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of music RAW novel - Chapter 258
79화 – 장기 프로젝트, 그 시작(2) >
‘하하…’
강기준은 허탈한 표정으로 한숨지었다.
SBB 드라마 탈리스만은 대형 블록버스터로 시청자들의 기대가 매우 높은 드라마였다.
제작진도 훌륭하고, 거대한 제작비까지 투입되는 기대작.
과거의 배우와 현재의 배우가 이런 식으로 맞붙는다니 달가울 리가 없었다.
“기준 팀장.”
강윤은 강기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위를 가리켰다.
가는 길에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은 후, 두 사람은 옥상으로 향했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옥상에서, 강기준은 간이의자에 앉아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 바닥이 좁은 건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
콜라를 원 샷 해버린 강기준은 허탈한 감정을 진하게 드러냈다.
인지도를 따지면 민진서가 훨씬 위였지만, 드라마의 힘이나 방송사의 힘을 따진다면 이민혜 쪽이 훨씬 나았다.
강윤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차라리 방송 시간이라도 달랐으면 좋을 텐데. 운명이 참… 얄궂군요.”
강윤도 별 다르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매니저와 연예인의 관계를 애인사이라고까지 말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부딪히니 그의 마음이 뒤죽박죽인 건 말 안 해도 뻔했다.
강기준은 어깨를 늘어뜨리며 힘없이 웃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강윤은 고개를 흔들었다.
“감정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기준 팀장이 공과 사도 구분 못할 사람은 아니고…”
“…감사합니다.”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는 강윤의 말에 강기준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뒤에 누군가가 버티고 있다는 것이 이리도 든든한 것이었던가.
강윤은 난간에 양 팔을 기대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난 기준 팀장이 어디에 집중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별로 걱정은 되지 않습니다.”
강윤은 그의 어깨를 다시 한 번 두드려주고는 먼저 옥상을 내려갔다.
‘집중… 이라.’
힘내라는 말도, 잘 해보라는 말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손길에는 따스함이 진하게 묻어있었다.
강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기준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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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붙어있는 스피커와 바닥에서 울려대는 우퍼에는 긴장감이 넘치는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음악이 가장 잘 들리는 방 가운데에서, 이로다 하루는 악보를 들고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좀 더 긴박한 느낌이 나게 해야 하는데…’
반복되는 멜로디로 긴장을 고조시킨 후, 밀어 올린다는 느낌으로…
악보와 컴퓨터를 번갈아보며 작업을 하는 그의 눈에는 날이 섰다.
한참 작업을 하는 이로다 하루에게 희윤은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 緊張がより高まったらいいですね (긴장이 좀 더 고조됐으면 좋겠어요)
의사소통을 위한 신무기.
핸드폰 번역기였다.
이로다 하루는 핸드폰에 고개를 내밀며 잠시 눈을 좁히다 자신의 핸드폰에 문자를 적었다.
– 이 마디를 반복할까요? (この節を繰り返しましょうか。)
– そちらとの後ろ3回目まで繰り返した方がどうですか。(그쪽하고 뒷부분 3번째까지 반복하는 게 어때요?)
중간중간 번역기가 허점을 드러냈지만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희윤으로선 본격적으로 작곡에 참여하게 돼서 좋았고, 이로다 하루는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더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리고 박소영은 희윤과 이로다 하루가 만든 음악을 최종적으로 편곡하니 세 사람은 역할을 나누어 작업을 해나갔다.
의사소통이 느려서 작업이 조금 더디기는 했지만 오히려 결과는 훨씬 나았다.
그렇게 한참 작업을 하다가 이로다 하루는 기지개를 펴며, 손가락으로 문을 가리켰다.
“다녀오세요.”
희윤은 그의 의도를 바로 알아채고는 웃었다.
이로다 하루가 이전처럼 아무런 말도 없이 휙 나가버리는 일은 이제 없었다.
그가 나간 후, 박소영도 컴퓨터를 대기모드로 돌려놓으며 말했다.
“강윤 오빠가 그때 뭐라고 한 이후에 저 사람도 조금 변한 것 같아.”
희윤도 박소영의 말에 동의했다.
“내 말이. 아, 누구 오빤지 몰라도 기가 막힌다니까.”
“그런데 말이야.”
박소영이 심상치 않은 눈초리를 하며 희윤에게 속삭였다.
“이로다 씨, 강윤 오빠를 보는 눈이 심상치…”
“조용히 해.”
“어?”
희윤이 목소리를 낮게 깔자 박소영은 순간 몸을 움찔했다.
‘희윤이 무서워…’
친구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희윤은 그녀답지 않게 매몰차게 돌아서며 책상을 정리할 뿐이었다.
