고맙다고 한 후, 남자 댄서에게 돌아섰다.
캐리 클라우디아의 회사가 마련해 준 사무실에 들어간 강윤은 의자에 앉아 팔로 이마를 감쌌다.
‘확실히 편곡이 필요해. 제미스 무대와 콘서트 무대의 환경이 같을 리가 없어.’
어찌 보면 사소한 차이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 디테일의 차이가 일류와 이류를 가르는 법이다.
가수가 아무리 고집을 부려도 들어줄 것과 들어주지 않아야 할 것이 있었다.
‘다시 가 보자.’
강윤은 다시 캐리 클라우디아의 연습실로 향했다.
[하나, 둘, 하나, 둘. 제이드. 좀 더 옆으로.]캐리 클라우디아는 구슬땀을 흘리며 댄서들 사이에서 맹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전의 이야기 때문인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 시간 괜찮으십니까?]캐리는 내키지 않는 듯 했지만, 댄서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강윤을 따라나섰다.
강윤은 아무도 없는 옥상으로 캐리 클라우디아를 이끌었다.
강윤이 단언하자 그녀의 표정이 대번에 일그러졌다.
칼날 같은 눈빛이 강윤을 베어버릴 기세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강윤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아무래도 충격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렇게까지 뜻을 관철시키는 기획자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었다. [하. 후회되네요. 왜 당신을 데려왔는지…]
그녀에게서 심한 말이 흘러나왔지만, 강윤은 차분히 그녀의 말을 받았다.
[최고의 무대를 위해 날 데려온 것. 아닙니까?] […..]그녀는 강윤의 솔직함에 웃음을 터뜨렸던 한국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편곡을 하면 더 좋다는 걸 그녀라고 몰랐을까?
하지만 팀원들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중심인 그녀가 편곡하는 걸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하아.’
캐리 클라우디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
강윤의 말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사정없이 그녀를 밀어붙였고, 선택을 강요했다.
힘든 결정을 한 그녀의 머리를 식혀주듯, 시원한 바람이 옥상에 불어왔다.
[알겠습니다.] [대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강윤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옥상을 내려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캐리 클라우디아는 투덜거렸다.
그녀를 위로하듯,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있었다.
.
.
.
3층에 있는 스튜디오.
그곳에는 흑인 여성과 백인 남성이 믹서 앞에서 대화에 한창이었다.
흑인 여성은 메이슨이라는 백인 남성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편곡한다’ 쪽에.] [아니, 왜?] [팀장들 아무도 ‘안 한다’에 걸었거든. 어차피 인생 한방이잖아?] [그런 말은 어디서 배운 거야?]두 남녀가 깔깔대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스튜디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메이슨은 여유 있게 앉아 있다가 놀라 의자에 바로 앉았다.
편곡이라는 말에 흑인 여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캐리 클라우디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설마가 진짜야. 편곡 좀 해줘.]흑인 여성이 경악에 찬 눈을 한 채 조심스레 나간 가운데, 강윤은 캐리 클라우디아의 앞에 나섰다.
[제미스 어워드 무대에 맞게 편곡을 해야 합니다. 시간이 촉박하니 가급적 빠르게 부탁합니다.] [혹시 이번 무대 마스터?] [네. 이강윤입니다.]강윤은 그와 악수를 한 후, 본격적으로 편곡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내 최고의 편곡가라는 이름에 맞게 메이슨은 요지를 빠르게 파악했다.
캐리 클라우디아는 덤덤한 얼굴로 잘 부탁한다는 말만 남기고 스튜디오를 나가버렸다.
메이슨은 무대 디자인을 이야기하는 강윤에게 깊이 몰입했다.
[가능합니다. 그보다, 자세한 무대 디자인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괜찮습니다. 저 정도 편곡가면 그 정도 이미지면 충분해요. 불꽃 그림이라…]이미지가 강하게 박혔는지, 그는 계속 강윤의 말을 되새겼다.
편곡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 후, 강윤은 사무실로 돌아가 그의 일을 해나갔다.
다음날.
댄스팀을 시작으로 밴드팀, 장비팀에 이르기까지 이번 곡의 버전이 바뀐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모두 편곡의 필요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말하지 못했는데…
낙하산인 줄 알았던 신입 마스터가 킹을 잡았다며 모두가 호들갑이었다.
한편, 오후에 강윤은 메이슨으로부터 새로운 버전의 곡을 받은 후 회의를 소집했다.
[다들 모이셨군요.]
전날의 날선 분위기와는 다르게 오늘은 이상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댄스 1팀을 담당하는 팀장, 루크는 강윤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강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루크는 웃으며 답했다.
[우리는 안무를 짜고 맞추는 게 일입니다. 보다 좋은 무대를 만들기 위한 일 아닙니까.]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하지요.] [하하하. 맡겨주십시오. 우리 다 같은 생각입니다. 그렇지?]다른 댄스 팀장들도 루크와 마찬가지로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를 디자이너, 켈린도 어제와는 달리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강윤이 지시를 내리기도 전에 팀장들 모두가 알아서 움직이고 있었다.