‘여자도 별로지만 남자는… 으으.’
악보를 가지런히 하는 그녀에게서 쾅쾅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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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메시지’의 삽입에 강윤은 특히 많은 신경을 쓰고 있었다.
일본에서 이로다 하루라는 영화 음악 전문가까지 데려왔고, 월드의 모든 작곡가들을 투입했다.
아예 ‘더 메시지’를 떠올릴 때, 음악을 떠올릴 정도로 강윤은 퀄리티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그날의 운명은 처음에 힘을 너무 많이 준 것 같은데.’
스튜디오에서 음악을 들으며 강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듣기 좋은 전자음과 리듬의 향연은 새하얀 빛을 넘실대게 했지만 그 안에 은색이 섞여있었다.
강윤으로선 아쉽기 그지없었다.
‘힘을 조금만 빼면 좋을 것 같은데.’
강윤은 자신의 생각을 적어나갔다.
음악에 정답은 없다지만 이 조언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첨언을 다 적은 강윤은 ‘Sad Love, Mission, Bullets’등의 음악들을 재생했다.
슬픈 풀룻 소리로 시작하는 Sad Love는 하얀빛에서 은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둥둥 소리를 내는 Mission이나 조용한 가운데 총성을 내는 Bullets이라는 곡은 몰입감을 더더욱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Sad Love는 명곡이 되겠군.’
플롯이 떨리는 소리가 특히 일품이었다.
악보에 달린 첨언을 보니 이로다 하루가 멜로디를 만들었고 희윤이 수정을, 박소영이 풀룻을 비롯한 편곡을 했다고 적혀있었다.
좋은 시너지 효과가 나는 듯 해 강윤은 만족했다.
Save 등의 나머지 곡들도 만족스러웠다.
‘금빛이 없는 게 아쉽긴 하지만… 하긴, 금빛이 쉬운 게 아니지. 일단 은빛이 될 법한 곡들부터 손을 보자.’
몇 번이나 곡을 반복해서 들은 후, 강윤은 곡을 정리해서 돌려보낼 곡과 채택할 곡들을 골라냈다.
강윤이 작업을 마치고 기지개를 필 때, 이현아와 오지완 프로듀서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이현아는 강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강윤도 손을 들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지완 프로듀서는 짐을 풀어놓은 후, 의자에 앉았다.
“작업은 다 끝나신 겁니까?”
“네. OST라는 게 만만치 않네요.”
“드라마에 삽입되는 곡은 가수들이 발매하는 앨범과는 또 다른 느낌이지요. 그래도 사장님이야 워낙 곡을 보는 눈이 뛰어나시니까…”
“과찬이십니다.”
강윤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얼마 있지 않아 이현아가 직접 커피를 타서 강윤과 오지완 프로듀서에게 건네며, 함께 자리에 앉았다.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걸 눈치 챈 강윤이 얼음이 든 잔을 돌리며 물었다.
“무슨 할 말 있니?”
“별건 아니고… 로비 좀 할까 해서요.”
“로비? 아.”
강윤은 이현아의 의도를 바로 눈치 챘다.
드라마 OST에 참여하고 싶어요.
그녀의 의도를 안 강윤은 피식 웃었다.
“왜? OST 때문이야?”
“…바로 아시네요.”
“타이밍이 재미있잖아. 하얀달빛의 OST라.”
이미 2번의 OST로 큰 히트를 친 하얀달빛이다.
이번에 또 낸다고 해도 나쁠 건 없었다.
반가운 제안이었지만 강윤은 바로 승낙하지 않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현아야. 더 메시지가 어떤 드라마인지는 알고 있어?”
“아뇨. 대본을 본 적이 없어서…”
“그래? 그러면 먼저 희윤이나 진서한테 말해서 대본을 보고 결정하는 게 어떨까?”
“네? 저번에는 그렇게까지는 안했는데…”
이현아는 난감함을 드러냈다.
지난번 앨범들에는 드라마를 보고, 영감을 떠올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본을 보라니. 드라마가 방영하기 전이라지만, 너무 앞서가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강윤은 웃으며 설명했다.
“글로 보는 것과 영상으로 것은 느끼는 게 완전히 다르지. 어차피 이번에 OST를 내려면 직접 쓸 거 아냐?”
“그, 그건 그렇죠.”
사실, 강윤이 줬으면 하는 바램이 더 컸지만 이현아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말은 해 놓을 테니까 네 식대로 내용을 해석하고 곡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더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아.”
“…네에.”
이현아가 불퉁하게 답하자 강윤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왜? 조건이 까다로워서 그래?”
“…아니에요.”
“하하하.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봐야 좋은 가수가 되지. 안 그래?”
“…그렇죠. 알았어요. 하여간 쉬운 게 없다니까.”
그의 뜻을 알게 된 후, 이현아는 강윤의 말에 수긍했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결국 가수에게 가장 좋은 방향을 택한다는 걸 잘 알았다.
이야기를 마친 강윤은 오지완 프로듀서에게 눈을 돌렸다.
“한유하고 이야기는 해보셨습니까?”
“말은 해봤는데, 난감해하더군요.”
이현아가 팀원에게 이야기를 전하겠다며 나간 후, 강윤은 오지완 프로듀서와 다른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긴, 지금까지 상상도 못한 일인데… 그럴 만 하지요.”
“사장님. 조심스럽게 한 말씀 드리자면… 이건 무리수 같습니다. 한유한테 디제잉을 배우라니요.”
오지완 프로듀서가 이건 아니라며 반대했지만 강윤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한유는 프로듀싱을 배웠잖습니까. 곡을 보는 센스가 있었습니다. 루틴 테크닉을 배우는데 무리는 없다고 여겨집니다.”
“그건 그렇지만… 한유가 클럽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지금까지의 이미지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오지완 프로듀서는 걱정스러웠다.
클럽을 좋아하는 한주연이나 이삼순과는 다르게 서한유는 정민아와 함께 싫어하는 축에 속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한다는 이유였다.
강윤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디제잉과 프로듀싱은 많이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시끄럽다고 배우지 않을 정도라면 제가 사람을 잘못 본 거겠죠. 그리고 지금까지 사람들은 한유의 모범적이고, 순수한 면을 좋아했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꽤 됐었습니다.”
“그렇긴 합니다만…”
“여기에 디제잉이라는 무기를 가지면 어떨까요?”
오지완 프로듀서가 조금씩 고개를 끄덕였다.
“반전… 이군요. 사람들이 많이 놀랄 것 같습니다.”
강윤은 말에 힘을 주었다.
“현재 에디오스 멤버들 중 중국어가 되는 멤버는 한유밖에 없었습니다. 듀엣도 생각해봤지만, 차라리 집중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전 한유가 가질 반전으로 젊은 층을 공략하는 게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포장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겠군요. 모범적인 이미지, 그리고 디제이. 홍보팀에서 애를 많이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오지완 프로듀서는 첨언을 달며 수긍했다.
반전은 효과도 크지만 잘못하면 반감을 크게 살 수 있었다.
그는 강윤의 과감함에 놀라며 한편으론 걱정스러웠다.
“한유에게는 제가 이야기하겠습니다. 오 PD님은 디제잉을 가르쳐 줄 준비를 해주십시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긴 장비가 없는데…”
“며칠 내로 준비해놓겠습니다. 일정을 잡아주십시오.”
클럽에 대한 이야기까지 마친 후, 강윤은 다시 일을 위해 사무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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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설마설마 했는데 진짜네요.”
스튜디오에 온 서한유는 자신 앞에 놓인 디제이 컨트롤러를 보며 멍하니 눈을 껌뻑였다.
당황하는 그녀에게 강윤이 웃으며 말했다.
“계속 말했지만 디제이나 프로듀싱이나 본질은 같아.”
“기억하고 있어요. 프로듀싱은 곡에서 공감을 얻어야 하고 디제잉은 테크닉으로 공감을 얻어야 한다. 둘 다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말이죠?”
그녀의 똑부러지는 답에 오지완 프로듀서가 답했다.
“오, 역시 한유네. 정답이야.”
“오면서 공부하고 왔거든요. 그런데…”
서한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가락을 꼼지락댔다.
“제가 일렉트로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요. 클럽도 그렇고… 그런데 제가 디제잉을 할 수 있을까요?”
편견은 무서웠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는 그녀에게 클럽의 폐쇄적인 공간과 일렉트로닉이라는 장르는 거부감이 저절로 일어났다.
강윤이 배워보라고 해서 오기는 했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거부감이 있었다.
오지완 프로듀서도 걱정했지만, 강윤은 조금 달랐다.
“처음에만 그럴 거야.”
“네?”
강윤의 자신 만만한 표정에 서한유가 의문을 표했다.
“디제잉은 음원을 선곡하고 재조합하는 창의적인 예술이야. 클럽에서 많이 연주하고 시끄럽다는 말도 맞지만… 직접 해보면 완전히 생각이 달라질걸?”
“…그래요?”
“일단 해보고 이야기할까? 오 PD님. 시작할까요?”
오지완 프로듀서는 서한유와 함께 컴퓨터를 켜고 디제이 컨트롤러의 설정 마법사에 들어갔다.
끝
ⓒ 이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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