에너지 넘치는 캐리 클라우디아 못지않게 팀원들도 힘이 있었다.
새로 받은 곡을 재생하기 전, 강윤은 자신이 생각해 온 무대 장치에 대한 자료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T자형의 무대에 불꽃으로 캐리의 외관을 그려 일으킨다.
제미스에서는 물론 개인 콘서트에도 나오지 않았던 화려한 장치에 모두가 경악했다.
그러나 강윤은 확신이 있었다.
‘가능한 회사가 있지.’
강윤은 회귀하기 전, 슈퍼볼 경기에서 처음 선보였었던 ‘파이어 스케치’라는 특수장비를 떠올렸다.
그의 기억에 선보여진 년도가 2017년에서 2018년 즈음이었다.
지난번 미국 특수장비 회사를 통해 한국으로 들여오려다 통관문제로 들여오지 못했던 장비들 중 이 장비가 있었다.
레오는 새로운 장치가 있다는 말에 눈을 빛냈다.
왠만한 특수장비들은 다 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새로운 장비가 있다니…
저마다 놀란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강윤은 박수를 치며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팀장들은 심드렁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강하게 눈을 빛내며 회의에 집중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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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TNM 라디오 뮤직홀은 제미스 어워드를 위한 무대 설치로 분주했다.
무대를 공중으로 끌어 올리는 크레인을 비롯해 수많은 가수들의 요구를 수용하고 거부하느라 주최측은 정신이 없었다.
제미스 어워드가 열리기 일주일 전.
주최측의 무대 담당자인 테레스는 지금 설치중인 무대장치 문제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있었다.
제미스 어워드 무대는 팬과 매우 가깝다.
그런데 불로 그림을 그린다? 과연 안전에는 이상이 없을까?
강윤은 무대 디자인을 들고 있던 강윤은 차분히 답했다.
테레스의 얼굴은 심각했다.
무대에 불을 이용한 특수장비들은 굉장히 많았다.
콘서트도 아니고, 이런 불확실한 장비의 사용을 허락해도 되는지, 그는 일주일 남은 시점에도 고민하고 있었다.
강윤은 그에게 서류를 꺼내 건넸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재생해 보여주었다.
이곳에 오기 전, 특수장비 회사와 함께 찍은 테스트 영상이었다.
동영상은 직원 불꽃 50cm, 1미터에서, 2미터, 3미터 거리에서 온도를 잰 영상이었다.
2미터, 3미터는 평상시의 LA 온도인 18도가 나왔고, 1미터에서는 약간 높았으며 50cm에서는 위험하다 생각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테레스는 실험 영상까지 보자 실소를 머금었다.
테레스는 캐리 클라우디아 공연의 책임자라는 이 동양인이 강하게 남았다.
이런 열정을 가진 책임자가 있다면 가수는 걱정 없이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테레스는 졌다는 얼굴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파이어 스케치 장비 설치를 허가해달라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장비가 설치되었다.
4일 전.
제미스 어워드 무대의 설치가 완료되었다.
무대설치가 끝나기가 무섭게, 가수들이 스케줄에 맞춰 리허설에 들어갔다.
캐리 클라우디아가 리허설에 들어간 건 2일 전이었다.
50명이 넘는 대인원이 무대에 오르기에, 단번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강윤은 조명 디렉터 옆에 서서 무대 전체를 내려다보았다.
‘캐리가 가려지는 느낌인데? 3팀도 좁은 느낌이고.’
강윤은 조명 디렉터에게 이야기해 조명을 조절하고, 무전으로 3팀에게 퍼지라는 지시를 내렸다.
리허설인데도 무대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동선을 맞춘 후, 리허설에 들어갈 수 있었다.
– When you feel so alone?
캐리 클라우디아의 낮은 목소리가 무대에 퍼져나갔다.
– When you find your heart?
그녀의 저음이 볼륨을 더해가더니 무대 바닥에서 불꽃이 움직이더니 사람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 Take good care — of my heart —
사람, 아니 캐리 클라우디아의 형상을 한 불꽃이 완성되자 무대가 천천히 올라오며 캐리 클라우디아가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불꽃이 일어나더니 그녀가 불꽃의 사이에 있는 형상이 만들어졌다.
– 캐리, 괜찮아요?
혹여 뜨겁지는 않을까.
강윤은 무전을 띄웠다.
그러자…
– O—–K—————————–!!!
멜로디에 맞춘 OK사인이 떨어지자 스탭과 팀원들 모두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곧 불꽃이 사그라지며 천장에 달린 수십의 조명이 그녀 한사람에 집중되었다.
그와 함께 사이키 조명들이 화려하게 터져 나오며 어둠속에 보이지 않던 50명의 댄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 I’ve waited — for — your love —
듣기에도 시원한 캐리 클라우디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운데, 강윤은 그제야 안심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휴우. 이 정도면 본 무대도 걱정할 것 없겠어.’
무대에 환호를 보내는 준비팀을 뒤로 한 채, 강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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